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19권 - 22화
‘살(殺)에 데미지를 1밖에 안 입을 정도면, 물리방어력이 높은 수준이 아니라 물리공격을 아예 저항하는 것 같은데. 덩달아 상태이상 저항력도 높고.’
<살(殺)>Lv.6(57.1%)
증오와 살의를 표현한 검무를 춥니다.
단일 대상에게 물리 공격력 1,800퍼센트의 피해를 입힙니다. 그리고 출혈과 절망 효과를 부여합니다.
스킬 사용 조건:도검류 무기 장착
스킬 마나 소모:1,000
스킬 생명력 소모:현재 생명력의 20퍼센트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380초
여느 스킬이 그렇듯, 살(殺) 또한 꾸준히 레벨이 오르면서 강화된 상태였다.
자원 소모율과 재사용 대기 시간이 감소한 반면 위력은 증폭됐다.
40번대 섬들에서 출몰한 360~370레벨 몬스터들조차도 그리드의 살(殺)에 적중당할 경우 생명력을 60퍼센트 이상 손실할 정도였다.-그리드의 대검을 무장했을 때의 기준-
한데 골든 크라운은 데미지를 1밖에 입지 않은 것이다.
이건 단지 방어력이 높다고 설명할 수준이 아니었다.
‘확실하게 확인해볼까.’
생각하며 계획을 짜는 그리드의 정수리로 골든 크라운의 몽둥이가 꽂혀왔다.
퍼억-!!
[6,36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크윽.”
제아무리 그리드라고해서 우습게 여길 수 있는 데미지가 아니었다.
‘평타 한방에 10분의 1피가 날아가다니.’
300레벨대에서 근력 스탯은 1당 생명력을 7, 체력 스탯은 1당 생명력을 25 올려 준다.
<성스러운 빛의 무구 세트>로 추가되는 6,000의 생명력과 <지옥과 연이 닿은 자> 칭호 효과로 추가되는 3,000의 생명력, 그리고 또 <티라멧의 견갑>으로 추가되는 3,000의 생명력과 <티라멧의 허리띠>로 추가되는 100의 체력 스탯을 모조리 합산할 경우 그리드의 총 생명력은 63,000 정도였다.
6,000대의 데미지를 스킬도 아닌 평타로 입어서야 긴장감이 샘솟을 수밖에 없었다.
‘집중하자.’
잡념을 털어낸 그리드.
골든 크라운이 몽둥이를 회수하는 틈을 노린 그가 극(極)을 전개하였다.
<극(極)>Lv.3(15.9%)
천상의 무신을 표현한 검무를 춥니다.
대상에게 물리 공격력의 780퍼센트 피해를 입힙니다. 이 스킬은 대상의 방어력을 62퍼센트 무시합니다.
스킬 사용 조건:도검류 무기 장착.
스킬 마나 소모:700.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143초.
서걱!!
베기의 극의가 골든 크라운의 넓은 가슴을 가로질렀다. 기세만 봐서는 그대로 양단 낼 기세였다.
하지만 결과는?
[대상에게 1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과연.’
그리드는 확신했다.
화려한 황금 왕관을 뒤집어쓰고 있는 이 녹색 괴물, 물리 공격을 아예 저항하는 존재다. 대상의 방어력을 무시하는 극(極)조차도 1의 피해만을 입히지 못했음이 그 증거다.
‘대게 이런 놈들의 약점은…’
마법이다.
물리 피해에 면역하는 존재들은 그 반대급부로서 마법에 취약했고, 마법 피해에 면역하는 존재들은 마찬가지의 이치로 물리력에 취약했다.
이는 Satisfy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이라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상식이었고, 이 때문에 Satisfy에 파티 플레이가 성행하는 것이었다.
단지 물리 공격력이 강한 전사 혼자서, 혹은 마력이 높은 마법사 혼자서 위기를 극복하며 게임을 진행해나가는 일, 현실적으로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그리드는 예외다. 혼자서 게임을 진행할만한 능력을 갖췄다.
레전드리 클래스 전직자라서?
아니, 그보다는 브라함과의 인연 덕분이다.
필연과 우연이 겹치고 그리드의 선택에 따라서 완성 된 인연, 마법이라는 형태로 발현된다.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강화)>Lv.2(37%)
전설의 대마법사가 발동 공식을 완전히 뒤엎어 버린 매직 미사일입니다.
매우 뛰어난 위력을 자랑하나 그만큼 많은 자원을 소모합니다.
대상에게 현재 마력의 2배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힙니다. 또한 적의 마법 저항력을 무시합니다.
자원 소모:마나 380
캐스팅 대기 시간:1초
재사용 대기 시간:4.8초
퍼엉-!!
백색의 날카로운 섬광이 골든 크라운의 심장을 꿰뚫었다.
‘좋았어.’
매직 미사일의 가장 큰 장점은 빠른 캐스팅 속도에 있다.
갑작스러운 매직 미사일의 발현에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움찔하는 골든 크라운을 보면서, 그리드는 승리의 미소를 그렸다.
하지만 섣부른 미소였다.
[대상에게 1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뭐라고?”
물리 공격에 이어서 마법 공격마저도 저항하다니?
눈을 휘둥그레 뜨는 그리드의 옆구리로 골든 크라운의 몽둥이가 꽂혔다.
[6,16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진짜 더럽게 아프네.”
그리드는 도살귀의 안대를 착용한 상태이다. 적의 공격 궤도를 읽는 능력이 탁월했다.
하지만 골든 크라운은 380레벨의 몬스터인 바, 그 육체 능력은 305레벨에 불과한 그리드를 월등히 압도하고 있었다. 또한 레벨 차이로 인한 페널티도 발생했다.
때문에 그리드는 골든 크라운의 움직임을 완벽히 읽을 수 없었고 연달아 공격을 허용하는 것이다.
기세에서 밀려 뒷걸음치는 그리드에게,
“키야아!!”
기성을 토해낸 골든 크라운이 다가와 재차 몽둥이를 휘둘렀다.
쩌저정!!
‘이 괴물 자식이…!’
미션 성공까지 남은 시간이 17분 1초밖에 되지 않는다.
20분 내로 10마리의 골든 크라운을 사냥해야하건만, 3분 가까이 단 1마리의 골든 크라운조차 사냥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리드는 마음이 초조해졌다.
하지만 경거망동하지는 않았다.
‘평정심을 유지한다.’
섣부른 행동으로 일을 그르친 경험이 그리드에겐 셀 수 없이 많다. 이제와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쩡! 쩌정!!
골든 크라운의 맹공을 최대한 막아내면서, 그리드는 침착하게 생각해보았다.
‘물리 공격, 마법 공격 모두가 통하지 않는 상대.’
이걸 도대체 어떻게 사냥하란 말인가?
“아…!”
급기야 갓 핸드까지 소환, 쇄골을 때려 부술 듯이 날아오는 몽둥이를 막아낸 그리드가 이색적인 몬스터 한 마리를 떠올렸다.
‘미믹!’
미믹.
보물 상자와 꼭 닮은 모습으로 모험가들을 현혹시키는 몬스터다.
기습능력이 뛰어난 그놈들의 최대 강점은 ‘모든 피해에 대한 내성’ 패시브를 지녔다는 점이다.
그리드도 딱 한 번 미믹을 만나본 경험이 있다.
‘놈이 어떤 공격에든 무조건 1의 데미지만을 입었었지.’
하지만 그렇다고 미믹이 무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미믹의 최대 생명력은 레벨에 따라서 10~120에 불과하다.
데미지가 1밖에 안 박힐지언정 연달아 타격을 입히면 충분히 사냥할 수 있었다.
그렇다.
지금의 그리드, 골든 크라운을 미믹과 동류의 몬스터로 판단하고 있었다.
‘매 타격당 1의 데미지만 입는 대신 만피가 낮을 테지.’
이런 놈은 그저 많이 때리면 장땡이다.
확신한 그리드가 <그리드의 대검>을 <이야루그트>로 스왑, 공격 속도를 소폭 상승시킨 후 파그마의 검무 연(聯)을 전개하였다.
핏!
피피피피피피피핏!!
<연(連)>Lv.7(61.2%)
나비의 날갯짓처럼 현란한 검무를 춥니다.
대상에게 물리 공격력 800퍼센트의 피해를 나눠서 입힙니다.
스킬 사용 조건:도검류 무기 장착
스킬 마나 소모:300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60초
연(聯)의 타격 횟수는 공격 속도와 비례한다. 이야루그트를 무장했을 경우 총 25회까지 타격이 가능했다.
[대상에게 1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1의 피해를 입혔…]
[대상에게…]
…
..
연속기의 가장 큰 장점은 대상을 경직시킨다는 점에 있다.
연달아 공격을 받는 탓에 골든 크라운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며 움찔거렸고, 그 틈에 그리드는 <연속 찌르기>를 연계하였다.
예비군 훈련에서 획득한 다단 히트 계열 스킬 말이다.
푹!
푹푹푹푹!!
골든 크라운의 몸에 총 5회의 찌르기가 연달아 꽂혔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갓 핸드들 또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각자 무기를 거머쥔 녀석들이 그리드와 합격을 전개, 골든 크라운을 쉬지 않고 공격했다.
‘이제 슬슬.’
그리드는 골든 크라운의 생명력 게이지가 크게 하락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눈으로 확인해보니 현실은 냉혹했다.
“헐.”
그리드와 갓 핸드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골든 크라운의 생명력 게이지는 여전히 최대치였다.
이 대목에서 그리드는 깨달았다.
골든 크라운은 미믹과 다르다.
‘다른 방법으로 잡아야하는 건가?’
빠각!!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는 그리드의 안면을 몽둥이가 가격했고,
쿠웅-!!!
통증을 느끼며 멀찍이 날아간 그리드의 등이 암벽에 부딪쳤다.
“킥킥!”
휘청거리고 있는 그리드의 머리 위로부터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얼굴을 굳힌 그리드가 웃음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그리고 절망했다.
3마리의 골든 크라운이 암벽 위로부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까닭이었다.
‘최악이군.’
단 1마리의 골든 크라운조차 어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때 3마리의 적이 추가되어서야 위기였다.
‘보스도 아니고 고작 일반 몹들 따위에게 죽게 생긴 건가.’
초보자 시절에는 토끼에게도 맞아죽은 그리드라지만,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한 이후로는 이런 경험이 생소했다.
정신적 타격이 매우 컸다.
‘이놈들을 대체 어떻게 해야…’
암벽 위로부터 뛰어내린 3마리 골든 크라운의 협공.
불행 중 다행히도 협동심이 부족하여 따로 노는 놈들의 공격을 갓 핸드로 막고, 시간을 버는 그리드의 두뇌가 과부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작금의 위기를 넘길 수 있을만한 방안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냥 포기하고 죽어야하나?’
분신에게 연달아 죽고 잃었던 경험치를 간신히 복구해가고 있는 이때, 또 한 번 죽으라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션은 포기하고 살아남는 게 낫겠다.’
판단한 그리드가 랜디와 노에를 소환하려는 순간이었다.
[골든 크라운의 이름이 왜 골든 크라운이겠느냐? 놈의 본체는 녹색 괴물이 아니라 대가리에 쓴 왕관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음성.
익숙하다고는 하나 반갑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음성이 그리드의 귓가로 들려왔다.
“당신은…!”
상상조차 못한 존재의 출현에 당황한 그리드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고, 그곳에는 빛이 퇴색되어 볼품없어진 영혼 하나가 떠있었다.
브라함의 영혼이었다.
[파그마가 만들어놓은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니, 괜히 파그마의 후예가 아니구나.]
본래 브라함의 음성에는 무한한 힘이 담겨있었다.
절대적인 자신감과 샘솟는 마력이 전달됐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브라함의 음성은 전과 비교해서 무척이나 나약했다.
‘아직도 육체를 되찾지 못한 건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애초에 저자가 여기는 왜?
그리드는 의아해하면서도 덤벼오는 골든 크라운들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전면으로부터 날아온 몽둥이를 피한 후, 후방에서부터 날아온 몽둥이에는 얻어맞아주는 대신 녹색 괴물이 쓰고 있는 황금 왕관을 이야루그트로 베었다.
그러자.
[대상에게 5,9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놈들의 공략법이 이거였구나.’
브라함 덕분에 광명을 엿본 그리드였지만 역시 미션은 포기해야만 했다.
남은 제한 시간은 고작 12분 59초.
골든 크라운의 약점을 파악했다고는 하나 그 사이에 무려 10마리나 되는 놈들을 해치우긴 어려워보였다.
쯧, 혀를 차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이 제안했다.
[내 영혼을 다시 한 번 받아들여라. 이번엔 전과 달리 조금 오랫동안.]
그리드에게 히든 퀘스트가 생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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