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220화 (215/1,794)

템빨 20권 - 2화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큰 손해도 아니야.’

일반적인 플레이어는 레벨이 하나 오를 때마다 10개의 스탯 포인트를 획득한다.

하지만 더블 클래스 플레이어가 된 그리드는 2개의 스탯 포인트를 추가로 챙길 수 있게 됐다.

이중 6개가 지력에 강제적으로 투자된다고 해서 부정적으로만 여길 필요 없었다.

‘지력이 오르면 오를수록 마나량이 늘어나니까 스킬을 보다 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마법의 위력도 상승할 테니.’

무엇보다도 그리드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동화>스킬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었다.

브라함에게 육체의 주도권을 넘기는 것은 매우 껄끄러운 일이었지만, 동화 스킬에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던 까닭이다.

그 매력이란, 지금 이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빛을 반짝이고 있는 그리드의 <마법 목록>에 숨겨져 있었다.

-습득 가능한 마법이 발생했습니다!-

<마력 탐지(강화)>Lv.1

전설의 대마법사가 발동 공식을 완전히 뒤엎어 버린 마력 탐지입니다.

대량의 마나를 전 방위에 방출하여, 반경 10미터 이내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위치를 파악합니다.

마법의 레벨이 오를수록 마법의 영향범위가 확대되며 감지하는 대상의 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원 소모:마나 3,000

캐스팅 대기 시간:6초

재사용 대기 시간:10분

-<대마법사>모드에서 이 마법을 3번 더 사용할 경우 습득하게 됩니다.-

이렇듯, 동화 상태의 브라함이 사용하는 마법을 그리드가 습득하는 게 가능했다.

무려 전설적인 대마법사의 고유 마법을 공짜로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건 완전히 사기다. 남이 보면 질투에 눈이 멀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미친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지력을 만땅 올린 다음에 브라함의 마법을 하나라도 더 많이 배우고 싶다만.’

그리드의 본분은 대장장이이며, 그 다음은 검사이다.

당장의 욕심에 눈이 멀어, 지력에 스탯을 과도하게 투자하였다가는 훗날 피눈물을 흘리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도저도 아닌 잡종캐는 최악이다. 조급하게 굴지 말자.’

물론, 지력을 올리는 방법은 굳이 스탯 포인트가 아니라도 또 있다.

<말락서스의 망토>나 <흑수정 귀걸이>처럼 지력을 올려주는 아이템을 제작해서 착용하는 수단도 있었다.

하지만 스탯을 상승시켜주는 아이템을 제작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쉬운 일이었다면, 그리드는 진즉부터 민첩을 올려주는 아이템을 제작해서 근력과 민첩의 비율을 1대1로 맞춰놓았을 것이다.

“나중에 도전은 해봐야지. 하지만 그전에 우선은 번헨 열도의 공략에 최선을.”

지력을 높여서 마법을 익히고 싶다는, 당장의 섣부른 욕구를 간신히 잠재운 그리드가 남은 6개의 스탯 포인트를 저장해두었다.

***

『제1회 Satisfy 국가대항전의 종목은 총 8개였죠.』

<제2회 Satisfy 국가대항전 기념 특집 방송>

높은 관심 속에 방영되기 시작한 방송의 진행자가 무대 위 모니터를 가리켰다.

모니터 속에는 보스 레이드, PvP, 펫 마라톤, 미궁 돌파, 표적 맞추기, 국가간 공성전, 그리고 각 분야의 제작 승부 목록이 나열되어 있었다.

제1회 국가대항전에서 진행 되었던 종목들이다.

『참가국이 17개였던 제1회 국가대항전과 달리 제2회 국가대항전의 참가국은 무려 32개입니다. 규모와 관심도가 자연히 더 커졌죠.』

『S.A그룹은 단 8개의 종목만으로는 각국 선수들의 특색을 살리기 어려울 뿐더러 시청자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일에도 한계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서 종목을 13개 더 늘렸는데, 그중 대부분이 비전투 종목입니다. 보다 다양한 직업군이 활약할 수 있도록 배려한 거겠지요.』

『결과적으로 제2회 국가대항전의 최고 인기 종목은 제1회 국가대항전과 마찬가지로 PvP가 될 공산이 큰데요.』

『그리드VS휴렌트 3초 사건, 그리드VS봉드레 4초 사건 때처럼 허무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S.A그룹 측에서 PvP시스템을 다소 손봤다고 합니다.』

『PvP(Player VS Player)의 데미지 적용률을 PvE(Player VS Environment:플레이어가 컴퓨터에 움직이는 몬스터 혹은 던전이나 함정, 기후 등과 대적하는 행동을 의미)와 비교해서 50퍼센트까지 낮추었다죠.』

『즉, 몬스터에게 100의 데미지를 입히는 스킬을 같은 플레이어에게 사용할 경우 50의 데미지밖에 입히지 못한단 뜻입니다. 이로 인해 PvP의 전략적인 요소가 한층 진보할 것으로 관측되며, 시청자들은 PvP 특유의 화려한 볼거리를 장시간 보장 받으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호오라.”

“이렇게 된 이상 그리드나 크리스처럼 한 방 파괴력이 강력한 사람들을 경계할 이유가 사라졌군.”

“컨트롤의 중요도가 더 높아졌다.”

“가장 큰 수혜자는 탱커인가.”

공지사항이나 방송을 통해서 변경 된 PvP 시스템을 확인한 국가대항전 참가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반면 대한민국 네티즌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아… 그리드 금메달 하나 날아갔네요.

-솔직히 그리드의 강점은 강력한 한 방 공격력에 있는데, 그걸 봉인시키는 패치네요. 황당;;

-이거 완전히 그리드 너프를 겨냥한 패치임. 형평성에 어긋남.

-옛날에, 대한민국이 게임 강국이라고 불렸던 시절에는 한국인 게이머들을 저격한 밸런스 패치가 엄청 자주 이뤄졌었다죠. 그때를 떠올리게 만드는 사건이네요.

-이게 바로 그 ‘이것도 너프해 보시지.’인가 그건가…

-헐;; 그거 완전 고전 게임;;; 우리 아버지가 어릴 때 했던 게임인데;;; 아재 몇 살이심??

-어쨌든, 그리드가 PvP에서 금메달을 못 따게 된 이상 이제 한국은 10위권에 절대 못 들어가겠네요.

-거 참… S.A그룹 완전 매국노 기업이네… 이런 식으로 자국을 엿 먹이다니…

-세계 정부의 음모임.

비단 한국인들만 유난을 떠는 게 아니었다.

타국인들 또한 이번 국가대항전에 적용 된 PvP시스템을 <그리드 너프용>이라고 명명하였을 정도니까.

특히 중국과 일본 등, 한국에 묘한 경쟁의식을 품고 있는 국가들은 이번 사태에 덩실덩실 춤까지 추면서 기뻐했다.

-암, 암. 한국 같은 소국은 찌그러지는 게 세상의 섭리지.

-이번 국가대항전에서야말로 아시아 최고는 중국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자!

-아시아 최고는 우습지! 중국은 세상의 중심이며 한 점도 작아질 수 없다! 하오도 출전한 마당이니까 기왕지사 우승을 노리는 게 당연해!

-웃기고들 있네. 중국보단 일본이지.

-중국의 유일한 강점은 인해전술인데 국가대항전은 각국 참가자 7명으로 제한돼 있어서 그것도 못 씀www

-결국은 데미안이랑 카츠, 그리고 요시무라가 있는 일본이 아시아 제일임.

-탈아시아 합시다.

국가대항전, PvP 데미지 적용률 50퍼센트 감소.

단 한 줄의 패치가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는 이때…

[쉰여섯 번째 섬에 입장하였습니다.]

“허억… 허억… 와, 나. 진심 너무하네. 섬 하나 돌파할 때마다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잖아?”

화제의 주인공 그리드는 오로지 번헨 열도의 공략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던 간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가?

그런 고상한 게 아니었다.

최근의 그리드는 잠자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오로지 게임만 하는 바.

세상 돌아가는 일을 잘 모르고 있었다.

TV를 시청하거나 인터넷을 확인하는 일, 잠시 짬내면 되는 거 아니냐고?

아니다. 지금의 그리드에겐 찰나의 시간조차도 천금과 같았다.

번헨 열도의 난이도가 너무나도 높아서 여기에 온 정신을 집중시켜도 부족할 판국이었다.

즉, 국가대항전에서 자신이 너프 당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그리드는 아직 모른다는 뜻이다.

그런 그를 세상 사람들은 멋대로 오해하기 시작했다.

-그리드가 잠잠하네요.

-그러게요. 대놓고 저격 너프 당했는데도 S.A그룹에 안 따짐…ㄷㄷ

-다른 랭커들이 같은 일 당했으면, 지금쯤 각국 언론사들이랑 모조리 인터뷰 하면서 S.A그룹 비난하고 난리도 아니었을 텐데;;

-일반적인 상식으론 보상 요구해야할 각임.

-그리드 진심 대인배… 같은 남자가 봐도 멋지다.

-역시 갓리드!!

-인터넷에 떠도는 그리드 옛날이야기들 보면 완전히 쓰레기에다가 찌질 했던데, 그냥 그리드 안티가 지어낸 소설이었나 보네요.

-당연하죠. 그리드는 짱임.

흐름이란 무섭다.

그리드에게 우호적인 여론이 물 타기를 시작하면서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 국민들이 그리드의 태도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백인우월주의 사상에 빠진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조차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황인종이 될 지경이었고, 중동의 극악한 테러 집단들조차 그리드를 응원했다. 참으로 놀라운 현상이었다.

그리고 국가대항전이 22일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한국에서는 그리드를 주제로 삼은 토크쇼가 방영됐다.

게스트는 극검이었다.

『그리드가 이번 패치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을 취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거죠? 그리드에게 있어서 너프는 사소한 문제니까요.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너프? 해볼 테면 해봐라. 그래봤자 날 막을 수는 없다. 왜냐? 난 갓리드! 대한의 건아니까! 두 유 노우 갓리드? 대한민국 만세!!』

“이런 염병.”

그리드가 뒤늦게 자신에 대한 뉴스를 접했을 때는 이미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을 때였다.

그리드의 마음 같아서야 당장 S.A그룹에 전화를 걸어서 ‘왜 사람을 저격하는 패치를 하고 그러느냐, 그게 공정해야할 게임사에서 취해야할 입장이 맞느냐.’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이제와 나서기엔 민망한 구석이 있었다.

이게 다 토크쇼에 출현한 극검의 쐐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극검.

나와 알게 된 세월이 벌써 1년을 넘어가고 있건만 여전히 내 성격을 모르는가?

콩깍지의 위력이란 소름끼치게도 위대하다.

***

“아쉽지만 난 여기서 포기.”

“나도 거기가 한계였어.”

“다들 마찬가지인 듯하네.”

번헨 열도에 도전했던 템빨단의 에이스들.

그들 중 대다수가 서른한 번째 섬을 통과하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과거에 겪었던 최악의 시련이란, 이름난 천재들조차 절망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난이도였던 것이다.

“그리든 여길 어떻게 통과했지?”

“지금의 그리드는 대체 어디까지 발전한 거냐…”

“같은 편인 나조차도 두려울 지경이야.”

서른한 번째 섬은 카운터의 개념이다.

천재면 천재일수록 난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있는 라우엘이었지만, 그리드를 찬양하는 템빨단원들에게 딱히 진실을 고하여 찬물을 끼얹진 않았다.

‘이들의 그리드님에 대한 존경심과 호감은 강하면 강할수록 좋으니까.’

라우엘이 예상하기로, 아마 그리드는 서른한 번째 섬에서 오우거 정도쯤의 몬스터와 겨뤘을 공산이 컸다.

‘한 마디로 서른한 번째 섬은 둔재들을 위한 특권.’

그리드를 제외한 템빨단의 에이스들은 전원 서른한 번째 섬에서 탈락하는 게 당연한 이치라고 봐도 무방했다.

‘한데…’

유라와 지슈카, 그리고 후로이는 어떻게 서른한 번째 섬을 돌파한 걸까?

제아무리 라우엘이라도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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