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농법 제4장 밭 갈기.”
콰르르륵!!
휘청거리는 크라우젤이 밟고 선 지면이 순식간에 밭으로 개간됐다.
그 위로 씨앗을 뿌리려던 피아로가 멈칫했다.
휘모리의 후폭풍이었다.
푹. 푹푹.
푸푸푸푸푸푸푸푸푸푹.
빠르고 경쾌하나 위력이 형편없었던 발차기.
별거 아닌 것 같던 그 기술에 타격 당했던 피아로의 육신 곳곳이 동시다발적으로 움푹 파였고,
“쿨럭!!”
피아로의 입에서 한 움큼 검은 피가 쏟아졌다.
이때 크라우젤은 오른 손의 마비를 극복하고 있었다.
“폭풍 검.”
쿠콰콰콰콰콰콰쾅!!
은빛의 검기가 휘몰아치면서 피아로의 낡은 천 옷을 넝마로 만들어버렸다.
연달아 공격을 허용한 피아로의 생명력 게이지가 조금씩 소모되는 게 눈에 띄었다.
하지만 기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도리어 더 올라갔다.
“즐겁구나!!”
주군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강자.
오래간만에 나를 긴장시키는 상대가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
잔뜩 신난 피아로가 수맥을 터뜨렸다.
퍼엉!!
지하로부터 솟구친 물기둥이 크라우젤의 몸을 강타, 허공으로 띄웠다.
지상의 피아로는 씨 뿌리기와 급성장을 연계시키고 있었다.
콰르르르르륵!!
‘레전드리 스킬…!’
시야를 가득 메우며 솟구쳐 올라오는 가시덩굴의 파도를 목도한 크라우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백광보를 통해 허공을 답보, 자세를 고친 그가 백아도를 앞세워 유성처럼 떨어졌다.
<유성 검>의 발현이었다.
쿠콰콰콰콰콰쾅!!
일대가 초토화됐다.
가시덩굴의 파도를 꿰뚫고 유성처럼 떨어진 크라우젤의 기파를 감당치 못한 논밭이 사방팔방으로 흩날렸다.
그 중심에서, 크라우젤의 백아도와 피아로의 호미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유성 검을 평타로 막다니…!’
제아무리 크라우젤이라도 더 이상 침착할 수가 없었다. 초조함을 드러내며 맹공을 퍼부었고, 그를 피아로가 농기구로 막아낼 때마다 천둥과도 같은 금속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피아로는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벌써 내 농기구술의 묘리를 간파했는가!’
크라우젤의 혜안이 피아로를 넘어서고 있었다.
피아로가 사용하는 7개의 농기구를 순차적으로 파쇄시킨 크라우젤이 피아로의 몸에 상처를 늘려나갔다.
순수한 컨트롤 능력과 전투 센스를 기반으로 삼은 선전이었다.
하지만 레벨 차이가 문제였다.
연달아 공격을 허용하는 피아로의 생명력 게이지는 여전히 3분의 2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 공격을 회피한 크라우젤의 생명력 게이지는 절반 이하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움직임이 피아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많아 스태미나의 소모도 빨랐다.
‘백광 검이 통하는 상대였다면.’
실명시킨 후 상위 스킬들을 연계할 수 있었을 터다.
하지만 피아로는 전설이 된 이후 상태이상에 면역했다. 백의 검객의 능력을 100퍼센트 발휘할 수 있게끔 돕는 백광 검이 무용지물인 상대라는 뜻이다.
‘아니, 다 핑계다.’
여태껏 CC기가 통하지 않는 상대를 무수히도 만나왔고 모조리 쓰러뜨렸다. 부족한 부분을 늘 컨트롤 솜씨로 극복했었다.
하지만 피아로에게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크라우젤이 자책하는 그때였다.
“역시 자네에게는 전력을 다 해야겠군.”
급소의 상처만큼은 간신히 피하고 있던 피아로가 의미심장한 말을 꺼내더니 <자연경>을 전개했다.
그와 동시에 증폭된 능력치가 전세를 뒤집었다.
이제 공격을 허용하는 쪽은 크라우젤이 되었다.
자연의 기운을 끌어온 피아로의 신속과 공격력이 크라우젤을 월등히 압도하기 시작했다.
생명력 대부분을 순식간에 손실한 크라우젤의 흑안이 번뜩였다.
“초감각.”
[초감각을 개방합니다.]
[보유 중인 마나를 100퍼센트 소비합니다.]
[앞으로 6초 동안 모든 감각이 인지를 초월합니다.]
[민첩성이 20퍼센트 상승하며 10미터 이내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의 행동을 100퍼센트 예지합니다.]
[6초 후 탈진합니다.]
크라우젤이 지닌 혜안은 그 어떤 스킬이나 칭호의 효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크라우젤이라는 인물 그 자체가 타고난 능력이었다.
거기에 초감각이 덧씌워지자 크라우젤은 비상식적인 존재로 거듭났다.
서걱!
전력을 드러낸 피아로의 신속을 역이용, 완벽한 카운터를 먹이고 치명상을 입힐 정도의 존재 말이다.
‘뭐?’
피아로는 생소한 체험을 하게 됐다.
치명상을 입은 것?
아니, 이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늘 싸워온 피아로는 언제나 상처를 달고 살았으니까.
문제는 본능이었다.
본능이 위험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크라우젤과 맞상대하지 말고 피하라 경고하고 있었다.
‘나보고 도망치라고?’
피아로의 승부욕이 정점을 찍었다.
이 순간, 최강자로서의 존엄을 상실한 그가 그리드를 상대로도 사용하지 않았던 기술을 선보였다.
“무상농법 극의!”
‘이건!’
초감각의 영향으로 초월적 영역에 진입한 크라우젤.
고고한 표정으로 피아로를 농락해나가던 그가 자리를 이탈하고자 시도했다.
항거할 수 없는 위험을 감지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절구질!”
쿠와아아아아앙!!
그것은 재앙이었다.
하늘에서부터 집채만큼 커다란 방망이의 현상을 한, 강기의 집약체가 떨어져 내렸고 그에 강타당한 연병장은 절구통처럼 움푹 파여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레이단 일대가 들썩였다. 마치 대지진이라도 맞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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