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19권 - 6화
서대륙에 존재하는 국가는 총 17개다.
17개국 국민들과 플레이어들의 숫자를 합산할 경우, 서대륙 인구는 무려 수십 억 단위를 헤아리고 있었다.
한데 로드는 그중에서도 으뜸가는 천재였다.
로드의 학습능력과 발달속도, 그리고 사고력은 분명히 상식선을 초월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장일이라는 게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통! 통통!!
“…”
태어난지 채 100일도 되지 않은 로드.
흑송으로 제작한 가벼운 대장장이 망치로 광물을 두드려봤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타고난 손재주가 높다고는 하나, 경험이 전무하여 요령이 없고 근력 또한 대장일을 하기엔 무척 낮은 까닭이었다.
“푸훗.”
뭐든지 잘 하는 줄 알았던 내 아들에게도 이런 어리숙한 면모가 있었다니?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망치질을 해봤자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로드.
일이 뜻대로 되지를 않자 뺨을 부풀리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자신과 쏙 빼닮은 로드의 흑발을 쓰다듬어준 그리드가 대장장이 한 명을 호명했다.
“진흙을 구해오도록.”
“예!”
위대한 레이단의 영주이자 전설의 대장장이이신 그리드 공작각하의 명령이다.
잔뜩 기합 든 대장장이가 즉각 달려 나가더니 진흙을 공수해왔다.
“아부부!”
말 한 마디로 사람을 다루는 아버지의 모습이 멋지다.
초롱초롱, 선망의 눈빛을 보내오는 로드였다.
지금 이 순간 로드는, 어서 빨리 언어를 익혀야겠다는 다짐을 세우고 있었다.
녀석의 속내를 모르고 빙그레 웃은 그리드가 진흙을 건네주었다.
“당장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들라고 하지는 않겠다. 이걸 두드려서 형태를 잡는 일에 익숙해지도록 해라.”
“부부! 뿌우우!!”
아버지의 말이라면 껌뻑 죽던 로드가 웬일로 불만을 토로했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뿌뿌뿌!!”
내가 네다섯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니고, 고작 진흙 따위나 가지고 놀 수는 없어요! 라고 말하는 듯한 로드의 태도가 그리드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프라이드 높은 건 아이린을 빼닮은 건가?”
괜히 고귀한 혈통이 아니다.
혀를 내두르는 그리드에게 대장장이 칸이 다가왔다.
“허허, 로드 공자의 교육이 쉽지가 않은가 보구만?”
“애가 타고난 손재주는 제법인데, 보시다시피 아직 어려 광물을 제련하기엔 무리가 있어요.”
“암, 당연한 일이지. 천재라는 게 만능은 아니니까. 최소 12살이 되기 전까진, 제아무리 로드 공자라도 불과 광물을 다루진 못할 테야. 그전까지 차근차근 가르쳐야지.”
발끈!
로드의 관자놀이가 씰룩거렸다.
그 미묘한 꿈틀거림, 어둠 속에 숨어있는 카심밖에 엿보지 못했다.
‘헉… 로드를 자극하다니.’
2달 넘도록 로드를 가르쳐온 카심은 로드의 성격을 완전히 꿰뚫고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기반으로 삼은 강력한 승부욕, 그 승부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고집.
로드는 결코 후퇴하는 법이 없었다.
“아바! 아부부!!”
흥분한 로드가 그리드와 칸에게 연신 뭐라고 떠들어댔다.
그리드와 칸은 로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반면 카심은 정확히 뜻을 이해하고 있었다.
‘12살은커녕, 2살이 되기 전까지 어엿한 대장장이가 되어 보이겠다고?’
잠깐, 그러면 내 스승 란스티어님의 술법 연마는 대체 언제 하려고?
걱정하는 카심에게 로드가 은근한 시선을 보냈다.
기존 일정에는 차질이 빚어지지 않게끔 노력하겠다, 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크음… 로드라면 충분히 해낼 수도 있겠지.’
카심은 로드를 천재라는 범주에 가둬두지 않았다. 인간의 영역을 완전히 초월한, 보다 상위의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로드의 의지를 허풍으로 보지 않았다.
“얘가 자꾸 뭐라고 떠드는 걸까요?”
“허허, 자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겠지.”
“하하, 그런 거냐, 로드? 나도 널 사랑한단다.”
“아우! 아부부부!!
카심과 달리 로드와 함께한 시간이 적은 그리드와 칸.
두 사람은 끝까지 로드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로드를 귀엽게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날부터 로드의 특훈이 시작되었다.
***
연금술의 용도는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
1.각종 물약의 제작.
2.하급 광물의 등급 상승.
3.무기, 방어구 강화석 창조.
4.특수 아이템 제작.
5.아이템에 옵션 부여.
참으로 화려하다.
연금술 시설, 절대적으로 유용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서대륙 대부분의 국가는 연금술에 자금을 투자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연금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한다는 뜻이며, 이것엔 다 이유가 있었다.
연금술이란, 늘 ‘실패’라는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만 하는 분야였던 까닭이다.
연금술로 특정한 일을 하게 될 경우, 언제나 성공 확률보다 실패 확률이 더 높았다. 그건 사사로운 포션 하나를 만들 때도 적용되는 사항이었다.
<레이단 연금술소>
레벨:중급8
*극상급 생명력, 마나 회복 물약의 조제가 가능합니다.
-성공률 36퍼센트
*상급 버프 물약의 조제가 가능합니다.
-성공률 14퍼센트
*최하급~하급 광물의 등급을 한 단계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성공률 10퍼센트/4퍼센트
*아이템에 한 가지 옵션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성공률 1퍼센트
“…??”
템빨단이 레이단을 다스리기 시작하고 1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템빨단은 연금술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어왔다.
레이단, 바이란, 코크로 섬에서 발생한 수익과 그리드와 길드원들 개개인이 투자한 자금 모두를 연금술 시설에 투자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한데 이 모양 이 꼴이다.
그리드의 반응이 냉담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템에 옵션 부여가 가능해졌다기에 기대했더니만, 성공 확률이 뭐? 고작 1프로?”
행정관 라빗이 설명했다.
“일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연금술 시설의 레벨이 고급으로 성장할 경우 아이템 옵션 부여 확률이 비약적으로 오를 것입니다. 그에 앞서서 오늘은 일종의 테스트로 시도해 보심이…”
“호오, 확률이 비약적으로 오를 거라고? 몇 프로까지 오르기에?”
“한 5프로 정도…”
“????”
그리드의 눈살이 확 찌푸려졌다.
여태까지 나와 길드원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을 물 먹는 하마처럼 처먹어온 연금술 시설의 가치가 터무니없이 낮아보였던 까닭이다.
“다른 국가들은 연금술 시설에 동전 한 푼 투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더니, 그럴 만도 했군.”
레이단을 제2의 탈리마로 만들겠다는 목표, 너무 허황된 것이 아니었는가 싶다.
솔직히 이 정도로 가치가 없을 줄은 몰랐다. 거의 사기 당한 심정이다.
치를 떠는 그리드에게 라빗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려보였다.
“하지만 레이단에는 옐로우 미스릴이 있잖습니까.”
옐로우 미스릴.
오직 레이단 인근의 광산에서만 채광할 수 있는 광물이다.
연금술의 성공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페어리 더스트>의 재료였다.
라빗이 레이단은 연금술을 발전시켜야한다고 주장했던 이유, 다 여기에 있었다.
“페어리 더스트를 준비해놓았습니다. 주군께서 친히 그 성능을 체험해보시죠.”
[페어리 더스트를 획득하였습니다.]
<페어리 더스트>
연금술 시설에서 옐로우 미스릴을 정제하여 제작한 가루입니다.
연금술의 성공 확률을 20퍼센트 상승시킵니다.
무게:0.1
‘20퍼센트…’
여전히 낮은 확률이다.
고작 이거 하나만 믿고 연금술 시설에 투자해온 지난 날,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질 정도로 후회스럽다.
하지만.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다른 세력들의 연금술 성공 확률은 한 자리 수준에 머물러 있을 때, 레이단은 최소 20퍼센트의 성공 확률을 먹고 들어간다.
레이단은 서대륙을 통틀어서 유일하게 연금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도시임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다른 국가들은 결코 넘볼 수 없는 영역에 홀로 발을 들인다는 것, 훗날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모른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한 그리드가 마음을 다스렸다.
“좋아, 어디 한 번 실험해보자. 아이템에 옵션 부여라는 게 과연 얼마나 대단할지.”
***
대륙 최고의 연금술사, 실베른.
어려서부터 연금술이라는 학문에 도취되었던 그는 지난 50년 인생을 모두 연금술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연금술이라는 학문은 그 특성상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했고, 실베른은 자신의 연금술을 활용할만한 환경과 자금을 그 누구로부터도 투자받지 못했다.
마치 투명인간처럼, 세상에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실베른은 자신의 지식과 재능을 펼쳐볼 기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에트날 왕국의 그리드 공작각하께서 당신의 소문을 듣고 친히 당신의 초빙을 명령하셨소. 그리드 공작각하께서는 연금술이라는 학문과 당신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소. 그분 밑에서 막대한 지원을 받으며 당신의 꿈을 펼쳐보는 게 어떻겠소?”
스스로를 레이단의 행정관이라고 소개한 라빗이 실베른을 찾아왔다.
실베른.
세상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대륙 최고의 연금술사.
지독한 가난 속에, 고독하게 지내온 그에게 있어서 광명과도 같은 손길을 내밀어준 그리드 공작은 무척이나 특별한 존재였다.
실베른은 다짐했다.
그리드 공작각하를 위해서라도 연금술이라는 학문의 가치를 세상에 드높이리라고.
…여기까지가, 그리드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드 공작각하를 뵈옵나이다아!!”
레이단의 연금술소.
오래간만에 그곳을 방문한 그리드에게 소장 실베른이 달려와 넙죽 절을 올렸다.
참으로 과장 된 인사였다.
‘이 사람 왜 이러지?’
속사정을 모르고 의아해하는 그리드에게 라빗이 속삭였다.
“제가 주군에 대해서 포장을 좀 해놨거든요.”
“…”
라우엘과 라빗하고 엮일 때마다 느끼는 사실인데, 똑똑한 사람들과 함께하면 여러모로 편리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충신을 획득한 그리드가 실베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시게.”
“오오…!! 오오오!!”
세상에서 유일하게 연금술이라는 학문을 인정하고, 내 존재가치까지 알아봐준 위대하신 공작각하께서 친히 손을 내밀어주시다니?
감격하여 떨리는 손으로 그리드의 손을 붙잡고 일어선 실베른이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공작각하께서 친히 이곳을 방문해주시다니 너무 감동적입니다. 자꾸만 눈물이 흐릅니다.”
“…”
심히 부담스럽다.
눈시울 붉어진 실베른의 시선을 외면하고 연금술소 내부를 살펴본 그리드가 곧장 본론을 꺼냈다.
“이 검에 새로운 옵션을 부여하고자 한다.”
그리드가 꺼낸 검, 이야루그트였다.
레전드리 등급까지 성장할 수 있는 등급 성장형 아이템이며, 악마의 영혼까지 귀속되어 있는 에고 소드.
이런 특수한 아이템에도 과연 연금술의 효력이 작용할까?
반신반의하는 그리드에게 실베른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저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실베른 또한 본인의 분야에선 최고의 실력을 쌓은 몸이다. 자신감이 충만했다.
“하지만 알아두셔야 할 게, 중급 연금술소에서 아이템에 부여하는 옵션의 등급은 최소 F등급에서 최고 A등급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한 아시다시피 연금술이란 늘 실패의 가능성이 따라 붙는 학문이기도 합니다.”
“옵션 부여에 실패할 경우, 대상 아이템의 고유 성능이 하락할 수도 있나?”
“그런 일은 없습니다.”
“좋아, 그럼 바로 시도해보자.”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연금술과 자신을 유일하게 인정해주신 주군께 은혜를 갚을 기회다.
의욕으로 들끓게 된 실베른이 그리드를 한쪽의 시설로 안내했다.
용도를 가늠할 수 없는 기구들이 가득 늘어서있는 20평 남짓의 방이었다.
실베른이 그곳 중앙에 세워져있는 제단 위로 이야루그트를 올려놓았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쩌어어어어엉-!!
실베른의 신호와 동시에 발생한 강렬한 푸른빛이 실내를 잠식했다.
시야를 괴롭히는 빛 속에서, 그리드는 알림창과 대면하게 되었다.
[이야루그트에 새로운 옵션 부여를 시도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옵션 부여에 성공하였습니다!]
띠링~
“뭐라고?”
옵션을 확인한 그리드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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