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206화 (201/1,794)

템빨 19권 - 11화

속사궁의 관건은 시위의 탄력성에 있다.

속사궁 제작 재료로 <비룡의 힘줄>이 필요한 이유였다.

비룡.

플레이어가 펫으로 길들일 수 있는 몬스터 중 최강종.

전투력이 뛰어난 것은 기본이고, 워낙에 지능이 높아서 사냥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애초에 개체수가 적어 발견하기조차 힘들다.

혹 비룡을 발견할지라도, 플레이어들은 사냥하기보다 길들이려고 노력하는 추세이기도 했다.

그와 같은 이유들로 비룡의 힘줄을 구하기란 어려웠고, 시세는 당연히 엄청 비쌌다.

사용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개당 최소 가격이 1만 골드를 호가할 정도.

그리드가 어느덧 큰 재력을 갖춰가고 있다고는 하나, 그 값비싼 재료를 대량으로 투자한다는 건 역시 엄청난 부담이었다.

‘일단 이걸로 만족해야겠어.’

<나선의 속사궁>

등급:에픽

공격력:215~249 연사 속도:+17%

명중률:-30%

*화살을 한 번 쏠 때 마다 연사 속도가 1퍼센트씩 상승합니다. 이 효과는 최대 50퍼센트까지만 적용됩니다.

*화살의 궤도를 제어하기 어렵습니다.

*‘원하는 대상’에게 공격을 적중 시킬 경우, 보우 마스터리 스킬 경험치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

솔직한 심정으로, 그리드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총 5개 제작한 속사궁 중에서 이게 그나마 제일 나은 편이었다.

‘마스터리 스킬의 경험치 획득률을 올려준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어쨌든 의도는 이뤘다.

앞으로 그리드가 할 일은 속사궁의 궤도를 제어할 수 있을 정도로 보우 마스터리 레벨을 올리는 것이었다.

‘국가대항전까지 해야 할 일이 참 많아.’

번헨 열도를 공략하는 한편 새롭게 익힌 스킬들의 레벨을 올려야만 하고, 번헨 열도의 공략을 통해서 스스로의 부족한 부분을 파악한 뒤 새로운 아이템들을 창조해야 한다.

국가대항전까지 남은 40일-현실 시간으로- 동안 그리드는 게임 플레이 시간을 더욱 더 늘릴 계획이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 Satisfy에 인생을 바친 그리드의 마음가짐이란 결코 가볍지 않았다.

***

『제2회 국가대항전의 우승 국가를 어디로 점치고 계십니까?』

각국 뉴스의 최근 화두다.

앵커가 이 한 마디 질문을 던지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열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미국을 첫 번째로 꼽을 수 있겠죠. 미국팀 출전자의 평균 레벨이 모든 참가국을 통틀어서 가장 높으니까요.』

『미국에는 지발, 아스카, 라우엘, 박스, 블랙테디 등 쟁쟁한 랭커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작년과 달리 휴렌트는 출전하지 않는다는 게 아쉬운 상황이지만 뭐, 타국과 비교하면 파워 밸런스가 월등히 뛰어나죠.』

『하지만 라우엘이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까요? 라우엘은 템빨단의 참모로서 그리드의 최측근 중 하나가 아닙니까? 대회 도중 미국보단 그리드가 소속 된 한국을 도울 가능성이…』

『템빨단원들이 3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니고 공과 사를 구분 못하겠습니까? 자신들끼리도 국가대항전은 엄연히 다른 영역으로 분류하겠지요.』

『애초에, 염려하시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타국을 돕는 행위는 엄연한 규정 위반으로서 엄벌을 피할 수 없으니까요. 비단 라우엘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템빨단원들이 이 부분을 명심하고 있을 겁니다.』

당연한 논리였다.

그리고 실제로 템빨단원들은 국가대항전에서 자국의 명예를 걸고 싸울 예정이었다.

그리드는 폰, 레가스, 페이커 등의 쟁쟁한 실력자들과 겨루는 한편 라우엘의 지혜에 맞서야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미국 외에 또 다른 우승 후보국으로는 어디가 있을까요?』

『미국 다음으로 최상위 랭커들을 많이 거느린 캐나다와 프랑스를 꼽을 수 있겠죠.』

『그리드와 유라가 소속 된 한국과 크라우젤이 소속 된 러시아는요?』

『제2회 국가대항전은 제1회 국가대항전과 많이 다릅니다. 종목이 보다 다양해졌고 일부 규칙도 변경되었으므로 소수의 강자가 국가 하나를 순위권까지 끌어올리는 게 불가능해졌죠. 한국은 최대 15위권, 러시아는 최대 18위권을 노리는 게 한계일 겁니다.』

『한국을 그렇게 높이 평가한다고요? 막말로 그리드와 유라, 극검을 제외하면 랭커가 없는 국가인데요?』

『물론, 표면적으로 봤을 때 한국은 약팀으로 분류하는 게 맞겠지요. 하지만 유라가 변수입니다. 만약 그녀가 소문대로 유니크 등급의 히든 클래스로 전직하였다면…』

제1회 국가대항전에서 한국은 최약체로 분류됐었다.

참가국 중 꼴등은 한국일 거라고 장담하는 사람이 대다수였을 정도다.

당시와 비교한다면, 제2회 국가대항전에서 한국에 대한 평가는 무척이나 후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지들이 뭔데 한국을 무시하는 거지? 작년에 한국이 3등한 거 그새 잊었나?

-그러게 말이야. 심지어 작년엔 극검도 없었는데.

-유라도 노말 클래스였지.

-하지만 올해는 그리드에 극검, 그리고 히든 클래스로 전직한 유라까지 있으니까 한국은 더 좋은 성적을 낼 거라고 봄.

한국을 우승후보국 중 하나로 분류해도 손색없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이분들 국뽕이 치사량이네;; 대한애국협회 알바들인가?

-작년에 한국이 3등할 수 있었던 이유가 한국이 잘해서냐? 그리드가 잘했던 거지.

-정답. 한국은 여전히 Satisfy 약소국임. 작년에 한국이 3등 했던 건 그리드 혼자서 금메달 3개 따서 그런 거고, 한국은 작년이나 올해나 전체적인 전력이 너무 약함.

-올해도 그리드 혼자서 금메달 3개 따면 되는 거 아니냐고? 당연하지. 우리의 갓리드라면 당연히 딸 수 있겠지. 하지만 문제는 작년과 올해의 금메달 가치가 많이 다르다는데 있다. 작년 국가대항전은 종목이 총 9개였던 반면 올해는 종목이 총 21개가 되었으니까.

-극검? 다른 나라 출전자들은 평균이 극검급인데 극검 하나 더 출전한다고 해서 한국이 뭐 더 세진 줄 암?ㅋㅋ

회의론자들 또한 많았다.

공교롭게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처럼 부정적인 의견에 더 큰 공감을 하고 있었다.

극검은 그게 화났다.

“웃기고들 앉았군.”

서울, 대한애국협회 본사.

Satisfy에서 로그아웃하자마자 인터넷을 살피던 극검이 얼굴을 구겼다.

“갓리드가 있는 대한민국을 이토록 과소평가하다니. 그리고 뭐? 다른 나라 출전자들의 평균 실력이 나 정도라고? 이런 빌어먹을 놈들이, 두 유 노우 극검?”

극검의 의욕이 들끓었다.

그는 반드시 대한민국을 제2회 국가대항전 우승국으로…

“…그건 너무 허황된 이야기 같고.”

극검은 현실적으로 생각했다.

대한민국을 반드시 제2회 국가대항전 10위권 국가로 만들겠다고. 그렇게 차근차근하게 단계를 밟아 나감으로서 언젠가는, 대한민국이 Satisfy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드높이게끔 만들리라 포부를 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극검을 포함한 전 세계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리드의 템빨 전설, 이제야 비로소 개막되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그리드, 그리드, 그리드, 그리드, 그리드, 그리드, 그리드!

TV나 라디오를 틀어도, 핸드폰을 확인해도, 신문을 봐도, 인터넷에 접속해도, 심지어 동네 아줌마들이 둘 이상 모여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떠드는 소식이라곤 오로지 국가대항전과 그리드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고지명은 정녕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빌어먹을 그리드 놈!”

고지명.

오성소속의 KBO리그 선수다.

한때 대한민국 최고의 타자로서 명성을 날렸었으나, 작년부터 걸그룹 파리나의 리더와 사귀더니 성적이 뚝 떨어지고 사고까지 연달아 쳐서 퇴출 위기에 내몰린 상태다.

단지 소속팀에서 퇴출되는 수준이 아닌, 리그 자체의 퇴출이었다.

“그리드…!”

숙녀고배 Satisfy 대회에서, 성녀 루비를 해치워달라는 여자 친구의 부탁을 받았던 고지명.

위험을 무릅쓰고 규칙을 위반, 루비를 해치우고자 시도했으나 그리드의 방해를 받아 실패해버렸고 그 여파로 작금의 위기까지 내몰리고 말았다.

대중들에게 쓰레기로 낙인찍혔고 심지어 여자 친구에겐 이별통보까지 받은 상태다.

고지명은 이 모든 원흉이 그리드라고 여기고 있었다.

전형적인 책임전가의 달인이었다.

“결코 용서 못한다.”

꽈드득!

이를 간 고지명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서울의 뒷세계를 주름 잡고 있는, 거대 폭력 조직 <독살파>의 행동대장에게 거는 전화였다.

***

“빌딩 확인하고, 할아버지 댁에서 하루 자고 오도록 하마.”

영우의 부모님과 여동생이 오래간만에 가족 외출에 나섰다.

물론 영우는 함께하지 못했다.

국가대항전 준비로 한창 바쁜 시기였던 까닭이다.

“편히 잘 다녀오세요.”

가족들을 배웅한 영우가 다시 또 곧장 Satisfy에 로그인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

금천구 XXX동 000-0번지.

그리드가 거주 중인 것으로 유명한 동네다.

한때, 그리드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던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인해서 구청이 외부인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해버렸고, 인근 방비가 삼엄해졌다.

치안이 나쁜 편이었던 대표적인 서민 동네가 결과적으로 그리드 덕분에 살기 좋은 동네로 변모해버린 것이다.

지역에서 그리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거지같은 동네가 방비 하나만큼은 무슨 타워 팰리스 수준이군.”

마약 유통에 주력 중인 독살파의 행동대장, 강철규.

주먹으로 서울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그의 실력은 탁월했다.

고향 선배이자 물주인 고지명의 의뢰를 받들어 일반인 하나 불구로 만드는 일 따위, 그에겐 무척이나 손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목표물의 집 앞까지 도달하기가 고단했던 게 문제다.

예상치 못하게 두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수고비로 500만원만 더 받아야겠어.”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강철규.

목표물의 집 앞에 세워져 있는, 그 유명한 8억짜리 세단을 살펴보는 그의 눈빛이 독사같이 빛났다.

‘그리드. 그리드라…’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리드를 영웅이라 추켜세우고 있었지만, 강철규가 봤을 때는 우스울 따름이었다.

고작 게이머 따위가 무슨 조국의 영웅이란 말인가?

Satisfy 국가대항전인지 뭔지 하는, 그깟 시시한 게임 대회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강철규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임할 시간에 술이나 한 잔 더 먹고 다닐 것이지, 멍청한 것들.”

흥, 콧방귀 뀐 강철규가 그리드의 집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리드가 외출하는 순간을 노리고 기습, 불구로 만들어버릴 계획이었다.

한데 1시간, 2시간, 3시간, 4시간, 5시간… 심지어 10시간이 지나도 그리드의 집 문은 열릴 생각을 안 했다.

‘뭐지?’

그리드라는 놈은 외출도 안 하나?

어느덧 쌀쌀해지기 시작한 가을의 밤.

하필이면 추위에 약한 강철규의 안색이 차츰 초췌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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