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17권 - 12화
훈련, 훈련, 훈련! 그리고 또 훈련!
우리가 왜 이런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야만 하는가?
레이단의 병사들은 늘 의문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나는 훈련량을 당최 납득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터전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보다 강해져야함을 알고 있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잖아? 새 훈련에 적응할라치면 또 새로운 훈련을 시키고, 새 훈련에 적응할라치면 또 새로운 훈련을 시키고. 그게 계속 반복되면 우리보고 무슨 수로 버티라는 거야?”
“군인 출신인 빵집 얀씨가 그러더라. 우리 군대만큼 빡세게 훈련하는 군대는 대륙 전체를 통틀어 봐도 없을 거라고.”
“백부장들도 뒤에서는 투덜거리더군. 우리가 받는 훈련의 수준이 이미 일반병들이 받는 훈련의 수준을 초월했다던데?”
“당연하지. 우리가 받는 훈련 내용 보면 솔직히 특수부대급 아니냐? 미친, 도대체 나중에 무슨 임무를 주려고 사다리 없이 성벽 타는 훈련을 시키는 거야?”
“난 자이언트웜지옥 달리기 훈련이 끔찍하게 싫더라. 폭포처럼 쏟아지는 모래를 헤치고 나아갈 때는 정말이지 쳇바퀴 속의 다람쥐가 된 심정이다. 뒤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자이언트 웜을 보면 소름이 돋고…”
“활로 날아가는 새 쏘아 맞추는 훈련이 젤 어렵고 황당하지 않아? 아니 염병, 우리한테 그만한 활재주가 있었으면 우리가 왜 이러고 살겠어?”
“나는 밭일 시키는 게 가장 납득이 안 되던데? 그거 완전 훈련을 빙자한 노동력 착취 아니냐?”
“하… 공작각하께서는 어찌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건지.”
레이단의 병사들은 그리드를 존경하고 사랑했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조국조차도 버린 이 황폐한 땅에서 굶어 죽어가던 우리를 구원해주신 분이 바로 그리드 공작이었으니까.
병사들은 그리드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칠 각오도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 점차 퇴색되고 말았다.
견디기 힘든 훈련을 강요하는 그리드가 점차 미워지더니 감사함도 사라지고 이제는 증오심마저 피어올랐다.
당연한 현상이다.
그간 레이단의 병사들이 받아온 훈련?
제국 제2기사단인 흑기사단이 받는 훈련과 거의 흡사했다.
어지간한 특수부대들이 받는 훈련과도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도가 높았으니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일반 병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이들은 견뎌냈다.
피아로와 아스모펠.
본래는 제국의 기둥이 되어야만했던 두 사람을 교관으로 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준비!”
서풍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사막.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도열한 레이단의 병사들이 활시위를 당겼다.
지옥훈련을 견뎌내고 독기를 품게 된 이들의 눈빛이 응시하는 곳.
그리드 홀로 고군분투 중인 전장이었다.
“쏴라!”
팟! 파파파파파파파파파팟!!
1천 병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활시위를 놓았다.
이들의 자세는 실로 훌륭했고 화살이 바람을 타는 시점은 완벽했다.
푹! 푸푸푸푸푸푸푸푸푸푹!!
“캬악!”
“힉!”
고급 대장장이 8레벨을 달성한 칸.
알바티노의 후손이자 그리드의 친구이며 제자이기도한 그가 제작한 대궁과 화살들이 상상초월의 위력을 발휘했다.
왕실군은 무려 300미터 거리 바깥에서부터 날아온 화살에 꿰뚫리고 죽는 수모를 당해야만했다.
“다시 준비!”
왕실군 사상자가 늘어남에 따라서 레벨 업을 상징하는 빛줄기에 휩싸이기 시작한 레이단의 병사들!
각자 근력과 체력, 그리고 민첩성이 상승한 그들이 재차 활시위를 당겼다.
독기 충만한 이들의 눈동자에는 그리드가 투영되고 있었다.
‘그리드 공작각하!’
‘당신께서 우리에게 감당키 어려운 훈련을 강요하셨던 이유!’
‘적의 침략을 예견하셨기 때문입니까!’
‘위대하신 각하의 선견지명에 감복할 따름입니다! 무한히 존경합니다!’
오늘.
예상치 못한 침략을 겪게 된 레이단의 병사들은 그리드에게 품었던 오해와 증오심을 말끔히 털어낼 수 있었다. 다시금 충성심을 불태웠다.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홀로 적군에 맞서시다니!’
‘당신의 위용과 용기!’
‘우리의 귀감으로 삼고 더욱 더 정진하겠습니다!!’
아무 생각 없는 쥬드를 대장으로 모시던 시절부터 오지게 훈련만 받다가 처음으로 겪게 된 전쟁이다.
레이단의 병사들은 훈련에 임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였고 이는 솜씨에 큰 영향을 주었다.
“쏴라!”
팟! 파파파파파파파팟!!
아스모펠이 명령함에 따라서 다시금 화살이 창천을 메웠다.
푹! 푸푸푸푸푸푸푸푹!!
“윽!”
“크헉!”
레이단의 병사들은 레벨 업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성장한 바!
더욱 강력해진 화살의 위력을 감당하지 못한 왕실군 수백이 또 죽어나갔고,
“이게 뭐야!”
렌 왕자는 심각하게 동요했다.
고작 그리드 일인에게 5천 군대의 이목이 쏠린 결과 적의 기습을 허용하다니?
충격이 크다.
한 명의 절대자가 발휘할 수 있는 전장에서의 가치, 뼈저리게 느끼며 절망했다.
***
에트날의 제일궁사 페럴은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설마 저들 모두가 궁병인 건가!’
레이단의 1천 병사.
그들이 300미터 거리 바깥에서 쏘는 활의 위력, 일반적인 병사들이 선보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이들이 최소 10년은 꾸준히 궁술을 연마해야 발휘할 수 있는 솜씨였다.
그렇기에 페럴은 혼란스러웠다.
‘본디 레이단은 다 죽어가는 도시였다.’
약 2만의 백성이 아사 직전의 상태로 머물던 도시에 그리드가 부임하고 고작 1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단 16개월 만에 최정예 궁병 부대를 육성할 수 있다고?
어불성설이다.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친히 궁병대를 육성해본 페럴이기에 더욱 더 확신할 수 있었다.
‘또한!’
레이단의 총 병력은 1천이라 들었다.
1천 전군이 궁병일 가능성?
없다.
병과가 하나로 통일 된 군대는 무력하다.
그리드가 정신 나간 얼간이가 아닌 이상 전군을 궁병으로 육성했을 리 만무했다.
‘설마…!’
의문을 품은 채 생각해보던 페럴의 뇌리를 충격적인 가정이 관통했다.
‘저들 전원이 기사라면?’
기사가 갖춰야할 무력적 소양 중엔 궁술이 포함되어 있으며 16개월 만에 저만한 궁술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기사급 재능을 가져야만 했다.
‘이런! 레이단이 완전히 노다지였구나!’
기사로 육성할 수 있을만한 인재가 저토록 널려있었다니!
멋대로 오해한 페럴이 활을 꺼냈다.
대대로 내려져온 가보, 썬더 보우였다.
“레이단…! 그 싹을 잘라주마!”
파칙! 파치칙!!
페럴이 활시위를 당김에 따라서 썬더 보우에 전격이 깃들었다.
이어 섬광이 번쩍이더니 벼락과도 같은 마력의 화살이 5발 동시에 쏘아졌다.
퍼엉-!
퍼퍼퍼펑!!
하늘의 비명소리인가!
천둥과도 같은 파공성이 연달아 발생하였고 이어서 경이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레이단의 1천 병사들.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섬광의 마력 화살들과 대면하게 된 것이다.
“헉?”
“어느새!”
레이단의 병사들은 생사를 오가는 지옥훈련을 견뎌온 정예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이처럼 갑작스러운 위험은 처음 겪었다.
지척까지 날아오는 화살들을 보고 안색이 하얗게 질린 그들의 앞으로 누군가의 신형이 나타났다.
적색의 망토를 펄럭이는 이, 다름 아닌 아스모펠이었다.
적기사단 시절부터 사용해온 장검을 꺼내 쥔 그가 유려함의 극치를 선보였다.
백지 위로 글씨를 써내려나가는 명필가처럼 조용히, 물 흐르듯이 검으로 궤적을 그렸다.
퍼퍼퍼퍼퍼퍼펑!!
“뭣이!”
매처럼 좋은 시력을 자랑하는 페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폭발적인 마력을 내포한 자신의 화살을 검으로 때려 멸하는 존재, 그는 처음 보았던 것이다.
‘심지어 척슬리 단장조차도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는 내 화살을 저토록 쉽게…!’
경악하고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리던 페럴이 이내 정신을 차렸다.
“어디 한 번 이것도 막아봐라!!”
표적을 맞추지 못하는 궁사에게 존재 의미는 없다.
자극받은 왕국제일궁사 페럴이 재차 활을 쏘았다.
이번에 그가 쏜 화살은 앞서 5개로 나눠 발사한 화살보다 위력이 몇 배나 강하고 속도 또한 빨랐다.
콰쾅!
천둥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아스모펠의 코앞까지 날아온 마력의 화살.
아스모펠의 탐스러운 입 꼬리가 위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드 공작각하를 섬기게 된 이후, 내게 활약할 기회가 있었던가?
그간 내가 해온 일이라고는 금화 챙긴 일이랑 병사들 훈련시킨 일밖에 없다.
활약함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던 아스모펠에게 있어서 페럴이라는 실력자는 썩 좋은 상대였다.
적색의 오러를 발현, 페럴의 화살에 힘으로 맞서 끝내 이겨낸 아스모펠이 소리쳤다.
“적장의 목을 베어오겠다!!”
타앗!
모래언덕으로부터 도약한 아스모펠이 적진으로 향하려하는 순간이었다.
“그 활, 좋아 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활을 구성하고 있는 재질이 탐난다.
탐욕이 깃든 눈을 숨기지 못한 그리드가 페럴에게 먼저 도달하고 있었다.
아스모펠은 울고 싶었다.
“주구운! 제게도 활약할 기회를 좀 주십시오!!”
아스모펠의 목소리, 그리드에게 닿지 못했다.
기습을 당하고 혼란에 빠진 수천 왕실군이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전장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푸욱!
“끅…!”
페럴은 오로지 아스모펠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척슬리를 상대하고 있던 그리드가 설마 자신을 기습할 줄 몰랐다.
쉽사리 공격을 허용하고 피를 토하는 그에게 사선을 그리며 회전하는 그리드의 연격이 작렬했다.
[크리티컬!]
[<이야루그트>의 옵션 효과가 발동, 대상의 치유력을 50퍼센트 감소시킵니다.]
[크리티컬!]
[<이야루그트>의 옵션 효과가 발동, 대상에게 3초 동안 유지되는 출혈 효과를 부여합니다.]
[3콤보 달성!]
[대상의 출혈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대상에게 입히는 피해량이 1초 동안 200퍼센트 상승합니다!]
‘지금!’
네임드NPC인지 높은 피통을 자랑하는 페럴을 겨냥한 그리드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파그마의 검무, 극(極).”
서걱!
베기의 극의가 떨어졌다.
연속적인 쾌검에 정신없이 몸을 찔리던 페럴의 가슴으로부터 분수 같은 피가 분출되었고, 내렸던 검을 올려 그를 한 번 더 베는 그리드의 시야로는 고대하던 알림창이 떠올랐다.
[5콤보 달성!]
[대상의 이성을 0.3초 동안 붕괴시킵니다! 나락의 검을 연계할 수 있습니다!]
찰나의 시간.
거듭되는 맹공에 아찔함을 느낀 페럴의 머릿속이 새하얘진 그때였다.
“나락의 검.”
콰직!
콰지지지지지직!!
적색의 검기를 수십 갈래로 토해낸 이야루그트가 페럴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 광경,
“좋아!! 화려해!! 최고야!!!”
쉬지 않고 움직이며 지상과 하늘을 오가는 게임BJ 바니바니가 영상에 담고 있었다.
비탄의 전장을 홀로 휘젓는 그리드의 위용, 시청자들에게 확실하게 전해지리라 바니바니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편.
“페럴!!”
검술을 교환하는 도중 갑자기 마법을 발사한 그리드에게 된통 당하고 쓰러졌던 척슬리.
자신의 방심으로 말미암아 봉변을 당한 페럴을 보고 격노한 그가 그리드의 뒤를 덮쳤다.
“라이징 소드!!”
땅으로부터 솟구치는 듯한 착각을 주는 일검으로서 극단적으로 변칙적인 기술이었다.
척슬리는 이 비장의 기술이 그리드에게 재앙을 선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그리드가 속도에서 앞섬에도 척슬리를 제압하지 못했던 이유는 견고함에 있었다.
큰 기술을 사용한답시고 스스로의 강점을 버린 척슬리는 도리어 허점을 보인 셈이 되었다.
“파그마의 검무, 살(殺).”
쩌어어어엉-!!
교차하는 두 자루의 검이 그리드의 가슴과 척슬리의 허리를 꿰뚫었다.
검술 실력의 차이다.
그리드가 훨씬 더 치명적인 부위에 상처를 입었다.
누가 봐도 척슬리가 승기를 잡는 순간이었다.
“우오오오!!”
“주군!!”
렌 왕자와 왕실군이 환호하였고 아스모펠과 레이단군은 절망하였다.
영상 촬영 중인 바니바니의 얼굴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하지만 단 두 명.
그리드와 라우엘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잡았다.”
덥썩!
가슴을 꿰뚫으며 접근해온 척슬리의 목덜미를 부여잡는 그리드.
“주군의 강점은 검술이 아니라니까요.”
어깨를 으쓱이는 라우엘.
두 사람이 늘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리드는 검사 따위가 아니다.
“템빨러지.”
내가 더 치명적인 부위에 상처를 입어?
뛰어난 방어구로 피해를 최소화하면 된다.
적의 급소를 때리지 못했다고?
뛰어난 무기로 피해를 최대화시키면 된다.
철컥!
철컥철컥!!
그리드에게 붙잡힌 채 숨을 헐떡이는 척슬리의 주변으로 4개의 황금 손이 날아와 손가락을 겨눴다.
이어 쏘아지는 백색 섬광이 전장을 경악으로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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