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42화 (137/1,794)

템빨 16권 - 19화

김두현 31세.

훈훈한 외모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남성 배우다.

3달 전, 할리우드 진출작 <살인마의 일기>에서 선악을 넘나드는 연기로 호평을 얻고 월드 스타로 거듭났다. 지난 3달 동안 무려 15개의 CF를 찍었을 정도로 독보적 인기를 구가하게 됐다.

Satsfy 랭커들이 CF시장을 주름 잡고 있는 현 시점에서 김두현의 약진은 다른 배우들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것이었다.

“고작 여고 축제에 참석하겠다고 화보 촬영을 취소하겠다니? 이봐, 두현아. 왜 어리석게 굴어?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지?”

소속사 대표 삼주일이 애타게 설득했으나 부질없었다.

생각을 읽을 수 없는 공허한 눈빛.

그 신비로운 매력 포인트로 창밖을 응시한 채 두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제게는 당장의 돈과 인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저는 꼭 숙녀고 축제에 참석할 겁니다.”

삼주일 대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설마 너, 그 소문이 사실이냐?”

“소문이라뇨?”

“네가 그… 여고생 킬러라는 소문 말이야.”

“…”

두현이 굳게 입을 다물었다. 워낙에 과묵한 성격이기도 했고, 굳이 대답할 가치를 느낄 수 없는 질문이었던 까닭이다.

“하.”

삼주일 대표는 한숨만 쉴 따름이었다. 두현이 혹 여고생을 건드렸다가 스캔들이라도 터지면 인기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터이니 걱정이었다.

***

“검의 수리를 부탁하러 왔소.”

자이언트 길드의 마스터 크리스는 이제 수시로 레이단을 방문하고 있었다.

그로서는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드의 대검을 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그리드 본인밖에 없었으니까.

“그래도 나쁘지 않지? 오가는 길에 사막의 몬스터들을 사냥하면서 제법 짭짤한 경험치와 아이템을 얻을 수 있잖아?”

“부정하진 않겠소.”

크리스는 레이단을 오가는 길에 바실리스크 출몰 지역을 파악했다. 사막의 바실리스크는 3마리가 짝을 이뤄 활동했기 때문에 보통 랭커들은 혼자서 사냥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으나 크리스는 통합랭킹 3위다.

본신의 능력과 노하우를 활용, 바실리스크들을 단독으로 사냥하고 항상 큰 수익을 올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레이단에는 피아로가 있다. 그와 대련할 때마다 실력이 쑥쑥 올랐으니 크리스의 마음 같아서야 레이단에 쭉 머무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오늘은 4골드를 깎아주지. 599골드만 내.”

“…”

애초에 바가지를 씌우는 주제에 선심 쓰듯 말하는 그리드였다. 얄밉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600골드가 채 안 된다고 하니 조금은 싸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니, 싸긴 개뿔! 상술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퍼뜩 정신을 차린 크리스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수리비를 지불했다. 그리고 곧바로 떠나려다가 문득 멈췄다.

“최근 블러드 카니발 길드의 유명인 사냥이 점점 도가 지나치고 있더군. 당신도 조심하도록 하시오.”

“블러드 카니발?”

템빨단원들이 종종 아그너스라는 인물을 주의하라고 말했었다.

그리드는 블러드 카니발이라는 곳이 아그너스와 관련이 있는 건가 싶었다.

“아그너스가 소속 된 길든가?”

크리스가 한숨 쉬었다.

“페이커를 부하로 둔 것 치고는 정보력이 취약하군. 아니면 단지 정세에 관심이 없을 뿐인가? 아그너스와 블러드 카니발은 아무런 관계도 없소. 블러드 카니발은 전원 비공식 랭커들만으로 구성 된 집단이니까.”

“강해?”

“강한 것은 물론이고 야비하기까지 하지. 일단 놈들에게 표적이 되면 무사할 수 없다고 봐야하오. 위험성이 아그너스와 동급이야. 그러니 조심하시오. 당신이 당해서 내 무기 수리를 맡기기가 난처해지면 그것도 또 골치니까.”

“흐음… 명심하도록 하지.”

크리스의 말투는 조금도 상냥하지 않았다. 하지만 호의를 보이고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미소지은 그리드가 크리스를 친히 배웅해주었다.

“잘 가고, 앞으로는 말 편하게 해. 무슨 사극 찍는 것도 아니고, 뭐뭐 했소, 했소 거리는 거 오글거린다고 생각하지 않냐?”

“알았다. 나라고 좋아서 그랬던 건 아니니까.”

그리드와 작별한 크리스는 피아로를 찾아갔다.

어김없이 대련을 신청하고 만신창이로 당한 그가 질문을 던졌다.

“저와 지발의 실력 차이가 큽니까?”

7대 길드 사이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레이단 침공전 당시 지발은 피아로에게 무척이나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고 한다.

반면 나는 어떤가?

피아로에게 작은 상처조차 입히지 못하고 있으니 내가 지발보다 몇 수나 아래라는 뜻이 아닌가!

분해 이를 갈며 질문하는 크리스에게 피아로가 반문했다.

“지발? 그게 누구지?”

“헉.”

지발의 이름을 기억조차 못하시는 건가?

‘그보다 훨씬 못한 나는 피아로님에게 있어서 정녕 아무것도 아니겠구나.’

크게 착각한 크리스가 좌절감에 휩싸였다. 힘없는 발걸음으로 떠나려하는 그에게 피아로가 말해주었다.

“내 지발이라는 자가 누군지 모르니 그자와 자네와의 실력차이는 가늠해줄 수 없네만, 하나 분명한 사실을 알려주지. 자네는 내가 최근에 본 사람 중에서 세 번째로 강하다네. 하니 스스로에게 더 큰 자부심을 가지도록 하게나.”

“……!”

크리스의 두 눈이 부릅 뜨였다.

피아로의 위로(?)에 감격해서?

아니다. 도리어 기분이 상했고 더 큰 충격이었다.

‘저번에는 내가 두 번째로 강하다더니!’

착각이 아니다. 처음 피아로와 승부했던 날 확실히 들었다. 그때는 내가 2등이었다. 한데 이젠 또 3등이라고?

“얼마 전 그리드 공작과 대련하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혹시 그리드 공작이 저보다 강했던 겁니까?”

피아로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하면… 저보다 강하다는 다른 한 사람. 그자와 그리드 공작을 비교하면 누가 더 강합니까?”

이번엔 피아로가 조금 고민했다. 그리고 썩 편치 않은 표정으로 답했다.

“주군께서는 아직 그자의 상대가 못 돼.”

“…그렇습니까.”

지발, 도대체 언제 그리도 강해진 것이더냐?

크리스는 지발의 저력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괜히 랭킹 2위가 아니었구나. 크라우젤과 아그너스 다음가는 강자는 바로 너였던 것이냐, 지발.’

지발에 대한 평가가 날로 올라가고 있었다.

지발 본인은 이유를 알 수 없어 찝찝했지만 어쨌든 기분이 좋았다.

***

갓 핸드의 최고 장점 중 하나는 자동 사냥에 있다.

갓 핸드가 그리드와 30미터 이내 거리에서 몬스터를 처치할 경우, 그리드는 두 손 놓고 있어도 자연히 경험치를 획득하고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드는 갓 핸드의 이와 같은 장점을 보다 유용하게 활용하고 싶었다.

‘휴대용 용광로를 만들면 어떨까?’

대장간에 틀어박혀서 대장일만 하는 것과, 사냥터에서 갓 핸드를 풀어놓은 채 대장일을 하는 것.

어느 쪽이 더 이득일까?

당연히 후자다.

아이템 제작을 진행하는 동시에 사냥을 통한 경험치, 아이템 획득이 가능했으니까.

또한 반대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사냥터에서 그리드가 사냥하는 동안 갓 핸드들이 아이템을 제작하는 것이다.

“…나 천잰가?”

농담이 아니다. 그리드는 진지했다. 이처럼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스스로에게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어디 한 번 시도해보자.”

잔뜩 고양 된 그리드가 아이템 창조를 사용, 휴대용 용광로의 설계를 시도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지식은 용광로의 구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바, 그리드가 원하는 아이템을 어렵지 않게 탄생시켰다.

[<도안:휴대용 용광로>를 습득하였습니다!]

<휴대용 용광로>

등급:유니크

충분한 장작과 적당한 공간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는 용광로입니다.

다만 크기가 작아 대량의 광물을 동시에 제련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화력이 오르는 속도도 늦습니다.

*일반 용광로를 사용하는 것보다 아이템 제작 속도가 60퍼센트 뒤쳐집니다.

무게:7,390

“좋았어!”

그리드는 날아갈 듯이 기뻤다.

비록 느리다고는 하나, 앞으로 언제 어디서든 광물을 제련하고 아이템을 제작, 개조할 수 있게 되었으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등에 날개가 달린 심정이었다.

싱글벙글!

잔뜩 들뜬 그리드가 휴대용 용광로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

푸푹! 푸푸푹!!

캬악!

[경험치 2,121,500을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 2,287,000을 획득하였습니다.]

[<갓 핸드>의 소드 마스터리 레벨이 초급 7로 상승하였습니다.]

“캬옹!”

“냐항!”

쿠엑!

[멤피스 <노에>의 레벨이 190으로 상승하였습니다.]

[신비 숲 도플갱어 <랜디>의 레벨이 126으로 상승하였습니다.]

따앙! 따앙!

[<양산형 그리드의 검(레어)>의 제작에 성공하였습니다!]

레이단 외성벽 인근의 사막에서 재미있는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소형 용광로 앞에 모루를 깔고 앉은 그리드는 망치로 아이템을 제작 중이었고, 그의 주변으로는 4개의 황금 손과 고양이 2마리가 날아다니며 연신 몬스터들을 사냥했다.

4개의 황금 손은 갓 핸드요, 2마리 고양이는 노에와 노에의 모습을 복제한 랜디였다.

그리드는 아이템 제작을 통해서 스킬 경험치를 쌓고 수익을 창출하는 한편, 갓 핸드와 펫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사냥을 하는 것이었다.

“자이언트 웜이 죽어서 껍질을 남겼다! 냥!”

“사막 두꺼비의 혀를 얻었어! 냥!”

“거기다가 놔둬.”

따앙! 따앙!

오로지 망치질에만 열중하는 그리드!

그의 곁으로 잡템이 산처럼 쌓여갔다.

갓 핸드와 노에, 랜디가 사냥한 몬스터가 드롭한 아이템들을 전부 그리드에게 갖다 바치는 덕분이었다.

막말로 앉아서 경험치와 돈을 벌고 있었으니 실로 놀랍고, 황당하고, 사기적인 광경이 아닐 수가 없었다.

“와… 그리드 쟤 어쩌면 랭킹 5위급까지 레벨 올릴 수 있는 거 아니야?”

“노에와 랜디야 체력적으로 제약이 있다지만 갓 핸드는 그것도 아니잖아? 갓 핸드한테 무한 사냥 시켜놓고 낮잠 자고 일어나면 알아서 레벨 올라 있겠네.”

“매크로냐…”

과연 레전드리 클래스의 전용 아이템은 대단하다.

템빨단원들은 그리드가 부러울 따름이었다.

***

“김두현이가 루비양 학교 축제에 방문하기로 했다면서?”

레이단의 병사들에게 보급할 <양산형 그리드 세트>를 찍어내고 있던 그리드.

갓 핸드 덕분에 아이템을 제작하는 한편 공짜로 경험치를 획득하고 있는 그에게 극검이 찾아왔다.

그리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두현이 누구야?”

극검이 황당해 했다.

“헐… 두 유 노우 김두현?”

“모르겠는데요. 누구냐니까?”

재차 묻는 그리드에게 극검이 설명해주었다.

“북미와 한국 박스 오피스에서 5주 연속 1위를 달렸던 할리웃 영화, 살인마의 일기의 주인공이야. 대한민국 영화계의 자랑이라서 우리 대한애국협회에서 두 유 노우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지.”

“…그 훈장 주는 거, 본인한테 허락은 받았수?”

“훈장 주는데 무슨 허락이 필요해? 주는 사람 마음이지.”

“그, 그런가. 받아본 적이 없어서 몰랐네.”

“어쨌든 김두현이한테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

“뭔데요?”

“2년 전에 17살짜리 미성년자 아이돌과 사귀었다는 소문이 있다.”

“김두현이 몇 살인데?”

“서른하나.”

“흠, 뭐. 사랑에 나이는 상관 없… 헉, 설마?”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그리드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불길한 예감을 느낀 것이다.

거기서 극검이 손가락을 퉁겼다.

“바로 그거야! 루비양이 좀 예뻐? 너랑 완전히 다르게 생겨서 제2의 유라라고 찬양 받을 정도의 미소녀잖냐! 김두현이가 혹 루비양한테 접근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 내 심히 걱정이다!”

“…”

그리드는 동생 세희가 좋은 남자를 만나 잘 사귀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연예인이라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국가대항전 직후, 한동안 방송계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연예계의 추악한 면모를 일부 접해본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잘 나가는 배우라면 여성편력이 심한 경우가 많다던데.’

내가 바람둥이가 되는 건 괜찮지만, 바람둥이가 내 동생에게 집적거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를 악 문 그리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현실 시간으로 약 2시간 후면 숙녀고 축제가 시작됐다.

당장 로그아웃하려던 그리드가 망설였다.

“…그러고 보니 축제면 사람 또 겁나 많을 거 아니야.”

백만 안티에게 삿대질 당하고 자칫 폭력이라도 당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질린다는 표정을 짓는 그리드를 보고 극검은 착각했다.

‘과연 갓리드! 제5한류 열풍의 주역답게 워낙 인기가 많아서 혼자 다니기엔 부담이 되는가 보구나!’

극검이 제안했다.

“나랑 같이 가자! 내가 매니저 역할 제대로 해주마!”

“…”

그리드는 썩 내키지 않았다. 극검과 함께 활동하면 도리어 더 눈에 띌 테고 여러모로 귀찮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인 것보다야 훨씬 안전하겠지?’

극검은 자칭 태권도 유단자였고 생김새도 꽤나 날카로워 위협적이었다. 그라면 충분히 보디가드로 써먹을 수 있으리라고 판단한 그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

‘드디어 노에를 만날 수 있겠구나.’

월드 스타 김두현은 과묵한 사내다. 원체 말수가 적고 무표정하여 차가운 도시 남자로 오해 받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진실은 어떤가?

두현의 고향은 시골이었고 어려서부터 동물을 끔찍이 사랑해온 마음 따뜻한 사내였다.

여고생 킬러라는 소문도 오해에 불과했다. 그에게 고백했다가 차인 어떤 아이돌이 헛소문을 낸 것이었다.

‘노에의 말랑말랑한 발을 어서 빨리 만져보고 싶다.’

두현은 동물을 두루 좋아했지만 그중에서도 고양이를 예찬했다.

그가 봤을 때 고양이는 그야말로 완벽한 생명체였다.

귀엽고, 도도하면서도 의외의 애교가 있고, 항상 웃고 있는 입매가 너무 좋았다.

그중에서도 노에는 고양이의 정점에 있는 존재였다.

윤기 흐르는 검은 털과 바둑알 같은 눈동자, 그리고 이마에 작게 솟은 뿔과 뽈록한 배가 너무너무 귀여웠다. 분홍색 발바닥과 등 뒤의 작은 날개도 압권이었고.

그렇다.

김두현은 노에의 열성팬이었던 것이다. 회원수가 무려 500만 명에 육박하는 노에 팬카페에 단 10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최우수 회원 중 하나였다. 이는 그가 평상시 카페 활동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한다는 방증이었다.

그의 소원은 오직 하나!

노에를 직접 만나서 만져보는 것!

오로지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숙녀고 축제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숙녀고라하면 그 유명한 성녀 루비가 재학 중인 학교인 바, 루비의 오빠인 그리드를 반드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이 기회에 그리드님과 친분을 쌓고 노에와 친구가 되어야지.’

월드 스타의 소박한 바람이 이뤄지기에는 상대가 너무 좋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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