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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32화 (227/1,794)

템빨 20권 - 14화

파리 샤를 드 골 국제공항.

이착륙하는 비행기가 연간 53만대에 달하는, 유럽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이다. 어디로 시선을 돌려봐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붐비기만 하면 다행이다.

“크긴 또 겁나게 크네.”

유라의 전용기에서 내려 2E 터미널에 당도한 한국팀 대표들.

끝을 가늠할 수 없이 펼쳐진 내부를 확인한 그들이 혀를 내둘렀다.

“어째 인천공항보다 큰 것 같은데?”

“맞아요. 인천공항보다 2배 이상 더 커요.”

“와, 약도 좀 보세요. 가장 가까운 출구도 1시간은 넘게 걸어야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경악하는 일행에게 유라가 설명했다.

“걱정 마요. 버스를 타면 되니까.”

최고의 미녀이자 통합랭킹 5위였던 유라는 늘 관심의 대상이었고, 많은 국가에 초대를 받아왔다.

파리만 해도 벌써 9번째 방문하는 것이다.

지리에 익숙한 그녀의 안내를 따라서 20분가량 걸은 일행이 버스 정류장에 도착, 한 대의 버스에 탑승했다.

학창시절 습관 때문에 가장 앞자리, 그러니까 운전석 바로 뒷 자석에 앉은 영우가 한숨 돌렸다.

“이제 이 버스로 파리 시내까지 이동하면 되는 건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이 넓은 공항을 대체 얼마나 헤집고 다녀야하는 걸까, 걱정하며 긴장했는데 비교적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안도하는 영우에게 유라가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이건 공항 내 셔틀버스에요.”

“공항 내 셔틀 버스…?”

“네, 우리는 이걸 타고 가장 가까운 택시 정류장에서 내려, 또 그 택시를 타고 시내까지 이동할 거예요.”

“…”

공항 참 더럽게 커서 사람 피곤하게 만든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면서, 영우는 두 번 다시는 파리를 방문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파리가 세계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Satisfy에는 이보다 더 멋진 명소가 많았으니 영우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한편, 은근슬쩍 영우의 옆자리에 앉은 유라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비쩍 말랐던 영우의 팔뚝이 지금은 단단하고 우람했다. 그 모습이 흐뭇하고 든든한 유라였다.

‘얘는 빈자리 놔두고 왜 굳이 내 옆에 앉는 거야?’

기분 좋은 채취를 흘리면서 부드러운 살결을 맞닿아오는 유라.

바로 옆에서 보니 오뚝 솟은 코가 정교한 예술작품처럼 완벽하게 아름다웠다. 또한 흰 피부에 잡티라고는 하나 없었으니 마치 새하얀 눈밭을 보는 듯하다.

쿵쾅쿵쾅!

유라를 의식한 영우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침착하자, 침착해.’

긴장한 영우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자칫 실수로라도 손가락을 움직여서 유라의 몸을 건드렸다가는,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몰라 노심초사하며 조심하는 것이었다.

***

샤를 드 골 공항에서부터 택시로 40분가량 이동한 한국팀 대표들이 숙소에 도착했다.

샹X릴라 호텔.

에펠탑과 600미터 거리에 위치한 5성급 호텔이다.

중세시대의 궁전을 연상하게 만드는 럭셔리한 내부와 에펠탑, 몽마르트가 한 눈에 들어오는 객실의 뷰가 일품이었다.

“게다가 이 안에 있는 식당들이 죄다 미슐랭 가이드에 올랐다면서?”

“숙박료 엄청나게 비쌀 것 같은데.”

“가장 싼 방의 하루 숙박료가 200만원을 훌쩍 넘고, 비싼 방들의 숙박료는 3~4천만원대에 형성되어 있다고 하더라.”

“3, 4천만 원? 서, 설마 하루에…?”

“어.”

“…”

제2회 Satisfy 국가대항전에 참가한 인원은 총 224명.

S.A그룹은 그들 전원에게 5성급 호텔을 제공했다. 무려 16일 동안 말이다.

과연 세계 1위 기업다운 재력이었다.

‘세희도 이번 대회에 참가했으면 좋았을 텐데.’

배정 받은 객실의 호화로움에 감탄한 영우가 여동생 세희를 떠올렸다.

세희가 이곳을 봤으면 얼마나 기뻐했을지 상상해보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뭐, 급할 거 없지. 내년 국가대항전부터는 함께하게 될 테니까.’

현재 세희는 수험생이다.

학업에 열중하느라 Satisfy를 플레이하는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었고 레벨이 낮아 국가대항전에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년부턴 다를 것이다.

영민한 세희는 Satisfy와 성녀의 가치를 이제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우선 대학에 진학한 후부터는 Satisfy에 집중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니까.

“근데 뭔 옷들이 죄다 이래?”

짐 꾸러미를 풀어서 옷을 정리하던 영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평소에 애용하는 트레이닝복과 슬리퍼는 온데간데없고, 죄다 와이셔츠에 카라 티, 그리고 면바지와 청바지에 운동화밖에 없었다. 심지어 구두도 들어있었다.

‘설마 나보고 이런 걸 입고 다니라고?’

영우가 옷차림에서 중시하는 것은 오로지 편의성이었다.

디자인? 그딴 건 관심도 없었다.

한 번 유행을 쫓아 옷을 입었다가 첫사랑 아영이에게 무시당한 게 트라우마가 되어서 그 후론 패션에 아예 신경 쓰지 않았다. 깃 있는 옷은 갑갑해서 특히 싫어했다.

자신의 성향을 뻔히 알면서 이런 옷들만 챙겨 넣다니?

“세희, 이 녀석…”

당분간 떠나있는 오빠를 위한답시고 자처해 짐을 싸준다 싶더니만, 이런 식으로 골탕을 먹여?

연신 투덜거린 영우가 샤워 후 옷을 갈아입었다.

세희가 1번부터 19번까지 정리해놓은 코디 세트 중 1번을 선택했다. 1번을 선택한 이유는 오로지 하나였다. 오늘이 파리 온 첫날이니까 1번을 입은 거다. 이튿날에는 2번 코디를 입을 예정이었다.

<셔츠는 팔꿈치 아래까지 걷고, 꼭 바지 안에 넣어서 입을 것! 시계도 차!>

“…와, 나중에 얘 남편 될 남자는 진짜로 피곤하겠네.”

세희가 남겨놓은 쪽지를 확인하고 미래의 매제를 측은하게 여긴 영우가 쯧쯧, 혀를 차면서도 쪽지 내용을 따라서 옷을 입었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서더니 자신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 어째 잘생긴 것 같다?’

과거, 비쩍 말랐던 영우는 못생겼다는 말을 워낙 많이 듣고 다녔다.

볼 살이 없어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높은 티존, 그리고 쌍꺼풀 없이 쫙 찢어진 눈매가 전체적인 인상을 신경질적으로 보이게끔 만들었었다.

피부도 거칠고 어깨도 움츠리고 다녔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볼품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1년 반 동안 영우는 살이 이상적으로 붙었고 운동을 통해서 몸매도 가꿔왔다. 또한 나이가 들면서 이목구비가 전체적으로 성숙해졌으며 피부 관리도 잘 돼 과거와 비교하면 무척이나 멋졌다.

아니, 굳이 과거에 국한해서 비교하지 말고 한국 남성 평균 외모와 비교해 봐도 훌륭한 편에 속했다.

높은 티존과 보기 좋게 발달한 광대가 서구적인 매력을 발산했고 커다란 키와 넓은 어깨가 남성다움을 부각시켰다. 특히 길게 찢어진 눈매는 여성들에게 섹시하게 비췄다.

여기에 세희가 해준 코디가 맞물리자 영우는 모델 뺨치는 매력을 뽐낼 수 있었다.

똑똑.

거울 앞에 선 채 멍하니 있던 영우가 노크 소리에 놀라 정신을 차렸다.

“들어와요.”

“준비 다 끝났어?”

방에 들어온 극검이 질문하다가 감탄했다.

“오호, 옷 한 번 제대로 차려입었구만.”

척!

멋지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워주는 극검이었다.

덕분에 기분이 더 좋아진 영우가 방을 나섰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호텔 1층에 마련 된 기자 회견장이었다.

현재 같은 호텔에 묵고 있는 미국팀, 영국팀, 터키팀 등의 대표선수들이 먼저 자리에 착석해 있었다.

“그리드님!”

영국팀 대표로 앉아있는 레가스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왔다.

반면 미국팀 대표 지발은 영우에게 무관심했고 터키팀 대표 부바트는 영우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응? 한국은 내가 대표야?”

한국팀 대표석에 <신영우>라는 이름이 써있는 것을 본 영우가 당황해서 묻자, 뒤늦게 나타난 유라가 설명했다.

“회의 때 그렇게 정했어요.”

“왜? 헉.”

어리둥절해하던 영우가 유라의 모습을 확인하더니 숨을 삼켰다.

포토 존을 의식한 것인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유라의 모습, 마치 미의 여신이 강림한 것처럼 아름다웠기에.

머리카락을 올려 묶어 드러난 가녀린 목선으로부터 영우는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당신은 우리 중 가장 강하며, 또한 템빨단의 마스터로서 리더십도 겸비했잖아요? 당신이 아니면 누가 대표를 맡겠어요?”

‘나한테 리더십이 있다고?’

템빨단의 마스터로서 내가 해온 일이라고는 아이템 만들고 사냥 다닌 것밖에 없는데?

납득하지 못하는 영우였지만 현실은 유라의 평가가 맞았다.

뱀파이어 백작 엘핀스톤을 레이드 했었을 당시, 영우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리더십을 발휘해서 동료들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모습을 선보인 바도 있었다.

유라는 영우의 리더로서의 잠재력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었고, 이번 국가대항전을 토대로 그 잠재력을 개화시키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에… 어… 음…”

예상치 못한 극찬에 어버버거리는 영우의 등을 극검이 떠밀었다.

“뭐해? 다들 널 기다리고 있다고, 갓리드.”

“큼.”

결국 한국팀 대표석으로 이동한 영우가 착석했다.

그 순간.

‘표정이 변했다?’

회견장에 모여 있는 수백 명의 기자들과 스텝들이 동시에 놀랐다.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영우의 얼굴이 자리에 앉는 순간 진중하게 변했고, 날카로운 눈매 속 빛나는 눈동자가 자신에게 집중 되어 있는 수백 개의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차분하게 가라앉았기에.

“늦어서 미안하군요. 한국팀 대표 신영우, 그리드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대중 앞에서 긴장한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면서 목소리와 시선부터 떨었고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워했다.

과거의 영우는 특히 더 그랬다.

자신감이 결여되어있었기 때문에 누군가와 시선을 마주친 채 대화하는 일 자체를 힘겨워했다. 늘 땅만 봤다.

하지만 Satisfy를 플레이하면서 몇 단계나 발전해온 영우다.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고 자신감을 찾았으며, 일국의 공작이자 영웅이며 템빨단의 수장으로서 대중 앞에 서는 게 익숙했다.

2만 명이 넘는 백성과 수백 명의 길드원. 그것도 최강의 길드원들을 거느린 영우가 고작 수백 명의 기자들 앞에서 위축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생중계 중이구나? 방송을 통해서 저를 보고 계실 각국 국민들에게도 안녕의 말씀 전합니다.”

여유로운 시선처리와 안정 된 억양.

제1회 국가대항전에서 처음 기자회견을 했을 당시와는 비교가 안 되는, 그야말로 프로다운 모습의 영우였다.

“갓리드, 내가 너를 따르기로 결심했던 이유가 바로 그거다.”

극검이 알기로 영우처럼 빠르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영우를 따르기를 잘했다고, 새삼 다시 느끼면서 감격한 극검이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고,

“멋지네요.”

오늘 영우의 스타일부터 태도 하나하나까지 모든 게 마음에 드는 유라였다.

한편, TV와 인터넷을 통해서 생중계 되고 있는 기자회견을 시청 중인 한국 국민들은 감탄하고 있었다.

“그리드가 저렇게 능청맞은 성격이었나?”

“작년까지만 해도 치기어린 애 같은 구석이 있어보였었는데 이젠 아니네.”

“그보다, 전보다 더 잘 생겨졌는데요? 성형했나?”

“저게 어딜 봐서 성형이냐. 원래부터 저렇게 생겼었는데 그전에는 스타일이며 표정이 너무 구려서 빛을 못 봤던 거지. 너도 당장 거울 앞에 가서 입술 축 늘어뜨려 봐. 바보 같지.”

“운동도 많이 한 것 같네.”

“진흙 속의 진주였나…”

Satisfy는 단순한 게임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로 거듭난 상태이다.

그리고 한국의 Satisfy를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그리드였다.

띠링~

띠링~

연신 갱신되는 각종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1위가 늘 그랬듯 그리드로 고정되었다.

채소가게에 앉아 TV를 시청 중인 영우의 부모님 또한 감동하고 있었다.

“우리 아들이 저렇게 듬직하게 변하다니… 우리 아들이 2년 연속 대한민국 국가대표라니…”

“우리가 아들 하난 잘 낳았어. 그치?”

국가대항전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우는 벌써부터 돋보이고 있었다.

그리드가 아닌 ‘신영우’라는 인물로서 말이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외신 기자 하나가 처음부터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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