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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14화 (209/1,794)

템빨 19권 - 19화

도리깨는 휘둘러서 때리는 도구다. 형태상 찌르기나 베기는 불가능했다.

그리드가 알쏭달쏭 도리깨의 재질을 흑철나무로 선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런 형태의 무기는 탄력이 중요하지.’

흑철나무의 이명은 <휘는 철>이다.

강철처럼 단단함과 동시에 탄성이 높았다. 일반적으로는 창대의 재료로 활용되었고 단가가 매우 비싸다. 랭커나 각 왕국의 기사단장급은 되어야 흑철나무로 만든 창을 사용하는 추세였다.

‘한 마디로 최고급 재료.’

부담 없이 구매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리드는 자신이 창조한 아이템에 최고급 재료가 들어가는 건 당연하다고 판단했다.

명색이 전설의 대장장이가 창조한 아이템인데 허접한 재료를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지출이 크다는 게 뼈아프다만.’

따앙! 따앙!

눈물을 삼킨 그리드가 흑철나무의 단련에 열중했다.

우선 길이 1.3미터의 장대를 만들고, 그 끝에 매달 휘추리 4개를 차례대로 만들었다.

장대는 손에 쥐기 편한 폭으로, 휘추리는 최대한 날카롭고 얇게 다듬었다.

‘예감이 좋아.’

때리고, 깎고, 합치고.

일련의 과정을 반복한 끝에 모양을 갖춰나가는 도리깨를 보면서 그리드는 레전드리 아이템의 탄생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리드의 예감은 ‘나쁜 경우’에만 잘 들어맞지 않았던가.

[알쏭달쏭 도리깨의 제작을 완료하였습니다.]

<알쏭달쏭 도리깨>

등급:유니크

내구력:259/259 공격력:143~191

*대상을 타격할 때마다 특수한 효과가 발생합니다. 효과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탈곡 속도가 150퍼센트 상승합니다.

*탈곡한 곡식의 상태가 어떻게 변모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완연한 전설로 거듭나고 있는 그리드가 설계, 제작한 농기구입니다.

강철처럼 단단한 흑철나무로 제작하여 내구성이 무척 뛰어나고 공격력 또한 출중합니다. 병장기라고 명명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실베른의 비약의 영향으로 인해서 효과를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사용에 주의를 요합니다. 굳이 사용하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사용 조건:레벨 200 이상.

무게:109

“…제발, 좀.”

일이 뜻하는 대로 풀리는 경우가 단 한 번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좌절하고 있는 그리드에게 스틱세이가 눈치 없이 굴었다.

“훌륭한 도리깨로군요. 좋은 농기구가 될 것 같습니다.”

어째서 농기구나 만들고 있느냐는 식으로 비꼬는 말투였다.

결국 참다못한 그리드가 선언했다.

“이건 평범한 농기구가 아니라 비장의 무기다. 내가 이걸로 마흔한 번째 섬을 돌파해보이겠어.”

“비장의 무기…!!”

스틱세이가 감탄했다.

농기구를 비장의 무기라고 명명할 수 있는 그리드의 정신세계가 놀라운 것이었다.

하지만 스틱세이는 현자다. 지혜로운 존재였다. 그리드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기보다는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뭔가 깊은 뜻이 있으실 테지.’

하지만 역시 신뢰는 안 간다.

게슴츠레한 눈빛을 보내는 스틱세이.

그를 뒤로한 그리드가 다시금 망치를 거머쥐었다.

‘유니크 등급의 도리깨는 피아로에게 선물로 주도록 하고.’

나는 한 번 더 도전한다.

‘그래서 반드시 레전드리 등급의 도리깨를 손에 넣고 만다!’

따앙! 따앙!!

다짐한 그리드가 예비용으로 준비해두었던 흑철나무를 제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하는 형태로 단련한 후 마지막으로 실베른의 비약을 첨가했다.

그 결과, 이번에도 역시 유니크 등급의 도리깨가 완성되고 말았다.

“…이런 $%!#.”

그리드가 실로 오래간만에 저급한 욕설을 지껄였다.

사고력이 확장되고 인격이 성숙했다고는 하나 욕을 참지 못할 만도 했다.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하고 현실 시간으로 1년 반 가까이나 지났다.

한데 그동안 총 12개의 레전드리 아이템을 제작한 게 고작이다.

성인군자라도 열 받을 노릇이다.

‘전설의 대장장이가 왜 전설템을 못 만드냐고.’

역시 확률 게임은 더럽다.

재차 깨달은 그리드가 마음을 달랬다.

‘괜찮아, 진정하자. 마흔한 번째 섬을 돌파하는데 굳이 레전드리 도리깨가 필요한 건 아니니까.’

그렇다.

그리드가 알쏭달쏭 도리깨에게 바라는 것은 강력한 위력이 아니었다. 단지 반전을 일으킬만한 무작위 효과가 필요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레전드리 도리깨를 원한 이유, 특수한 일과 추가 스탯 상승 때문이었지만 결국 이렇게 된 이상 집착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이제 연습을 해볼까.”

알쏭달쏭 도리깨를 창조하고 제작하는 사이 21시간이 흘렀다.

그리드는 불사와 노에 소환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오기까지, 앞으로 3시간 동안 도리깨 사용에 익숙해질 요량이었다.

***

마흔한 번째 섬.

“덤벼.”

“…”

도리깨를 들고 나타난 그리드를 마주한 분신이 당황했다.

그리드의 능력을 100퍼센트 이해하고 있는 분신의 입장에서는 그리드가 굳이 도리깨를 사용하는 모습이 의아할 따름이었다.

<알쏭달쏭 도리깨>

..

“…”

자신의 인벤토리에 생성 된 도리깨의 옵션을 확인한 분신, 더욱 더 그리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비효율적인 무기.’

굳이 왜 저딴 걸 들고 나타난 걸까?

분신은 의문이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분신의 존재이유는 오로지 그리드를 해치기 위함이다.

곧 죽을 대상의 행동에 일일이 의문을 품어봤자 쓸모없는 낭비였다.

“파그마의 검무.”

터엉!

분신의 신형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허공을 답보하며 펼치는 춤사위, 나비의 날갯짓처럼 현란하고 경쾌하다.

연(聯)의 전조였다.

핏-!

피피피피피피피핏!!

빠르게 접근하여 신속의 극의를 펼치는 분신.

놈이 휘두르는 <그리드의 대검>이 수놓는 예리한 검광들이 전방위로부터 그리드를 압박했다.

불과 24시간 전의 그리드였다면, 이 공격을 어떻게 피하고 막아 반격할지 머리를 굴렸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리드는 초심을 되찾고 있었다.

날아오는 검격?

‘맞아주면 그만!’

퍼퍼퍼퍼퍼퍼퍼퍼퍽!!

연(聯)에 휩싸인 그리드의 몸으로부터 마구 튀어 오른 선혈이 안개처럼 번진다.

그리드가 아무런 방어동작을 취하지 않은 이유?

보다 신속한 반격을 위해서였다.

그리드는 분신의 공격에 저항하지 않고 맞아줌과 동시에 알쏭달쏭 도리깨를 휘두르고 있었다.

휘리릭!!

“……!”

분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맞고, 때린다.

이 기본적인 RPG 전투법을 구사하는 지금의 그리드, 반격 속도가 종전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으니 당황하는 것이었다.

퍼억!!

분신의 안면에 도리깨가 강타했다.

수박 깨지는 소리가 터지면서 선혈이 비산하였으나 연출만 화려할 뿐이다.

알쏭달쏭 도리깨에 달려있는 네 개의 휘추리, 무척이나 날카로워 강렬한 출혈 임팩트를 발동시키지만 실질적인 공격력은 낮았으니까.

하지만 어디 공격력이 중요한가?

씨익!

그리드의 입 끝이 말려 올라갔다.

“어디 한 번 엿 돼 봐라!!”

알쏭달쏭 도리깨는 타격을 입힌 대상에게 무작위 효과를 발생시킨다.

버프를 줄 수도 있고 디버프를 줄 수도 있다.

만약 버프를 주게 된다면 최악이고,

‘디버프를 줘도 무용지물이지.’

그리드는 알고 있다.

분신은 자신과 같은 존재.

디버프가 통하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드가 알쏭달쏭 도리깨에 승부를 거는 이유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단순 디버프가 아닌, 확정적인 효과가 발생한다면…!’

예를 들면 대상의 생명력을 1로 만든다거나 무게 게이지를 MAX로 올려버리는 효과들 말이다.

그것들은 디버프로 분류되지 않고 제아무리 그리드라도 저항할 수 없는 물리적 효과였다.

[알쏭달쏭 도리깨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분신에게 타격을 입힌 알쏭달쏭 도리깨가 즉각적인 효력을 보였다.

빛이 한 번 번쩍이더니,

[대상의 공격력을 10초 동안 2배로 상승시킵니다.]

“…”

이미 각오는 했다.

나처럼 운이 나쁜 놈이 랜덤성 아이템에 의존해봤자 원하는 결과를 창출할 확률, 복권 당첨되는 것처럼 낮을 거라는 사실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하필이면 공격력 두 배…!’

당황하며 물러서는 그리드에게 따라붙은 분신이 대검으로 큰 호선을 그렸다.

서걱!!

“크악!”

이건 평타가 아니라 스킬 수준의 위력이다.

일격에 커다란 피해를 입고 만 그리드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맞은 것처럼 흔들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반격하는 걸 잊지 않았다.

[알쏭달쏭 도리깨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대상의 최대 생명력을 10초 동안 3배 상승시킵니다.]

[알쏭달쏭 도리깨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대상의 스킬 데미지를 10초 동안 20퍼센트 상승시킵니다.]

[알쏭달쏭 도리깨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대상에게 실드 마법을 부여합니다.]

[알쏭달쏭 도리깨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대상에게 상태이상 침묵을 겁니다.]

[대상이 저항하였습니다.]

“아오, 진짜!!”

전투가 지속될수록 그리드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고,

피식.

분신은 조소했다.

분신이 그리드에게 선보이는 최초의 감정표현이었다.

“이 자식이…!”

그리드가 이를 갈았다.

얼핏 보면 이미 이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리드는 이미 이와 같은 사태를 예견했고, 분신에게 앞으로 몇 번을 더 죽게 되리라 각오한 상태였다.

분신에게 연달아 얻어터지면서도 끊임없이 반격, 알쏭달쏭 도리깨의 효과를 발생시켰다.

반면 분신은 방심했다.

자신을 유리하게 만드는 효과를 연달아 발생시켜주는 알쏭달쏭 도리깨.

그리드가 계속해서 휘두르는 그것을 분신은 어느 순간부터 경계하지 않게 됐다. 그리드의 공격을 피할 생각은 않고 계속해서 도리깨에 맞으며 그리드를 압박했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설이 된 자는 쉽게 죽지 않습니다. 생명력이 최소치로 고정되어 5초 동안 모든 피해에 저항합니다.]

결국 그리드가 수세에 몰렸다.

알쏭달쏭 도리깨의 효과를 한 번이라도 더 발생시키기 위해서 흑화와 대장장이의 분노, 그리고 민첩한 몸놀림을 사용해 공격속도를 높여보았으나 결과적으로 분신에겐 도움만 줘버렸다.

‘다음 도전에서 행운이 발생하길 비는 수밖에 없나.’

그리드는 이번 승부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비운 채 그저 의무적으로 알쏭달쏭 도리깨를 휘둘렀다.

그리고 분신은 그 도리깨를 피하지도, 막지도 않았다.

알쏭달쏭 도리깨가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확률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 수준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과연 높은 인공지능을 보유한 존재답게 확률이라는 지표를 신뢰하는 것이었다.

분신에게 있어서 ‘우연’이라는 개념은 무척이나 하찮았다.

그리고 그건 세상을 우습게 보는 처사나 다름이 없었다.

퍼억!

“……!”

그리드의 불사 재사용 대기 시간이 끝나기 직전.

승부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 달려들었던 분신이 도리깨에 또 얼굴을 강타당한 순간 경악했다.

그보다 더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그리드였다.

[알쏭달쏭 도리깨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대상과 현재 생명력 수치를 바꿉니다.]

“……!”

당황한 분신이 다급히 물약을 꺼냈고,

“어딜!”

회심의 미소를 그린 그리드의 발차기가 분신의 복부를 걷어찼다.

그러자 생명력이 1로 변환되었던 분신이 불사 상태에 돌입하고 말았다.

“이 기회, 절대 놓치지 않겠다.”

선언한 그리드가 노에와 랜디를 소환했다.

기나긴 싸움에 종지부를 찍을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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