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18권 - 17화
‘창을 하나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스피어 샷>
‘창을 던짐으로서 발동한다.’라는 개념의 스킬이므로, 일반적인 전사가 운용하기에는 다소 까다로운 면모가 있다. 자칫하다간 무기를 잃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사정이 달랐다.
4개의 갓 핸드를 보유한 그에게 던진 창을 회수할 방법이야 많았다. <스피어 샷>을 제대로 활용할 자신이 있었다.
“시험 종료!”
그리드가 새롭게 얻은 스킬을 관찰하면서 흡족해하는 사이, 다른 예비군들의 창술 시험이 모두 끝났다.
50명 예비군들의 평균 성적은 3분을 꽉 채운 50점.
커트라인을 간신히 맞춘 수준이다. 불합격자도 4명이나 있었다.
1분 23초 동안 100점을 채운 그리드의 성적이 더욱 더 돋보이게 됐다.
“흐흠… 다음은 검술 시험이다.”
캐슬 교관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고문관 그리드의 갑작스러운 변화와 성장은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캐슬 교관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조교의 뒤를 따른 그리드와 예비군들이 자리를 이동했다. 각자 또 새로운 허수아비를 눈앞에 두고 섰다.
이번 허수아비들은 점뿐만이 아니라 실선까지 새기고 있었다.
캐슬 교관이 설명했다.
“붉은 실선을 베면 5점 획득, 찌르면 5점 손실. 녹색 점을 찌르면 5점 획득, 베면 5점 손실. 파란 실선을 찌르면 10점 획득, 베면 10점 손실이다. 3분 동안 50점을 획득하면 합격이다.”
창술 시험과 달리 좀 복잡하다.
순발력이 부족했던 과거의 그리드는 계속해서 교차하는 3가지 색의 실선과 점들로부터 거의 점수를 획득하지 못했었다.
특히 그리드가 평소에 사용하던 무기는 대검이었던지라, 찌르기를 효과적으로 구사하지 못했고 이는 낮은 점수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었다.
하지만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한 이후, 그리드는 살(殺)이라는 스킬을 수백 번도 더 연마한 바 있다.
지금의 그는 찌르기의 극의를 구사할 수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연속적으로 교차하는 실선과 점들?
피아로나 크라우젤의 움직임들과 비교하면 하품만 나올 정도로 시시하다.
“그, 그리드 합격…!”
39초에 100점 달성.
마치 검과 하나가 된 듯한 움직임으로 허수아비로부터 점수를 뽑아낸 그리드였다.
그를 보고 입을 찢어져라 벌린 캐슬 교관과 조교들이 깨달았다.
‘저자는 필시 기사의 자질을 지니고 있다!’
‘여태까지 고문관처럼 굴던 건 다 연기였어!’
연기를 왜 했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드의 자질은 최고임을 말이다.
한편, 그리드는 아무런 감흥도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수한 강적들을 상대로 싸워온 그에게 있어서 멈춰 있는 허수아비를 타격하는 테스트란 그만큼 시시한 것이었다.
[파트리안의 예비군 훈련 <검술 시험>에서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레어 스킬 <연속 찌르기>를 습득하였습니다.]
<연속 찌르기>Lv.1
대상을 총 5회 빠르게 찌릅니다.
찌르기가 1회 적중할 때마다 100퍼센트, 120퍼센트, 150퍼센트, 190퍼센트, 240퍼센트의 피해를 입힙니다.
마나 소모:300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3분
다단히트 계열의 스킬이다.
공격 도중 방어나 회피를 허용할 수도 있지만, 공격을 한 번 적중시킬 때마다 위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종류의 스킬로서 둔한 적을 상대로 유용했다.
‘그래봤자 살(殺)보단 약하지만.’
살(殺)이 재사용 대기 시간에 걸렸을 때 대체할만한 스킬로선 훌륭하다.
‘좋군.’
과거에는 지옥처럼만 느껴졌던 예비군 훈련에서 연달아 큰 보상을 획득하다니, 그리드는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
사격장.
그리드와 예비군들이 10미터 앞에 과녁을 두고 나란히 섰다.
궁술 시험이 시작되려하는 것이었다.
‘화살 10발로 50점을 획득해야하는 시험.’
10점, 8점, 6점, 4점, 2점으로 세분화 된 과녁의 점수판.
그를 확인하는 그리드의 얼굴에 긴장감이 피어올랐다.
‘과거의 나는 과녁에 화살 한 발조차 맞추지 못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큰 자신감은 없다.
보우 마스터리가 없는 경우 활의 적중률은 무조건 민첩성과 비례하는데, 22의 민첩성으론 고작 10미터 과녁도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슈카의 궁술을 1년도 더 넘게 지켜본 몸이다. 지슈카와 레이단 병사들의 활을 수백 번 더 제작하기도 했다.
‘궁술에 아예 문외한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믿는다.
‘10미터. 고작 10미터 거리다. 저쯤이면 충분히 맞출 수 있어.’
활을 제작하고 성능을 테스트할 때마다 맞춘 표적의 거리가 100미터 바깥에 있었다.
그를 상기하면서 심호흡한 그리드가 원형 과녁의 중심을 주시했다.
10점짜리 점수판을 노리는 것이었다.
‘반드시 레어 스킬을 획득한다!’
과녁과의 거리가 무척 짧다는 게 희망이다. 집중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음?”
지슈카의 자세를 떠올려보면서 화살을 만지작거리던 그리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시험용으로 지급 된 <예비군 훈련용 화살>의 퀄리티가 무척이나 저급했던 까닭이다.
‘초급 3레벨 이하의 대장장이가 만든 건가?’
화살대가 비뚤어졌고 무게 균형도 엉망이다.
‘하여튼 간에, 예비군 훈련 환경은 현실에서나 게임에서나 열약하구만.’
화살대는 수평을 이루는 것이 좋고 깃과 화살촉의 좌우 균형이 맞아야한다. 화살대와 화살촉의 무게 균형 또한 엇나가선 안 된다.
밸런스 잃은 화살은 아무리 힘껏 쏘아도 멀리 날지 못하는 법이다.
‘무게감이 있는 소재를 사용했다면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했겠지만, 이 화살은 재질부터가 최악이군.’
전설의 대장장이, 그리드.
파그마의 후예인 그가 여태껏 제작한 화살의 개수는 무려 십만 단위다.
현재 <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스킬을 잃은 상태라고는 하나, 화살을 보는 그의 안목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템빨을 받아도 부족한 마당에, 템이 방해를 해서야 승산이 없어.’
판단한 그리드가 번쩍 거수했다.
“뭐냐, 그리드.”
그리드를 대하는 캐슬 교관의 태도가 한층 누그러졌다. 고문관이라느니, 개만도 못한 놈이라느니 하는 악담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에 뿌듯함을 느낀 그리드가 당당하게 요구했다.
“제가 지급 받은 화살의 상태가 몹시 나빠서 그러는데, 제가 손을 좀 봐도 되겠습니까?”
“뭐?”
캐슬 교관이 심히 당황했다.
“아서라. 화살의 구조가 단순하여 누구라도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나, 본디 화살이란 모양만 갖춘다고 해서 쏘아지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가 괜히 건드렸다간 상태가 더 나빠질 뿐이야. 화살이 문제라면 내 새로운 화살을 지급해주겠다.”
캐슬 교관이 조교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조교가 그리드에게 새로운 화살 10발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 화살들의 상태 역시 똑같이 최악이었다.
‘보우 마스터리 스킬이 있었다면 또 몰라.’
이 화살로는 역시 안 된다고 판단한 그리드가 재차 요구했다.
“화살을 제가 직접 손볼 수 있도록 해주십쇼.”
“흥, 지가 뭐 대장장이라도 되나.”
“실력이 좀 늘었다 싶더니 이젠 또 너무 거만해진 것 같군.”
조교들이 투덜거렸다. 남들은 다 가만히 있는데 혼자 유난을 떨며 일정을 늦추는 그리드가 마음에 들 리 없었다.
하지만 캐슬 교관의 반응은 의외로 호의적이었다.
“알겠다. 할 수 있다면 어디 해봐라.”
캐슬 교관이 그리드를 경멸했던 이유는 단지 무능해서가 아니었다. 무능함을 극복할 노력도 안 하고 매사에 의욕 없는 태도가 싫었던 것이다.
한데 지금의 그리드는 의욕으로 넘치고 있었다. 그 긍정적인 변화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예를 갖춘 그리드가 예비군 무리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다른 예비군들이 시험을 진행하는 동안 자신은 화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기왕이면 화살대를 얇게 깎고 일자로 만들고 싶지만.’
대장장이 기술이 없는 현재 그리드의 손재주는 0이다.
오로지 경험과 이론에 의지해서는 온전한 기술을 발휘할 수 없었다.
‘자칫 화살대를 부러뜨릴 수도 있어. 욕심을 버리고 균형을 맞추는 것에만 중점을 두자.’
노선을 정한 그리드가 화살촉보다 최소 3배 이상 작은 돌멩이만 골라 주웠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몇 개 뜯어오더니 그것으로 돌멩이를 화살촉 뒤편에 묶어 고정시켰다.
‘적당하군.’
무척 가벼워서 바람의 저항을 거스르지 못할 것만 같았던 화살에 적당한 무게감이 생겼다. 흡족한 미소를 지은 그리드가 화살대 뒤쪽의 깃털 몇 개를 뽑았다.
한쪽으로 휘어있는 화살대와 좌우 균형을 맞추기 위한 극단적 조치였다.
‘조잡하지만 조금 전보단 확실히 낫다.’
휜 화살대를 조금이라도 개선해보고자 구부려보는 그리드의 시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예비군 훈련용 화살>의 옵션이 변경됩니다.]
<예비군 훈련용 화살>
공격력:1~2 명중률 +2
조악한 화살의 잘못 된 점을 간파한 누군가가 손을 봤다.
형편없는 솜씨로나마 개선하여 화살의 성능이 조금 올랐다. 잘만 쏘면 꽤 멀리 날아갈 것이다.
무게:0.01
“이젠 순전히 내 실력에 달렸다.”
조교들에게 호명 된 후 사격장에 오른 그리드가 호흡을 골랐다.
끼릭-
긴장을 유지하되 행동에 망설임이 없다.
활과 몸을 수평으로 이루며 시위를 당긴다.
‘제작한 활의 성능을 테스트해볼 때마다.’
신궁의 자세를 따라했었다.
과거, 야탄의 종 말락서스를 레이드하는 그날부터 함께해온 지슈카의 자세 말이다.
그런 내가 고작 10미터 거리의 표적을 맞추지 못할 리 없다.
‘지금!’
호흡을 멈춘 채 화살 끝을 조준하던 그리드가 눈을 부릅떴다.
그 순간 쏘아진 화살이 경쾌한 파공성…을 터뜨리진 못했고, 맥없이 날아갔다.
하지만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더니 과녁을 정확히 꿰뚫는데 성공했다.
6점이었다.
필시 정중앙을 노렸건만, 우측으로 크게 어긋난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드가 화살을 처음보다 좌측으로 향하게끔 쐈다.
하지만 서두르다가 풍향을 읽지 못한 게 잘못이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며 화살이 아래로 떨어졌다. 또 6점짜리 점수판에 꽂혔다.
레어 스킬 획득 기회가 날아가게 생긴 것이다.
과거의 그리드였다면, 초조함에 욕설이라도 지껄였을 터였다.
하지만.
‘아직 괜찮다.’
그리드는 침착했다.
예비군 훈련에는 대련도 포함되어 있는 바, 형평성 때문이라도 참가자들의 레벨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즉, 현재 훈련에 참가하고 있는 50명의 예비군 전원 레벨이 그리드와 마찬가지로 20대라는 뜻이다.
그들 중 화살 10발을 전부 10점 과녁에 맞출 정도의 실력자가 있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역대 20레벨대 훈련병들이 세웠던 기록. 그것만 넘으면 된다.’
아직 희망을 버려선 안 된다.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그리드가 이번엔 바람까지 읽은 후 화살을 쐈다.
푸욱-!
10점.
한 번 맞춘 이상 어려울 건 없다.
푹푹푹!!
완전히 감을 잡은 그리드가 연달아 10점 과녁과 8점 과녁에 화살을 맞췄다.
그 결과,
“그리드 88점!”
[파트리안의 예비군 훈련 <궁술 시험>에서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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