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98화 (193/1,794)

템빨 19권 - 3화

제1회 Satisfy 국가대항전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전 세계 평균 시청률이 63퍼센트를 돌파하였고, 이는 올림픽과 월드컵 등의 기존 세계적 축제들의 방송 시청률을 가뿐히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당연한 현상이다.

Satisfy를 플레이하거나 Satisfy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숫자, 무려 수십 억 단위였으니까.

“국가대항전이 창출한 경제적 효과에 관한 기사는 충분히 접하셨으리라 봅니다.”

S.A그룹의 젊은 피, 윤상민 운영이사.

시간을 초 단위로 쪼개어 스케줄을 조정하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인 그가 직접 신영우를 대면하고 있었다.

“우리 S.A그룹은 국가대항전의 발전 가능성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국가대항전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며, 이에 따라 보다 더 큰 투자를 감행하기로 결정했지요.”

금천구 XX동의 한 카페.

묵묵히 이야기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신영우에게, 윤상민 이사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그려보였다.

“국가대항전 참가자들에게 작년과는 비할 수 없이 높은 혜택을 드릴 예정입니다.”

말인 즉.

“지금 저는, 신영우씨께서 제2회 국가대항전에 참가해달라고 설득하려는 겁니다.”

잠자코 있던 영우가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설득해보세요.”

드디어 관심을 보이는가.

안도한 윤상민 이사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간단합니다. 국가대항전 각 종목의 메달 가치를 높일 것입니다.”

제1회 국가대항전에서 메달의 가치는 높지 않았다.

각국 정부가 메달리스트에게 소정의 포상금을 지불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제2회 국가대항전부터는 S.A그룹에서도 따로 포상을 할 계획입니다. 메달리스트들에게 특별한 아이템을 지급할 예정이죠.”

“아이템의 성능은요?”

그리드는 딱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에픽~유니크 등급의 액세서리 하나쯤 주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윤상민 이사의 답변은 파격적이었다.

“파그마의 후예는 대장장이 카테고리에 들어가므로… 신의 광물 아다만티움을 획득하실 수 있을 겁니다. 높은 등급의 메달을 딸수록 더 많은 수량을 확보하실 수 있겠죠.”

“!!!!”

그리드의 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아다만티움!

신계 최고의 광물로서, 자아만 없을 뿐이지 순수한 성능은 파브라늄과 비견된다.

블러드 스톤과 동급으로서 과거 파그마가 제작했던 <성스러운 빛의 갑옷 세트> 또한 아다만티움이 재료였다.

‘어떻게 구해야할지 감도 못 잡고 있었는데.’

아다만티움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신영우는 보다 더 다양하고 강력한 아이템들을 설계할 수 있게 된다.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보상이었다.

동요하는 신영우를 엿본 윤상민 이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렸다.

‘여기서는 살짝 도발을.’

윤상민 이사는 신영우를 1년 가까이 관찰해왔다. 어떻게 다뤄야할지 가늠하고 있었다.

“하지만 물론, 메달을 따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제2회 국가대항전은 제1회 국가대항전과 비교해서 많이 다르거든요. Satisfy 약소국인 한국이 메달을 노리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겠죠.”

“…”

신영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 유라, 극검.

최강의 템빨단원들이 집결해있는 대한민국을 아직도 Satisfy 약소국이라 평가하다니?

용납할 수 없다.

애국심보다는 템빨단 수장으로서의 자존심이 자극 받는다.

과거의 신영우였다면, 여기서 울컥해선 제2회 국가대항전에 참가하겠다고 선언했을 터였다.

하지만.

‘내가 끝까지 국가대항전 참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이유.’

제1회 국가대항전에서 혼자 금메달 3개를 획득하고 한국을 종합 순위 3위까지 올려놓았던 신영우.

제2회 국가대항전에서 그가 얼마나 큰 활약을 펼치게 될지, 전 세계는 주목하는 중이다.

즉, 신영우는 국가대항전의 ‘상징’이며 흥행보증수표였다.

‘라우엘이 조언했다.’

상징으로서의 대우를 받으라고.

한국은 물론 S.A그룹 또한 당신을 섭외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테니, 철저히 갑의 입장에 서라고.

“윤 이사님, 우리 깔끔하게 정리합시다.”

“…?”

신영우의 표정과 어조가 예상과 달리 침착하다?

의외의 반응에 적잖이 놀란 윤상민 이사였으나 그는 젊은 나이에 대기업 임원이 된 인재다. 비즈니스 중에 자신의 심리 상태를 드러내지 않았다.

“말씀하시죠.”

미소를 유지한 채 말하는 윤상민 이사에게,

“국가대항전 오프닝의 연출 권한을 템빨단에게 주십쇼.”

신영우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왔다.

전 세계 수십 억 인구가 시청하게 될 행사의 오프닝 연출을 특정 유저들에게 넘기라니?

도가 지나치지 않은가!

만약 신영우가 평범한 랭커였다면, 윤상민 이사는 주제파악 못한다고 조소하며 바로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신영우는 Satisfy를 통해서 인격과 지능을 성장시켜온 입지전적 인물이다.

Saitsfy의 ‘좋은 예’인 신영우의 팬으로서, 윤상민 이사는 일단 어디 들어나 보자는 반응을 보였다.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길드 홍보용이요.”

“네? 길드 홍보요?”

수십 억 인구가 시청하게 될 오프닝을 고작 길드 홍보용으로 사용하겠다고?

심지어,

“템빨단은 이미 최고의 길드 중 하나로 명망이 높지 않습니까? 마케팅에 집착할 단계가 아니라고 보는데요.”

“최고의 길드 중 하나라는 게 문제입니다. 템빨단은 유일하고 독보적인 길드가 되어야 하니까.”

지금 영우는 라우엘의 의견을 대변하고 있었다.

Satisfy 궁극의 콘텐츠는 나라를 갖는 것.

애초에 템빨단이란, 영우를 국왕으로 만들기 위해서 조직 된 단체다.

국가를 세우고 지키려면 강력한 국력을 갖춰야만 했고, 그 시기를 앞당기려면 외세의 침략을 미연에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를 견제하고 위협할 세력은 7대 길드 외에도 많습니다. 온갖 야망을 품고 있는 무수한 세력들에게 템빨단의 위용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 국가대항전 오프닝으로 삼으시죠.’

라우엘의 말이 영우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고작 게임에 너무 진지한 게 아니냐고?

그딴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우습다.

Satisfy는 천문학적인 ‘현금’이 오가는 게임인 바.

국가를 세우게 될 경우,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된다. 진지하게 임하는 게 당연했다.

‘지금은 Satisfy보다 인기 없는 축구, 농구 선수들도 해마다 수백, 수천억씩 버는 마당에.’

Satisfy 플레이어로서 돈방석에 앉고자하는 건 지극히 합리적인 바람이었다.

***

제2회 국가대항전 오프닝은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었다.

개최지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각국을 대표하는 일곱 명의 랭커들이 한 조를 이뤄 특정 상황을 연출한다.

압도적인 CG와 각국 국민들을 자극시킬만한 스토리를 삽입하고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세계 제일 락밴드가 오프닝 곡을 부르게 하는 등.

S.A그룹 마케팅팀은 오프닝 기획에 심혈을 기울였다.

한데 무산되게 생겼다.

S.A그룹 임원회의실.

회장 임철호와 함께 수십 명의 임원들이 모여 회의 중이다.

“그리드가 제안한 오프닝 연출,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애초에, 우리 마케팅팀이 연출했던 오프닝은 국가 출현 순서부터가 애매했었어요.”

개최지가 파리라는 이유에서 프랑스팀이 오프닝의 맨 처음을 장식하고, 제1회 국가대항전에서 종합순위 1위였던 미국이 대미를 장식한다.

“그 탓에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금메달 3개를 획득했던 그리드의 출현 순서가 애매했던 게 거슬렸었죠.”

하지만 그리드가 제안한 오프닝 연출은 궤를 달리했다.

국가대항전 참가자들의 국적을 부각시키기보다는 개개인의 특징에 초점을 맞췄고, 여기서 국가대항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리드가 제대로 눈에 띄게 됐다.

물론 의도는 불순했다.

총 224명의 국가대항전 참가자 중 템빨단 소속이 무려 43명.

그 43명이 그리드를 중심으로 오프닝 대미를 장식하고 있었으니까. 자칫하면 템빨단 홍보 영상 같았다.

그에 따른 반발이 생겼다.

“안 그래도 우리 그룹이 그리드와 유라 등의 한국인 랭커들을 후원하는 게 아니냐는 루머가 돌고 있는 마당에, 오프닝마저 편파적으로 제작했다간 전 세계 매스컴들이 물고 늘어질 겁니다.”

“국가대항전의 취지는 Satisfy의 스포츠화에 있습니다. 각국 국민들이 자국 팀을 응원하면서 게임에 몰입시키는 게 목표였는데, 국가보다 참가자 개개인에 초점을 맞춰서야 취지에 어긋나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하지만 대세는 금세 기울어졌다.

윤상민 이사의 발언 때문이었다.

“그리드는 자신에게 오프닝 연출권을 주지 않으면 국가대항전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공고히 했습니다.”

제1회 국가대항전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고, 이후 Satisfy내에서 꾸준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주인공.

Satisfy 최고의 스타인 그리드가 국가대항전에 참가하지 않아서야 대회의 흥행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가 그뿐이라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죠. 그리드가 국가대항전에 참가하든 말든, 결국 평균 시청률은 전 해와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상민 이사와 일부 임원들이 그리드에게 집착하는 이유, 따로 있었다.

“하지만 크라우젤이라는 존재가 개입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랭킹 1위 크라우젤.

천외천이라는 광오한 칭호를 지니고 있는 그의 인기, 그리드 이상이다. 팬의 수준을 넘은 광신도들을 거느리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단 한 번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한데.

“그리드가 국가대항전에 참가할 경우 크라우젤 또한 국가대항전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해 왔습니다.”

보통 최고라는 수식어를 지닌 인간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자존심이 엄청 세다는 점이다.

크라우젤, 국가대항전이라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그리드에게 설욕하고 싶은 것일 터다.

“크라우젤이 국가대항전에 참가할 경우 제2회 국가대항전의 파급력은 제1회 국가대항전의 파급력을 가뿐히 압도할 것입니다.”

“…”

윤상민 이사의 생각을 부정하는 임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결정 된 것이다.

***

『제2회 Satisfy 국가대항전이 43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크라우젤과 그리드, 그리고 지발과 크리스 등의 쟁쟁한 존재들이 참가의사를 밝힌 이번 대회는 제1회 국가대항전 당시보다 더 많은 국가가 참가할 예정이며…』

『총 32개국이 참가하는 제2회 Satisfy국가대항전의 개최 종목이 공개되었습니다. 제1회 국가대항전과 비교하면…』

『제2회 Satisfy 국가대항전이 42일 앞으로 다가온 오늘, 국가대항전 오프닝 영상이 인터넷과 전 세계 방송사를 통해서 공개되었습니다!』

『공개와 동시에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이번 오프닝 영상은 각국을 대표하는 선수들 개개인의 특색을 잘 표현하였다는 호평과 동시에 일부 선수들에게 비중이 너무 치중되었다는 혹평을 받고 있는데요.』

『명색이 국가대항전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으면서도 국가보다 선수에게 집중 된 연출이 많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4분 31초짜리 이 화려한 영상은 모두의 가슴을 들끓게 만들기에 충분하죠.』

♬-

30년 동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락밴드의 격동적인 연주가 시작되는 그때,

슈웅~

은하수가 펼쳐진 새파란 밤하늘 너머로 붉은 유성이 궤적을 그린다.

퍼엉-!

이어서 발생하는 아득한 폭음과 함께 카메라가 흔들렸고,

씨익.

흑발, 적안의 사내가 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영상 가득 얼굴을 채웠다.

피부가 창백하게 질려있는 사내, 흑화 상태의 그리드였다.

그를 중심으로 빠르게 회전하는 카메라에 템빨단원들의 모습이 하나, 둘씩 스쳐지나가고.

그 여느 때보다 아름답게 치장한 유라와 지슈카가 그리드의 양어깨에 기대고 서 시청자들을 환호시켰다.

이후로는 지발, 크리스를 비롯한 각국 선수들의 모습을 뒤쫓는 카메라.

어느덧, 최초에 떨어진 붉은 혜성까지 도달한 카메라를 불꽃 속 누군가가 응시하고 있다.

사내라고는 믿기지 않게도 선이 가늘고 청초한 미모를 지닌 존재, 천외천 크라우젤이었다.

홀로 선 크라우젤과 42명의 동료들을 거느린 그리드가 시선을 교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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