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69화 (164/1,794)

템빨 17권 - 19화

BJ들의 대표적인 수익구조는 달풍선(시청자로부터 받는 재화)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실상 BJ들의 주수입원은 광고에 있었다.

BJ가 방송 중 입는 옷이나 사용하는 소품을 통한 브랜드광고, 화면에 삽입되는 배너광고, 동영상 재생 수에 따라서 순차적으로 증가하는 영상광고 등.

중계 시청자수와 영상 재생횟수에 따라서 BJ의 광고 수익은 큰 폭으로 증가하였고 소위 말하는 인기BJ들의 경우 월 억대의 수익을 우습게 올렸다.

그중의 정점이 바로 바니바니다.

<7대 길드의 레이단 침공전>이라는 특종을 잡아 화려한 재기에 성공한 그의 방송 평균 시청자수는 무려 15만. 세계 각지로부터 몰려온 시청자들은 인종도 다양하다.

방송만 켰다하면 달풍선이 난무했고 그에게 광고를 맡기는 업체들은 최고의 대우를 보장했다.

“그리고 다음 방송이 내 몸값을 더욱 더 올려주게 되겠지.”

달칵. 타닥. 타닥.

바니바니는 3일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식사도 컴퓨터 앞에서 했고 잠도 줄였다. 두꺼운 안경을 쓴 채 영상 편집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좋아, 아주 멋져.”

점차적으로 완성되어가는 10시간짜리 영상이 바니바니는 무척이나 흡족했다.

의연하게 출정하는 렌 왕자.

검호 척슬리를 상대로 분투하는 젊은 기사.

극적인 순간에 나타나 렌 왕자의 군세를 압도한 그리드.

왕실군 병사들을 경험치 덩어리로 전락시켜버린 레이단의 강병들.

결국 그리드 앞에 무릎 꿇게 되는 렌 왕자.

렌 왕자에게 자비를 베풀고 수천 병사들 위에 군림하는 그리드.

덤으로 휴렌트의 별동대를 궤멸시킨 농부까지…

레이단군과 왕실군의 전쟁 영상은 한 편의 블록버스터였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볼거리가 넘쳐났고 시청자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한 소재들이 적재적소에 깔려있었다. 바니바니의 훌륭한 촬영기술과 편집기술 덕분에 지루한 구석도 없었다.

‘특히 마지막 마무리가 압권이다.’

비뚤어진 왕관을 눌러쓰고 오만한 태도로 앉은 그리드가 렌 왕자를 무릎 꿇리는 장면.

간신히 살기를 억누르며 ‘죄를 사한다.’고 말하는 그리드의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깨닫게 될 터였다.

그리드가 몇 수나 앞을 내다보는 영리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드를 단순한 템빨러라면서 비하하고 조롱하던 사람들도 앞으론 말문을 닫게 되겠지.’

바니바니는 그리드라는 캐릭터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거침없는 언행과 절대적인 무력을 행사하면서도 대영주로서의 위엄을 갖췄고, 매 사건마다 극적인 순간에 등장하였으니 수많은 영상의 주인공으로 활용하기에 무척 적합했다.

‘심지어 요즘에는 용모도 좋아지고 있으니 금상첨화야.’

운동을 꽤나 열심히 해왔는지 골격이 한층 더 가다듬어졌다. 특히 날카로운 턱 선이 눈에 띠었다.

실물로 본다면 미묘한 차이겠지만 영상으로는 달랐다. 본래 화면빨이라는 것은 사소한 요소로도 크게 바뀔 수 있는 것이었던 까닭이다.

‘앞으로 더욱 가까이 지내면서 촬영할 기회를 많이 얻으면 좋겠다.’

띠링~

영상편집의 마무리 단계를 밟아가는 바니바니 앞으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발신자는 라우엘이었다.

메일 내용을 확인한 바니바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소문대로 철두철미하네.”

라우엘의 요구 사항은 2개였다.

첫째, 앞으로 그리드와 관련 된 이슈로 얻게 될 수익금의 40퍼센트를 템빨단에 지불할 것.

둘째, 영상에서 그리드가 렌 왕자를 살려 보내는 장면을 삭제할 것.

‘수익분배부터가 평균 시세보다 2배 이상이군…’

그래도 여기까진 감당할 수 있다.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드의 카리스마를 대중에게 각인시킬 수 있을 마지막 장면을 삭제하라니?

왜일까?

바니바니는 한참을 고민해본 끝에야 라우엘의 저의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드가 렌 왕자의 시해자라는 누명을 썼다지?’

이런 상황에서 그리드가 렌 왕자를 살려 보낸 영상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그리드는 렌 왕자의 뒤통수를 친 치졸한 인물로 오해받을 수도 있겠군.’

앞에서는 살려준다 해놓고 결국엔 쫓아가 암살했다는 식의 오해 말이다.

‘렌 왕자를 죽인 범인을 특정해서 지목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더더욱 그렇겠지. 뭐, 애써 해명한다면 오해를 풀 수도 있겠지만.’

본디 대중이란 이슈에 민감하면서도 해명에는 무관심한 법이다.

‘그래,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겠다.’

납득한 바니바니가 영상을 재차 편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틀 후.

그리드와 렌 왕자의 전쟁을 담은 9시간짜리 영상이 바니바니를 통해서 중계됐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바니바니의 기대를 충족시키고도 남았다.

-와… 저 라덴이라는 기사, 실력도 뛰어나고 멋지네요. 주군을 위해서 끝까지 적에게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다니…

-네임드 NPC겠죠? 우리처럼 평범한 플레이어들은 평생 게임해도 못 만나볼 듯…ㅋ

-척슬리가 진짜 오지게 셈. 괜히 검호가 아니네.

-오오! 그리드다!

-미친;; 그리드 센 것 봐라;;;

-우와… 척슬리한테 그냥 발릴 줄 알았더니 아니네… 척슬리 상대하는 와중에도 레이단 병사들한테 경험치 양보해주는 클라스 보셈ㅋㅋ

-어뷰징 지렸다.

-적기사 상대했을 때부터 느낀건데, 그리드 컨트롤 실력이 진짜 많이 늘었네요.

-그러게여. 국가대항전이나 골렘침공전 때랑은 비교가 안 됨.

-황금 손 저거 뭐임;; 개간지;;;

-그리드 뭐여ㅋㅋㅋ나중엔 천수관음이라도 되려는 건가ㅋㅋㅋㅋㅋ

-그리드 오빠 흑화 쓰면 존잘.

-전 백발 버전이 더 좋음.

과거에는 그리드에게 반발심을 표출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심지어 적대감을 품는 사람들도 있었다.

게임 실력이 형편없는 주제에 오로지 템빨로 강해진 그리드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사람들은 도리어 그리드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차츰 더 성장하는 그리드를 보면서, 유저들은 ‘언젠가 우리도 그리드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꿈과 희망을 품었다.

-어?

열광하며 바니바니의 방송 중계를 시청하던 시청자들이 일순 잠잠해졌다.

렌 왕자의 신임을 얻고 2천 별동대를 이끌게 된 휴렌트.

그리드에게 원한을 갚겠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면서 스테임 산맥으로 우회한 그의 앞길을…

-농부?

그렇다.

웬 농부가 가로막았다.

시청자들이 안타까워했다.

-저 농부들 왜 저래ㄷㄷ

-군대의 앞길을 가로막다니… 자살이라도 하려는 건가.

-불쌍하다… 죽겠네.

이게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모든 시청자들이 농부들의 목숨을 걱정했다.

하지만 실제로 펼쳐진 광경은 어떤가?

전설급 광역스킬을 전개하는 농부에게 2천 병사가 도륙이 났다. 휴렌트를 걱정해야할 판이었다.

폭.

“억?”

폭.

“흑!”

폭.

“흐어억!!”

“…”

현재 바니바니의 방송 시청자수는 무려 30만 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유저 최초의 공작 그리드와 일국의 왕자가 전쟁을 벌인다는 타이틀이 걸렸으니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고 시청자가 폭발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수십만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휴렌트는 농부에게 패배했다.

호미에 이마를 3번 연속으로 찍히더니 넝마가 됐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가고 있는 <5초 로그아웃>사건을 넘어서는 파장을 일으킬만한 충격적인 대사건이었다.

이후 한동안 세계는 난리가 났다.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언론에서 그리드와 관련 된 뉴스를 쉴 새 없이 방영했다.

<그리드 공작에게는 최강의 병사들이 있다!!>

<레이단의 미친 농부는 허상 속 존재가 아니었다.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

<한낱 농부마저도 강한 레이단… 레이단의 저력은 어디까지인가?>

“이번 전쟁에서 그리드 공작은 전력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지슈카, 레가스, 폰 등의 템빨단원들은 참전하지 않았음이 그 증거죠.”

“그리드의 실제 전력은 이번 전쟁에서 보여준 것보다 몇 배나 더 강할 게 분명합니다.”

각종 언론과 여론의 초점은 그리드 본인뿐만이 아니라 그리드가 거느린 세력 그 자체에도 집중이 되고 있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그리드의 전력을 표면화된 것보다 2배, 3배 이상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2배? 3배?

우습다.

은기사 길드를 합병시키고 유라까지 손에 얻은 그리드의 전력은 이번 전쟁에서 선보인 것보다 족히 10배 이상 강했으니까.

더군다나 지금.

그리드의 세력은 한층 더 비약하려하고 있었다.

“레이단에 레베카 여신의 신전을 세우도록 하죠.”

제14대 교황 데미안.

유저 최초로 교황의 지위를 획득한 그가 내부를 안정시킨 후 최초의 대외활동을 시작하려하고 있었다.

***

레이단의 광활한 논밭.

휴렌트는 벌써 몇 시간 째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있었다.

피아로의 철저한 감시 아래 모내기를 하느라 한숨 돌릴 틈도 없었다.

“허리를 숙일 때 무릎은 굽히지 마라.”

더군다나 피아로는 쓸데없는 요구 사항도 너무 많았다.

안 그래도 잔뜩 지쳐있던 휴렌트가 결국 참지 못하고 따졌다.

“허리를 숙이면서 무릎은 굽히지 마라니? 그럼 너무 힘들지 않소? 완전히 고문이잖소!”

“힘들 되 그대의 육체를 단련시켜주겠지. 당장 조금 편하겠답시고 수작을 부린다면 단련이 되지 않을뿐더러 장기적으론 육체가 상할 수도 있다.”

“…그런 뜻이.”

휴렌트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적군 출신 포로가 아닌가?

한데 단순한 노동력으로 취급하기보다는 단련시켜주고자 한다.

실제로 <★히든 퀘스트★즐겁고 신나는 수련!>의 클리어 보상은 오러의 위력을 상승시켜주는 것으로서 엄청난 가치가 있었다.

“대체 왜 내게 잘해주는 거요?”

설마 날 그리드의 부하로 섭외할 계획인가?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난 결코 그리드의 부하가 될 생각이 없다. 언젠가 4초 내에 그리드를 무릎 꿇리는 것이 목표다.

경계하며 질문하는 휴렌트에게 피아로는 설명했다.

“앞으로 일주일 후. 나는 알테스 산맥으로 향하는 길의 땅을 대규모로 개간할 계획이다. 그때까지 그대를 최대한 단련시켜 최고의 노동력으로 삼는 것이 내 목표야.”

“…이런 염병. 그럼 그렇지. 이유 없이 잘해줄 리가 없지.”

투덜거리면서도 피아로가 일러준 자세를 지키고자 노력하며 노동하는 휴렌트였다.

퀘스트 보상이 탐났으니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한창 모내기에 열중하고 있는 그때였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형님.”

밀짚모자를 깊이 눌러씀으로서 얼굴과 이름을 가린 사내.

유유자적한 걸음으로 논밭을 가로질러온 그가 피아로에게 친근한 인사를 건넸고,

“성장했는가!”

피아로는 과연 미친 농부답게 다짜고짜 호미를 휘둘렀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불쌍하군.’

휴렌트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밀짚모자의 사내. 기껏 피아로에게 친근한 인사를 건네 놓고도 다짜고짜 공격을 당하니 얼마나 황당무계할까?

심지어 피아로의 호미 공격은 무척 빠르고 변칙적이다.

오러 마스터인 본인조차도 항거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휴렌트는 밀짚모자 사내 또한 이마를 찍히고 주저앉으리라 예측했다.

한데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채앵-!

아름답게 빛나는 은백색의 곡도가 피아로의 호미를 쉽사리 막아낸 것이다.

“헉.”

저 미친 농부의 호미를 막아낼 수 있는 실력자가 존재하다니?

경악한 휴렌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피아로의 두 눈은 이채로 물들었다.

“과거의 내 경지를 월등히 초월한 건가…!”

여태껏 피아로를 전율시킨 사람은 단 두 명뿐이다.

파그마의 후예 그리드와 백의검객 크라우젤.

그렇다.

밀짚모자 사내의 정체는 다름 아닌 랭킹 1위 크라우젤이었다.

“목표로 했던 경지에 오르기 전, 마지막 벽에 가로막혔습니다. 그 벽을 깨어 부수고자 형님께 대련을 청하는 바입니다.”

20억 유저의 정점, 그리고 천외천…

온갖 광오한 칭호를 독식하고 있는 독보적인 존재.

그가 또 한 발, 누구보다도 앞서가려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날.

그리드와 크라우젤이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갖게 된다.

두 남자 모두에게 전환점이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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