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18권 - 3화
[치명적인 일격을 당했습니다!]
[<백운도포(유니크)>의 내구력이 15 하락합니다.]
[<백운신발(유니크)>의 내구력이 21 하락합니다. 파손의 위험이 있습니다.]
[<백아도(레전드리)>의 내구력이 9 하락합니다.]
[대련 모드 중에는 사망하지 않습니다. 생명력이 최소치가 되어 대련 모드가 종료됩니다.]
Satisfy가 오픈하고 지금까지 쭉 정점으로 군림해왔던 크라우젤.
하늘 밖의 하늘이라 칭송 받아온 그가,
‘졌다.’
피아로와 싸운 직후였던지라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었고, 이게 내 패배의 원인이다?
구차하다.
‘노력에서부터 졌다.’
변명에 가치는 없다.
좌절을 맛볼 때마다 변명 따위를 늘어놓았더라면, 지금의 크라우젤은 존재하지 않았을 터였다.
쏴아아아아아아--
무너진 하늘에 대한 애도인가.
푸르던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는가 싶더니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크…윽!”
솟구치는 선혈 사이, 그리드와 시선을 교환하던 크라우젤의 몸이 맥없이 구부러졌다. 이어서 추락하려하는 그를 그리드가 붙잡아주었다.
“조심해.”
“…?”
“개피로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잖아.”
퉁명스레 말하면서도 팔에 힘을 싣는 그리드였다. 제 한 몸 가누기 어려워할 정도로 지쳤음에도 말이다.
그의 목덜미에 뺨을 기댄 크라우젤이 피식 웃었다.
“생명의 은인이니 감사해야하나.”
“당연하지. 나 아니었으면 낙사해서 경험치 잃었을 거다.”
“…그래, 덕분에 앞으로도 계속 랭킹 1위를 해먹을 수 있겠군.”
“내가 빼앗으러 가기 전까지, 그 자리 잘 지키라고.”
“나보고 100년도 더 넘게 게임만 하라는 뜻인가.”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려나.”
지속적인 운동을 통해서 체지방을 줄였다고는 하나, 그리드는 기본적으로 골격이 좋았고 굵은 눈썹과 높은 콧대를 지닌 인물이었다.
어느덧 20대 후반에 접어들고 한층 더 성숙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되었으니 사내다운 매력이 컸다.
반면 크라우젤은 중성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미남자였다. 고집스러운 눈매에 고운 피부, 그리고 붉은 입술과 잘 정돈 된 흑발이 슬림한 몸매와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두 사내가 나란히 몸을 기댄 채 서서히 지상으로 강림하는 모습, 여성들에게 묘한 자극을 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질투 날 정도로 잘 어울리네.’
너털웃음을 흘리는 지슈카.
‘이제 나는 남자에게까지 밀리는 걸까.’
좌절하는 유라.
‘오빠가 여자와 사귀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남자랑 사귀게 만드는 편이…’
위험한 생각을 품는 루비.
세 미인과 템빨단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사히 낙하한 두 사내, 그리드와 크라우젤이 서로를 잠시간 응시했다.
‘이자와 또 싸워도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남자다.’
그리드는 크라우젤에게 경외심을 품었다. 열등감으로부터 비롯되었던 저급한 질투, 완전히 지워버렸다.
승자의 여유?
그런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이는 순수한 존중이었다.
노멀 클래스 전직자이면서도 나를 수세까지 몰아넣은 강자, 크라우젤.
그를 그리드는 동경하게 되었다.
한편, 크라우젤 또한 그리드에게 비슷한 감정을 품었다.
하늘로부터 재능을 물려받지 못했음에도 최고의 실력자로 거듭난 그리드. 그가 그간 감내해왔을 고충과 노력을 엿보고 존경심마저 느꼈다.
크라우젤이 질문했다.
“세력과 지위, 그리고 가족과 동료들에게 얽매이면서도 성장할 시간이 있었나?”
그리드가 반문했다.
“사람이 혼자서도 성장할 수 있는 건가? 난 못하겠던데.”
“…내가 말하는 성장의 개념과 당신이 말하는 성장의 개념이 다소 다른 듯하군. 하지만 뭐, 잘 알았다.”
크라우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잠시 쏟아졌던 소낙비가 그치고 다시금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를 등진 크라우젤의 입가로 짙은 미소가 번졌다.
“보기 좋다.”
상처투성이 그리드의 주변으로 군집해있는 사람들.
템빨단에 소속 된 이름난 랭커들과 아기 로드, 그리고 성녀 루비와 피아로에 이르기까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오직 그리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하면서도 자랑스러워하는 눈빛들을 보면, 그들이 그리드를 얼마나 아끼는지 엿볼 수 있었다.
최고이고 싶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더 앞서나가야만 한다.
혼자, 빠르게.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 고립되었던 크라우젤에게 있어서 그리드는 새로운 감명을 주는 존재였다.
“언젠가 연이 닿는다면 또 보도록 하지.”
늘 그랬듯, 홀로 떠나려하는 크라우젤을 그리드가 붙잡아 세웠다.
“대장간에 들렀다가 가. 아이템 수리해줄 테니까.”
“이 이상 빚을 지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수리비 받을 건데 뭔 빚? 어서 갑시다, 고객님.”
“…”
***
“어떻게 된 일이죠?”
지슈카의 질문이었다.
랭킹 1위 크라우젤이 어떠한 경위로 레이단을 찾아왔으며, 어쩌다가 그리드와 대결하게 되었는지.
지슈카는 물론이고 템빨단원 모두가 작금의 사태를 궁금해 하고 있었다.
“그건…”
피아로가 솔직히 설명했다.
덕분에 자초지종을 알게 된 템빨단원들이 기대감에 휩싸였다.
‘크라우젤이 피아로님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고?’
‘이거 잘하면…’
‘크라우젤도 템빨단에 들어오게 되는 거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대박이다.
템빨단의 전력은 최강이라고 단언할 수준까지 비약할 터였다.
***
<+8백운도포>
등급:유니크(세트)
내구력:150/389 방어력:317+168
*모든 속도 5+1.5퍼센트 상승.
*회피율 10+3퍼센트 상승.
-세트 아이템 3개 장착 시:방어력+300, 회피율+5퍼센트.
-세트 아이템 5개 장착 시:방어력+600, 회피율+12퍼센트.
동대륙인들이 즐겨 입는 의복입니다.
형식은 평범하지만 기능은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청표범의 수염으로 짠 비단을 재질로 사용하였으므로 뛰어난 방어력과 내구력을 자랑합니다.
무게:411
사용 조건:레벨 300 이상. 백의 검객, 싸울아비, 도사, 신선 등.
<+8백운장갑>
등급:유니크(세트)
내구력:11/190 방어력:53+36
*낮은 확률로 3연격 발동.
*공격 속도 4+1퍼센트 상승.
-세트 아이템 3개 장착 시:방어력+100, 회피율+5퍼센트.
-세트 아이템 5개 장착 시:방어력+250, 회피율+12퍼센트.
…
..
<+9백운신발>
내구력:25/210 방어력:120+62
*이동 관련 스킬들의 재사용 대기 시간 15-5퍼센트 감소.
*이동 관련 스킬들의 효과 10+4퍼센트 상승.
…
..
대장간.
크라우젤의 방어구들을 살펴본 그리드가 확신했다.
‘싸울아비, 도사, 신선이라니… 이곳 서대륙이 서양의 문화를 본뜬 것처럼, 동대륙은 동양의 문화를 본뜬 게 분명하군.’
도포의 생김새부터가 조선시대 양반들이 입고 다니던 것과 상당히 흡사하다.
또한.
‘파그마의 옷차림도 이랬지.’
나는 어쩌면. 아니, 매우 높은 확률로 동대륙을 방문해야할 일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Satisfy를 플레이하면서, 동대륙에 대한 이야기들을 꾸준히 접해왔다. 심지어 저 피아로가 습득하고 있는 <무상 검법>의 스킬 설명에조차 동대륙에 대한 언급이 있었을 정도다.
그 과정에 알게 됐다.
동대륙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해를 넘어야한다는 사실을.
사해를 넘어?
사실상 동대륙에 진입하기란 불가능하단 뜻이다.
‘크라우젤은 어떻게 동대륙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걸까?’
그리드는 궁금했다. 크라우젤에게 이것저것 묻고 싶었다.
하지만 섣불리 입을 열진 않았다.
크라우젤이 동대륙까지 도달하는 일이 어디 쉬었겠는가?
가치 높은 정보를 무턱대고 요구하여 염치없는 놈이 되고 싶진 않았다.
이는 자존심이기도 했다.
호기심을 억누른 그리드가 질문했다.
“세트 아이템이잖아? 나머지 두 부위도 다 꺼내. 한꺼번에 수리해줄 테니까.”
“그것들이 전부다.”
“…나와 싸우면서, 방어구를 고작 세 부위밖에 착용하지 않았었단 뜻이야?”
사실은 두 부위다.
장갑은 착용하지 못했었으니까.
하지만 크라우젤은 굳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뭐라고 해봤자 패자의 핑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피아로 형님을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여튼 대단하군.”
혀를 내두른 그리드가 백운도포와 장갑, 신발들의 수리를 시작했다.
전설의 대장장이답게 천 계열 방어구도 수준급으로 제작할 수 있는 그리드였으니 도포의 수선은 어렵지 않았다.
신의 경지를 넘보는 극상의 손재주에 감탄한 크라우젤이 슬그머니 백아도도 내밀었다.
“이것도 수리해줬으면 싶군.”
“기꺼이.”
방어구를 전부 수리한 그리드가 백아도를 받아 쥐었다. 그리고 감탄했다.
‘역시 대단하다.’
<+9백아도>
등급:레전드리
내구력:170/409 공격력:915+486
*공격 속도 7+2퍼센트 상승.
*스킬 데미지 10+5퍼센트 상승.
*대상의 방어력 20+10퍼센트 무시.
*3콤보 성공 후 베기 형태의 공격으로 대상을 적중시키면 추가 피해.
33 대악마 중 하나인 드라시온이 애용하던 무기입니다.
무게:887
사용 조건:레벨 310 이상. 고급 소드 마스터리 레벨 5 이상.
‘겁나 아픈 이유가 있었어. 이걸 어떻게 9강까지 했냐… 돈도 오지게 많나보네.’
레전드리 아이템의 강화 확률은 극악이다.
<강화 확률 상승>이라는 패시브 스킬을 보유한 그리드조차도 실패작을 +9까지 강화하는데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었을 지경이다.
크라우젤이 백아도 강화에 얼마나 큰 돈을 썼을지 가늠하기가 도통 불가능했다.
‘어쨌든 기가 막힌 성능이군.’
백아도. 무려 대악마의 애병답게 무척이나 뛰어난 무기다.
옵션의 종류가 다소 부족하지만 단점이 되지 않았다. 꿀 같은 옵션만 귀속되어 있는데다가 기본적인 공격력이 워낙 독보적이었다. 한손 검계의 실패작이라고 봐도 과장이 아닐 수준이었다.
감탄하던 그리드가 문득 의문을 품었다.
‘대악마가 애용했다는 무기치고 설명이 너무 빈약한 거 아닌가? 레벨 제한도 낮고.’
재질부터가 낯설다. 색감을 보면 얼핏 미스릴이 연상되지만 미스릴보다 경도가 몇 배는 뛰어나다.
‘전설의 대장장이조차 알아볼 수 없는 금속이라면…’
블러드 스톤처럼 지옥에서만 채집 가능한 광물을 재료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확한 재질을 알 수만 있다면 대장장이 기술의 경험치가 크게 상승할 텐데…’
잠시 생각해 본 그리드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말이야. 아주 어쩌면, 내가 이 검의 진정한 힘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
검의 진정한 힘을 이끌어낸다고?
<전설적 대장장이의 감정>스킬을 모르는 크라우젤로서는 그리드가 말하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의아해하는 크라우젤에게 그리드가 제안했다.
“내가 만약 이 검의 성능을 업그레이드시킨다면, 그 대가로 당신도 내게 한 가지 도움을 줄 수 없을까?”
게임. 특히 MMORPG에서 템빨이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 불변의 진리를 랭킹 1위 크라우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방어구와 백아도를 큰 돈 들여 고강화 해놨던 것이다.
그렇다.
크라우젤이 방어구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 이유는 백의 검객이라는 클래스가 가진 고질적인 한계점 때문이었지, 템빨을 우습게 여겨서가 아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무려 전설의 대장장이가 아이템 업그레이드를 제안하고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과도 같았다.
“그 거래에 기꺼이 응하고 싶다. 단, 당신이 대가로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올 경우에 나는 대가를 재물로 치르겠다.”
“좋아.”
흡족한 표정을 지은 그리드가 스킬을 전개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감정>을 사용합니다.]
[전설이 된 대장장이가 범인을 초월하는 뛰어난 안목으로 물품을 감정합니다. 대상 물품에 숨겨진 기능이 존재할 경우 숨겨진 기능을 발견합니다.]
[<백아도>의 숨겨진 기능을 발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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