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18권 - 6화
일본 극우 세력들이 세운 무시무시한 계획이란?
“데미안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거다. 공포와 절망을 맛보여주고 두 번 다시는 그리드와 엮이지 못하게끔 우리가 통제하도록 하자.”
“잘 길들인 다음 철저히 이용해서 일본 국적 길드들의 세력을 강화시키면 되겠군.”
“다음 국가대항전에 참가할 예정인 랭커들 위주로 후원해주자고. 랭커 1명당 레베카교의 힐러 10명씩 붙여주면 국가대항전까지 광렙하지 않겠어?”
그렇다.
이들은 애국이라는 미명 하에 무력을 이용, 한 사내의 삶을 자신들 멋대로 지배하려하고 있었다.
완벽한 인권침해이며 참으로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발상이 아닐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야 그리드 그놈을 짓밟아 놓고 싶지만.’
어디까지나 마음일 뿐이다.
일본 극우 세력들은 그리드를 건드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7대 길드 연합조차도 어쩌지 못한 그리드를 위협할만한 힘이 그들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강자에겐 약하게, 약자에겐 강하게.
대규모 혐한시위는 밥 먹듯이 개최하면서도 반중시위는 소규모로 찔끔찔끔 개최해왔듯이, 일본 극우 세력들은 본인들 스스로 현명하다 믿는 선택을 내렸다.
근본적인 문제인 그리드는 외면하고, 상대적 약자인 데미안에게 화살을 겨냥했다.
한데 이들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데미안은 결코 약자가 아니다.
1년 가까이 비공식 랭커로 활동 중이라고는 하나, 그는 본래 하이랭커 출신이며 최초의 유니크 클래스 전직자다. 심지어 이제는 교황으로까지 등극했다.
단언컨대 최강의 반열에 오른 인물 중 하나였다.
다만, 그리드와 놓고 비교하다보니 허접해보일 뿐이지…
***
라우엘은 세계정세에 늘 관심을 가졌다.
Satisfy를 플레이함에 있어서 폭 넓은 정보의 수집은 기본 소양이었고, 각국의 이슈를 챙기는 일은 정보 수집에 큰 도움이 되었던 까닭이다.
“어?”
이른 아침.
Satisfy에 접속하기에 앞서서 해외 토픽들을 살피던 라우엘이 일본발 소식을 접하고 당황했다.
<데미안 교황! 레이단에 레베카 여신의 신전을 세우겠다고 공표!!>
“이 인간이…!”
라우엘의 고운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템빨단과 레베카교의 협력 관계, 은밀하게 진행시켜야한다고 몇 차례나 충고하지 않았던가?
실제로 데미안의 유세활동 기간 동안 그리드와 후로이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했었다. 데미안의 유세활동을 돕되 플레이어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 노력했었다.
교황 후보 연설식 당일, 뜻하지 않게 방송을 타는 바람에 접점을 의심 받았으나 무마시키고자 최선을 다하기도 했다.
한데 데미안이 모든 노고를 수포로 돌리고 있었다.
“대놓고 그리드님의 빠돌이가 되다니!”
영향력 있는 종교일수록 편파적이어선 안 된다. 늘 중립의 자세를 고수함으로서 만인에게 평등해야만 했다. 특정 세력과 결탁하였다가는 다른 세력들의 반감을 사고 영향력이 약화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Satisfy에 접속한 라우엘이 데미안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제 충고를 무시해서 어쩌자는 겁니까? 교황으로서 그리드님과 템빨단을 돕되 은밀해야만 한다고 내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게임 내외적으로 압박을 너무 많이 받아서 언제까지고 중립의 자세를 고수하기가 힘들었거든요. 저는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게임 내외적으로? 일본의 극우 집단 말고도 당신에게 압박을 가하는 세력이 또 있었단 말입니까?
-네, 사하란 제국이 레베카교를 국교로 삼고자 시도하는 중입니다.
라우엘의 안색이 굳었다.
국수주의 사상으로 물든 사하란 제국이 대륙 최대 종교를 국교로 삼는다?
그 여파는 어마어마할 것이었다. 제국인이 아니면 레베카 여신을 섬기는 일 자체가 법으로 금지될 수도 있었다.
그만큼 사하란 제국의 파워는 막강했다.
현재 서대륙에는 총 17개의 국가가 존재하고 있지만 그 모든 국가가 제국의 통치하에 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사하란 제국…’
적이 없어 세상이 쉬우니 점차 더 오만해지는가.
‘네놈들에게 레베카교를 넘길 것 같았으면, 굳이 데미안을 교황으로 세우지도 않았다.’
냉소한 라우엘이 서대륙 지도를 펼쳤다. 그리고 사하란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몇 개의 왕국을 주시하며 머리를 굴렸다.
***
가시덩굴 숲.
레이단과 사하란 제국을 잇는 길목 중 하나로서 살신(殺神) 페이커의 전설이 시작된 장소다.
“여기서 아이스 플라워 길드가 페이커 한 명에게 전멸 당했다지?”
“그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믿어? 아이스 플라워 길드는 7대 길드의 한축을 담당하는 최강의 길드인데 설마 페이커 한 명에게 당했을까.”
“맞아. 봉드레 혼자서도 페이커와 맞수를 펼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그리드가 템빨단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서 과장된 소문을 퍼뜨린 거겠지. 하여튼 조센징들의 허풍은 알아줘야한다니까.”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 길드, <사쿠라> 소속의 플레이어 180명이 숲 곳곳에 은신하고 있었다.
이들의 목표는 데미안.
잠시 후면 이 길목을 지나 레이단을 향하게 될 매국노를 납치, 감금하는 것이 이들의 첫 번째 과제였다.
“이쯤에서 대기하면 되겠지. 매국노에게 조국을 배신하려한 대가를 똑똑히 치르도록 해주자.”
“그 빌어먹을 그리드 놈의 영지에 신전을 세워주겠다니, 자이니치가 분명해.”
“워워, 살기를 억누르라고. 우리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될 녀석을 흥분해서 죽여선 안 되잖아.”
이를 갈며 벼르는 사쿠라 길드원들.
잠시 후, 그들은 긴 행렬이 숲에 진입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해피 쨩~ 힘들지 않아? 내가 업어줄까?”
“교황성하, 부디 체통을 지키세요.”
“힘들어하는 소녀들을 외면하는 것이 체통이라면, 나는 평생 체통을 지키지 않겠어.”
“…”
“자~ 해피 쨩, 어서 업혀. 응? 부끄러워서 그래? 완전히 카와이네. 이렇게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네.”
“꺄악! 교황성하! 소녀는 힘들지 않아욧!!”
사쿠라 길드원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데미안 놈, 약 200여명의 어린 미소녀들만을 대동하여 교황행렬을 이루고 있는 게 아닌가?
오타쿠라고 들었는데, 거기에 추가로 로리콘이기까지 했다.
“저놈이 교황이 되더니 세상 제대로 즐기는군.”
“여정에 소녀들을 대동하여 하렘을 이루다니…!”
“로리제국의 황제라도 될 셈인가!”
끼릭!
치를 떤 사쿠라 길드의 마스터 요시무라가 활시위를 당겼다.
한때 궁사 랭킹 2위로서 잘나갔던 실력자의 활이 정확히 데미안의 심장을 겨눴다.
“우선 한 발 먹어라!”
피잉-!
속사가 쏘아졌다.
요시무라가 궁사 랭킹 4위까지 추락하였다고는 하나, 그 활솜씨를 우습게 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는 드물었다.
사방팔방 어지러이 자라있는 가시넝쿨들의 틈새를 신속하고도 정확히 돌파한 화살이 데미안의 심장에 직격…
“…해야 하는데?”
요시무라가 경악했다.
화려한 백색의복을 걸친 데미안의 뒤를 따르던 200여명의 미소녀들.
나이가 10세부터 15세로 추정되는 그 어린 소녀들이 일제히 창, 칼, 방패를 꺼내 쥐더니 요시무라의 화살을 막아내고 데미안을 호위하는 것이 아닌가?
‘화살의 기척을 읽고, 심지어 막았다고? 그것도 요시무라가 쏜 화살을?’
‘꼬맹이들이 제 몸보다 큰 창칼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다니?’
‘대열을 정비하고 진형을 펼치는 속도가 마치 잘 훈련 받은 병사들 같다!’
사쿠라 길드원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저토록 어린 소녀들이 어찌 저토록 훌륭한 실력과 기민한 움직임을 선보일 수 있는가, 그들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질 않았다.
“…”
깊은 숲이 정적으로 물들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숨어있는 사쿠라 길드원들과, 창칼을 꺼내 쥔 채 숲 속을 노려보는 미소녀들.
그들의 중심에 선 데미안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렸다.
“레베카의 딸 후보들에게 싸움을 걸다니, 빠가야로들이네.”
사쿠라 길드원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레베카의 딸 후보들이라고!’
레베카교는 신성력과 용력을 타고난 소녀들만을 선발, 비밀리에 교육하여 신기(神器)를 다루는 지상최강의 성기사로 육성시킨다.
그리고 이 지상최강의 성기사를 지칭하는 이름이 바로 ‘레베카의 딸’이었다.
저 소녀들이 그 후보들이라니?
‘제길! 레베카의 딸 후보들은 레베카교의 비밀 신전에서 은밀하게 육성되는 게 아니었나? 어째서 데미안과 함께 다니는 거지?’
‘아직 신기를 다루지 못하는 어린 소녀들일지라도 엄청 강하다던데…!’
사태가 심상찮게 돌아감을 깨달은 사쿠라 길드원들이 혼란스러워했고,
“여신의 눈.”
파앗-!
데미안의 손끝으로 황금색의 성스러운 빛이 응집되더니 이어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교황은 레베카 여신의 비호를 받습니다.]
[레베카 여신의 시선이 당신의 반경 300미터 이내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탐지합니다. 마족과 언데드계열 몬스터에게는 큰 피해를 입힙니다.]
“정확히 180명인가.”
데미안의 깊은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소녀들의 고운 손에 피를 묻히게끔 만들고 싶지는 않아. 내가 직접 나서겠다. 여신의 가호.”
파앗-!
파파파파파파팟!!
그것은 장관이었다.
어두운 숲을 일순 환하게 비추는 초록색의 빛줄기 200여개가 하늘로부터 떨어지더니 데미안과 소녀들의 몸에 작렬했다.
[여신의 가호 효과로 자신과 파티원의 모든 능력치가 5분 동안 10퍼센트 상승하고, 타격을 1회 무효화시키며 8,000의 데미지를 흡수하는 보호막을 생성합니다.]
“크윽…!”
숲 속에 숨은 채 데미안을 주시하던 사쿠라 길드원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데미안과 소녀들을 감싼 초록빛 줄기의 강렬함이 눈을 부시게 만들 정도였던 탓이다.
주춤거리는 그들이 가장 많이 집결해있는 지점을 향해서 데미안의 시선이 꽂혔다.
“여신의 격노.”
지이이이이잉-
데미안의 등 뒤로 지름 3미터가량의 거대한 마법진 2개가 빠르게 생성되었다.
‘저게 뭐지?’
사쿠라 길드원들은 데미안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당연했다.
교황의 스킬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 유저 중에 그리드밖에 없다.
“죽으세요.”
데미안의 선언이 신호였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앙-!!
마치 대전차포를 보는 듯하다.
데미안의 등 뒤로 생성 되었던 2개의 마법진들로부터 거대한 빛줄기가 쏘아졌고, 그것은 직선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집어삼켜버렸다.
숲의 절반이 소멸해버리는 수준이었다.
[파티원 긱스가 14,1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파티원 긴지가 15,5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파티원 로크맨이 14,99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파티원 요시무라가 12,1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파티원 오로치가 9,9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파티원…]
[파티…]
…
..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쿠라 길드원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최소 210레벨이 넘는 길드원 수십 명을 단 일격에 중상 입히는 대단위 스킬을 단 몇 초 만에 발동시키다니?
이거 완전히 사기 아닌가!
“어떻게…! 어떻게 플레이어가 이렇게 강할 수 있지! 이건 말도 안 된다! 언밸런스라고!!”
데미안이 코웃음 쳤다.
“재임기간 1년밖에 안 되는 교황 한정판 스킬인데 이 정도 위력은 발휘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당신들 레벨이 너무 낮기도 하고.”
“이익! 네놈이 교황만 아니었어도 우리가 그냥 이길 수 있었는데!!”
“내가 교황인거 알고도 덤빈 댁들이 멍청한 거죠.”
“교황이 이렇게까지 센 줄 몰랐다! 제길! 우라질! 네놈 따위, 원래라면 우리가 쉽게 묵사발을 내놓았을 텐데!!”
참으로 파렴치한 놈들이다.
하아, 한숨을 토해낸 데미안이 검을 뽑아 쥐었다. 그리고 백색의복을 벗어던지더니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갑옷을 무장했다.
‘이사벨 쨩, 린 쨩, 루나 쨩 사랑해.’라는 문구가 필기체로 멋지게 음각되어 있는 갑옷이었다.
“내가 교황의 힘을 사용하지 않아도 당신들 따위.”
터엉-!
데미안의 신형이 사쿠라 길드의 마스터, 요시무라의 지척으로 날아들었다.
그 빠르기가 성기사치고는 제법이었기에 놀라면서도 요시무라는 침착하게 활을 쐈다.
회심의 일격이었지만 데미안이 몸에 두르고 있던 빛의 보호막에 화살이 상쇄되었다.
“그냥 이긴다고.”
“……!”
서걱!!!
엄청난 실력이었다.
데미안은 잔뼈 굵고 민첩성도 높은 요시무라가 미처 완전히 회피하지 못하고 상처를 입을 수준의 검술을 구사했다.
최초의 유니크 클래스 전직자이면서 교황이기도한 데미안의 무력, 사쿠라 길드가 상정한 범위를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오타쿠라는 이유만으로 우습게 보이는 경향이 있는 데미안의 실력은 사실 대단했던 것이다.
다만 그리드와 놓고 비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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