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200화 (195/1,794)

템빨 19권 - 5화

국가대항전 오프닝 영상 촬영 당시.

S.A그룹이 임시 서버에 재현한 프랑스 파리에 32개국 224명의 랭커들이 집결했다.

각국을 대표하며 Satisfy를 선도하는 최강자들.

그들 틈에서도 눈에 띄는 인물은 단연코 랭킹 1위 크라우젤이었다.

“와, 내가 크라우젤을 실물로 보는 날이 오다니, 랭커가 된 보람이 있네.”

“의외로 젊군. 아직 서른도 안 된 것 같은데, 저 나이에 20억 유저의 정점이 된 건가…”

“난 사실 오랫동안 크라우젤의 팬이었어. 이참에 우리 길드로 회유해볼까?”

“회유가 먹힐 상대였으면 이미 개나 소나 다 달라붙었겠지. 그리고 아마 우리 중 대부분이 크라우젤의 팬일걸.”

크라우젤의 대단함은 누구보다 랭커들이 더 잘 알았다.

레벨 구간이 높아질수록 레벨 올리기가 힘들다는 사실, 일반적인 유저들보단 랭커들이 한 발 더 빨리 체험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랭커들에게 있어서 크라우젤이란, 천재의 영역을 넘어선 보다 초월적인 존재였다.

웅성웅성.

마치 연예인을 처음 본 아이들처럼, 크라우젤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소란을 피우는 랭커들.

그들 대부분은 크라우젤과 한 마디 인사라도 나누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먼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크라우젤이 풍기는 분위기가 초연하여 감히 함부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건 지발조차 마찬가지였다.

‘이 내가 위축되다니…’

지발.

스네이크 길드의 수장이며 통합 랭킹 2위에 빛나는 존재.

그가 비록 템빨단을 상대로는 여러 번 고배를 맛봤다지만, 세상에 그가 최고임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한데 그조차도 크라우젤 앞에서는 한낱 범인이 되어 움찔거리는 것이다.

그처럼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안녕.”

누군가가 크라우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리드였다.

랭커들이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템빨러 따위가 크라우젤에게 들러붙다니.’

‘크라우젤에게 멸시 받지 않으면 다행인 거지.’

랭커들은 그리드와 크라우젤의 관계를 모른다.

신컨 크라우젤이 템빨러 그리드를 경멸하리라 보고, 그리드가 망신당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의외로 크라우젤은 그리드를 반겼다.

심지어 두 사람은 이미 서로를 알고 있는 사이 같았다.

“오래간만이군.”

“잘 지냈어? 랭킹 목록 보니까 2위와의 격차를 더 벌렸던데?”

“이게 다 당신의 덕분이다. 백아도의 성능이 개방되어 사냥과 레이드 효율이 올랐어. 고맙다.”

“감사의 뜻은 도리어 내가 전해야지. 당신 덕분에 난 번헨 열도를 방문할 수 있었고 더 성장했으니까.”

“당신 또한 서른한 번째 섬까지는 도달할 수 있었겠지?”

서른한 번째 섬.

과거의 시련을 재현시키는 그곳에서 크라우젤은 탈락의 고배를 마신 바 있다.

그렇기에 그리드의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이제 막 마흔 번째 섬까지 도착했어.”

“…”

크라우젤의 표정이 굳었다.

나조차 도달하지 못한 영역에 그리드가 먼저 도달하였다니, 그리드의 실력은 인정하는 바이지만 솔직히 예상을 초월했다. 머리를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자극이었다.

“내가 남보다 못했던 경우는 처음이군.”

재미있다.

나를 이토록 몰아세우는 존재, 이태까지 과연 몇 명이나 됐을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크라우젤에게 그리드가 진실을 고했다.

“내가 당신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에 높은 기록을 세운 게 아니야. 단지 번헨 열도와 나의 상성이 너무 좋았을 뿐이지.”

“굳이 겸손해할 필요 없다.”

그리드와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하던 크라우젤이 문득 제자리에 섰다.

다른 이들이 자신들을 뒤따르는 기척을 느낀 까닭이었다.

“듣는 귀가 많군.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지.”

“잠깐.”

작별을 고하는 크라우젤을 불러 세운 그리드.

그가 도발적인 시선으로 선언했다.

“오프닝 연출 기획 봤지? 마지막 장면이 내가 당신을 공격하면서 끝나는 거야. 난 전심전력을 다 할 테니까, 혹시라도 죽지 않도록 조심해.”

궁금하다.

성장한 내 실력이 크라우젤에게 어디까지나 통용될지.

뜨겁게 타오르는 그리드의 시선을 확인한 크라우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하지.”

그리고 이날.

“파그마의 검무, 초연(超聯).”

쿠콰콰콰콰쾅!!

그리드의 궁극기 중 하나인 초연(超聯)을 크라우젤은 상처 하나 입지 않고 회피해버렸다.

정확히 20줄기의 검기를 모조리.

이에 그리드가 느낀 것은 좌절감이 아니었다.

‘아직 한참 멀었구나.’

더욱 더 성장해야만 한다.

그리드가 의욕으로 들끓는 그때 크라우젤은 감탄하고 있었다.

‘궤도가 전보다 더 예리해졌다.’

Satisfy시간으로 두 달 전의 대련 당시, 그리드가 쏜 초연(超聯)은 크라우젤에게 아무런 위기감도 선사하지 못했었다.

표적을 향해서 일직선으로 꽂히는 검기들 따위, 크라우젤이라면 순식간에 읽어내고 대처하기가 간단했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이번 초연(超聯)은 달랐다.

검기들의 궤도가 직선으로 통일되지 않고 호선이 섞여 있었다.

이보다 더 변칙적인 궤도가 완성될 경우…

‘더 재미있어지겠군.’

플레이어 중에서 나를 자극시킬 수 있는 실력자들, 오로지 악의로 뭉쳐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그너스다.

하지만 그리드는 달랐다.

보다 순수한 의도로 내게 맞부딪쳐왔으니 참으로 긍정적인 존재다.

그리드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는 더욱 발전할 것이다, 라는 확신이 설 정도였다.

‘하지만 역시.’

번헨 열도에서 그리드가 나를 앞서간 것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쩌엉-!!

백아도를 휘둘러 그리드에게 반격을 가한 크라우젤, 이를 악 물고 막아서는 그리드를 확인한 그가 결심을 세웠다.

‘나 또한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가대항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더욱 더 발전하리라.

다짐하고 있는 그에게 촬영 종료를 알리는 컷 사인이 떨어졌고.

“크라우젤, 만나서 반갑다. 랭커 목록에서 네 바로 아래에 있는 랭킹 2위 지발이라고 한다.”

지발이 악수를 건네며 다가왔다.

그리드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눈 크라우젤이니만큼 자신의 인사 또한 당연히 받아줄 줄 알았다.

그에게 크라우젤이 미안하단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께서 부르셔서 이만.”

“…?”

200명이 넘는 랭커들과 100명이 넘는 S.A그룹 관계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파앗~!

지발의 악수를 거부한 크라우젤이 빛과 함께 로그아웃해버렸다.

“풋!”

크리스의 비웃음을 시작으로 지발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허름한 주택단지.

그곳의 다 쓰러져가는 저택 중 하나가 바로 크라우젤의 거처였다.

크라우젤.

고려인 출신으로 가난과 늘 함께였던 사내.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기도 했던 그는 살면서 수많은 위기를 겪어왔다.

하지만 포기하지도, 탈선하지도 않고 올곧게 자라 명문대에 입학하고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던 이유, 모두 상냥하고 현명한 어머님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평생을 모시고 살며 효도해도 은혜를 다 갚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존재.

그런 어머니께서 최근 점점 야위어 가신다.

삐삐삐삐!!

캡슐에 설치한 비상등이 깜빡인다.

그를 듣자마자 게임에서 로그아웃한 크라우젤이 캡슐에서 빠져나왔다.

그가 향한 곳은 어머니의 침실이었다.

현대의학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난치병, 알츠하이머.

세계 최고의 의료진들에게 억만금을 주어 초빙해봤지만 결국 어머니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고 있었다.

“내 아들! 내 아들 어디에 있어!!”

광기에 찬 시선으로 크라우젤을 노려보는 어머니.

방안의 온갖 물건들을 집어 던지며 난동을 피우는 그녀를 크라우젤이 와락 끌어안아주었다.

“걱정 말고 진정하세요. 곧 아드님과 만나실 수 있을 테니까.”

크라우젤은 결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저택을 처분한 후 Satisfy를 시작하게 된 그는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Satisfy를 통해서 부를 축적하고 그 모든 것을 어머니의 치료에 쏟아 붓는 다면, 언젠간 어머니가 다시 내게 따스한 손길을 보내주시리라 믿었다.

그때까지 절망하지 않고 견디기 위해서라도, 크라우젤은 혼신을 다 하여 어머니를 보살폈고 동시에 Satisfy를 즐거운 마음으로 플레이했다.

부정적인 생각 따위가 내 삶을 침해하지 않도록, 늘 매사에 전념하는 것이다.

***

『템빨단이 은기사 길드를 흡수한 점을 토대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템빨단이 다스리는 영지가 총 3개라는 점이죠. 레이단, 바이란, 그리고 코크로 섬.』

『하나의 길드가 3개의 영지를 운영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 아닙니까? 템빨단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여론의 추측이 있습니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어마어마하게 벌어들이고 있겠지요. 레이단은 왕성급 규모의 대도시이고, 바이란은 다양한 레벨대의 사냥터가 존재하며 코크로 섬은 관광지로 유명합니다. 알짜배기가 아닌 땅이 없으니 매달 막대한 세금을 쓸어 담고 있을 겁니다.』

『자금력을 갖춘 이상 템빨단원들의 템빨은 나날이 발전할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템빨단에 가입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다 있는 거죠.』

제2회 국가대항전 오프닝 영상이 공개된 이후.

크라우젤에게 집중하는가 싶던 각국의 언론들이 다시 그리드와 템빨단에게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크라우젤에 대한 정보가 워낙에 부족한 탓에 발생한 현상이었다.

덕분에 라우엘의 의도대로 템빨단은 연일 화젯거리가 되었고 명성이 올랐다.

“근데 너무 허황된 이야기가 많네. 템빨단이 부자라고? 개뿔, 우린 맨날 가난에 찌들어 사는구만.”

반트너가 코웃음 쳤다.

3개 영지에서 발생하는 수익 전부를 레이단에 쏟아 붓고 있는 템빨단, 늘 적자에 허덕여온 우리를 부자 길드라고 예측하는 일부 전문가들이 우스웠던 것이다.

“레이단이 워낙 고립되어 있으니 헛된 추측이 난무할 만도 하죠. 레이단의 실질적인 상황을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겁니다.”

라우엘은 매우 흡족해하고 있었다.

템빨단의 명성이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적대시하려는 세력은 줄어들 것이며 인재는 모여들 터였으니 기뻐할 만도 했다.

“근데 번헨 열도는 언제 출발하는 거죠?”

레가스의 질문이었다.

늘 강해지기를 꿈꾸는 그였기에 번헨 열도에 대해서 엄청난 동경심을 품고 있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닌, 대부분의 템빨단원들이 마찬가지였다.

라우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1시간 뒤에 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스틱세이가 우리를 안내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드는?”

“그리드님은 며칠간 레이단에 머물게 되실 겁니다. 연금술과 대장장이 기술의 결합을 시도해보실 차례거든요.”

“연금술과 대장술이 결합 되면 드워프들 고유의 기술을 넘볼 수 있게 된다고 했었나?”

“그건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고요. 당장은 아이템에 고유 옵션 한 개를 추가하는 게 한계일 겁니다.”

그리고 그 한 개의 옵션이 전황을 뒤엎을 수도 있으리라, 라우엘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유아용 대장장이 망치>

등급:에픽

내구력:28/28 공격력:10~12

레어 등급 아이템 제작 확률:+2%

에픽 등급 아이템 제작 확률:+1%

손재주+5

돌처럼 단단하지만 가벼운 흑송으로 제작한 망치입니다.

전설의 대장장이 그리드가 자신의 어린 아들을 위해서 제작한 망치로서 편의성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사용 조건:없음

무게:3

“로드야, 너는 앞으로 당분간 이 아빠와 함께 대장일을 해야겠다.”

명색이 <전설의 대장장이>의 아들이 언제까지고 초급 대장장이 기술을 익히고 있어서야 웃긴 일이다.

레이단에 머무는 동안, 그리드는 로드를 스파르타식으로 교육시킬 계획이었다.

“아바! 아바바!!”

로드는 신났다.

아빠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정말 뭐라도 좋은 로드였다.

따앙! 따앙!

통통! 통!

모루 위에 망치질을 시작하는 두 부자.

누가 부자지간 아니랄까봐 자세까지 쏙 빼닮은 두 사람의 곁을 지키는 카심의 은신기술과 경계능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