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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70화 (165/1,794)

템빨 17권 - 20화

“목표로 했던 경지에 오르기 전, 마지막 벽에 가로막혔습니다. 그 벽을 깨어 부수고자 형님께 대련을 청하는 바입니다.”

“호오, 목표로 했던 경지라. 목표로 했던 경지…”

의미심장한 말이다.

곱씹어본 피아로가 질문했다.

“검성을 말함인가?”

크라우젤은 부정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허허.”

검성(劍聖).

검의 성인(聖人)을 뜻함이다.

검의 진리를 깨우침으로서 극한의 검술을 구사하는 이들은 역사 속에서 늘 최강자였다.

헬가오, 드라시온, 모락스, 아스타로트, 푸르푸 등의 대악마들을 제압하고 육신을 봉인시킨 뮐러 또한 바로 검성이다.

뮐러 이후 지난 100년 동안 탄생하지 않았던 검성.

피아로조차 이루지 못했던 그 경지를 지금 크라우젤이 논하고 있는 것이다.

‘재능이라면 충분했지.’

크라우젤을 처음 만났을 당시 피아로는 무척 놀랐다.

일찍이 대륙 최강의 검사라고 칭송 받아온 자신보다 크라우젤의 재능이 한층 더 위였던 까닭이다.

그래, 피아로는 진작부터 꿰뚫어보고 있었다.

언젠가 날 넘어설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건 필시 크라우젤일 거라고.

‘하지만.’

정작 크라우젤의 성장을 목도하자 묘한 자극이 생긴다.

‘이 내가 문턱조차 넘보지 못하였던 경지를 엿본다고…’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뛴다.

농부로 전업한 이후 상실하였던 호전성이 꿈틀거렸다. 주체할 수 없는 승부욕이 끓어올라 피가 용암처럼 뜨거워졌다.

“과연 그대에게 자격이 있을까?”

이제는 전설이 된 나조차도 넘볼 수 없었던 경지를 이룩할 자격 말이다.

도발적으로 질문하는 피아로의 기분을 헤아린 크라우젤이 진중한 표정을 하였다.

“직접 확인해주십시오.”

피아로가 늘 최강자였듯 크라우젤 또한 그랬다.

무려 20억 유저의 정점으로서 입장에 대한 자각이 있었다. 자신이 남보다 못하다 생각지 않았고 열정과 자부심으로 충만했다.

그에게 정체란 굴욕이며 피아로란 좋은 친구이기에 앞서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었다.

“대련 신청, 받아주실 겁니까?”

“물론.”

피아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서 크라우젤은 퀘스트 전제조건을 달성할 수 있었다.

<검성>

난이도:SSS

전설과 승부하여 이겨라.

전설과의 만남을 성사시킬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참으로 간단명료한 퀘스트다.

하지만 난이도는 허황되다고 표현함이 옳을 정도로 높았다.

아직 전설이 되지 못한 사람에게 전설을 꺾으라니?

이는 실로…

‘재미있는 일.’

그렇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가당치도 않다며 투덜거리거나 욕지거리를 한 사발 지껄였을 일에 직면하고도 크라우젤은 즐거워하고 있었다.

새로운 도전이야말로 그의 열정을 부추기는 기본적 요소였기에.

한편, 휴렌트는 두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검성? 검성이라고! 설마!’

검성 후보라는 고귀한 칭호, 나 외에도 보유한 사람이 또 있었단 말인가!

휴렌트는 밀짚모자 사내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의 실력을 엿봄으로서 내가 정녕 검성을 노려봐도 좋은 입장인지 가늠해보고 싶었다.

하여 밭일도 뒤로하고 사내와 피아로의 뒤를 쫓았다.

***

“찔러.”

“히얍!”

“베어.”

“하압!”

“찍어.”

“흐리얏~!”

열흘 전의 전쟁이 레이단의 병사들을 각성시켰다.

실전에서 훈련의 성과를 톡톡히 맛본 레이단 병사들은 더 이상 신세 한탄 따위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내 가족과 터전, 그리고 연인과 친구들을 지킬 수 있는 힘!

전쟁을 통해서 그것의 중요성을 절실히 체감하였으므로 결코 나태해질 수가 없었다. 이제는 아스모펠이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병사들 스스로가 훈련에 매진했고 훈련의 강도를 높여주길 바랐다.

그리드에 대한 원망 또한 눈 녹듯 사라졌다. 도리어 전보다 더 큰 충성심을 가졌다.

적의 침공을 미리 예측하여 우리를 훈련시켰고, 전장에서 실로 굉장한 무용을 선보였으며, 우리에게 <양산형 그리드 세트>라는 최강의 아이템까지 보급해주셨으니 병사들은 그리드가 그저 존경스럽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어떻습니까, 공자님. 저 용맹한 젊은이들이 바로 그리드 공작각하의 병사들입니다. 실로 믿음직스럽지 않습니까?”

아스모펠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루비의 품에 안긴 채 병사들의 훈련을 지켜보던 로드가 한숨 쉬었다.

“아푸… 푸푸푸.”

“…?”

아스모펠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로드의 태도가 마치 ‘병사들의 수준이 형편없다.’라고 말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뭐지?’

설마 공자님께서 내 말의 뜻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하신 건가?

더군다나 내가 친히 훈련시킨 강병들을 보고 형편없다고?

아니, 애초에 아기가 한숨이라니?

‘…내가 잠시 꿈을 꾸었는가?’

여러모로 납득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아스모펠이었다. 그에게 루비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제 조카는 아직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어요. 말귀를 알아들을 리가 없잖아요? 아기가 뭣도 모르고 보이는 반응에 일일이 괘념치 마세요.”

“…예.”

그래, 내가 너무 과장되게 해석하는 감이 없잖아 있다.

루비의 말에 납득한 아스모펠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연병장으로부터 시선을 뗀 로드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마탑이 있는 방향이었다.

“어머, 이번에는 마법사들이 있는 곳을 구경하고 싶다는 뜻이니?”

루비가 묻자 로드가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본 아스모펠이 기겁했다.

‘역시 말귀를 알아듣고 계시잖은가!’

천재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과장된 것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과장은커녕 도리어 많이 축소된 것이었구나 싶다.

‘태어나고 한 달도 안 되어 성인과 의사소통이 가능하시다니… 과도한 영민함을 보아 훗날 뛰어난 학자나 마법사가 되실 게 틀림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납득이 간다.

공자께서 내가 친히 육성한 레이단의 강병들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을 보이지 않으신 이유, 무재가 아닌 지재를 타고나신 까닭이다.

‘지적능력을 타고나신 대신 무예를 보는 눈이 없으신 거였어.’

아스모펠이 생각하는 그때였다.

“이곳을 사용하고 싶은데 병사들을 물러줄 수 있겠나?”

오랜 친우이자 레이단의 총사령관인 피아로가 찾아와 부탁을 했다.

본래라면 밭일을 하고 있어야할 시간에 그가 찾아오자 아스모펠은 의문이었다.

“무슨 일이기에 그러는가?”

질문하는 아스모펠에게 피아로가 함께 온 밀짚모자 사내를 가리켜보였다.

“이 친구와 대련을 할까하네.”

“호오.”

크라우젤의 기도를 한 눈에 간파한 아스모펠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수라니.’

피아로 이후 저런 자는 처음 본다.

일정을 확인한 아스모펠이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사막 한 바퀴 뛰고 와라.”

광활한 레이단의 사막이 무슨 연병장도 아니고 쉽게 말하는 아스모펠이었다.

솔직히 터무니없는 명령이었지만 병사들은 힘차게 대답했다.

“예!!”

뛰라면 뛰고 죽으라면 죽는다.

이게 현재 레이단 병사들의 자세였다.

채비를 갖춘 병사들이 금세 연병장을 떠났다.

그러자 수천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 연병장에 자리한 인원은 피아로, 크라우젤, 아스모펠, 루비, 로드. 거기에 휴렌트까지 더해 총 6명이 되었다.

나름 기척을 감춘 채 미행했다고 생각했지만 진작부터 감지당하고 있던 휴렌트.

거목 뒤에 숨은 채 염탐하는 그에게 아스모펠이 다가갔다.

“이곳은 외부인 출입 금지다.”

“헉?”

휴렌트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러의 운용을 통해서 기척을 최대한 감춘 나를 순식간에 찾아내다니?

이 아스모펠이라는 자, 필시 피아로와 마찬가지로 대단한 실력자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드 녀석은 이런 괴물들을 당최 어디서 모아온 거지?’

휴렌트 또한 이름난 랭커이지만 네임드 NPC를 만나본 경험은 적다.

네임드 NPC를 부하로 부린다?

그로서는 상상조차 못해본 일이었다.

네임드 NPC들은 Satisfy의 세계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각자 개성이 뚜렷해 부하는커녕 친구가 되기도 어려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리드의 인망에 감탄하고 있는 휴렌트에게 아스모펠이 재촉했다.

“썩 물러나지 않고 뭐하느냐?”

“크음.”

휴렌트는 물러나기 싫었다.

이곳에서 밀짚모자 사내의 실력과 정체를 엿보고 싶었다.

“저도 조금만 구경하면 안 되겠습니까?”

조심스레 묻는 휴렌트에게 아스모펠이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외부인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어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만.”

같은 말을 반복하게 만드는 것이 어지간히도 싫은가보다.

살기까지 발산하는 아스모펠을 보자 휴렌트는 위축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열이 뻗쳤다.

‘오러 마스터인 내가 언제부터 이런 신세가 된 거지?’

제1차 국가대항전에서 그리드에게 5초 만에 패배한 이후, 사냥과 수련을 거듭하여 유니크 등급으로 전직하고 나야말로 최강이 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 유명한 크라우젤과 아그너스 등 또한 내가 이기리라 자신했다. 그야말로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한데 피아로를 만난 후 그 자신감이 지하까지 추락해버렸다.

제아무리 전설이라고는 하나 농부인 상대에게 호미 3방에 제압당해버렸으니 스스로의 실력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썩 물러나겠습니다…”

휴렌트는 금세 꼬랑지를 내렸다.

살아온 이래 이처럼 순한 양이 되어본 것은 그로선 처음이었다.

치욕을 삼키며 연병장을 떠나게 된 휴렌트.

그는 너무나도 의아했다.

5초 로그아웃 사건을 제외하면 늘 강자로서 군림하였던 내가 왜 이곳에선 이토록 약해지는가?

이곳 레이단, 너무나도 기이하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심정이었다.

***

성녀 루비.

그리드의 여동생인 그녀는 대한민국 여고생이다.

명문대 입학을 목표로 하는 입장이었으므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시간이 무척 적었다. 하루 30분이면 많은 편이었다.

하여 절친 예림과 나란히 히든 클래스로 전직해놓고도 여전히 레벨이 낮았다. 진정한 라이트 유저였다.

한데 그런 그녀가 최근에 변했다.

조카 로드가 태어난 이후부터였다.

비록 게임 속 아이일지언정 오빠를 닮아 귀엽고 예쁜 조카다. 루비는 로드를 보면 볼수록 정이 들었고 그 영특함에 매료되어갔다.

하여 루비는 최근 하루 1시간 이상씩 시간을 내어 Satisfy에 접속, 로드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로드를 품에 안은 채 드넓은 레이단 곳곳을 구경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로드도 예쁜 고모와 함께하는 시간을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고모 품에 매미처럼 붙어가지고는 도통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하지만 갓난아기에게는 한계라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하음.”

로드가 하품을 시작했다.

낮잠 잘 시간이 찾아왔다는 신호였다.

“이제 돌아가야겠구나.”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로드를 잠재운 후 로그아웃하고자, 루비가 연병장을 떠나려하는 그때였다.

쩌엉!!

크라우젤과 피아로가 격돌하였고,

“아부?”

졸음에 취해있던 로드의 두 눈이 갑자기 번쩍 뜨였다.

“아부! 아부부부!!”

흥분한 로드가 짧은 두 팔을 연신 휘두르며 뭐라고 소리쳤다.

초롱초롱 빛나는 청색의 눈동자로 크라우젤과 피아로의 대결에 열중했다.

그를 본 아스모펠이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공자께서는 무재까지 타고나셨던 건가…!’

레이단의 강병들을 보고 ‘형편없다.’는 반응을 보이셨던 것, 무예를 보는 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도리어 눈이 너무 높으셨던 거야!’

검호 시절 피아로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는 밀짚모자 사내. 그리고 이제는 전설이 된 피아로.

두 사람 정도의 실력은 되어야 로드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듯 보인다.

아스모펠은 전율에 휩싸였다.

로드가 훗날 어떤 인물로서 성장하게 될지, 그로서도 가늠조차하기가 어려워 소름이 돋았다.

“아부우-!”

점차 심화되어가는 두 고수의 대결에 심취해가는 로드.

아이는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본인이 앞으로 섬기게 될 일곱 스승 중 하나가 저들 중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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