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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80화 (175/1,794)

템빨 18권 - 7화

성기사의 검술은 둔기술과 흡사한 면이 있다.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전심전력을 쏟아내었으니 대상을 벤다기보다 부순다는 개념에 가까웠다.

그 탓에 변화가 적고 단순하였으며, 대상에게 공격을 실패할 경우 필연적으로 빈틈을 드러냈다.

경험이 농후한 요시무라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높은 민첩성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궁사인 그가 성기사를 상대로 애먹은 경우?

여태까지 없었다.

요시무라에게 있어서 성기사란 그저 단단한 표적에 불과했다. 쉽게 쓰러뜨릴 수도 없지만 위협적인 존재도 아니랄까.

한데 데미안은 예외였다.

서걱!

“크악!”

데미안이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요시무라의 마른 몸에 상처가 늘어났다.

도무지 회피할 수가 없자 요시무라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네놈…! 성기사 따위가 어찌 그리도 현란한 검술을 구사할 수 있는 거지! 히든 클래스로 전직하였다더니 네놈, 더 이상 성기사가 아닌 것이냐!!”

잘못 된 추측이다.

데미안이 전직한 <여신의 대행자>는 성기사가 맞았다.

다만, 유니크 클래스인 바.

일반적인 성기사보다 더 높은 단계의 소드 마스터리 스킬을 익힐 수 있었고, 바로 이게 수준 높은 검술의 비결이었다.

더군다나 데미안은…

“성기사 맞습니다. 최강의 스승을 둔 성기사.”

그렇다.

데미안은 무려 피아로에게 가르침을 받은 인물이다.

피아로 밑에서 농사를 짓던 시절에 그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히든 퀘스트★ 즐겁고 신나는 수련!>의 클리어 보상은 물론이고 별개의 깨달음까지 얻은 덕분이었다.

“무상검법에서 서술하기를, 중검은 쾌검보다 느리고 환검보다 변화가 적으나 가장 뛰어나다고 하였다.”

“왜죠?”

“쾌검은 힘으로 조율하고 환검은 생각으로 조율하는 반면, 중검은 마음을 싣기 때문이다. 마음의 속도에 따라서 빨라지고, 마음처럼 많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바로 중검이다.”

“…”

무협지에서나 나올법한 대사를 데미안이 이해할리 만무했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데미안은 피아로의 가르침으로부터 아무런 감상을 느끼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게임은 현실과 달랐다.

[피아로에게 가르침을 받음으로서 중검의 묘리를 깨우쳤습니다!]

[도검류 무기 장착 시 명중률이 30퍼센트 상승합니다. 이 효과는 소드 마스터리 스킬과 별개로 적용됩니다.]

쉽게 말해서 히든 퀘스트의 부가적인 보상이었다.

행실이 바른 데미안은 히든 퀘스트 기간 동안 피아로와 호감도를 최대치로 쌓았고, 덕분에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최강의 스승? 누굴 말하는 거지?”

“그것까진 알 필요 없고요.”

푸욱-!!

“끄아아아악!!”

“마스타!!”

옆구리에 깊숙이 검을 찔린 요시무라가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그를 본 오로치가 격분하여 달려왔다.

“네놈이 감히 마스타를!!!”

사쿠라 길드의 대인전 최강자, 오로치.

통합랭킹 2만등권의 랭커인 그는 쌍검술의 달인이다. 현란한 검술로 대상을 현혹시키는 고차원적 실력자로서 특히 PvP에 강했다.

하지만 데미안의 상대는 못되었다.

오로치의 검을 방패로 쉽사리 방어한 데미안이 콧방귀 뀌었다.

“레이단의 감자 좋아하는 농부조차도 당신을 상대로는 하품만 하겠군요.”

레이단의 감자 좋아하는 농부?

‘그게 누구지?’

얼마 전, 휴렌트와 2천 군대를 단신으로 박살냄으로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전설의 농부를 지칭하는가?

오로치가 의문을 품는 사이,

쩌엉-!!

방패를 밀어 오로치를 떨쳐낸 데미안이 그대로 공격을 연계, 그의 가슴을 베어버리며 말을 이었다.

“당신들 따위는 내 상대가 아닙니다. 지금의 나를 상대하려면 최소한 기간제 농부쯤은 되어야죠. 아, 그를 상대론 내가 아직도 부족하려나.”

기간제 농부?

“그건 또 누구냐!”

“나도 모릅니다.”

“…?”

이후 일방적인 학살이 펼쳐졌다.

진즉에 300레벨을 돌파한 데미안을 상대로 3차 전직자가 없는 사쿠라 길드는 완전히 압도당했다.

숫적 우위를 이용, 상처를 입힐지언정 데미안의 기본 방어력이 워낙 높고 자체 힐도 사기적이었으므로 치명상을 입히기가 어려웠다.

데미안의 전투지속력은 가히 최강이라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레베카의 딸 후보들도 문제였다. 그녀들이 철저하게 데미안을 보조하였으므로 사쿠라 길드는 손발이 꽁꽁 묶인 심정이었다.

“제길! 제기랄!!”

동료가 하나, 둘씩 죽어나가자 사쿠라 길드원들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요시무라가 발악하듯 외쳤다.

“어째서냐! 네놈은 어째서 동포들과 척을 지면서까지 조센징을 도우려는 거냐!!”

“조센징? 그게 무슨 구시대적인 인종차별 발언입니까. 이런 쪽빠리 같으니라고.”

“뭣이!! 그런 너도… 커억!!”

데미안은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았다.

상대가 상종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임을 진작부터 알아챘기에, 그저 묵묵히 사쿠라 길드원들을 베어나갔다.

이날.

사쿠라 길드는 심대한 피해를 입고 말았다.

길드원 전원이 사망하여 경험치와 아이템 일부를 잃었으므로 엄청난 전력 손실이 발생, 당분간 멋대로 활개 칠 수 없게 되었다.

***

크라우젤과 대련하면서 그리드는 한 가지 확신을 갖게 되었다.

지존이라는 목표,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라는 확신이었다.

‘천재들… 아니, 일반인들과 비교해도 내 재능이 형편없는 것은 맞다.’

어려서부터 뼈저리게 실감해온 현실이니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그리드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무기가 있었다.

그건 바로 템빨이다.

보통 템빨도 아닌, 하늘 밖의 하늘마저도 무너뜨린 템빨이었다.

‘우선 나는 그 무기를 갈고 닦는다.’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템빨을 갖추려면 레이드나 사냥에 열중해야하는 반면 그리드는 사정이 달랐다.

전설적 대장장이니만큼 직접 대장일을 함으로서 이상적인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쉽지가 않단 말이지.’

아이템의 성능에는 한계가 있다.

데미지 100억짜리 무기를 만들어서 대상을 무조건 즉사 시킨다거나, 방어력 100억짜리 갑옷을 만들어서 무적이 된다거나 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한계 내에서 이상적인 아이템을 만드는 것이 관건인데.’

대장간에 틀어박힌 채 혼자 궁리하는 것으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리드는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레이단의 대장간.

한참동안 사색에 잠겨있던 그리드가 이내 결론을 내렸다.

“식견을 넓힌다.”

크라우젤이 제아무리 천재라 할지언정, 홀로 수련장에 갇힌 채 연마하였다면 지금의 실력을 쌓을 수 있었을까?

단연코 아닐 것이다.

반복적인 모험을 통해서 새로운 사람들과 적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서 보고, 듣고, 배우며 성장해나갔으리라.

‘나 또한 그렇게 한다.’

마침 그리드에게는 목적지로 삼을만한 장소도 있었다.

‘번헨 열도.’

66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는 그곳.

크라우젤조차도 30번째 섬까지밖에 도달하지 못하였다는 그곳에 도전함으로서 새로운 것을 체험하고, 부족한 부분을 깨달으며 보다 이상적인 아이템을 설계해나간다.

결심한 그리드가 영주성으로 걸음을 옮겼다.

***

“아부! 아부부!”

“돌아오셨나요.”

아이린과 로드가 그리드를 반겼다.

애정이 가득한 아이린의 시선과 선망이 가득한 로드의 시선이 그리드를 충만하게 만들었다.

‘이들을 평생토록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Satisfy는 현실과 다르다. 적이 지천에 널려있고 내 소중한 이들이 언제고 목숨을 위협받을 수도 있다.

그들을 완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리드는 더욱 더 강해지고 싶었다.

재차 다짐한 그리드가 라우엘을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

집무실에서 서류더미에 파묻혀있던 라우엘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언제나처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 그리드가 새삼 감사를 표했다.

“무능한 상관 탓에 온갖 궂은일을 떠맡아 하느라 네가 정말 고생이 많다.”

“제가 원해서 자처한 일입니다. 마음 쓰실 필요 없어요. 앞으로도 계속 저를 의지하십쇼.”

“그래, 그럼 나는 너만 믿고 당분간 자리를 비우마.”

“…예?”

“겸사겸사 번헨 열도라는 곳을 다녀올 계획이거든. 내가 없는 동안 레이단과 가족들을 잘 부탁한다. 아, 연금술시설에서 제작해서 보관 중인 물약 좀 챙겨가도 되지?”

“예? 아, 예, 물론입니다.”

라우엘은 짐짓 당황했지만 그리드의 선택과 행동에 토를 달지 않았다.

크라우젤과 대련한 이후 그리드는 보다 신중해졌으므로 철저히 신뢰했다.

이후, 그리드는 아이린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로드와 작별한 후 해양왕국 메디아로 떠났다.

“아바! 아부부! 아부!!”

<아기를 위한 장난용 목검>을 손에 쥔 로드가 멀어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뭐라 떠들어댔다.

하지만 아기의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사람들은 로드가 그저 아버지에게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며칠 뒤.

고생 끝에 사막의 횡단에 성공한 교황행렬이 드디어 레이단에 도착했다.

데미안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가 오타쿠라고 비난 받던 시절부터 편견 없이 많은 도움을 주셨던 그리드님과 피아로님을 다시 볼 수 있음에 그는 벌써부터 행복했다.

하지만 감동적인 재회는 쉽게 성사되지 않았다.

“이곳은 당신 같은 살인자가 출입할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한 도시가 아니다!!”

성문을 지키고 있던 레이단의 병사들이 데미안 일행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쿠라 길드와 사투(?)를 벌였던 데미안 일행의 이름이 너무나도 붉게 물들어 있었던 까닭이다.

“아니, 전 이래뵈도 교황입니다.”

“헛소리!!”

“세상에 어떤 교황이 무수한 살생을 저지른단 말이냐!!”

“살인자 주제에 거짓말까지 하다니! 괘씸한 놈! 당장 꺼져라!!”

“…”

데미안은 한참 후에서야 라우엘이 마중나온 덕분에 레이단에 입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그리드는 없었다.

***

동대륙으로 건너가길 희망하는 플레이어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누구보다도 앞서가고 싶은 자들, 서대륙에서는 도태되었기에 새로운 땅에서 반전을 노리는 자들 등등.

온갖 군상들이 동대륙으로 건너가고자 부단히도 애썼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는 부자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동대륙으로 건너가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사해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극소수의 사람들.

20억 유저 중 채 1,000명도 안 되는 사람들은 동대륙을 향하는 방법을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수많은 연계 퀘스트를 클리어함으로서 숨은 현자 스틱세이의 존재를 파악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 동대륙을 건너간 사람은 채 10명도 되지 않았다.

번헨 열도.

총 66개의 섬이 일렬로 늘어선 그 <인스턴트 던전>을 돌파하기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던 까닭이다.

“후우.”

긴 시간 모험한 끝에 번헨 열도에 도착한 그리드가 침착하고자 심호흡했다.

이름난 하이랭커들조차 첫 번째 섬에서 대부분 탈락할 거라던 크라우젤의 말을 떠올리며 긴장하는가?

아니다.

그리드는 오히려 자신감으로 충만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이유는 혹 방심하여 화를 부르지 않기 위함이었다.

“자, 시작해볼까.”

만반의 준비를 끝낸 그리드가 육지와 섬을 잇는 기다란 목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교 끝에서 알림창과 마주쳤다.

[인스턴트 던전 <번헨 열도>에 진입하시겠습니까?]

“그래.”

[<번헨 열도>의 출입제한 인원은 1명이며, 탈출 방법은 알 수 없습니다.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도 진입하시겠습니까?]

“간다.”

그와 동시였다.

그리드의 몸이 게이트로 빨려 들어갔다.

***

“오래간만의 도전자로군.”

숨은 현자 스틱세이.

그가 응시하고 있는 마법구 속에 흑발 사내의 모습이 비췄다.

그를 유심히 살펴본 스틱세이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흥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차피 바로 탈락할 테지.”

첫 번째 섬은 도전자의 체력을 극한까지 떨어뜨린다. 끔찍한 한계에 직면하여 결국은 자멸하게끔 유도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대부분의 도전자가 첫 번째 섬에서 목숨을 잃었었다.

스틱세이는 저 흑발의 사내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 여겼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허억!! 아, 아니, 어떻게 저런…!!”

심드렁하기만 하던 스틱세이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무슨 귀신이라도 본양 기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섬.

20분 동안 ‘무한히’ 생성되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버티는 것이 목적인 그 섬을 공략하는 방법은 지형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고지를 점령한다거나 협소한 장소로 이동함으로서 몬스터에게 공격당하는 반경을 줄이는 것.

그것이 일반적인 공략법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략법을 알더라도 20분을 버티지 못했다. 체력에 한계라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흑발의 사내는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공략법을 지키지도 않고 쉽사리 첫 번째 섬을 클리어했다.

각자 무기를 거머쥔 4개의 황금 손을 소환하더니, 몬스터들의 리젠 지점에 대기시킨 후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족족 썰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현자 스틱세이마저도 당혹케 만드는, 상식 파괴의 수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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