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1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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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19권 - 1화
‘내가 성장하긴 성장했군.’
흑화 상태 그리드의 총 생명력은 3만이 약간 안 된다. 티라멧에게 3~4대만 맞아도 죽을 수 있는 수치였다.
한데 그리드는 버틴 것이다.
비교적 쉬운 궤도로부터 날아온 공격은 직접 막고 피했으며, 대처하기 어려운 공격들은 갓 핸드와 랜디로 응수했다.
그리드 스스로 평가하기에 나쁘지 않은 컨트롤 솜씨와 아이템 활용능력이었다.
‘아직 멀었다만.’
자만하지 않을뿐더러 만족하지도 않는다.
앞으로 상대하게 될 적들은 계속해서 강해질 것이 자명한 사실이었으니까.
‘보다 확정적으로 강해지는 법은 없을까? 아무리 컨트롤 실력을 키워봤자, 전투 도중에 타격을 아예 입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타격을 입었을 경우를 감안한 아이템을 만든다면?
‘간단한 예로 데미지 반사 아이템이라던가.’
혹은,
‘블랙홀이 장착 된 갑옷? 내게 타격을 입히는 적들을 다른 차원으로 날려버리는 형식의.’
허황될지언정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또한, 그리드에게 있어서 상상이란 곧 힘이 될 터였다.
왜냐?
‘내게는 아이템 창조 스킬이 있으니까.’
Satisfy에는 그리드가 아직 모르는 기능을 보유한 아이템 재료들이 많다. 그리드의 상상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녔다는 뜻이다.
스스로의 잠재력을 믿고 마음을 추스른 그리드가 암흑의 룬을 확인했다.
<암흑의 룬>
귀속 아이템
인벤토리에 영구히 보존 됩니다. 거래, 드롭, 파괴가 불가능합니다.
-사용 효과:악마력 스탯이 오르는 대가로 마기가 상승합니다.
*일반 공격, 스킬 공격 시 암흑 속성 공격력 20퍼센트 추가.
고유 지속 효과:네임드급 마족, 마물, 악마를 해치울 경우 고유 특성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티라멧의 힘:생명력이 10퍼센트 이하로 떨어질 경우, 생명력이 30퍼센트까지 일시에 회복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12시간.
‘어째선지 생존력만 점점 더 높아지네.’
암흑의 룬을 관찰하던 그리드가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퓨어 탱커로 전향하는 게 이상적일지도 모르겠다.’
템빨단에 딜러는 많은 반면 탱커는 별로 없다.
그나마 의지할만한 탱커라고는 반트너와 토반 둘뿐이었으니 말 다했다.
‘내가 마음먹고 탱커가 된다면 길드원들하고 시너지가 폭발할 텐데…’
헤비아머와 방패를 무장한 자신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야 파그마의 검무가 아깝지.’
그리드는 최강의 공격 스킬을 보유한 몸이다. 순수한 탱커로 전향하기엔 역시 재능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또 아니었다.
‘아니, 아이템이야 스왑하면 되는 거잖아?’
공격형 아이템 세트와 방어형 아이템 세트를 별도로 가지고 다니면서 필요에 따라서 스왑한다면?
‘조금 전 티라멧 레이드 때처럼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기도 수월할 테고.’
이것저것 궁리해보며 집중하는 그리드의 표정이 성숙하고 진중하다.
그를 지켜보는 유라의 보석 같은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
“더럽게 얄밉네.”
“오래간만에 마음이 통하는군.”
우뚝 솟은 기둥들이 숲처럼 펼쳐져있는 고성 1층의 동쪽 지점.
폰과 반트너 듀오의 짜증이 치솟고 있었다.
기둥과 어둠을 오가며 공격해오는 뱀파이어 남작, 란의 치졸한 수법에 한참을 농락당하였으니 화가 날만도 했다.
“이대론 지형적으로 너무 불리해서 안 되겠다. 차라리 여길 다 때려 부수자.”
뿌드득!
폰이 창을 쥐고 있는 팔을 크게 비틀었다.
용수철처럼 휜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강력한 기파가 넘실넘실 피어올랐다.
“크래셔 스피어.”
쿠콰콰콰콰콰쾅!!!
진로상의 모든 것을 강타하고 파괴하는,
아군마저도 두렵게 만드는 실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상단부터 하단까지 깎아내리듯이 뻗어나간 창끝이 두껍게 솟아있는 기둥들을 부수고 무너뜨렸고, 덕분에 숨어있던 란의 그림자가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기회를 놓칠 반트너가 아니었다.
“썬 가드!!”
번~~쩍!
반트너의 방패가 태양처럼 빛나며 일대의 어둠을 물리쳤다.
대머리에 반사되는 빛줄기가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니 나이트클럽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진 란이 두 사람에게 도깨비불 같은 붉은 마력탄을 연사했다.
“이까짓 거!”
엘핀스톤의 마법과 비교하면 우습다.
콧방귀 뀐 반트너가 란이 쏜 마력탄들을 방패로 막아내었고, 폰은 이때 발생한 먼지를 꿰뚫고 날아가 란에게 창을 꽂아 넣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반트너가 앞서 달려 나감으로서 폰의 진로를 방해하고 말았다.
쿵!
“이 빌어먹을 돼지 놈이!”
반트너의 육중한 몸에 부딪쳐 휘청거린 폰이 이를 갈았다. 반트너 또한 성을 냈다.
“이 멍청아! 니 앞에 있는 경로 놔두고 왜 내 쪽으로 달려 오냐!!”
“이유를 일일이 설명해야 아냐, 이 무식한 놈아?”
흥분한 폰과 반트너가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덕분에 위기를 넘긴 란은 아직 무너지지 않은 후방의 기둥들 사이로 도망칠 수 있었다.
‘저 오빠들이 팀워크가 엉망이라 다행이네.’
안도한 란이 기둥 뒤편에서부터 마법을 쏘았다.
지잉-
펑!!
붉은 섬광이 지붕을 무너뜨렸고 이때 떨어지는 돌무더기 탓에 폰과 반트너의 행동반경이 제약됐다.
어둠을 틈타서 다시 이동한 란이 우선 폰의 목덜미에 날카로운 손톱을 쑤셔 넣었다.
푸욱!
피보다 붉은 손톱이 폰의 목에 구멍을 꿰뚫었고,
“푸하하! 그걸 맞냐!”
반트너가 통쾌하다는 듯이 웃으며 조롱했다.
두 사람의 행보, 멀고도 험하다.
***
[전설이 된 대장장이가 범인을 초월하는 뛰어난 안목으로 물품을 감정합니다. 대상 물품에 숨겨진 기능이 존재할 경우 숨겨진 기능을 발견합니다.]
[숨겨진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 아이템입니다.]
알렉스의 총을 감정해본 그리드.
결과에 다소 실망한 그가 유라, 스틱세이, 빈과 함께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저쪽이 가장 가깝군요.”
대지의 정령과 바람의 정령의 힘을 빌린 스틱세이가 전투가 진행 중인 지점들을 파악해냈다.
뱀파이어의 도시에 입장하게끔 도와준 것도 그렇고, 정말이지 여러모로 유용한 존재였다.
‘나한텐 아이템 안 줬지만…’
공짜로 알렉스의 총을 얻은 유라에게 조금. 정말로 진짜 아주 조금 질투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엉?”
스틱세이가 일러준 지점까지 이동한 그리드가 황당해서 말문을 닫았다. 그를 바짝 뒤따르던 유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유?
“쓸모없는 문어 대가리 새끼!!”
“내가 탱킹 안 해줬으면 진작 뒤졌을 놈이!!”
“네가 없었다면 남작급 뱀파이어 따위 진즉에 죽였다!!”
“…”
곳곳에 파괴의 흔적이 남아 있는 대전.
여전히 수십 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는 그곳에서 폰과 반트너가 티격태격 다투고 있었다.
적을 앞에 두고 말이다.
“오호호호홋!!”
“큭!”
“썩을!”
서로의 멱살을 붙잡고 있는 탓에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폰과 반트너.
기둥과 어둠을 오가는 여성형 뱀파이어에게 연신 공격을 허용하는 두 사람의 모습, 그리드의 분노를 일으켰다.
“너희들의 개인적인 관계에 대해선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하지만.”
저벅저벅.
얼굴을 구긴 채 이동한 그리드가 파그마의 검무, 제(制)를 전개했다.
그러자 새로운 사냥감 그리드에게 불나방처럼 날아들던 란의 몸이 허공에 우뚝 멈추고 말았다.
‘뭐지?’
식은땀을 흘리며 뒷걸음치는 란의 얇은 몸을 겨냥한 그리드가 파그마의 검무, 극(極)을 사용한 후 살(殺)을 연계했다.
“꺄악!!”
폰과 반트너를 신나게 농락하던 란이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뒤늦게 제(制)에서 벗어난 그녀가 어둠으로 숨어들려고 시도했지만 유라가 허용하지 않았다.
“정화탄.”
타탕! 탕탕!!
연속적으로 쏘아진 푸른 마나의 탄환이 란의 몸을 벌집으로 만들었고,
“연살(聯殺).”
푸욱-!
푹푹푹푹푹!!
그리드가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뱀파이어 남작 란을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5,25,810,470을 분배 받았습니다.]
[축복 받은 무기 강화석 2개를 획득하였습니다.]
[무기 강화석 7개를 획득하였습니다.]
[<스킬북:어둠 동화>를 획득하였습니다.]
쏴아아아아-
비처럼 쏟아지는 핏줄기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그 사이에 선 그리드가 폰과 반트너에게 보내는 눈빛, 무척이나 매섭고 위협적이었다.
“앞으로 때와 장소는 가려가면서 싸워라. 너희가 여기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다른 동료들이 겪고 있을 고통을 생각해.”
결코 가식이 아니다.
그리드는 동료들을 위해서 이곳까지 번헨 열도로부터 달려온 몸이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다른 동료들을 외면하고 있던 폰과 반트너를 곱게 볼 리 만무했다.
“…미안하다.”
“앞으로는 주의하겠다.”
폰과 반트너가 고개까지 숙이며 사죄했다.
그리드가 화내는 이유를 이해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었으며, 또한 그리드를 자신들의 대장으로 인지하고 있단 반증이었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 그리드가 손을 내밀었다.
너무 기죽지 말라는 의미에서 악수를 건네는 건가?
멋대로 해석한 폰과 반트너가 그리드의 손을 맞잡으려하는 순간이었다.
“창 빌려줘.”
“…?”
그리드가 이유를 가늠할 수 없는 요구를 했다.
***
고성 1층 중앙의 대형 홀.
사용한 흔적이 없는 샹들리에가 장식품처럼 걸려있는 그곳에서 페이커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쿠웅!!
뱀파이어 남작, 마운틴.
뱀파이어답지 않게 헤비 아머와 대형 무기를 중무장한 놈의 공격이 땅과 벽을 찍을 때마다 공간이 진동, 페이커의 균형감각을 위협했다.
쩌엉!!
자세가 무너져서 반응이 느려진 페이커가 단도를 들어 철퇴를 막아냈다.
무기간의 충돌과 동시에 발생하는 반동을 이용, 몸을 깃털처럼 허공으로 띄워버리는 그에게 마운틴이 손을 뻗었다.
“블러드 바인딩.”
콰르르르륵!!
역행하는 폭포처럼 솟구쳐 오른 핏줄기가 거대한 고리를 생성, 페이커의 몸을 휘감아버렸다.
하지만 그건 페이커의 분신에 불과했다.
퍼엉-!!
폭발하는 피의 고리와 페이커의 분신의 잔재가 허공을 어지럽히는 사이,
스윽.
신속의 주인이라는 클래스의 이점을 극도로 활용한 페이커가 마운틴의 후방으로 나타났다.
핏대가 솟고 근육이 꿈틀거리는 마운틴의 두꺼운 목덜미.
갑옷 이음새 사이로 엿보이는 그곳을 정확하게 겨냥한 페이커가 <살귀의 격>을 전개했다.
푹!
푹푹!
타격 횟수가 많아질수록 데미지가 중첩되는 최강의 스킬.
뱀파이어 백작 엘핀스톤에게조차도 치명상을 입혔던 그 검격이 연달아 마운틴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분수처럼 솟구치는 핏줄기에 얼굴을 적신 페이커의 눈빛엔 어떠한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쥐새끼 같은 놈이…!”
이를 악 물고 충격을 버틴 마운틴이 사방으로 피의 마력을 방출했다.
덕분에 뒤로 날아가게 된 페이커.
허공에서 균형을 바로잡고자 노력하고 있는 그에게 대형도끼가 날아들고 있었다.
‘허용해야한다.’
여기서 또 한 번 <점멸>을 사용했다간 마나의 안배와 스킬 연계가 꼬인다.
이를 악 문 페이커가 충격에 대비하는 그때였다.
“스피어 샷.”
쿠르르르르르르르르릉!!
퍼엉-!!
홀의 입구로부터 날아온 은백색의 창이 마운틴의 머리를 꿰뚫었다.
덕분에 궤도가 바뀌어버린 대형 도끼를 피할 수 있었던 페이커가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맙다, 폰… 그리드?”
나를 구원한 인물, 전혀 상상조차 못했던 존재다.
드물게 당황하여 눈동자를 흔드는 페이커에게 그리드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천하의 살신께서 수세에 몰리다니, 어지간히 상성이 나빴나 봐?”
언제나 늘, 그리드 다음으로 활약했던 페이커다.
그를 상기하며 어깨를 으쓱이는 그리드에게 페이커가 피식 웃어보였다.
“…하지만 너와 함께라면, 나는 비상할 수 있다.”
그것이 신호였다.
“같잖은 인간 놈이!!”
마운틴의 어그로가 그리드에게 돌아갔고, 단단한 그리드는 언제나 그랬듯이 잘 버텨주었다.
덕분에 마운틴의 사각을 쉽게 노린 페이커가 등에 날개를 단 듯 활약을 시작했다. 반트너와 유라가 보좌하자 마운틴은 금세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내 창. 내 창…”
폰은 창을 회수하느라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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