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223화 (218/1,794)

템빨 20권 - 5화

일본, 도쿄.

화려한 샹들리에가 눈에 띄는 기자회견장에서 요시무라가 선언했다.

“이 요시무라가 일본을 아시아 최강국으로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요시무라는 <패장>으로 통한다.

코크로 섬의 패권을 두고 한국의 은기사 길드와 싸웠다가 참패.

매국노-우익의 관점에서- 데미안을 응징한답시고 나섰다가 또 참패.

한때는 궁사 랭킹 2위까지 올랐던 요시무라이지만, 이제는 전성기가 지났다는 게 통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여전히 요시무라를 신뢰했다.

과거의 요시무라가 보여주었던 신위가 워낙 대단하여 기대감이 남아있기도 했고, 안타깝게도 일본에는 요시무라만한 인재가 별로 없는 까닭이기도 했다.

“오오오오!!”

“과연 요시무라씨!”

요시무라의 패기 넘치는 모습에 반한 기자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하지만 딱히 큰 흥미는 없는지 별다른 질문을 던지진 않았다.

기자들이 관심을 갖는 대상은 요시무라의 좌우에 앉아있는 데미안과 카츠였다.

“험험.”

민망함을 느낀 요시무라가 착석했다.

기자들은 우선, 오래간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카츠에게 질문을 던졌다.

“카츠씨는 정말로 오래간만에 뵙는 데요. 그간 뭘 하면서 지내셨습니까?”

“흥, 시시한 질문이군. 랭커 목록을 보면 모르겠어? 레벨 올리고 있었잖아.”

카츠는 일본 굴지 대기업 회장의 아들 중 하나이다.

어려서부터 아쉬운 것 없이 자라서 그런지 예의가 없고 오만방자하였다.

그 탓에 세계적으로 많은 안티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정작 일본인들은 카츠를 싫어하지 않았다.

이유야 간단했다.

카츠는 몇 안 되는 일본의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에픽 클래스 전직자.

지난 1년 반 동안 랭킹 1위를 꿈꾸며 오로지 사냥에만 열중해온 <블러드 워리어> 카츠의 행보, 많은 일본인들에게 기대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2주 전에 통합랭킹 19위가 되셨죠. 당시 일본의 모든 언론사들이 카츠씨의 소식을 특종으로 내보냈었습니다.”

“일본인 최초로 20위권 랭커가 탄생한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

기자들이 찬사를 보냈지만 카츠는 도리어 불쾌해했다.

창피했던 것이다.

1년 반 전.

반 년 안에 랭킹 1위를 찍겠다고 전 세계에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한 자릿수 랭킹에도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카츠는 쪽팔려 미칠 것만 같았다.

20억 유저 중 19위.

필시 어마어마한 업적이지만 카츠의 자존감이 너무 높은 게 문제였다. 카츠는 고작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카츠씨는 이번에 어떤 종목에 참가하실 예정입니까?”

“아직 안 정했다.”

“일본의 성적을 몇 위로 예상하고 계신가요?”

“내가 어떻게 알아?”

“…”

건성으로 대답하는 카츠의 태도를 보아하니 더 이상 인터뷰를 진행하기엔 무리가 있는 듯하다.

카츠의 실물을 사진과 영상에 담은 것만으로 만족하자, 눈치를 교환한 기자들이 끝으로 데미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교황께서는 그리드와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번 국가대항전에서 그리드를 적으로 돌릴 수 있겠습니까?”

뼈가 있는 질문이었다.

조국보다는 그리드의 편이기를 선택한 데미안.

과연, 그가 국가대항전에서 그리드를 적대할 수 있을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요시무라와 긴장하는 기자들, 그리고 무관심한 카츠 사이에서 데미안은 당당히 밝혔다.

“저도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압니다. 국가대항전에서 그리드님은 저의 명백한 적입니다.”

“오오…!”

반색한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쏟아졌다.

“교황께서는 어느 종목에 참가할 예정이신가요?”

“전투 관련 종목이라면 뭐든지 OK입니다.”

“전투에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되는 겁니까?”

“그럼요. 전 엄청 세니까.”

“일본의 성적을 몇 위로 예상하시는지요?”

“흠.”

힐끗, 카츠를 곁눈질로 확인한 데미안이 추측했다.

“최소 10위는 되지 않을까요?”

“오오오!!”

32개국 중 10위는 결코 낮은 순위가 아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선 최고 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일전에, 우익세력들의 협조 요청에 대해서는 냉담하게 반응했던 데미안이 지금은 이렇듯 일본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기자들은 들떴다.

교황이라는 강력한 존재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새삼 감사했다.

하지만 일부 우익 언론사들은 데미안을 탐탁찮게 여기고 있었다.

“일본 길드가 다스리는 영지에 레베카 신전을 건설할 계획은 아직도 없는 겁니까?”

“일본인 랭커들에게 레베카교의 힐러를 지원해주는 사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국가대항전과 관계없는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데미안은 묵묵부답이었다.

단지 동포라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인 도움을 바라는 극우들의 심리가 그는 도통 이해가 안 됐다.

“쯧, 레이단에는 신전 건설 중이라더니.”

“역시 저건 재일교포가 분명해.”

극우 기자들의 수군거림이 장내의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그때였다.

“이번 밸런스 패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명의 젊은 기자가 분위기를 반전시키고자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한 데미안의 답변은, 현재 기자회견 방송을 실시간으로 시청 중인 일본 국민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저를 위한 패치죠.”

강력한 방어력과 회복력, 그리고 경이적인 버프 능력을 겸비한 데미안이다. 그에게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기나 할까?

“최소한 국가대항전에서 저는 무적입니다.”

“우와아아아아!!”

일본 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데미안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기대감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쳤다. 데미안이 국가대항전에서 3개의 금메달을 확보해주는 건 아닐까, 인터넷에 추측 글이 난무하면서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데미안이 또 금세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뭐, 당연히 그리드님보단 못하겠지만요.”

“…”

도대체 왜?

데미안은 왜 저렇게까지 그리드를 찬양하는 걸까?

그리드와 데미안의 속사정을 모르는 일본 국민들은 의문이었고, 데미안 재일교포설에는 더욱 큰 힘이 실리게 되었다.

***

러시아, 모스크바.

제2회 국가대항전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마련 된 기자회견장.

“…”

끝끝내 크라우젤은 참석하지 않았다.

***

대한민국, 서울.

“지발은 알아야할 겁니다. 만약 그가 갓리드와 같은 종목에서 만나게 된다면, 결국에는 갓리드에게 금메달을 내어 줘야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대한 애국 협회장 강대한.

Satisfy 아이디 극검으로 통하는 그가 수백 명의 기자들을 앞에 두고 열변을 토하는 중이다.

“그리고 하오? 누가 중국인 아니랄까봐 버릇없이 까불어 대는데, 갓리드가 너프를 당했든 안 당했든 그는 갓리드의 상대가 못 됩니다.”

“저기… 강대한 회장님, 그보다 어째서 유라양과 영우씨는 이번 회견에 참석하지 않은 건지…”

“또한!!”

극검은 기자들이 정녕 원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국가대항전까지 17일을 앞둔 지금, 극검이 바쁜 와중에도 굳이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유는 오직 하나!

세계 각국에서 함부로 지껄인 타국 랭커들에게 반박하기 위함이었다.

쿵!!

마이크가 놓여있는 탁자를 주먹으로 힘껏 내리친 극검이 도끼눈을 뜨고서 외쳤다.

“한국인이 개를 먹는다는 이유로 미개하다 지껄인 봉드레 놈은 본인이 프랑스인이라는 사실부터 자각해야할 겁니다! 프랑스가 먹는 푸아그라는 미개함을 넘어서 완전히 잔학한 음식 아닙니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봉드레 넌 좀 부끄러운 줄 알고 나한테 처맞을 준비나 해라!! 알겠냐!! 대한민국 만세!!”

“…”

국가대항전 기자회견장이 애국지사(자칭)의 웅변장으로 변질되는 순간이었다.

기자들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역시, 한국에도 극검 같은 캐릭터가 하나쯤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속이 다 시원해졌으니까.

***

전 세계가 제2회 국가대항전에 주목하고 있는 현재, 그리드는 여전히 미궁을 헤매는 중이었다.

[목마 기사를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 16,112,300을 획득하였습니다.]

‘허억… 허억… 와, 환장하겠네.’

Satisfy 시간으로 장장 보름 이상 미궁에 발이 묶여 있다.

출구까지 대략 어느 정도 남았는지 가늠조차 못한 채, 어둡고 습한 미로를 이동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고역이었다.

‘몬스터들이라도 약하면 또 몰라.’

미궁에 출몰하는 몬스터들의 레벨은 400~420.

제아무리 그리드라도 한 마리를 사냥하는데 최소 3분 이상을 소요했다. 그만큼 몬스터들이 강하고 단단했다. 공격을 한 번이라도 허용했다가는 피가 4분의 1 이상씩 달았다. 한 번에 3마리 이상의 몬스터를 만났을 때는 불사 패시브가 발동했을 정도로 상대하기 어려운 몬스터들이었다.

‘불사 아니었으면 죽어서 50번째 섬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었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킨 그리드가 마법 목록을 확인했다.

<마력 탐지(강화)>Lv.1(93.1%)

-재사용 대기 시간이 4분 42초 남았습니다.-

‘어휴…’

미궁에 입장한 후 새롭게 습득한 마법의 레벨이 벌써 2를 코앞에 두고 있다. 매직 미사일의 레벨을 따라잡을 지경이다.

그만큼 마력 탐지를 사용한 횟수가 많다는 뜻이며, 그리드가 이동해온 구간이 길다는 뜻이 된다.

한데 아직도 출구를 가늠조차 할 수 없다니…

한숨 쉰 그리드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력 탐지의 재사용 대기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명상>에 도전, 생명력과 마나, 그리고 스태미나를 회복시킬 의도였다.

하지만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지만 발동되는 명상을 완벽히 통제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드는 2분 이상을 낑낑대고 나서야 명상에 성공할 수 있었다.

[명상에 돌입합니다.]

[생명력과 마나의 회복 속도가 50%, 스태미나의 회복 속도가 30% 증가합니다.]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이 10% 단축됩니다.]

‘나쁘지 않아.’

처음에는 5분 이상 노력해야 간신히 발동에 성공했던 명상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작금의 명상 발동 속도가 제법 흡족한 그리드였다.

‘공격 스킬들의 레벨과 갓 핸드의 소드 마스터리 레벨도 제법 많이 올랐고.’

번헨 열도에 입장하기 전과 지금을 비교해본다면, 그리드는 정녕 많은 발전을 이룬 상태였다.

지나온 고생길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미궁은 도대체 언제쯤에나 탈출할 수 있는 거지?’

최소한 국가대항전이 시작되기 전엔 클리어하고 싶다.

생각해보는 사이, 마력 탐지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리드가 눈앞에 놓여있는 3개의 갈림길 앞으로 다가가 섰다.

‘마력 탐지.’

파앗-!

그리드를 중심으로 쏟아져 나온 마나가 갈림길 너머의 생명체를 찾아내고자 노력했다.

한데.

‘어?’

갈림길 그 어느 곳에서도 생명체가 감지되질 않는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나보고 어쩌라고?’

브라함의 조언에 따르면, 미궁이란 출구에 도달할수록 큰 위험이 도사린다 하였다.

한데 3개의 길 모두 위험이 감지되질 않았으니 난처하다.

‘또 다시 브라함에게 도움을 청해야하나?’

3일 전 큰 위기를 겪었을 때 이미 동화에 의지한 바 있다.

동화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오기까지, 앞으로 최소 6일 이상을 이곳에 넋 놓고 있자고?

그건 너무 큰 시간낭비다.

‘애초에.’

매번 브라함에게 의지해서야 퇴화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래, 여태까지 혼자서도 잘 해왔잖아?’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할까?

심호흡한 그리드가 극도의 정신력을 발휘, 두뇌를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한참을 궁리해본 끝에 해답을 찾았다.

‘혹시?’

여태까지 지나온 모든 갈림길들에는 몬스터가 대기하고 있던 반면, 이번만 예외라는 건…

‘어쩌면, 이미 난 미궁을 통과한 거 아닐까?’

눈앞의 갈림길 모조리 출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새로운 길에 한 번 발을 들였다가는 다시 뒤로 되돌아올 수 없다는 게 두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여기서 가만히 있는 것보단 훨씬 더 가치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겠지.’

만약 내 생각이 틀려서 새로운 미궁에 빠지게 된다면, 그땐 또 다시 길을 개척해나가면 될 일이다.

용기를 낸 그리드가 중앙에 있는 길로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미궁 돌파에 성공하셨습니다!]

[미션 성공 보상으로 도전자 포인트 2,150개를 획득하였습니다!]

[보물 섬(쉰일곱 번째 섬)에 입장합니다!!]

[앞으로 3분 후에 보물 섬을 탈출합니다.]

“우오…! 우오오오오!!”

그리드가 극도로 흥분했다.

눈앞에 황금과 보물이 가득한 섬의 전경이 펼쳐졌으니 흥분하지 않아도 이상한 일이었다.

‘오늘 점심은 삼선 짜장이다!!’

큰마음 먹고 결심한 그리드가 노에와 랜디를 소환,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보물을 챙기려하는 그 순간이었다.

[안개 섬이 출몰합니다.]

보물로 가득했던 섬이 짙은 안개로 뒤덮였고…

“아.”

탄식한 그리드가 눈물 흘렸다.

깊은 빡침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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