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83화 (178/1,794)

템빨 18권 - 10화

김두현 31세.

할리우드에서도 인정받은 연기력과 출중한 외모를 겸비한 대한민국 톱스타다.

바쁜 활동 중에도 꾸준히 Satisfy를 플레이해왔던 그가 드디어 사막도시 레이단에 도착했다.

“감격적이군.”

이제 막 197레벨을 달성한 김두현, <냥멍이>는 감회가 깊었다.

강력한 몬스터들과 공방전을 펼치면서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을 횡단하는 일이란 그만큼 힘들었던 까닭이다.

‘내가 만약 노멀 클래스 유저였다면, 혼자서는 결코 이 사막을 넘지 못했을 테지.’

냥멍이는 <펫 마이스터>다.

유니크 클래스 전직자답게 두루 유용한 스킬을 보유한 그는 솔플의 귀재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은 최대 3마리밖에 거느리지 못하는 펫을 무려 9마리나 거느릴 수 있었고, 일시적으로나마 몬스터를 아군으로 만들 수도 있었으니 제아무리 사막의 몬스터들이 강하다고 하여도 냥멍이의 앞길을 가로막을 순 없었다.

하지만 어떤 농부 앞에서는 냥멍이조차도 한낱 약자에 불과했다.

‘어마어마하게 크구나.’

레이단 외곽.

광활한 논밭에 진입한 냥멍이가 저 멀리, 지평선처럼 끝없이 펼쳐져있는 외성벽에 시선을 사로잡혔다.

‘그리드님이 저 대도시의 주인이라는 건가. 공작의 권위란 내 상상을 초월하는가 보군.’

역시, 하나의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들은 경탄을 불러일으킬만한 면모가 있다.

냥멍이는 그리드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하였을 테지.’

냥멍이 또한 톱스타가 되기까지 무수한 시련을 겪었었다. 그렇기에 그리드의 그간 인생을 얕게나마 반추해볼 수 있었다.

그리드가 비록 나보다 연하라고는 하나, 나이와 관계없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저벅저벅.

논두렁을 걷는 냥멍이의 발걸음이 가볍다.

이제 잠시 후면 노에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흥얼거리며 기분 좋게 걷는 그의 앞길을 웬 농부가 나타나 가로막았다.

“그대는 누구지?”

“…?”

냥멍이는 그저 갈 길을 가고 있었을 뿐이다. 딱히 트집 잡힐 만한 행동을 한 기억이 없다.

한데 다짜고짜 앞길을 가로막으면서 누구냐니?

흙투성이 농부의 난데없는 질문에 냥멍이는 짐짓 당혹스러웠다.

“저는 냥멍이라고 합니다만…”

엉겁결에 대답하는 냥멍이를 농부가 유심히 관찰했다.

정확히 말하면, 냥멍이의 곁을 따르는 9마리 펫들을 주시했다.

각양각색의 펫들이 모두 냥멍이에게 절대적인 충성심과 호감을 보이고 있었으니 놀라웠다.

“그대의 재능이 탐나는군. 그대만 있으면 자이언트 옥스들을 잘 달래서 농사에 활용할 수도 있겠어.”

“…?”

농사라니?

지나가는 사람의 앞길을 다짜고짜 가로막은 것으로 모자라 헛소리를 지껄이는 농부가 냥멍이는 그저 이상해 보일 따름이었다.

그렇다.

냥멍이는 레이단의 미친 농부에 대한 정보를 아직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 짬짬이 Satisfy를 플레이하느라 TV시청 한 번 못한 게 문제였다.

“농사라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길을 비켜주시죠. 저는 레이단에 볼 일이 있습니다.”

“내 허락 없이는 레이단에 입장할 수 없다네.”

“어째서입니까? 당신이 이 땅의 주인이라도 되는 겁니까?”

“이 땅의 주인은 당연히 그리드 공작각하시지.”

“한데 왜 당신의 허락을 받아야한다는 겁니까?”

“그건 내 마음일세.”

‘미친 건가?’

냥멍이는 진지하게 의심했다.

눈앞의 농부와 상종해봤자 좋을 게 없다고 느꼈다.

도망치듯이 자리를 피하려하는 그를 농부가 붙잡아 세웠다.

잠시 후.

냥멍이는 자신의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9마리 펫들과 함께 농부에게 무참히 박살나고 말았다.

냥멍이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황당하고도 어처구니없는 봉변이었다.

-그, 그리드님, 제가 드디어 레이단에 도착하였는데 웬 미친 농부에게 붙잡혀 농노가 되게 생겼습니다. 저를 도와…

[상대방이 귓속말을 받을 수 없는 장소에 있습니다.]

-루비님, 저를 좀 도와…

[상대방이 게임에 접속하지 않았습니다.]

“…”

“자, 나를 따라오시게.”

레이단에 전문 목축인이 탄생한 날이었다.

무려 유니크 클래스의 목축인이었으므로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레이단의 농업은 날이 갈수록 강성해졌다.

냥멍이 또한 강해졌다.

템빨단에 가입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감이 있었던 그가 <★히든 퀘스트★즐겁고 신나는 훈련!> 덕분에 빠르게 성장했다.

***

[열한 번째 섬에 입장하였습니다.]

거대한 피뢰침을 세움으로서 낙뢰를 무력화시킨다.

현명한 대처로 악명 높은 열 번째 섬을 돌파한 그리드였으나 딱히 들뜨진 않았다.

‘다른 대장장이들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을 거다.’

나는 특별하지 않다.

그 뼈아픈 진실을 몇 번이나 되새긴다.

하지만 역시 고무적이기는 하다.

누구라도 떠올릴 수 있는 발상, 나 혼자서만 떠올리지 못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비약적 발전임이 맞았으니까.

‘그래, 이렇게 차근차근히 성장해나가자.’

마음을 다잡는 그리드의 눈동자엔 과거에 없던 총기가 맴돌고 있었다.

부족한 재능에 경각심을 품고, 보다 현명하고자 노력하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보니 벌어진 현상이었다.

‘왠지 머리가 맑아.’

사고 영역의 확장이 진행되는 순간이다.

지금의 그리드, 진화하고 있었다.

격변이 아니다.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하고 지금까지 2년이라는 세월에 걸쳐서 꾸준히 진행되어온 과정이 결실을 맺는 순간일 뿐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아니, 가능하다.

그리드가 둔재일지언정 사람이 아닌 건 아니니까.

무릇 인간이란 학습과 경험, 그리고 자아성찰 등을 통해서 생각과 지식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존재다.

그리드라고 못할 리 없다.

“그러고 보니.”

전보다 높은 사고력을 갖게 되었기 때문일까.

그리드가 새삼스러운 의문을 품었다.

‘마지막 섬에는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 거지?’

그리드가 번헨 열도를 방문한 이유는 현자 스틱세이를 만나기 위함이었으나, 정작 번헨 열도의 궁극적인 콘텐츠는 스틱세이가 아닐 공산이 컸다.

스틱세이의 위치가 마지막 섬이 아닌 25~29번대 섬이라는 점이 근거였다.

마지막 섬.

즉, 66번째 섬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이곳 번헨 열도는 ‘입장자’를 ‘도전자’라 칭하는가?

<도전자 포인트>의 이름을 뒤늦게 주목하게 된 그리드가 생각해보다가 이내 관뒀다.

“스틱세이를 만나면 해소할 수 있는 의문이다.”

홀로 궁리해봤자 무의미한 일에 심력을 낭비하는 일, 어리석다.

동대륙으로 향하는 방법과 스틱세이가 이곳에 고립되어 있는 이유, 66번째 섬의 정체.

궁금한 게 있다면 스틱세이를 직접 만나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판단하는 그리드의 시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미션이 생성됩니다.]

<열한 번째 섬>

리자드우먼을 격파하라!

최초 클리어 보상:도전자 포인트 36개.

[지금부터 30분 후에 미션이 시작됩니다.]

리자드우먼.

리자드맨들이 여왕으로 섬기는 보스 몬스터로서 그 가치가 무척 높다.

최상급 가죽방어구를 제작할 때 꼭 필요한 재료, <분홍색 가죽>을 드롭하는 까닭이었다.

“흠.”

쉽게 보기 어려운 리자드우먼을 레이드할 기회를 얻게 된 그리드였으나 별달리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분홍색 가죽의 가치를 모르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그리드 또한 분홍색 가죽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직접 다뤄보기까지 했다. 페이커가 자신의 아이템을 제작해달라고 부탁할 때마다 분홍색 가죽을 조달해왔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드가 감흥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번헨 열도의 몬스터들이 재화를 드롭하지 않는단 사실을 경험을 통해서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번헨 열도에서 등장하는 모든 몬스터들은 단순한 경험치 덩어리에 불과했다.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리드는 괘념치 않았다.

애초에 번헨 열도를 방문한 이유, 아이템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현자 스틱세이를 만나기 위함이었으니까.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마법 플라이를 전개, 상공에서부터 섬의 전경을 눈에 담은 그리드가 리자드맨들의 부락 위치를 파악하고 다가갔다.

리자드맨 대여섯 마리가 생활할 수 있을법한 크기의 움막이 총 207개 설치 되어 있는 초대형 부락이었다.

리자드맨의 숫자를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게 된 그리드가 부락을 계속해서 관찰하던 도중 중요한 포인트를 짚었다.

‘3개의 연못.’

강력한 리자드우먼과 대량의 리자드맨들을 변수 없이 사냥할 수 있는 방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따앙! 따앙! 따앙!

서둘러 장소를 옮긴 그리드가 준비 시간 30분을 철저히 활용, 휴대용 용광로를 꺼내 철을 제련하더니 넓은 철판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름이 족히 20미터가 넘는 초대형 철판이었다.

일반적인 대장장이라면 철을 그토록 크게 펼치기까지 몇 시간을 소요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전설의 대장장이다. 심지어 4개의 갓 핸드도 함께였다.

따앙! 따앙!

갓 핸드와 함께 쉬지 않고 철판을 두드린 그리드.

잠시 후, 울퉁불퉁하게 대충 만든 초대형 철판 3개를 모두 완성시킨 그가 다시금 리자드맨의 부락으로 이동했다.

타이밍 아슬아슬하게도 알림창이 떠오르고 있었다.

[미션이 시작됩니다!]

동시에 207개 움막 안에서부터 리자드맨들이 튀어나왔다. 그 숫자가 족히 1천 마리 가까이 되었다.

질리는 광경을 목격하고 다급해진 그리드가 소리쳤다.

“노에, 랜디! 갓 핸드와 함께 이 철판들로 연못을 덮어라! 내가 엄호하겠다!”

“알았어, 그리드.”

“냥핫핫!! 주인은 나만 믿어라! 냥!”

쿠콰콰콰콰콰쾅!!

파그마의 검무, 초(超)를 전개한 그리드가 연못이 있는 경로의 리자드맨들에게 검기다발을 날렸다.

황급히 방패를 앞세운 리자드맨 몇은 목숨을 건졌지만 그러지 못한 놈들은 금세 썰려나가기 시작했다.

키엑!

캬악!

선혈이 낭자하면서 리자드맨들의 비명소리가 부락을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리자드맨들의 숫자가 워낙 많았다.

그리드가 쉬지 않고 두 자루 대검을 휘둘렀지만 도통 숫자가 줄질 않았다.

채챙!

그리드와 거리를 좁혀온 리자드맨들이 칼을 휘두르고, 그에 그리드가 대응하는 동안.

쿠우우우우우웅-!!

갓 핸드와 노에, 랜디가 3개의 연못을 드디어 철판으로 막아버렸다.

킥?

철판이 떨어지면서 울려퍼진 굉음에 놀란 리자드맨들이 시선을 돌렸다가 경악했다.

자신들의 힘을 증폭시켜주는 연못들이 자취를 감춘 까닭이었다.

그렇다.

리자드맨은 물가에서 능력치 보너스를 받는 수속성 몬스터인 바.

“파그마의 검무.”

그리드는 그 특성을 상기하고 부락에 존재하는 연못들을 모조리 철판으로 뒤덮어버린 것이었다.

“초연(超聯)!”

캬악!

크에엑!!

리자드우먼과 같은 부락에서 생활하는 리자드맨 전사들의 레벨은 230으로 제법 높다.

하지만 능력치 보너스를 받지 못하는 상태로는 그리드의 공격을 채 한방도 버티기 어려웠다. 방패도 무용지물이었다.

<+8그리드의 대검>으로 최강의 스킬들을 연달아 사용함으로서 적들의 기세를 누그러뜨린 그리드가 대검을 갓 핸드에게 넘겼다.

그리고 이어서 이야루그트를 손에 쥐더니 노에, 랜디와 함께 리자드맨들을 썰어나갔다.

캬아아아아아!!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리자드우먼이 포효하며 출현했다.

녀석은 300레벨 필드 보스급 몬스터로서 상당히 강했지만 헬가오와 엘핀스톤마저도 레이드한 전력이 있는, 심지어 당시보다 더욱 더 강해진 그리드를 감당할 수준은 아니었다.

11번째 섬마저도 손쉽게 클리어한 그리드는 이후 계속해서 승승장구, 20번째 섬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한데 20번째 섬, 포스가 남달랐다.

하늘에 태양처럼 떠있는 거대한 원구에 박힌 수천 개의 눈동자가 그리드를 주시하였으니 제아무리 그리드라도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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