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0권 - 6화
[안개 섬이 출몰합니다.]
“아…”
안개 섬과의 조우는 그리드가 간절히 바랐던 일이다.
힘들게 모은 도전자 포인트를 재화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상점이었으니까.
하지만 왜?
왜 하필 지금 이 타이밍에 나타난단 말인가!
털썩!!
붕어처럼 입만 뻥긋거리더니, 이내 맥없이 주저앉은 그리드.
안개에 묻혀서 사라지는 보물들을 넋 잃은 채 바라보던 그가 잠시 후, 나라를 잃은 사람마냥 울부짖었다.
“보물…!! 내 보무울!!!”
여기-쉰일곱 번째 섬-에 도달하기까지, 그리드는 숱한 시련을 맛봐야만 했었다.
분신과 사투를 벌였던 마흔한 번째 섬, 골든 크라운을 비롯해서 상대하기 어려운 몬스터들만 연이어 등장했던 50번대 섬들, 그리고 바로 조금 전 돌파한 미로 등.
번헨 열도에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섬들이 넘쳐났다.
만약, 안개 섬이 그처럼 난이도 높은 지역에서 출몰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난 개고생하지 않았어도 됐고…’
보너스 스테이지나 다름없는 보물 섬을 놓쳤을 확률이 대폭 하락했을 터다.
근데 현실은 시궁창이다.
“빌어먹을!”
그리드는 새삼 다시 깨달았다.
행운의 여신이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장담하건데, 세상에 자신처럼 재수 없는 인간은 좀처럼 드물 것이었다.
“젠장!!”
땅을 치며 통곡하는 그리드의 눈물이 도통 마르질 않았다.
만약 과거의 그리드였다면, 충격에서 벗어나기까지 상당량의 시간을 소요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비교적 빠르게 정신을 회복했다.
‘…그래도, 난이도 높은 섬들은 그만큼 보상이 좋았어.’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만약, 안개 섬이 마흔한 번째 섬에서 출몰했었다면?
그리드는 분신을 만나지 못하고 연살파(聯殺派)와 극살(極殺)을 습득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 마흔한 번째 섬에서 나타나지 않은 게 어디야.’
발달한 사고력을 이용해서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한 그리드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 족하다.”
주르륵.
마지막 한 줄기 눈물을 쓱쓱, 문질러 닦아낸 그리드가 짙은 안개를 헤치고 나아갔다.
그러자 잠시 후 은은한 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호박모양의 마차가 뿜어내는 빛이었다.
마차 앞으로 다가선 그리드가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을 확인했다.
‘히든 클래스 전직서들은 패스.’
안개 섬은 총 13종의 히든 클래스 전직서를 판매하고 있었다.
전부 레어 클래스 전직서이며 가격은 개당 1,000~1,500 도전자 포인트.
현재 31,001의 도전자 포인트를 축적하고 있는 그리드였으니, 전직서 전부를 구매할 재력을 갖춘 셈이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전직서에서 아예 관심을 뗐다.
3차 전직 클래스가 등장한 이후, 레어 클래스의 가치는 크게 하락하였으니 굳이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다음은 스킬북인데…’
상품 목록에 나열 된 스킬북은 총 46종.
등급은 노멀부터 유니크까지 다양하다.
특히 유니크 등급의 액티브 스킬북 몇 개는 뛰어난 기능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전설이다.
레전드리 스킬을 보유한 입장이므로 딱히 유니크 스킬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마스터리 스킬은 예외였다.
<스킬북:웨폰 마스터리>
등급:노말
종류:패시브
웨폰 마스터리 스킬이 생성된다.
가격:도전자 포인트 6,000
웨폰 마스터리는 모든 종류의 무기의 위력을 상승시켜준다.
마스터리 스킬계의 최고봉이었다.
“이건 하늘이 두 쪽 나는 한이 있더라도 익혀야지.”
물론, 웨폰 마스터리에도 단점은 있었다. 1개 무기에 특화 된 다른 마스터리 스킬들과 비교하면 능력치 상승 폭이 적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괘념치 않았다.
웨폰 마스터리는 그 어떤 무기일지라도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그리드와 환상적인 궁합을 이루는 스킬이었으니까.
‘산다!’
지난 수개월 동안 피땀흘려가면서 모은 도전자 포인트.
그리드가 그중 6,000개를 지체 없이 소모시켰다.
[<스킬 북:웨폰 마스터리>를 구입하였습니다.]
“좋아.”
인벤토리에 들어온 스킬 북을 확인한 그리드가 환희했다.
그토록 바라고 또 바랐던 스킬을 얻게 되었으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습득을… 흐음?”
그리드가 스킬 북을 구매한 이유는 단지 관상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쓸데없이 인벤토리에 묵혀두지 않고 즉각적으로 습득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일전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스킬 북 하나에 시선을 사로잡혀서 행동을 멈추고 말았다.
‘매직 마스터리!’
<스킬북:매직 마스터리>
등급:노말
종류:패시브
매직 마스터리 스킬이 생성된다.
가격:도전자 포인트 5,000
“으으음…”
매직 마스터리란?
마법의 위력을 상승시키고 캐스팅 시간을 단축시키는 스킬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본래는 매직 마스터리 또한 웨폰 마스터리처럼 스킬북으로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이는 직업 특성으로서 마법사 고유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나와는 조금의 인연조차 없었어야할 스킬.’
하지만 번헨 열도 덕분에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브라함과의 동화를 통해서 마법을 배울 수 있게 된 지금…’
매직 마스터리를 익혀서 결코 손해가 아니다.
‘아니, 이건 손해를 운운하기에 앞서서 필수적으로 습득해야하는 스킬이다.’
지력이 낮은 그리드는 브라함의 마법을 마스터할 수가 없다. 1단계, 즉 최하급 마법들밖에 배우지 못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브라함의 마법이 어디 보통 마법이던가?
당장 매직 미사일(강화)와 마력 탐지(강화)만 봐도, 일반적인 마법사들의 동급 마법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기능을 탑재하고 있었다.
매직 마스터리를 무조건 익히는 게 옳았다.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싼데.’
5천 도전자 포인트.
엘릭서를 무려 20개나 살 수 있는 수치다.
제아무리 브라함의 마법이 강력하고 유용하다고는 하나, 엘릭서 20개를 포기할 정도의 가치가 될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리드가 결심했다.
‘…익힌다.’
그리드는 미래를 보고 있었다.
레벨 업을 반복하고 지력이 올라, 언젠가 브라함으로부터 보다 상위의 마법을 배울 수 있게 될 날이 올 터.
그때를 기약하면서 그리드는 매직 마스터리 스킬 북을 구매하였다.
그 결과.
남은 도전자 포인트:20,001
“크윽…”
조금 전까지만 해도 3만이 넘던 포인트가 순식간에 2만으로 떨어지다니, 그리드는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헛되게 쓴 게 아니야.’
강해지기 위해서 모은 포인트고, 강해지고자 구입한 스킬 북이다.
아까워해서야 웃긴 일이다.
마음을 다스린 그리드가 마지막으로 엘릭서 목록을 살폈다.
<근력의 엘릭서>
근력을 10 영구적으로 올려준다.
가격:도전자 포인트 250
<체력의 엘릭서>
체력을 10 영구적으로 올려준다.
가격:도전자 포인트 250
<민첩의 엘릭서>
민첩성을 10 영구적으로 올려준다.
가격:도전자 포인트 250
<지력의 엘릭서>
지력을 10 영구적으로 올려준다.
가격:도전자 포인트 250
상식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대장장이에게 가장 중요한 스탯은 체력이고 그 다음이 근력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그 두 개의 스탯을 올려주는 엘릭서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본인의 근력과 체력이 대장일을 하기에 충분할 정도 높은 게 첫 번째 이유였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민첩성.’
검호 시절의 피아로처럼 근력과 민첩성의 비율을 1대1로 맞추는 것.
그것은 강해지고자 하는 그리드의 염원이었다.
이름:그리드
레벨:306
직업:파그마의 후예
칭호:전설이 된 자
칭호:…
…
..
근력:2,830(+160)
체력:1,306(+230)
민첩:1,836(+130) 지력:771(+340)
손재주:2,916(+680)
끈기:1,102(+130)
평정:718(+130) 불굴:973(+240)
위엄:1,626(+130)
통찰력:1,466(+130)
용기:662(+130) 악마력:102
스탯 포인트:6
…
..
“남은 포인트 전부로 민첩의 엘릭서를 구매한다.”
2만 포인트면 무려 80개의 엘릭서를 구매할 수 있다. 한 번에 800개의 민첩성을 올릴 수 있다는 뜻이며 이는 약 80레벨의 가치였다.
단숨에 도약하고자, 그리드가 민첩의 엘릭서 아래 명시되어 있는 <구매>버튼을 클릭했다.
[소모품입니다. 구매 개수를 입력해주세요.]
떠오르는 알림창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그린 그리드가 ‘80개’라고 힘차게 대답하려다가 멈췄다.
‘…과연 옳은 일일까?’
지금이 분신과 싸웠던 시점이었다면, 그리드에게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브라함의 영혼과 동화됨으로서 마법을 습득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으며, 동시에 매직 마스터리까지 획득해버렸다.
이 천운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역시 스탯을 지력에도 투자하는 게 옳지 않을까?
‘레벨이 오를 때마다 지력 6개가 오른다고 해도.’
레벨 100개를 올려도 지력 600개에 불과하다.
그래서야 브라함의 영혼이 떠날 때까지 파이어 볼이라도 익힐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 초조해하지 말고 미래를 보자. 전설에 얽매일 게 아니고 신화를 넘봐야지.’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봐야한다.
라우엘의 말버릇을 상기한 그리드가 심호흡한 뒤 입을 열었다.
“민첩의 엘릭서 40개와 지력의 엘릭서 40개를 구매하겠다.”
잡캐는 구리다?
그래, 평범한 잡캐는 구리다. 이도저도 아닌 수가 많았다.
하지만 전설적인 잡캐는 다를 것이다. 만능에 가까운 존재가 될 수도 있었다.
믿어 의심치 않는 그리드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빛나는 총기를 띄우고 있었다.
***
[웨폰 마스터리를 배웠습니다.]
<초급 웨폰 마스터리>Lv.1
무기 착용 시, 공격력 2퍼센트와 명중률 1퍼센트가 상승합니다.
[매직 마스터리를 배웠습니다.]
<초급 매직 마스터리>Lv.1
마법의 위력이 3퍼센트 상승하고 캐스팅 시간이 1퍼센트 단축됩니다.
[민첩의 엘릭서를 복용합니다.]
[민첩성이 400 영구적으로 상승하였습니다.]
[지력의 엘릭서를 복용합니다.]
[지력이 400 영구적으로 상승하였습니다.]
한 번에 800개의 스탯이 오르고 최상급 마스터리 2개를 습득했다.
지금의 그리드,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졌다는 뜻이다.
“진행 속도를 높여볼까.”
자신감으로 충만한 눈빛을 번뜩인 그리드가 쉰여덟 번째 섬으로 향하는 게이트에 걸음을 옮겼다.
쉰여덟 번째 섬은 타임 어택 형식의 사냥 던전이었고, 그리드는 상승한 공격력과 마법력을 기반으로 제한 시간 내에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 웨폰 마스터리와 매직 마스터리의 레벨이 쭉쭉 올랐다.
상대하는 몬스터들의 레벨은 400을 훌쩍 넘기고 있는데, 마스터리 스킬들의 레벨은 고작 초급에 불과하였으니 경험치 상승폭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리드는 스스로의 성장에 전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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