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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93화 (188/1,794)

템빨 18권 - 20화

13번 도시의 주인이었던 엘핀스톤이 백작급 뱀파이어였던 반면, 그 외 10번대 도시들의 주인은 전원 자작급 뱀파이어였다.

하여 유라는 자작급 뱀파이어의 강함을 잘 알고 있었다.

‘템빨단의 최정예가 최소 5명은 달라붙어야 레이드할 수 있는 존재.’

전직 퀘스트를 모두 완료한 상태로 300레벨이 넘었다면 또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결코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상대다.

판단한 유라가 생존에 중점을 뒀다.

흩어진 동료들이 돌아오기까지, 최대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 방어적으로 전투에 임했다.

하지만 티라멧의 전투력이 너무나도 파괴적이었다.

여태까지 만나왔던 자작급 뱀파이어들보다 곱절은 강한 수준이랄까.

‘전대 데빌 슬레이어를 만나고도 살아남았다더니.’

고유 에피소드를 지녔다는 건 즉,

‘네임드 보스!’

퍼펑!!

퍼퍼퍼퍼펑!!

“읏.”

난무하는 혈마법을 피하고, 막아내면서 행동반경에 제약이 생긴 유라.

곧이어 날아오는 발차기에 직면한 그녀가 이를 질끈 물었다.

‘피할 수 없어.’

생명력을 최소 3분의 1이상 잃으리라.

관건은, 이후 연계기를 허용하지 않는데 있다.

각도를 계산한 유라가 일부러 몸을 살짝 띄웠다.

타격을 당함과 동시에 후방에 있는 기둥까지 날아가고, 그를 발판으로 움직여 태세를 재정비할 계획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슈욱~

쩌엉!!

휘황찬란한 황금색 방패가 날아오더니 티라멧의 발차기로부터 유라를 보호해주었다.

“……!”

늘 차분하던 유라의 눈매가 동그랗게 변했다.

이 황금방패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녀는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리드!’

번헨 열도에 있어야할 당신이 어째서 이곳에?

무슨 수로 입장한 것이며, 왜 하필 또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 나를 돕는단 말인가.

‘자꾸 그러면 의지하고 싶어지잖아요.’

슬픈 표정을 짓는 모습조차도 아름다운 유라였다.

***

진혈족 뱀파이어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시조 베리아체가 잉태하여 낳은 아홉 직계와, 그 직계들의 피를 매개체로 만들어진 양산품.

티라멧 자작은 직계다.

일반 자작급 뱀파이어보다 최소 3배 이상 강했으므로 준백작급이라고 표현함이 옳았다.

그가 고작 한 명의 인간에게 목숨을 위협 받는 일?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었다.

상대가 전설이라는 칭호를 지닌 존재가 아닌 이상!

“파그마의 검무, 연살(聯殺).”

푹-!

푹푹푹푹!!

“크아아아아악!!”

흑청색 대검에 다섯 번 연속으로 상체를 꿰뚫린 티라멧이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갑자기 나타난 흑발, 적안의 인간이 발휘하는 공격력이 그만큼 아찔했다.

“노옴!!”

격분한 티라멧이 손을 휘젓자 혈빛의 마력이 파도쳤다.

전방위 대상에게 타격을 입힘과 동시에 생명력을 빼앗는 수혈 마법의 발현이었다.

‘논타켓.’

흑발 사내, 그리드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티라멧의 가슴에 꽂아 넣었던 대검을 회수함과 동시에 연(聯)의 보법을 밟아 회전, 해일처럼 덮쳐온 수혈 마법을 피해버렸다.

마법의 발동 타이밍과 전개 속도를 고려하고 상성 좋은 움직임을 펼침으로서 이뤄낸 쾌거였다. 물론 도살귀의 안대의 도움도 컸다.

“쥐새끼 같은 놈이!”

생명력 수급이 수포로 돌아가자 이를 간 티라멧이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미 연(聯)의 보법을 밟고 있던 그리드의 스킬 전개가 더 빨랐다.

“연(聯).”

조금 전, 그리드는 연살(聯殺)을 티라멧의 머리가 아닌 가슴부위의 급소를 노리고 찔러 넣었었다.

머리에 더 큰 데미지가 들어가는데도 굳이 그랬던 이유는, 현재 본인의 실력으로는 찌르기로 적의 머리를 100퍼센트 적중시킬 자신이 없었던 까닭이다.

반면 베기 형태인 연(聯)은 사정이 달랐다.

찌르기보다 베기의 범위가 비약적으로 넓은 바!

“이번 것도 아플 거다.”

핏!

피피피피피피핏!!

“크아아아악!!”

그리드의 선포와 동시에 티라멧의 얼굴이 난도질당하기 시작했다.

끔찍한 고통에 몸서리친 티라멧이 비장의 수단을 꺼냈다.

“블러드 토네이도!!”

쿠콰콰콰콰쾅!!

티라멧을 중심으로 전개 된 마력이 회오리처럼 휘몰아쳤다.

그에 휩쓸린 그리드의 몸이 허공에 맥없이 떠올랐고,

“죽여주마!!”

콰쾅!

콰콰콰쾅!!

다섯 줄기의 블러드 미사일이 그리드를 노리고 날아갔다.

“갓 핸드!!”

슈슉! 슈슉!!

2개의 황금 손이 그리드의 부름을 듣고 날아왔다. 각자 손바닥을 펼쳐서 블러드 미사일을 막아낸 그것들이 충격을 감당치 못하고 경직되었다.

나머지 세 줄기 블러드 미사일은 그리드의 머리와 가슴에 직격하고 있었다.

퍼퍼퍼펑!!

“쿨럭!”

폭발과 함께 발생하는 혈빛 연무 속 그리드가 피를 토한다.

그를 확인한 티라멧이 통쾌하여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핫!! 제법 강하다지만 결국엔 인간! 나와 네놈은 타고난 육체부터가 차원이 다르다!! 인간의 육체가 한 장의 마른 나뭇잎과 같다면 진혈족 뱀파이어의 육체는 강철과도 같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티라멧이 입은 상처도 위험 수준이었다.

미친 인간 놈의 공격력이 상식을 파괴하였던 까닭에 생명력이 절반 가까이 소모됐다.

‘하지만!’

내게는 흡혈 마법이 있다.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티라멧이 그리드와 유라, 둘 모두를 노리고 마법을 전개하는 순간이었다.

“내 육체도 돌덩이 정도는 된다.”

“……!”

적광을 흩뿌리고 있는 티라멧의 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블러드 미사일 3연발을 맞은 인간이 죽어가기는커녕 멀쩡하였기에!

“인간 주제에 뭐 그리 단단…!”

“매직 미사일.”

지잉-!

퍼엉!!

“쿨럭!”

매직 미사일(강화)Lv.2

번헨 열도에서 레벨이 올라 더욱 더 강력해진 그 전설급 마법이 티라멧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었다.

티라멧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매직 미사일 따위에 타격을 입어?’

저놈은 설마 대마법사였나!!

아니, 마법사 주제에 검을 그렇게 잘 썼다고?

경악하는 티라멧의 머리 위로, 생명력 회복 물약을 마시며 등장한 그리드가 재차 날아들었다.

쩌엉!!

벼락처럼 꽂히는 흑청색의 대검!

기세는 훌륭하였으나, 티라멧의 왼손에 허무하리마치 쉽게 붙잡히고 만다.

“이 몸께서 똑같은 패턴에 당할 줄 알았더냐!”

기세등등하게 외친 티라멧이 오른 손을 뻗었다.

그에 멱살을 붙잡힌 그리드의 몸이 기둥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블러드 번!!”

퍼엉-!!

기둥에 처박힌 채 움찔거리던 그리드의 몸이 혈빛 폭발에 휩쓸렸고,

“그리드!!”

유라의 하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제아무리 템빨과 스탯빨, 그리고 직업빨 삼위일체를 갖춘 그리드일지언정 이번 공격엔 무사하지 못하리란 걱정에서였다.

그녀는 잠시 망각한 것이다.

그리드가 천외천 크라우젤과 싸워 이긴 존재임을.

“거 참, 도란의 반지를 벌써 쓰게 만들다니.”

혼잣말 하면서 몸을 일으키는 그리드의 모습이 제법 멀쩡하다.

하지만 표정은 좋지 않았다.

‘역시 난 한참 멀었다.’

공격이 가로막힌 것도 모자라서 설마 멱살을 붙잡힐 줄이야, 크라우젤이라면 결코 저딴 수에 당하지 않았을 터다.

‘그자였다면 최초의 연살(聯殺)부터 저놈의 머리통을 겨냥했겠지.’

번헨 열도에서 그토록 연마하였건만 여전히 부족함을 통감한 그리드, 좌절하는가?

아니다.

크라우젤과 유라가 그렇듯, 그리드 또한 이제는 지존을 노리는 몸이었다.

지존을 꿈꾸는 자가 쉽게 좌절할 리 만무하다.

“슬슬 제대로 시작하자고.”

“이놈이 주둥이만 살아서는… 허?”

여유로운 표정으로 조소 짓던 티라멧이 황급히 자리를 이탈했다.

앞서 블라드 미사일 2발을 방어하고 멈춰 있던 허공의 황금 손들.

놈들이 갑자기 무기를 거머쥐더니 덤벼드는 게 아닌가?

‘스스로 움직이며 공수 모두에 활용 가능한 아티팩트…! 엄청난 걸 갖고 다니는군!!’

채챙! 챙!!

갓 핸드의 소드마스터리는 이제 초급을 벗어나 중급까지 성장해 있었다.

번헨 열도에서 그리드가 반복적으로 사용한 결과였다.

놈들이 이상적인 단검과 도플갱어의 대검을 휘두르며 간간이 매직 미사일까지 발사하자, 티라멧은 잠시나마 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세에 몰린 것은 아니었다.

“고작 아티팩트 따위로 날 어찌할 수 있으리라 믿느냐!”

쩌정! 쩌저정!!

2개 갓 핸드의 연격 궤도를 간파하고 회피, 주먹으로 멀찍이 날려버린 티라멧이 그리드를 노리고 손을 뻗었다.

“죽어라!”

퍼엉-!

화염 데미지와 생명력 비례 데미지를 동시에 입히는 블러드 파이어가 쏘아졌다.

뜨거운 열기와 직면한 그리드, 마침 시간이 다 되었음을 확인한 그가 전력을 드러냈다.

“흑화.”

[암흑 마력을 증폭시킵니다.]

[암흑 마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악마력으로 대체합니다.]

[흑화가 유지되는 동안 종족이 반마(半魔)로 변경됩니다.]

[반마 상태에서는 생명력 최대치가 50퍼센트 하락합니다. 공격력, 마력, 민첩성이 각각 20퍼센트씩 상승합니다.]

[모든 종류의 공격이 암흑 속성으로 전환됩니다.]

“신속한 몸놀림.”

[갓 핸드가 무장한 <이상적인 단검>에 귀속 된 스킬이 발동합니다.]

[1분 동안 회피율이 30퍼센트, 민첩성이 2배 상승합니다.]

“대장장이의 분노.”

[35초 동안 공격력이 25퍼센트, 공격속도가 40퍼센트 상승합니다.]

그리고…

[아이템 합체에 성공하였습니다!]

[<실패작>과 <이야루그트>의 합체 유지 시간은 2분입니다.]

그리드가 전투 도중 2개의 갓 핸드만 활용했던 이유, 티라멧을 우습게 여겨서가 아니었다.

도리어 티라멧의 강함을 파악하고 인정했기 때문에, 전투에 난입하기 직전 갓 핸드 2개로 미리 <아이템 합체>스킬을 전개해놨던 것이다.

철컥!

대전 바깥에서부터 날아온 2개 갓 핸드가 그리드에게 새로운 무기를 쥐어주었고, 증가한 민첩성을 기반으로 블러드 파이어를 회피한 그리드가 모든 갓 핸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산개. 매직 미사일.”

슈슈슈슉!

퍼퍼퍼펑!!

사방으로 흩어진 갓 핸드가 티라멧을 노리고 매직 미사일을 발사, 티라멧의 회피가 어렵도록 만들었다.

“잔기술을… 헉!!”

블러드 실드를 전개하여 매직 미사일들을 방어하던 티라멧의 입에서 경악성이 튀어나왔다.

더 이상 인간으로 규정 짓기 어려운 흑발 놈, 어느덧 내 지척까지 다가와 있는 게 아닌가?

“날뛰는 피!”

“연속 찌르기!”

푸욱-!

쩌정!! 푹!

쩌엉-! 쩌정!!

티라멧은 과연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날뛰는 피 스킬을 토대로 능력치를 증폭시킨 그가 모든 버프를 등에 업고 흑화까지 전개한 그리드의 5격 중 3격을 방어하는데 성공했다.

이대로는 5콤보를 달성하지 못하리라 판단한 그리드가 <피의 울음>을 전개하였다.

키잉-!

“큭… 아니, 그건 엘핀스톤의!!”

두 눈을 부릅뜨며 휘청거리는 티라멧.

기회를 엿본 그리드가 파그마의 검무, 극(極)으로 티라멧의 어깨를 크게 베었다.

여기서부터 이야루그트의 위력이 제대로 발동했다.

[3콤보 달성!]

[대상에게 입히는 피해량이 1초 동안 200% 증가합니다.]

“살(殺).”

[크리티컬!!]

“허윽…!”

극심한 격통에 휩싸인 티라멧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그러면서도 반격을 시도하였으니, 정녕 튼튼한 존재였다. 엘핀스톤과는 비할 바 못될지라도, 약화 된 헬가오는 월등히 초월하는 능력치였다.

그리고 그리드는 티라멧의 반격을 예상하고 있었다.

“회(回).”

기다렸다는 듯이 전개되는 반격기.

그리드의 모든 노림수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5콤보 달성!]

[대상의 이성이 0.3초간 붕괴됩니다.]

[스킬 <나락의 검>을 연계할 수 있습니다.]

0.3초 안에 발동해야만 하는 스킬이다.

지금의 그리드라면 그 타이밍을 충분히 노릴 수 있었다.

“나락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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