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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07화 (202/1,794)

템빨 19권 - 12화

“에취!”

쌀쌀한 가을 새벽, 그리드의 집 앞.

어느덧 13시간째 버티고 서있던 강철규가 콧물을 훌쩍이기 시작했다.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추스른 그가 혼란을 느꼈다.

‘차가 있는 걸 보면 외출한 것도 아닌데…’

강철규에게 있어서 집이란, 그저 잠이나 자는 공간에 불과했다.

그의 상식선에서 사람이 13시간 이상 동안 집안에 머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설마 어디가 아픈가?’

단층짜리 단독주택.

면적을 정원까지 합쳐도 채 35평이 안 돼 보이는, 아주 작은 집이다.

저곳에 젊은 청년 혼자서 외롭고 쓸쓸히 누워있다고 생각하니 강철규는 왠지 측은지심이 들었다.

“불쌍한 녀석.”

강철규는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었다.

가난에 허덕이며 의지할 곳 없이 살아왔다.

지하 단칸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연명하던 시절, 감기라도 걸렸다 치면 홀로 며칠을 서러움에 복받쳤던 기억이 있다.

지금의 그리드가 과거 자신의 모습과 겹쳐보였기에 강철규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니, 가만.”

그리드는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지 않았던가?

‘내가 걱정할 입장이 아니잖아?’

칫, 혀를 찬 강철규가 문득 또 의문에 휩싸였다.

‘네 식구가 함께 사는 집인데도 불구하고 13시간 동안 사람이 들락거리질 않다니?’

심지어 집 안의 불도 켜지질 않고 있다.

‘설마…’

강도라도 당한 건 아닐까?

강철규는 걱정했다.

‘그리드와 그리드의 가족들이 강도에게 인질로 붙잡혀 있는 상황이라면?’

안 될 일이다.

그리드는 내 타켓이다. 잡아 조져도 내가 조져야 조지명에게 돈을 받을 수 있다.

“제길, 일단 구출한 다음에 패야겠군.”

강철규는 싸움 솜씨가 전국구급인 반면 머리는 나쁘다. 단지 학교를 안 다니고 책을 안 읽어서의 수준이 아니라, 타고난 머리가 영 별로였다.

13시간 동안 그리드의 집에 침입하지 않고 버텼던 이유, 그리드의 집에 보안업체 스티커가 붙어있어서라는 사실을 망각한 그가 대놓고 그리드의 집 담을 넘기 시작했다.

이처럼 멍청한 선택을 한 이유, 초조함이 원인이었다.

빼애애애애애액!!!

담벼락에 매달린 강철규를 감지한 센서를 통해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동네가 떠나가라 시끄러운 소리였다.

“헐.”

깜짝 놀라 담벼락에서 뛰어내린 강철규.

그대로 도망치려하는 그의 앞길을 누군가 가로막고 섰다.

“쥐새끼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

왼쪽 눈에 안대를 매고 있는 사내.

커다란 코와 옥빛의 눈동자, 그리고 짧게 친 회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젊은 서양인이다.

“넌 뭐냐?”

강철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를 지껄이는 서양인을 경계하였고,

“캬악~ 퉷!”

서양인은 딱히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더럽게 가래침을 뱉더니만 마치 덤비라는 듯이 강철규에게 손을 까닥였다.

강철규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이 미친 외눈박이 새끼가.”

독살파의 행동대장 강철규에게 싸움을 걸다니?

“네놈이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후회하게 해주마.”

강철규의 주먹은 빠르고 위력적이었다.

잽을 3번 연속으로 날린 후 스트레이트를 연계하는 그의 공격, 복싱을 기반으로 삼은 완벽한 살인기술이었다.

하지만 서양인 쪽이 몇 수나 위였다.

터터턱! 덥썩!

오른 손 하나만 움직여서 강철규의 잽을 모조리 쳐낸 서양인이 이어서 강철규의 손목을 잡아 낚아챘다.

강철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놈!’

내 전광석화 같은 주먹을 보고 위축되기는커녕 모조리 맞받아치고 심지어 무력화시키다니?

거의 세계 챔피언급 복서의 운동신경이 아닌가!

강철규의 흔들리는 동공을 확인하고 조소한 서양인이 긴 다리를 위로 뻗었다.

빠각!

“큭…!”

왼 팔을 들어서 서양인의 공격을 가드한 강철규의 신형이 흔들렸다. 서양인에게 붙잡혀 있는 오른 손목을 빼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였지만, 서양인의 악력이 워낙에 강력하여 도통 뿌리칠 수가 없었다.

강철규를 자신의 품으로 잡아당긴 서양인이 그대로 무릎을 세웠다.

뻐억!!

“허윽!”

돌보다 단단한 무릎에 코를 찍힌 강철규의 안면이 으스러졌다.

피를 내뿜으며 뒤로 쓰러지려하는 그의 손목을 서양인은 여전히 꽉 움켜쥐고 있었다.

힘으로 뿌리칠 수 없다고 판단한 강철규가 그대로 회전, 자신의 팔을 부러뜨리면서 팔꿈치를 휘둘렀다.

그에 스친 서양인의 콧대에 날카로운 상처가 생겼다.

마치 칼에 베인 듯한 상처였다.

‘제법.’

서양인이 다소 감탄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한쪽 팔이 부러지고 안면에 큰 데미지를 입은 강철규의 기세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애초에 실력이 몇 수나 위인 서양인이었기에, 강철규는 서양인의 맹공을 잠시밖에 못 버티고 일방적인 폭력을 당하고 말았다.

퍽퍽! 퍽퍽퍽퍽!!

서양인은 정말이지 잔학무도했다.

강철규를 패고, 패고, 또 팼다.

강철규의 안면에선 피가 철철 흘러내렸고 입에선 강냉이가 우수수 떨어졌으니, 사람이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가 없었다.

“네… 네놈은 대체 뭐냐…”

이 서양인, 어째서 이토록 강한 것이며 나를 왜 이토록 죽도록 패는 걸까?

억울함에 복받쳐 질문하는 강철규에게 서양인이 자신을 소개했다.

“아이 엠 그리드 보디가드, 툰.”

그렇다.

서양인의 정체는 바로 야수인간 툰이었다.

한때 이탈리아 마피아계의 균형을 무너뜨렸던, 명실상부 뒷세계의 최강자다.

그가 지금 이 순간 한국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유라의 부탁 때문이었다.

“툰씨, 당신은 자금이 부족해서 한국에 땅을 사지 못했다죠? 만약 당신도 다른 길드원들처럼 한국으로 이민 오고 싶다면 제가 살 곳을 마련해드릴게요. 대신 그리드씨의 안전을 책임져주세요.”

그리드의 안전, 비단 유라 뿐만이 아니라 템빨단원 모두가 바라는 일이었다.

그리드가 있기에 템빨단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며, 템빨단이 존재하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특히 툰은 템빨단에 의지하는 경향이 매우 컸다.

고아 출신으로 쭉 혼자였던 그에게 있어서 몸과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동료라는 존재, 무척이나 각별했다.

“그리드, 건드리면, 죽인다.”

오싹!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하여 말하는 툰의 눈빛, 마치 맹수의 것처럼 포악하여 보는 이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강철규는 연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 알겠다. 앞으로 나는 그리드의 그림자도 밟지 않겠다!”

그렇게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끼익-

그리드의 집 낡은 대문이 열리더니 젊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13시간 이상을 캡슐에 누워 있다가 경보음을 듣고 달려 나온 그리드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어? 툰? 네가 여긴 웬일이야? 언제 한국에 온 거야?”

곤죽이 된 정체불명의 사내와, 그를 두드려 팬 것으로 추정되는 툰의 모습.

그리드는 섣불리 정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때 보안업체의 차량 3대가 그리드의 집 앞으로 도착하고 있었다.

“무사하십니까!”

차량에서 내린 보안업체 직원들이 그리드의 안전부터 확인했다.

그리드가 단지 고객이라서가 아니라, 이들 역시 한국인으로서 그리드의 팬이었던 까닭에 그리드를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어… 음, 괜찮습니다.”

그리드는 혹시라도 툰이 어떤 오해를 사지 않도록, 툰의 곁으로 서며 대답했다.

그 사이 곤죽이 되어있는 강철규를 구속한 보안업체 직원들이 경찰서에 신고를 했고, 신속하게 달려온 경찰관들이 강철규의 얼굴을 보고 경악했다.

그리고 이날 새벽.

TV와 인터넷에 뉴스 속보가 연달아 떴다.

<그리드, 마약사범 검거에 큰 활약.>

<마약을 유통하여 대한민국을 병들게 만들었던 독살파의 행동대장 강철규가 그리드와 그의 동료 툰에게 붙잡혀.>

<서울시, 그리드와 툰에게 명예시민 훈장 수여.>

<경찰청, 그리드와 툰에게 감사패와 상금 전달.>

<청와대, 대통령 표창장 수여 검토 중.>

“…아, 게임해야하는데.”

영문도 모른 채 명예시민 훈장을 받게 된 그리드.

가문대대로 명예로운 일이었건만, 그리드의 표정은 영 불편하기만 했다.

툰과 함께 서울시청과 경찰청을 오가고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등, 시간을 크게 허비한 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게임 할 시간도 없어 죽겠구만.”

“…”

연신 투덜거리는 그리드를 보고 있노라니 툰은 왠지 미안해졌다.

***

[마흔 번째 섬에 입장하였습니다.]

로드를 교육시키는 한편 앞으로 사용할 창과 활을 제작한 그리드.

만반의 준비를 갖춘 그가 번헨 열도로 돌아왔다.

스틱세이가 매우 반겼다.

“드디어 오셨군요.”

“바로 도전을 시작하겠다.”

그리드는 다른 템빨단원들이 몇 번째 섬까지 도달한 상태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동료들이라면 알아서 잘 하고 있으리란 믿음이 있었고, 또한 지금은 스스로의 발전에 전념해야하는 순간이었으므로 남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리드가 이토록 초조해하는 이유?

간단하다.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될 제2회 Satisfy 국가대항전.

그곳에서 그리드는 반드시 활약을 펼치고 싶었다.

‘무조건 금메달 3개를 딴다.’

신의 광물 아다만티움이 탐나서?

물론 맞다. 하지만 그건 2차적인 이유였다.

그리드가 국가대항전에서 활약하고 싶어 하는 첫 번째 이유, 그리드 본인이 조국을 대표하는 입장임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드의 승리, 5천만 국민들의 염원임과 동시에 그리드의 가족들이 기대하는 부분이었다.

그리드는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

지금의 그리드는 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출전했던 제1회 국가대항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숭고한 마음가짐이었다.

“후우.”

심호흡한 그리드가 마흔한 번째 섬으로 향하는 게이트에 발을 들였다.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잠시 후 눈앞에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고요한 대나무 숲이었다.

[마흔한 번째 섬에 입장하였습니다.]

[미션이 생성됩니다.]

<마흔한 번째 섬>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겨라.

최초 클리어 보상:스킬 한 개의 레벨을 올릴 수 있다.

‘도전자 포인트는 안 주나?’

하지만 그리드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리드가 보유한 레전드리 스킬들, 레벨 올리기가 워낙에 고역이었으므로 스킬 레벨 업이라는 보상 또한 꽤 마음에 들었다.

‘왠지 보너스 스테이지 같은 느낌.’

마흔한 번째 섬의 미션은 ‘과거의 자신’을 극복하고 성장한 그리드에게 ‘지금의 자신’을 초월하라는 뜻을 던지고 있었다.

일종의 시험의 장 같은 느낌이었다.

도대체 번헨 열도의 끝에는 무엇이 있기에, 도전자에게 끊임없는 성장을 강요하는 것일까?

긴장함과 동시에 기대하며 사위를 살피는 그리드의 시야로,

스르륵-

그리드와 꼭 닮은 모습을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의 주변으로 4개의 황금손이 맴돌고 있었다.

‘갓 핸드까지 재현했다고?’

그리드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아이템들과 스킬 등, 그리드의 모든 것을 재현할 수 있는 존재라고 판단하는 게 적합해 보인다.

그리드가 긴장했다.

그리고 그에게, 그리드의 분신이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파그마의 검무, 연살파(聯殺派).”

“…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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