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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13화 (208/1,794)

템빨 19권 - 18화

비공식 랭커 중 최강자는 누구일까?

이와 같은 질문을 듣게 될 경우,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리드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그리드가 보여줘 온 업적들은 대단했다.

하지만 어떤 세상이라도 이면이라는 게 존재하는 법이다.

Satisfy의 어두운 뒷면을 조금이라도 엿본 자들은 그리드가 아닌 다른 존재들을 최강자로 꼽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타르마다.

타르마.

Satisfy 초창기 시절부터 PK를 일삼아왔던 살인마.

악명 높은 다크 게이머인 그는 매우 화려한 전적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전적은 바로…

“랭킹 2위 지발도 내게 목숨을 잃었었지.”

진실이다.

타르마의 PK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애초에 그가 소유한 히든 클래스 자체가 PK에 특화되어 있었다.

한때 크라우젤 다음가는 강자로 군림했던 지발조차도 타르마에게 패배하고 경험치를 잃는 수모를 당했었다.

“호오, 타르마라면 나름 적입자지.”

“타르마가 PvP에 출전한다면 결승전까지는 무난하게 올라갈 거야.”

타르마가 PvP에서 만나게 될 최상위 랭커들과 템빨단원들?

그들 중 타르마와 1대1로 싸워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전무하다. 라고, 블러드 카니발의 간부들은 장담하고 있었다.

그만큼 타르마는 탁월한 존재였다.

“뭐, 결승전까지 올라간다고 해서 크라우젤을 이길지는 의문이지만.”

“크라우젤이 특별하긴 하지.”

“그건 천재의 수준을 넘어선 괴물이야. 크라우젤과 1대1로 싸워서 확실히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그너스와 우리 길드의 쌍둥이를 제외하면 없을 걸?”

“닥쳐, 이 개돼지들아.”

멋대로 떠들어대는 동료들에게 욕설을 날린 타르마.

그가 베일 너머 마스터에게 자신만만히 말했다.

“의뢰인에게 전해. 이 타르마가 반드시 크라우젤의 목을 따오겠다고. 아, 그리고 PvP에서 다른 유명인들을 해치울 때마다 추가 수당도 내놓으라고 하고.”

“알았다.”

블러드 카니발의 마스터가 베일 너머로부터 미소 지어보였다.

그만큼 타르마의 실력을 신뢰하는 것이다.

***

<전설적 대장장이의 창조>

‘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 스킬 레벨이 하나 오를 때마다 아이템 제작법을 3개 창조할 수 있습니다.

현재 창조할 수 있는 아이템 제작법 횟수 13/21.

*이 스킬을 사용해서 창조한 아이템을 생산 시, 아이템에 창조자의 이름이 자동으로 새겨집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창조.”

그리드가 스킬을 전개하는 순간,

띠링!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알림창이 떠올랐다.

[어떤 아이템을 창조하시겠습니까?]

‘흠.’

그리드가 원하는 것은 강력한 무기가 아니다.

그리드는 순전히 운에 의지해야하는 랜덤성 무기를 원했다.

그것이야말로 분신을 해치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또 검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건 좀 질리는데.’

어차피 랜덤성 아이템이다.

이번처럼 엿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는 이상 자주 사용할 아이템이 아니므로, 다소 색다른 형태여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다루기 어렵거나 명중률이 낮아선 또 안 되지.’

명중률이 보장됨과 동시에 색다른 재미가 있는 무기로 뭐가 있을까?

한참을 궁리해본 그리드가 피아로의 도리깨를 떠올렸다.

도리깨.

곡식의 낱알을 떠는 데 쓰는 농기구다.

장대 끝에 서너 개의 휘추리(가늘고 긴 나뭇가지)를 매달아 먼지 털이처럼 휘둘러 사용한다.

‘그거 피하기 어렵던데.’

피아로의 도리깨에 낯짝을 얻어맞을 당시 기분이 매우 더러웠단 사실을 떠올린 그리드가 사악한 미소를 머금었다.

‘빌어먹을 분신 녀석… 네놈에게도 더러운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주마.’

결정은 끝났다.

“도리깨를 만들겠다.”

“헐.”

옆에서 잠자코 추이를 지켜보던 스틱세이가 당황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창조 스킬, 과거의 파그마는 비장의 수단으로 활용했었다.

사용 횟수에 제한이 있는 스킬이므로 신중히 사용해야한다 말하는 걸 들은 기억이 있다.

한데 그리드는 창조 스킬로 기껏 만든다는 게 농기구였다.

스틱세이로서는 그리드를 말리고 싶었다.

“아니, 이 마당에 웬 도리깨를 창조하시겠다는 겁니까? 제게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주십시오.”

“…”

명중률이 높은 무기를 만들고 싶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명중률 높은 무기야 도리깨 말고도 많았으니까.

그렇다고 색다른 재미가 있으며, 동시에 맞는 대상에게 더러운 기분까지 선사할 수 있는 무구로 도리깨를 활용하겠다. 라고 솔직히 대답하기엔 좀 치졸해 보일 것 같다.

“험험.”

민망하여 스틱세이를 외면한 그리드가 아이템 창조의 다음 단계를 진행했다.

[‘도리깨’로 결정하시겠습니까?]

‘그래.’

[어떤 재질을 사용하시겠습니까?]

“…”

그리드가 랜덤성 아이템을 제작하겠다는 발상을 떠올릴 수 있었던 이유, 레이단의 연금술사 실베른에게 받은 선물 덕분이었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이야루그트에 <멋짐> 옵션을 귀속시킨 그리드가 다시금 번헨 열도로 출발하기 전.

“위험한 곳으로 모험을 떠나신다고 들었습니다. 공작각하의 무사 귀환을 빌며 이 비약을 바칩니다.”

그리드를 찾아온 실베른이 보기만 해도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새카만 액체가 담긴 물병을 건네 왔다.

“이게 뭐지?”

내가 연금술을 쓸모없다고 판단한 것을 알고 열 받아 독살하려는 건가?

불안해하며 질문하는 그리드에게 미소 지은 실베른이 설명했다.

“제가 평생 동안 쌓아온 연금술 지식을 쏟아 제작한 신비의 비약입니다.”

“그러니까 성능이 뭔데?”

“저도 모릅니다.”

“…뭐?”

“하하, 정확하게 말하면 무작위 효과가 발동하게 될 겁니다. 결과를 알 수 없기에 두근거린다. 이게 바로 연금술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위기의 순간에 처하게 되시면 발악하는 심정으로 마셔보십시오. 혹시 또 압니까? 최선의 결과가 나올지.”

“…”

이거 미친 인간인가.

연금술이라는 학문과 연금술사라는 족속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상실하게 된 그리드였다.

그리드는 이 새카만 액체를 앞으로 평생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지금.

“재질은 실베른의 비약과 흑철나무.”

그리드는 다짐이 무색하게도 실베른의 비약에 의존하고 있었다.

[결정하시겠습니까?]

“그래.”

[설계해 주십시오.]

창조할 아이템과 아이템의 재질을 결정함과 동시에, 그리드의 시야로 공백의 설계도가 떠올랐다.

벌써 아홉 번째 아이템 창조다.

그리드는 설계도 위로 능숙하게 도면을 그려나갔다.

‘피아로가 사용하는 도리깨가 이상적인 형태의 도리깨일 테지.’

슥삭슥삭.

설계도 위로 그려지는 도리깨의 형태가 피아로의 애병(?)과 매우 흡사한 모습을 갖췄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심혈을 기울여 완성시킨 설계도를 보고 만족하며 OK버튼을 누르는 그리드에게 시스템이 마지막 확인을 요했다.

[결정하시겠습니까? 설계도를 완성할 경우, 사용 가능한 창조 스킬 횟수가 1회 소멸합니다.]

“결정한다.”

[설계도가 완성되었습니다.]

[창조 스킬 횟수가 1회 소멸합니다.]

[아이템 특징을 설명해주십시오.]

도리깨에 대한 특징을 요구하는 시스템.

그리드는 알고 있다.

허황된 특징 설명은 도리어 아이템에 독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신중하게 생각한 그리드가 설명을 시작했다.

“흑철나무로 설계한 도리깨답게 탄력이 뛰어나고 공격력도 뛰어나다. 강철로 만든 검처럼 예리해. 거기에 실베른의 비약을 첨가하였기 때문에 대상에게 공격을 적중시킬 때마다 예측불가의 효과를 발생시킨다.”

[적용되었습니다.]

그리드가 그려놓았던 도리깨 설계도가 자기 혼자서 지워지고, 추가되는 등 수정되길 반복했다.

스킬 보정 효과였다.

잠시 후, 프로가 그린 것처럼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게 된 도리깨 설계도가 그리드의 시야로 떠올랐다.

‘좋아, 잘 된 것 같다.’

길이 1.3미터의 검고 유연한 장대에 매달린 4줄기 휘추리가 칼날처럼 예리하고 위협적이다.

그래봤자 무기라기보다는 농기구 같은 겉모습이었지만, 그리드는 그러한 점이 도리어 더 마음에 들었다.

농기구에 얻어맞고 자존감이 붕괴 될 적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재미가 있었다.

[완성 된 아이템의 이름을 만들어주십시오.]

시스템이 마지막 요구를 해왔다.

여기에 대한 그리드의 대답은,

“알쏭달쏭 도리깨.”

“…아니, 왜.”

이름조차 최악이다.

내내 할 말을 잃고 있던 스틱세이가 급기야 한탄하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리드는 완성 된 도면을 확인하며 만족했다.

<알쏭달쏭 도리깨>

등급:유니크~레전드리

유니크 등급 정보.

내구력:259/259 공격력:143~191

*대상을 타격할 때마다 특수한 효과가 발생합니다. 효과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탈곡 속도가 150퍼센트 상승합니다.

*탈곡한 곡식의 상태가 어떻게 변모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레전드리 등급 정보.

내구력:307/307 공격력:218~275

*대상을 타격할 때마다 특수한 효과가 발생합니다. 효과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탈곡 속도가 200퍼센트 상승합니다.

*탈곡한 곡식의 상태가 어떻게 변모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완연한 전설로 거듭나고 있는 그리드가 설계한 농기구입니다.

강철처럼 단단한 흑철나무로 제작하여 내구성이 무척 뛰어나고 공격력 또한 출중합니다. 병장기라고 명명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실베른의 비약의 영향으로 인해서 효과를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사용에 주의를 요합니다. 굳이 사용하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사용 조건:레벨 200 이상.

무게:109

“음… 흑철나무가 비싸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심 써서 피아로에게도 하나 선물해주면 좋아하겠군.”

큰일 날 소리를 하는 그리드였다.

어쨌든 이 알쏭달쏭 도리깨 덕분에 훗날 피아로는… 이하 생략.

***

알쏭달쏭 도리깨를 창조한 후.

로그아웃한 뒤 휴식을 취하고 돌아온 그리드가 최선의 컨디션으로 아이템 제작에 임했다.

“기왕지사 레전드리 아이템을 만들어낸다.”

10번째 레전드리 아이템을 제작하고 2번째 <특수한 일>을 겪었던 그리드.

이제는 오로지 레전드리 아이템을 제작해야지만 추가 스탯을 얻을 수 있게 됐다.

그리드의 입장에서는 레전드리 등급 도리깨가 완성되는 걸 바라는 게 당연했다.

‘세 번째 특수한 일의 효과도 궁금하고.’

그리드는 한동안 레이단에 머물면서 <양산형 그리드 세트>의 제작에 박차를 가했던 시기가 있다.

그리고 총 1천개가 넘는 양산형 그리드 세트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2개의 레전드리 아이템 제작에 성공했었다.

이제 앞으로 3개의 레전드리 아이템만 더 제작하면 그리드는 세 번째 특수한 일을 경험할 수 있었다.

비록 페널티가 발생할지라도, 손해 이상의 이득을 취할 수 있음을 알았기에 그리드는 어서 그날이 오기를 바랐다.

“자, 그럼 제작을 시작해볼까.”

따앙! 따앙! 따앙!!

그리드의 근본은 대장장이다.

용광로를 앞에 세워두고 모루 위에 망치를 두드리는 그의 얼굴, 그 어느 때보다 더 혈기로 넘쳤다.

스틱세이는 기분이 묘했다.

‘과연 전설답게 멋지기는 하지만 신뢰는 안 간다.’

전설의 대장장이가 기껏 창조하여 만든다는 게 농기구라니. 심지어 이름이 알쏭달쏭 도리깨라니?

스틱세이는 그리드가 번헨 열도를 정화하는 일을 이미 포기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심장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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