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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08화 (203/1,794)

템빨 19권 - 13화

“파그마의 검무, 연살파(聯殺派).”

“…뭣!”

파그마의 검무의 단점은 높은 마나 소모와 긴 쿨타임(재사용 대기 시간)에 있다.

하지만 그 단점들을 극복할만한 장점을 지녔으니, 그건 바로 강력한 위력과 스킬간의 조합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그렇다.

그리드는 파그마의 검무가 조합 가능한 스킬이라는 사실을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드가 직접 실험해본 바에 따르면, 조합이 가능한 스킬은 연(聯)을 매개로 한 2개의 스킬이 한계였다.

한데 그리드의 분신은 3개의 스킬을 조합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했을 때는 안 됐는데?’

그리드로서는 충격이 컸다.

고작 분신 따위가, 오리지널조차도 구사하지 못한 스킬 조합을 선보이다니?

자존심이 상하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지금은 감상에 젖을만한 여유가 없다.

‘어떤 스킬인지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시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온 그리드의 두뇌가 맹렬이 회전하고 있었다.

‘레벨 2 연살(聯殺)의 경우, 위력이 약화 된 살(殺)을 최소 3회에서 최대 8회까지 연속적으로 전개시키는 스킬.’

거기에 파(派)가 가미된다면?

‘설마!’

그리드의 뇌리로 무시무시한 가정이 스쳐지나갔다.

‘살(殺)이 연속적으로, 전방위로 뿜어져 나가는 건가?’

아니, 그건 너무 사기다.

그럴 리가 없다. 라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보지만 재수 없게도 나쁜 예감은 빗나간 적이 없다.

쿠르르르르릉!

빠르게 검무를 연계시킨 그리드의 분신이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살(殺)을 연속해서 수놓았고,

쿠콰콰콰콰콰콰쾅!!

살(殺)의 붉은 잔광 위로 파(派)의 푸른 검기가 덧씌워지더니 사방팔방 뻗어져나갔다.

그 위용, 실로 압도적이다.

기운 하나하나에 실린 위력이 치명적이었으며 파(派)처럼 유도의 기능을 내포하고 있었다. 플라이를 사용해서 자리를 이탈하는 그리드에게 허기진 짐승처럼 빠르고, 흉포하게 달라붙었다.

‘이럴 수가!’

그리드는 마치 피아로의 스킬을 대면하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다.

그만큼 3융합 파그마의 검무는 강력하고 완벽했다.

그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전설의 스킬이구나 싶었다.

‘내가 이뤄야할 경지.’

감탄하고, 경악하고, 절망하는 동시에 깨달은 그리드.

직면해오는 여덟 줄기 살(殺)에 대처하고자 이를 악 문다.

과거의 그였다면, 자신을 노리고 날아드는 8줄기의 살을 회(回)로 반격하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회(回)는 저놈도 사용할 수 있다.’

회(回)의 재사용 대기 시간은 무려 2분이다.

먼저 사용하는 쪽이 무조건 불리하다.

회(回)로 반격하면 뭐하는가? 상대방도 똑같이 회(回)로 반격해올 텐데.

‘여기선.’

판단한 그리드가 4개의 갓 핸드를 소환, 우선 그것으로 4줄기 살(殺)을 막아내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그리드의 분신 또한 갓 핸드를 컨트롤함으로서 그리드의 시도를 수포로 만들어버렸다.

덥썩! 덥썩덥썩!!

‘빌어먹을!’

짝퉁 갓 핸드들이 내 갓 핸드들과 손을 맞잡는 모습을 확인하고 이를 간 그리드가 다급히 랜디를 소환, 명령했다.

‘나와의 위치를 바꿔라!’

-응!

랜디에게 고통을 전가하고 희생시킨다는 것은 실로 미안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플레이어가 죽으면 경험치와 아이템을 잃는 반면 펫은 죽어도 24시간 동안 소환 불가 페널티를 얻는 게 끝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랜디가 그리드를 대신해서 희생하는 게 옳았다.

스팟!

등장과 동시에 그리드의 모습을 복제한 랜디가 <복제 대상> 그리드와 자신의 위치를 바꿔버린 그 순간.

퍼퍼퍼퍼퍼퍼퍼펑!!

그리드를 뒤쫓아 왔던 여덟 줄기 살(殺)이 랜디에게 적중했다.

“꺄악!”

고통에 떨며 잿빛으로 산화하는 랜디의 비명이 애처롭다.

그리드의 가슴이 송곳으로 찔린 것처럼 따끔했다.

[도플갱어 랜디의 생명력이 0이 되었습니다.]

[랜디가 펫 인벤토리로 강제 송환됩니다. 회복하기까지 앞으로 24시간 동안 소환할 수 없습니다.]

“놈!”

떠오르는 알림창을 확인하며 도끼눈 뜬 그리드가 신형을 날렸다.

랜디와 살(殺)이 충돌하며 발생한 폭발지점을 꿰뚫고 이동, 자신의 분신에게까지 도달함과 동시에 살(殺)을 꽂아 넣었다.

여기서 그리드가 원한 전개는 분신이 회(回)로 대응하는 것이었다.

모든 형태의 공격을 반격, 160퍼센트의 데미지로 되돌려주는 회(回)Lv.3을 똑같이 회(回)로 응수해준다면 분신의 반격을 무력화시킴과 동시에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리드의 분신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여느 게임들의 듀토리얼 모드에서나 볼 수 있는 멍청한 BOT(인공지능 플레이어)들과 달리, 그리드의 분신은 네임드급 NPC의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있는 최상위 존재였다.

먼저 회(回)를 사용하는 쪽이 불리하다는 사실, 그리드의 분신 또한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푸욱-!!

완벽한 딜 계산이다.

살(殺)을 적중당할지언정 죽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 분신이 <그리드의 대검>에 순순히 가슴을 꿰뚫렸다.

이 대목에서 그리드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분신이 검에 가슴을 꿰뚫림과 동시에 살(殺)의 보법을 밟음을 간파한 것이다.

‘여기선 연(聯)으로 대응을…!’

살(殺)은 직진, 연(聯)은 선회 형태의 보법을 밟는 바.

당연히 연(聯)의 움직임으로 살(殺)을 회피할 수 있으리라고 그리드는 판단하고 있었다.

그 사실, 그리드의 분신이 모를 리 없다.

멈칫!

살(殺)의 검무를 밟던 그리드의 분신이 한 발을 뒤로 물리더니 좌로 한 번, 우로 한 번 유려하게 움직였다.

이때 그리드가 발동시킨 연(聯)이 분신을 연속적으로 베고 있었다.

핏-!

피피피피피피핏!!

날카로운 선혈이 나부낀다.

하지만 그리드의 분신은 기세가 죽질 않았다.

그만큼 그리드가 단단하다는 반증이었다.

그리드의 분신은 연(聯)에 베이는 와중에도 스킬의 전개에 성공했다.

“극살(極殺).”

“…!!”

연(聯)을 매개로 사용하지 않고도 스킬을 조합하다니?

소스라치게 놀란 그리드의 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이 순간 그리드의 혼란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쌓아온 무수한 전투 경험은 결코 헛된 게 아니었다.

그리드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행동했다.

분신을 베고 있던 연(聯)의 궤도를 비틀어 극살(極殺)에 대응한 것이다.

하지만 연(聯)은 위력보다 속도에 중점을 둔 검술이다. 한 방 위력은 극(極)이나 살(殺)과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하물며 그 두 개의 스킬이 합쳐진 극살(極殺)을 고작 연(聯)으로 방어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쩌엉-!

극살(極殺)의 위력에 짓눌린 연(聯)의 검무가 무력화되어버렸고,

푸욱!!

[59,3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크아아악!!”

가슴을 크게 베이며 비명을 내지르는 그리드의 시야가 아찔해졌다.

베기의 극의에 살(殺)의 위력을 결합시킨 타켓팅 스킬, 극살(極殺).

그것의 터무니없는 위력은 그리드의 방어력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수준이었다.

[일격에 절반 이상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3초 동안 기절합니다!!]

[<전설이 된 자>의 패시브 효과로 인하여 저항하였습니다.]

“제길…!”

정신 줄 단단히 잡은 그리드가 다급히 움직였다.

파그마의 검무, 파(派)를 전개하여 시간을 벌고 자리를 이탈하고자 시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리드와 그리드의 분신에게는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리드의 분신이 연살파(聯殺派)의 검무를 추었을 때, 그리드는 그것을 피하는 수단을 강구했던 반면 분신은 그리드의 스킬 발동 자체를 차단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분신이 그리드보다 한 수 위라는 뜻이다.

푸욱!

“큭…!”

파(派)의 검무를 추던 그리드의 신형이 크게 흔들렸다.

분신에게 발목을 정확하게 베이고 자세가 무너진 까닭이었다.

그 탓에 스킬 캐스팅까지 취소되고 말았다.

‘이 썩을 놈이 내 약점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군.’

욕 나온다.

역시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분신이 검무를 추었을 때, 그것의 캐스팅을 취소시키고자 시도하지 못했던 내 자신의 무지함이 치가 떨릴 정도로 싫다.

쐐액-!

이를 갈고 있는 그리드의 안면으로 분신의 이야루그트가 꽂혀왔다.

스킬을 사용할 때는 <그리드의 대검>을 사용하더니, 평타를 칠 때만큼은 또 이야루그트로 스왑하는 분신이었다.

분신의 아이템 이해력이 높다는 증거였다.

“흑화.”

퍼엉!

그리드를 중심으로 칠흑의 마기가 폭발했다.

순간 상승하는 능력치들을 확인하면서 분신의 찌르기를 회피한 그리드가 대장장이의 분노와 신속한 몸놀림을 전개, 곧바로 연살(聯殺)의 검무를 연계시켰다.

그리드의 분신조차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연살(聯殺)이 발현되었다.

푸욱-!

푹푹!!

[대상에게 35,3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36,106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제대로 들어갔다!’

분신의 겨드랑이 아래로 대검을 연달아 찔러 넣으면서, 그리드는 승리를 장담했다.

3번째 살(殺)이 분신에게 꽂히는 순간, 그리드는 이 마흔한 번째 섬을 클리어하게 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대상이 생명력 54,159를 회복하였습니다.]

받은 피해의 50퍼센트에 해당하는 생명력을 즉시 회복시켜주는 <도란의 반지>와 생명력 회복량을 300퍼센트 상승시켜주는 <성스러운 빛의 갑옷>.

그리드의 분신은 그 2개 아이템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서 치명상을 순식간에 회복해버렸고, 이어서 흑화와 대장장이의 분노, 신속한 몸놀림을 전개하더니 그리드의 세 번째 연살(聯殺)을 회피하는데 성공했다.

‘개사기네.’

도란의 반지와 성스러운 빛의 갑옷, 효과가 말도 안 되게 뛰어나다.

내가 여태까지 쭉 저런 사기 아이템들을 사용해왔단 말인가?

그동안의 적들에게 미안함이 생길 지경이다.

‘어찌됐든.’

도란의 반지의 쿨타임은 10분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도란의 반지를 사용하지 않았다. 내 쪽이 아직 하나의 패가 더 남아있는 셈이다.

‘…라고 생각하기엔 말도 안 되나.’

분신은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스킬 융합을 선보일지 모른다.

칫, 혀를 차면서도 그리드는 남아있는 연살(聯殺)을 계속 찔러 넣고 있었다.

한데 여기서 분신이 예상치 못한 대응을 선보였다.

더 이상 피하지 않고 회(回)로 응수하는 게 아닌가?

쩌저정!!

‘지금!’

연살(聯殺)을 반격당한 그리드의 입가로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회(回).”

쩌저저저정!!

회(回)를 회(回)로 대응한다.

이토록 이상적인 결과가 나올 줄이야!

환호하는 그리드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연살(聯殺)의 기운, 종전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어마어마하게 강력했다.

그리드는 이 한 방으로 분신을 쓰러뜨릴 자신이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파그마의 검무, 회(回).”

연살(聯殺)에 직면하고 있는 분신의 뒤로부터, 또 새로운 그리드가 나타나는 게 아닌가?

도플갱어 랜디였다.

‘펫까지 복제하다니!’

경악하는 그리드의 시야로 오래간만에 보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설이 된 자는 쉽게 죽지 않습니다. 생명력이 최소치로 고정되어 5초 동안 모든 피해에 저항합니다.]

그리드는 깨달았다.

‘졌다.’

이 상태로는 이길 수 없다.

생각하는 그리드의 입가로 짙은 미소가 번졌다.

실성해서 웃는가?

아니, 기뻐서 웃는 거다.

‘재도전해주마.’

국가대항전이 도래하기 전까지, 너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성장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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