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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27화 (222/1,794)

템빨 20권 - 9화

“란스티어?”

그리드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어디서 들어봤더라?’

생각해보지만 쉽사리 떠오르질 않는다.

노에와 랜디를 소환하고 갓 핸드를 사방으로 전개, 만반의 방어태세를 갖춘 그리드가 물약을 꺼내 마시면서 질문했다.

“란스티어가 누군데?”

[본래 란스티어는 개인의 이름이 아니다.]

1천 년도 더 전부터 존재해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최강, 최악의 암살집단 이클립스.

[그곳의 수장들에게 대대로 이어져온 이름이 바로 란스티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란스티어는 단 한 명.]

스으으으윽-

검은 연기가 더욱 더 짙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한 치 앞도 볼 수 없게 된 그리드가 경계하였고, 브라함은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전설의 어쌔신이다.]

“뭐…!”

그리드가 경악하는 순간.

퍼엉!!

각자 무기를 거머쥔 채 그리드의 사방을 지키고 있던 갓핸드 중 하나가 그리드를 향해서 꽂혀왔다.

무엇인가에 얻어맞고,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여 날아오는 것이었다.

여태까지 그 어떤 강력한 공격을 맞아도 ‘경직’ 상태에 그쳤던 갓 핸드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대상의 공격력이 얼마나 높은지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큭!”

아슬아슬하게 고개를 비틀어 갓 핸드를 회피한 그리드.

갓 핸드가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는 그에게 노에가 다급히 소리쳤다.

“뒤다! 냥!”

‘또?’

처음 등장했을 때도, 란스티어는 정면으로 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내 등 뒤로 나타났었다.

골치 아프게도 대상의 후방을 점령하는 스킬을 보유한 듯하다.

“나를 지켜라!”

그리드가 명령하자 갓 핸드들이 일제히 이동, 그리드의 등 뒤로 집결했다.

그와 동시에 벌어진 일이다.

쩌엉!!

전광석화처럼 날아와 그리드의 목을 찌르려던 비수가 갓 핸드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 순간 발생한 충격파로 인해서 좌우로 걷히는 연기 사이로 그리드는 란스티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골?’

그렇다.

란스티어는 인간이 아니었다.

이미 오래 전에 죽어서 피가 마르고 살이 풍화 된 백골.

란스티어는 그러한 육신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톡, 찌르기만 해도 부러질 것처럼 얇은 뼈 손목에 쥔 비수 한 자루만으로 4개의 갓 핸드와 힘을 겨루는 놈.

놈의 새카만 눈구덩이 속 옥빛 안광이 소름끼치도록 섬뜩하다.

‘언데드…! 마력 탐지에 감지되지 않은 이유가 이거였나!’

[아니, 란스티어가 살아있었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란스티어가 마음먹고 기척을 지우면 이 나조차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어쌔신의 기본 소양은 은밀함이다. 기척을 지우는 게 특기였다.

란스티어는 어쌔신의 정점에 올라 급기야 전설이라는 칭호까지 얻었던 존재인 바, 그는 단지 기척을 지우는 수준이 아니라 세상에서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시킬 수도 있었다.

반면 그리드의 마력 탐지 마법은 이제 고작 2레벨에 불과하다.

현재의 그리드가 란스티어를 감지한다는 건, 언데드고 나발이고의 개념을 떠나서 사실상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스르륵-

다시금 연기 속으로 사라지는 해골, 란스티어.

거짓말처럼 기척을 지운 그를 찾기 위해서 그리드는 높은 통찰력과 도살귀의 안대를 활용해보았다.

하지만 부질없었다.

금세 또 란스티어를 놓쳐버린 그리드가 브라함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째서 언데드가 된 거지?”

해답은 간단했다.

[바알의 계약자는 네크로맨서로서의 능력을 갖게 된다. 파그마가 란스티어의 백골을 찾아내어 데스나이트로 만든 거겠지.]

“헐.”

말인 즉, 파그마는 전설의 대장장이이자 검호이며 또한 네크로맨서였단 뜻인가?

‘개사기네.’

대악마들의 침공을 무력화시킬 만도 했다.

덕분에 절망적이다.

이곳 61번째 섬에서 출현한 것이 전설의 어쌔신의 데스 나이트라면…

‘62번부터 66번까지 섬들 또한 다른 전설들이 출현할 가능성이 높겠군.’

전대 전설과 당대 전설의 힘의 차이는 극명하다.

전대 전설은 완전체라고 볼 수 있었고 당대 전설은 아직 애송이였다.

레벨이 낮은 건 기본이며 아직 전직 퀘스트를 전부 다 완료하지도 못했으니까.

‘여길 무슨 수로 공략하지?’

눈살을 찌푸리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이 희망을 주었다.

[언데드화 된 전설들은, 그나마 살아생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약화 된 상태이다. 반면 넌 나를 품었지. 내게 의지하고 계속 노력하여 마법을 익혀나간다면, 언젠가는 필시 이곳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맞아.’

파그마가 전설의 대장장이이자 네크로맨서였다면, 나는 전설의 대장장이이자 마법사다.

나 또한 최강이 될 자격을 갖췄고, 어떤 시련이라도 극복할 잠재력이 있었다.

다만…

[네가 파이어 볼이라도 익힐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만.]

“…”

상황이 썩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좌절하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이 속삭였다.

[놈이 다시 온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리드가 사방으로 전개시켜놓은 갓 핸드들이 적을 감지하고 움찔거렸다. 마치 거미줄처럼 작용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거미줄은 미약한 법이다.

제아무리 거미줄이 견고해봤자 작은 새를 붙잡는 게 한계이며, 맹수에겐 쉽사리 찢겨나간다.

슈욱!

검은 망토를 펄럭이면서 연기를 꿰뚫고 등장한 란스티어.

사방으로부터 덤벼드는 갓 핸드들을 속도로 쉽게 뿌리치더니 노에와 랜디를 단숨에 베어 넘겼다.

도중에 노에의 발톱에 할퀴어지는가 싶었지만 망토로 막아내는 걸 보아, 망토엔 높은 베기 내성이 부여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어서 투척하는 란스티어의 비수가 도살귀 안대 너머 그리드의 적안에 포착됐다.

‘좋아, 궤도를 읽었다!’

통찰력과 도살귀의 안대, 그리고 이야루그트가 결합되어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였다.

빛처럼 빠른 속도로 쏘아진 비수를 그리드는 회피에 성공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파앗-!

또 한 번 그리드의 등 뒤로 나타난 란스티어가 비수를 찔렀다.

종전까지였으면 그대로 당했을 그리드이지만.

“내가 바보도 아니고, 같은 수법이 3번이나 통할 것 같으냐!”

그리드는 이미 회(回)의 보법을 밟고 있었고, 자신에게 무려 5만의 피해를 입혔던 란스티어의 일격을 회(回)로 되돌려주고자 시도했다.

이에 브라함이 쯧쯧, 혀를 찼다.

[뻔한 수법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법이거늘.]

쩌엉!!

란스티어의 비수를 휘감아 날려버리는 이야루그트.

흩뿌려지는 혈빛 잔광 사이로 회심의 미소를 그리던 그리드가 두 눈을 부릅떴다.

‘가짜?’

회(回)로 되돌려준 비수에 꽂히자 마치 허상처럼 흩어져서 사라진 란스티어.

놈은 어느새 그리드의 측면으로 나타나 있었다.

그 사실을 인지함과 동시에 그리드는 끔찍한 고통을 맛봐야만 했다.

푸욱-!!

[치명적인 일격을 당했습니다!]

[전설이 된 자는 쉽게 죽지 않습니다. 생명력이 1로 고정되며 5초 동안 모든 공격에 저항합니다.]

“핫!”

그리드는 실소밖에 안 나왔다.

단 두 방을 얻어맞고 불사 패시브에 돌입하게 되다니, 상대의 강함이 초현실적이라 어처구니가 없었다.

[네가 파그마의 힘을 이어받았다고는 하나, 결국은 이게 현실이다. 지금의 너로서는 파그마가 만든 피조물 하나조차도 이길 수가 없다.]

그리드가 스스로의 무력함을 깨닫길 바라는 브라함의 의도가 뭘까?

단순했다.

브라함은 그리드가 마법을 갈망하길 바랐다.

쉽게 말해서, 지금부터라도 마법사로서 성장해주길 바라는 것이었다.

왜?

그리드의 지력을 높여서, 자신이 한시라도 더 빨리 부활하고 싶은 마음에?

물론 그런 이유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대장장이보다야 마법사가 훨씬 더 위대하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브라함은 그리드가 마법사로 성장하는 편이 그리드를 위해서라도 좋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리드는 어느새 뼛속까지 대장장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대장장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란스티어가 강한 이유, 란스티어의 기본 능력치와 스킬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템빨이 너무 훌륭하다.’

은은한 백광을 흩뿌리는 단도.

그리드가 추측하건데, 필시 아다만티움을 재료로 제작한 단도다.

파그마가 전성기에 제작한 무기라고 가정할 경우, 저 단도의 공격력은 <그리드의 대검>을 월등히 초월하고 있었다.

‘심지어 망토마저도 방어력이 높으니, 놈이 무장하고 있는 갑옷들은 얼마나 뛰어날지 예상조차 안 돼.’

그러니까 결론은.

‘이곳을 공략하기 위해선, 나 또한 더 강한 템빨을 갖춰야한다 이거지?’

브라함의 의도와는 달리 대장장이로서의 의욕을 불태운 그리드가 <흑화>를 전개, 란스티어와 5초 동안 사력을 다해서 싸웠다.

결과는 당연히 참패였다.

란스티어는 그리드의 공격을 단 한 번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노에도, 랜디도, 갓 핸드들도 전설의 어쌔신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사망하였습니다.]

[60번째 섬으로 되돌아갑니다.]

***

“역시 답은 템빨이다.”

레벨, 스탯, 스킬, 마법 등의 성장은 기본 전제다.

훗날, 그리드가 번헨 열도에 다시금 도전할 때 무엇보다도 신경써야할 부분은 단연코 템빨이었다.

‘62~66번째 섬에서 출현하는 전설들 또한 언데드라고 가정한다면.’

언데드에게 치명적인 종류의 아이템을 창조, 제작하면 효과적일 것이다.

‘또한 노에와 랜디에게도 아이템을 만들어 줘야겠어.’

돌이켜 생각해보면, 노에는 여태까지 늘 노템으로 싸워왔고 랜디는 대상의 무기를 허술하게 복제해서 사용해왔을 뿐이다.

녀석들에게 템빨을 갖추게 해준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게 분명했다.

‘덤으로 내가 상위 마법까지 익힌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터!

“큭큭큭!”

[…]

실패를 맛보고 스스로의 무력함에 좌절하기는커녕 도리어 신나서 웃어대는 그리드.

이와 같은 모습은 브라함의 예상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놈은 싸워서 졌는데도 자존심이 안 상하나?’

둔재의 심리를 모르는 브라함은 황당할 따름이었다. 덤으로 화까지 치솟았다.

‘심지어 마법을 덤으로 여기다니.’

브라함의 그리드에 대한 호감도가 2 하락했다.

이로서 브라함의 그리드에 대한 호감도 수치는 총 68이 됐다.

만약 둘이 이성 관계였다면, 결혼을 전제로 삼은 연애가 가능할 정도로 높은 호감도 수치였다.

***

레이단이 경사를 맞았다.

영주 그리드가 오래간만에 귀환한 까닭이었다.

“낭군님!”

왕국 최고 명문가의 후계자이며, 대영지 윈스톤의 영주이자 공작부인이기도 한 아이린.

귀하디귀한 그녀가 도시 외곽까지 달려 나와서 그리드를 마중했다.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답고, 또한 마음씨까지 갸륵한 그녀가 그리드는 늘 사랑스러웠다.

“아이린.”

“낭군님~!”

로드를 낳은 이후부터 아이린의 태도가 더욱 적극적으로 변했다.

백성들과 병사들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와락, 그리드의 품에 안기더니 입을 맞춰왔다.

부끄러워서 물러서려하는 그리드에게 라우엘의 귓속말이 날아왔다.

-레이단 백성들의 출산율을 높이려면 영주로서 모범을 보이셔야지요.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더욱 더 뜨거운 사랑을 나눠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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