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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94화 (189/1,794)

템빨 18권 - 21화

나락의 검.

이야루그트에 귀속 된 조건부 발동 스킬로서 그 위력이 대단하다.

레전드리 스킬인 파그마의 검무들과 비견해도 손색없을 정도.

상세히 따져보면 살(殺)-Lv.4 기준-을 압도하는 위력이었다.

<나락의 검>

대상을 베어 물리 공격력 2,400퍼센트의 피해를 입힙니다.

이때 발생하는 검기 하나를 대상에게 적중시킬 때마다 100퍼센트의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마나 소모:1,000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15분

지이이이잉-

실패작과 결합되어 있는 이야루그트의 혈빛이 짙게 물들었고,

파칙!

파치칙!!

이야루그트 주변으로 검기가 스파크처럼 튀어 올랐다.

이어서 그려지는 만월의 호선.

일도양단의 기개다.

서걱-!!

“……!”

정수리부터 가랑이까지 일자로 베인 티라멧.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동공을 뒤집는 그의 주변으로 총 24줄기의 검기 스파크가 집결됐다.

그리드가 일일이 컨트롤해야 움직이는 검기였다.

‘하나.’

펑!

‘둘.’

퍼펑!

‘셋.’

퍼엉!!

시야에 떠오르는 방향키를 손가락으로 조작해야 움직이는 검기들.

24줄기 중 단 3줄기만이 티라멧에게 적중했고, 나머지 21줄기는 제한 시간 1초가 지나서 소멸해버렸다.

‘너무 어렵네.’

커맨드 입력에 도통 적응이 안 된다. 복잡하고 시간도 촉박하다. 한두 번의 연습으로 적응 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릴 적에 오락실 한 번 더 갈걸…’

공부한답시고 책상에 앉아있던 시간이 아깝다.

아쉬워하는 그리드의 시야엔 알림창이 연달아 갱신되고 있었다.

[크리티컬!!]

[대상에게 1,229,112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야루그트의 반지>옵션 효과로 생명력을 흡수합니다.]

[대상에게 17,071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17,071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크리티컬!]

[대상에게 51,213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장장이의 분노>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초연(超聯), 연살(聯殺), 연(聯), 살(殺), 극(極), 회(回)에 이은 나락의 검 콤보.

심지어 아이템 합체와 흑화까지 사용한 상태다.

이 순간 그리드는 티라멧의 최후를 장담하고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살아있으면 안 되지.’

티라멧의 강함을 간파하고 초장부터 승부를 봤다.

최강의 스킬들을 연달아 사용한 여파로 마나가 33밖에 남지 않았다.

만약 티라멧이 살아남는다면?

그리드는 마나 물약과 스킬들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올 때까지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이 콤보는 화석 1개만 채취 당한 헬가오조차 견디지 못할… 뭐?’

생각하던 그리드의 안색이 굳었다.

‘왜 안 죽어?’

티라멧의 사망 메시지, 그리고 경험치와 아이템 습득 메시지가 떠오르질 않는다?

그리드가 경계하는 순간,

“…아아, 그래, 그래. 엘핀스톤이 당할 만도 했겠어.”

생명력 게이지가 완전히 고갈 된 티라멧이 멀쩡하게 입을 열었다.

“녀석의 육신은 나와 달리 연약하니까 말이야.”

‘뭐지?’

죽어야할 놈이 죽질 않자 그리드는 심히 당혹스러웠다.

티라멧의 넝마가 된 육신이 새카만 마력을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리고 있었다.

“형제들 사이에서 나는 유독 마법이 약했었지. 다른 형제들과 달리 나는 마법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가 없었단 말이야? 하지만 그 대신.”

“……!”

그리드의 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반송장이라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았던 티라멧의 육신, 칠흑의 마력을 매개로 완전히 회복하였기에.

“나는 마력을 재생능력에 집중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완벽한 불사신이라 이거지.”

말끔해진 티라멧이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자, 다시 한 번 시작해보자.”

척!

티라멧이 자세를 잡았다.

마치 솜씨 좋은 무도가. 그래, 레가스를 연상하게 만들 정도로 빈틈이 없는 폼이었다.

이번엔 결코 기습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모습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반쯤 죽었다가 되살아날 때마다 더욱 더 강해진다고.”

퍼어엉-!!

한 발 내뻗은 티라멧이 주먹을 휘두르자 마력과 풍압이 동시에 폭발했다.

마법 피해와 물리 피해가 결합 된 형태의 공격이었다.

‘이게 자작급이라고?’

일견해도 엄청난 공격력에다가 속도 또한 빨랐다.

이를 악 문 그리드가 갓 핸드를 소집, 적극적인 방어에 나섰다. 마나 물약과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올 때까지 최대한 버틸 요량이었다.

하지만 티라멧의 능력치는 종전과 비교해서 큰 폭으로 상승한 상태였다. 스킬 하나 사용하지 못하는 그리드가 감당하기엔 힘든 면이 있었다.

쩌정! 쩌저저저저정!!

티라멧의 전광석화 같은 발차기와 주먹이 휘둘러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갓 핸드들이 경직되는 간격이 짧아졌다.

순식간에 무력화된 갓 핸드들 사이에서 그리드는 깨달았다.

‘나와 상성이 나쁘다.’

블러드 필드를 구사했던 엘핀스톤의 경우, 광역 CC(Crowd control:군중제어기술)와 마법에 능통했지 육체능력 자체는 특별하지 않았다.

하여 CC와 즉사 마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그리드를 상대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었던 반면, 티라멧은 정 반대의 케이스였다.

유틸성은 떨어지는 대신 육체능력이 극도로 발달해 있었으므로 그리드의 이점을 살리기 어려운 상대였다.

‘애초에 터무니없는 재생 능력이 문제다.’

최강의 스킬 콤보를 수포로 돌아가게끔 만들다니, 그리드는 허망할 따름이었다.

성장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평정심이 무너지고 혼란에 빠졌을 터였다.

퍼펑!

퍼퍼퍼퍼펑!!

그리드의 표정이 안 좋아질수록 티라멧의 기세는 역으로 솟구쳤다. 휘두르는 주먹과 발의 속도가 점차 상승했다.

그리드는 막고,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자작의 지위에 머무른 이유는 엘핀스톤보다 약해서가 아니야. 단지 귀찮은 일을 떠맡기 싫어서였지.”

타앗!

급기야 <신성의 방패>에 의지하기 시작한 그리드.

그가 손에 쥔 방패를 발판삼아 도약한 티라멧이 드릴처럼 회전하며 떨어졌다. 발끝에 집약 된 마력이 토네이도를 일으켰고, 그 강맹한 기운의 여파로 대전 전체가 무너질 듯이 들썩였다.

‘저건 막아도 소용없다.’

판단하고 회피 동작을 취하는 그리드였으나 티라멧으로부터 벗어나기란 불가능했다.

마침 <신속한 몸놀림>의 지속 시간이 끝난 탓이 컸다.

“하하하하핫!! 그래, 너희 인간 놈들은 땅을 기는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린다!!”

광소를 터뜨린 티라멧의 두 발이 그리드의 어깨를 짓눌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크아아아악!!”

그리드가 끔찍한 비명을 토해냈다.

땅에 처박힌 채 움찔거리는 그의 머리를 붙잡아 뽑아낸 티라멧이 음침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부터 돌덩이를 부셔볼까.”

쩌엉-!

그리드의 안면에 티라멧의 무릎이 1회,

쩡!!

2회,

쩌저정!!!

3회 연속으로 찍힌다.

피를 흩뿌린 그리드의 고개가 뒤로 크게 젖혀졌고, 유라의 절규가 대전에 울려 퍼졌다.

“그리드!!”

***

[마나를 소모하여 <소멸탄>을 정제합니다.]

[당신의 마법 공학 총이 라이플 모드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소멸탄>이 불발로 그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소멸탄>의 발사에 실패하였습니다.]

[<에밀파의 마법 총>의 내구력이 95 하락하였습니다. 파괴 될 우려가 있습니다.]

[마나를 소모하여 <원령 검>을 전개합니다.]

[당신의 마법 공학 총이 바요넷 모드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원령 검>의 발현에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원령 검>의 발현에 실패하였습니다.]

[<에밀파의 마법 총>의 내구력이 0이 되어 영구히 파괴되었습니다!!]

[파괴된 아이템은 복구할 수 없습니다!]

데빌 슬레이어 유라는 아직 온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전직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해서?

맞다.

스탯이 3차 각성을 맞이하지 못해서?

그 또한 맞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녀의 마법 공학 총이 고작 180레벨 제한의 무기라는 점에 있었다.

마법 공학 총.

편의상 마법총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연금술 시설에서만 생산 가능한 무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상 연금술 시설에서 생산하는 마법총은 미완성품에 불과했다.

인간의 연금술은 마법총의 대략적인 작동 원리만을 파악했을 뿐, 정확한 구조는 아직까지도 이해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피스톨 모드와 라이플 모드, 그리고 바요넷 모드를 지원하는 진정한 마법 총은 오로지 드워프들만이 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라는 전직 퀘스트의 진행이 막혀있었고 그 탓에 드워프의 도시 <탈리마>에 진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리드…!”

내 마음을 몇 번이나 뒤흔들어 놓았던 유일한 사내.

그가 눈앞에서 무참히 짓밟히고 있음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 유라를 비탄에 빠뜨렸다.

유라는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어째서 나를 위해 당신이.’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는가?

그리드에게 미안했고, 스스로의 무력함이 싫다.

‘어떻게든 구해야해.’

오로지 그와 같은 일념으로 최강의 스킬들을 전개해 보지만 무기만 파괴되었을 뿐이다.

급한 대로 120레벨 제한의 서브 무기 <리안파의 마법 총>을 무장한 유라가 티라멧에게 달려들었다.

그리드에 대한 애정과 죄책감, 그리고 본인의 자존심 등.

온갖 감정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그녀를 앞뒤 가리지 않고 행동하게끔 만들고 있었다.

“당신의 상대가 나란 걸 잊었…!”

멈칫!

티라멧에게 소리치며 총구를 겨누던 유라가 멈춰 섰다.

그리드의 음성이 들려온 까닭이었다.

“진정해. 나는 괜찮으니까.”

“…그리드?”

티라멧에게 붙잡힌 채 죽어가는 사람이라기엔 목소리가 너무 멀쩡하다. 목소리가 들려온 위치부터가 이상했다.

티라멧이 흠칫 놀라고 있었다.

“가짜라고?”

그렇다.

티라멧에게 얼굴이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고 있는 그리드, 진짜가 아닌 도플갱어 랜디였다.

그리드의 본신은 티라멧의 머리 위에서부터 떨어지고 있었다.

번헨 열도에서 200레벨을 달성한 랜디가 새롭게 익힌 스킬, <복제 대상과의 위치 변경>이 엄청난 효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이놈이 어느새 바꿔치기를…!”

“살(殺)!”

푸욱-!

“크아아아아악!!”

실패작과 결합 된 이야루그트에 정수리를 꿰뚫린 티라멧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하지만 그리드가 승기를 잡았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리드는 여전히 마나가 부족했고 다른 스킬들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아직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더군다나.

‘또 모든 걸 쏟아 내봤자 안 죽는다면?’

최악이다. 그때는 정말로 끝이다.

‘특정한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 이상 레이드 불가능한 보스일 가능성도 있어.’

생각해본 그리드가 유라에게 제안했다.

“우선 도망치자.”

하지만 유라의 의견은 달랐다.

그리드가 무사함을 깨닫고 안도한 그녀는 냉정함을 되찾았다. 영민한 두뇌로 티라멧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얼추 파악해가고 있었다.

“저자에게는 전대 데빌 슬레이어에게 당했던 상처 자국이 남아있어요.”

압도적인 재생능력이 가장 큰 장기이면서 왜 그 상처는 치유하지 못했을까?

해답은 데빌 슬레이어라는 클래스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오직 저만이 해치울 수 있는 존재일 수도.”

근거 있는 판단이었다.

그녀의 판단에 호응한 누군가가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스틱세이였다.

대전 바깥에서부터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그가 유라에게 싱긋 미소지어주었다.

“정확한 결론에 도달하였군요.”

“당신은…?”

유라조차도 엘프는 처음 보는 존재였다.

잠시 당황하던 그녀가 이내 깨달았다.

“그리드, 당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저자의 덕분인가요?”

그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는 현자 스틱세이다.”

스틱세이가 유라에게 작은 상자를 건네주었다.

“젊은 시절의 알렉스가 사용하던 총입니다.”

알렉스.

전대 데빌 슬레이어이며, 스틱세이의 절친한 친구였던 사내의 이름이다.

간신히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던 그리드가 이 순간 울컥했다.

“젊은 시절의 파그마가 사용하던 아이템 같은 건 없나?”

“네, 파그마와는 딱히 친하게 지내지 않았거든요.”

단호하게 말하는 스틱세이였다.

그리드는 억울했다.

***

벌써 한 달째 레이단에 머무는 중인 데미안.

그는 한 가지 재미에 빠져있었다.

신전의 건축 과정을 지켜보는 일?

그건 둘째다.

로드 스테임.

대은인 그리드님의 아들인 그 아이가 데미안을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신성력의 발현 원리를 벌써부터 이해하다니, 로드 쨩 너는 그냥 천재도 아니고 울트라 천재였구나?”

“부부!”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로드의 손끝에서 따스한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직은 미약한 빛이었으나 교육 받기 시작하고 단 한 달 만에 이뤄낸 성과임을 고려해 본다면 진짜 엄청난 천재였다.

무엇이든지 가르치기만 하면 곱절로 이해하였으니, 데미안은 녀석을 가르치다보면 절로 충족감을 느꼈다.

“신성력을 이용하면 동료를 보호할 수도 있고 마물, 마족 계열 몬스터들을 쉽게 해치울 수도 있어. 예를 들면 뱀파이어 같은 놈들 말이야.”

들뜬 데미안이 로드의 교육에 열중했다.

어둠 속에 숨은 카심과 은룡대 출신 어쌔신들이 로드의 뒤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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