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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61화 (156/1,794)

템빨 17권 - 11화

교황 후보 에피소드 당시.

그리드는 <리파엘의 창>을 연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무려 신화급 무기를 반복적으로 분해하고 재조립함으로서 이해도를 100퍼센트까지 끌어올렸고, 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가치의 공부가 되었다.

다른 대장장이들은 꿈에서조차 바라지 못할 경험이었다.

“울부짖어라, 야쿠르트.”

아직 유니크 등급에 불과한 이야루그트의 이해도를 올리는 일은 그리드에게 어렵지 않았다. 리파엘의 창의 이해도를 올렸던 일과 비교하면 무척 손 쉬웠다.

그리드는 이제 흑화에 의지하지 않아도 이야루그트를 통제할 수 있었다.

개명에는 실패하고 말았지만.

[이야루그트는 지옥 제일 검마라는 뜻이다! 네놈, 발음하기 어렵다는 허접한 이유로 내 숭고한 이름을 멋대로 바꿔 부르지 마라!!]

이야루그트는 본인의 이름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드를 따르게 되었을지언정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야쿠르트라는 이름, 뜻은 모르겠지만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그리드는 개의치 않았다.

이름이야 뭐라고 불러도, 어찌됐든 명령 전달은 확실하게 되었으니까.

[<이야루그트>에 귀속 된 <피의 울음>이 전개됩니다.]

[반경 30미터 이내의 모든 대상이 1.5초 동안 균형 감각을 상실합니다.]

키이이잉-!

“크윽!”

피의 울음은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리드 주변의 왕실군과 북부군 모두가 고통스러워하며 휘청거렸다.

개중에는 기사들에게 철통같은 호위를 받고 있는 렌 왕자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이 나를 무릎 꿇게 만들다니!’

렌 왕자는 에트날 왕가의 적통이다.

왕위계승서열 1위로서 국왕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여본 경험이 없다.

한데 지금.

그리드가 요상한 기술을 사용한 탓에 잠시나마 무릎을 꿇게 되었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자존심이 산산조각 났다.

‘아니?’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이를 갈던 렌 왕자가 화들짝 놀랐다.

주변을 둘러보니, 왕실군과 북부군 양측의 기사와 병사들 죄다 하나 같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심지어 척슬리 단장조차도 쓰러지기 일보직전으로 보였다.

지금 이 자리에 당당히 서있는 인물?

오로지 그리드뿐이었다.

전장을 압도하는 그 위풍, 고금을 통틀어 등장하는 절대자 중에서도 수위에 꼽을 수준이다.

‘바로 이게 전설의 힘…!’

역시 적으로 삼기 두려운 존재다. 가능하다면 평생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왕이 되기 위해서는 필히 넘어야할 산이라는 게 문제다.

렌 왕자가 질색하는 사이, 그리드는 당황하고 있었다.

“어쭈? 버텨?”

피의 울음은 마나의 소모가 크고 재사용 대기 시간이 길다. 또한 적아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위험성을 내포했다.

대신 그만큼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법인데, 기사단장 척슬리는 비교적 멀쩡하게 버티고 있었다.

상태이상 저항력이 어지간한 보스급 몬스터에 버금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따위 사술에 당할 내가 아니다!”

극도의 정신력을 발휘, 마검이 토해내는 기성을 극복한 척슬리가 그리드의 공격을 방어하더니 이어서 반격했다.

단순한 궤도다.

이야루그트가 알려주는 최선의 검로 덕분에 그리드는 어렵지 않게 응수할 수 있었다.

쩌엉-!!

황금빛 손잡이가 인상적인 척슬리의 장검과 이야루그트가 맞부딪치며 일대의 공기를 사방으로 날려버렸다.

어마무시한 기파였다.

비산하는 흙먼지 사이로 시선을 교환하는 그리드와 척슬리.

냉정침착한 척슬리와 달리 그리드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상대가 예상 외로 강했기에 심히 당혹스러웠다.

‘이 녀석 뭐지?’

상태이상 저항력이 높은 것은 둘째 치고 검술이 묘하다.

기교가 없어 보기엔 만만한데 막상 맞서면 너무 견고하다.

‘이런 건 또 처음인데.’

그리드의 주변은 천재들로 득실거렸다. 그리드 본인과 쥬드 빼곤 다 천재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중에서도 검의 천재를 손에 꼽자면 검호 시절의 피아로와 극검, 그리고 이벨린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

변칙의 달인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형태에 얽매이지 않는 검술을 구사함으로서 상대방을 혼란케 만들고 압도해버렸다.

반면 척슬리는 어떤가?

오로지 기본에 충실함으로서 빈틈을 보이지 않았고 변수를 배제했다.

검술 실력 자체만 놓고 보면 아직 한참 부족한 그리드가 상대하기엔 상성이 매우 나빴다.

아직 경지에 이르지 못한 그리드의 기술들 따위 모조리 차단당했다.

채챙! 챙!!

‘이야, 이거.’

검을 겨루면 겨룰수록 그리드는 척슬리의 강함을 더 확실하게 깨달아갔다.

속도에서만큼은 필시 자신이 앞서고 있건만, 그 이점을 조금도 살릴 수 없으니 감탄밖에 안 나왔다.

‘상태창을 보고 싶군.’

마음 같아서야 대영주의 검으로 스왑, 척슬리의 상세 정보를 불러오고 싶었다.

필시 네임드 NPC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여유가 없었다.

쩌저저저정!!

지극히 정직하나 그만큼 또 빠르고 위력적인 검로가 쉴 새 없이 그리드를 압박했다. 그리드는 방어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좋아! 잘 하고 있소, 척슬리 경!”

무릎을 털고 일어난 렌 왕자는 환희하고 있었다.

그리드를 일대일로 압도하는 척슬리를 목도하고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그리드! 이는 네놈의 오만과 독선이 낳은 결과다!!”

스스로의 힘을 과신하고 5천 적군에 홀로 맞서다니?

그리드의 어리석음이 왕실군을 도왔다.

렌 왕자는 이번 전쟁에서의 승리를 확신했다.

“죽여라! 그리드를 죽이고 그대로 레이단으로 진격하는 거다!!”

고조된 렌 왕자가 목청껏 소리치는 그때, 멀찍이 떨어진 채 영상을 촬영 중인 바니바니는 이를 갈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바니바니가 이번 전쟁 영상의 주인공으로 삼았던 인물은 본래 휴렌트였다.

하지만 휴렌트는 농부에게 순식간에 제압당하였으므로 주인공으로 써먹을 수 없게 됐다.

하여 그리드로 주인공을 바꿔보려 했건만…

‘그리드는 척슬리에게 당하는 건가!’

바니바니는 이런 결과를 원하지 않았다.

그리드가 강한 적들을 상대로 시련을 겪을지언정 끝내 이기길 바랐었다. 하지만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부질없는 바람 같았다.

분개하는 바니바니의 귓가로 누군가의 미성이 들려왔다.

“북부군은 대부분 생존했나보군요. 시간 잘 벌어주고 계시는군.”

“……!”

바니바니는 2차 전직을 완료한 어쌔신이다.

그의 지척까지 일말의 기척도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인물?

최상위 랭커가 아닌 이상 없을 것이다.

즉, 지금 바니바니의 곁으로 다가온 미성의 주인은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 된다.

“당신은…!”

시선을 돌려본 바니바니가 크게 놀랐다.

미성의 주인, 은발의 미청년 라우엘이었다.

10인의 루키 출신으로 국가대항전에서는 미국팀으로 활약했고, 이후에는 그리드의 최측근이 되어서 템빨단을 일으킨 인재다.

유명인을 만나게 되자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바니바니에게 라우엘이 싱긋 웃어주었다.

“방송에서나 볼 수 있던 바니바니님을 실제로 만나니 신기하네요. 생방송 중이신가요?”

“그, 그럴 리가요. 초상권 문제부터 해결해야하니 녹화 촬영을 하는 중입니다.”

“아아, 멍청하지 않으셔서 다행이네요. 나중에 방송하시기에 앞서 저한테 연락부터 주세요. 수익 배분에 대해서 논의해야함이 우선이니까.”

“네, 네. 명심하겠습니다.”

라우엘의 현실 프로필에 명시 된 나이는 올해 20세였다. 바니바니보다 7살이나 연하였다. 하지만 바니바니는 라우엘을 편하게 대할 수가 없었다. 사회에서 중요한 건 나이보다 능력과 입지였으니까.

“라우엘 백작님, 병사들의 준비는 끝났습니다.”

라우엘의 뒤편으로 금발의 미남자가 나타났다.

아스모펠이라는 이름의 NPC였다.

그의 뒤로는 1천의 병사가 집결하여 있었는데 군기가 심상찮았다. 병사 하나하나가 눈에 독기와 살기를 품고 있었으며 질서정연함은 기본이었다.

그들과 비교하면 에트날 최정예라고 평가 받는 왕실군조차도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다.

‘뭔 기세가 이렇게 흉흉해?’

바니바니는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리드가 당최 어떤 방식으로 군대를 훈련시킨 것인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리드는 군대를 육성하는 능력마저도 탁월하구나!’

알면 알수록 대단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는가?

혼자서 적진에 뛰어들은 탓에 죽기 직전인데!

바니바니의 시야가 다시 전장을 향했다.

그리드는 여전히 척슬리와 결투 중이었다.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고는 하나, 그건 척슬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척슬리는 검술 실력으로 그리드를 압도하였고 그리드는 속도로서 부족함을 충당하고 있었다.

호각지세를 이루고는 있으나 척슬리에게는 5천의 병사가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저 5천 병사가 움직이는 순간.’

균형은 깨어지고 그리드는 끝난다.

확신한 바니바니가 초조해져서는 물었다.

“라우엘 님, 그리드 님을 도와드리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라우엘은 느긋할 따름이었다.

그리드와 척슬리의 전투가 궤도에 오름에 따라서 더욱 더 뿌예지는 흙먼지를 청안으로 꿰뚫어 보면서, 머리를 쓸어 넘긴 그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당신은 그리드 님의 실력을 모르나보군요.”

애초에, 그리드의 강점은 검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저 양반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검술 놀이나 하고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초조해할 필요 없어요. 척슬리라는 기사, 필시 강하기는 하지만 여태껏 그리드님이 상대해온 존재들과는 비할 바가 못 되니까요. 그렇죠? 아스모펠 경.”

“상대의 실력, 아직 미흡합니다.”

‘검술 놀이? 검호의 실력이 미흡해?’

바니바니가 귀를 의심했다.

그에게는 라우엘과 아스모펠의 대화가 허황되게만 들렸다.

그 순간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악!!”

누군가의 끔찍한 비명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그새 그리드가 당한 건가!

기겁한 바니바니가 비명이 들려온 방향으로 시야를 줌인했다.

“저럴 수가!”

바니바니가 할 말을 잃었다.

내내 우세를 점하고 있는가 싶던 검호 척슬리가 가슴으로부터 피를 분출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지금입니다.”

라우엘의 지시를 받든 아스모펠이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올라 활을 들어라!”

처억!

레이단의 병사들은 날렵하고 거침이 없었다.

발이 푹푹 꺼지는 모래로 형성 된 언덕을 순식간에 오르더니 활을 꺼내 시위를 당겼다.

‘무슨 생각이지?’

바니바니는 의아했다.

이곳으로부터 그리드가 있는 전장까지의 거리는 약 300미터.

활을 쏘아 표적을 맞추기에는 무리가 큰 거리였다. 설령 운 좋게 맞춘다 하더라도 위력이 크게 감소되어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레이단의 병사들에게는 바니바니가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바로 템빨이다.

현재 레이단의 병사들이 무장하고 있는 대궁은 장인의 경지에 오르기 직전인 대장장이 칸이 설계하고 제작한 것들이었다.

위력과 정확도가 일반적인 활과는 차원이 달랐다.

거기에 기공사 라우엘의 능력이 보태진다면?

“풍룡의 숨결.”

코오오오오오!

바람 한 점 없던 사막을 서풍이 휩쓸기 시작한다.

“발사.”

파팟! 파파파파파팟!!

바람을 등에 업은 1천 개의 화살이 동시다발적으로 쏘아졌다.

전장에서 오로지 그리드에게 시선을 사로잡혀 있던 왕실군은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 세례를 그대로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헐…”

바니바니가 전율에 휩싸였다.

1천 병사가 레벨 업을 상징하는 빛줄기에 동시다발적으로 휩싸이는 장관, 수많은 명장면을 영상으로 담아온 그조차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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