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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41화 (136/1,794)

템빨 16권 - 18화

“파그마의 검무, 초연(超聯)!”

쿠콰콰콰쾅!!

청색의 검기 수십 줄기가 뱀파이어 무리를 덮쳤다.

그에 제법 따끔한 피해를 입은 뱀파이어들이 흉흉한 안광을 번뜩였다.

“인간 따위가!”

“가소롭구나!”

“히익!!”

족히 50마리가 넘는 뱀파이어들이 일제히 달려들자 그리드는 부리나케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호호호호홋!”

“겁먹은 꼬락서니하고는!”

뱀파이어들은 인간 사냥을 즐겼다.

그리드를 토끼처럼 몰아넣고 둘러싸더니 조롱했다.

털썩!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고 겁에 질린 그리드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그의 모습은 연약한 소녀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보기가 안타까워 보호본능을 자극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뱀파이어들에게 자비란 없었다.

“먹어주마!”

굶주린 승냥이 떼처럼 돌변한 뱀파이어들이 그리드에게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냐옹!”

뱀파이어들의 머리 위로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떨어졌다.

작고 말랑말랑한 녀석의 앞발에 톡, 이마를 얻어맞은 뱀파이어가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아악!!”

“웬 엄살이야? 헉?”

고작 고양이에게 한 방 맞았답시고 발악을 하다니?

동족의 추태를 비웃던 뱀파이어들이 이내 고양이의 정체를 깨닫고 기겁했다.

“멤피스…!”

볼록한 배를 내밀고 팔짱 낀 노에가 기고만장하게 웃었다.

“냥핫핫핫! 그렇다!! 이 몸은 위대한 지옥 제일 마수이신 것이다!! 냥!!”

“대악마들의 애완 고양이가 왜 이곳에!”

“고양이 아니다! 컁!!”

“저놈부터 처치해!!”

뱀파이어 또한 마족이다. 하지만 지옥으로부터 추방당한 종족이므로 다른 마족들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더 이상 그리드를 노리지 않고 노에를 공격하기 시작하는 그들의 심장을 4줄기 백색 섬광이 관통했다.

매직 미사일이었다.

“쿨럭!!”

“커억…! 매직 미사일 따위가 어찌 이런 위력을!”

경악한 뱀파이어들이 마법이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각자 대검과 단검을 거머쥔 4개의 황금 손이 부유하고 있었다.

“저건 또 뭐지!”

저 홀로 움직이며 마법까지 쏘는 손이라니?

뱀파이어들은 황금 손의 정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워하는 그들에게 날아든 황금 손이 검을 휘둘렀다.

채챙! 챙!!

뛰어난 검술은 아니지만 워낙에 속도가 빨랐다.

게다가 무장한 무기들이 어찌나 강력한지, 공격을 한 번 허용했다가는 치명상을 피할 수가 없었다.

“키야악!!”

지옥 제일 마수와 정체불명의 손들에게 연달아 당하고 비명을 지르는 뱀파이어들!

놈들의 혼란과 공포가 극도로 치달은 그때였다.

“파그마의 검무, 파(派).”

콰앙!!

칠흑의 마기에 휩싸인 존재가 나타나 혈빛 마검을 휘둘렀다.

워낙에 경황이 없었던 뱀파이어들은 그에 미처 대응할 수가 없었고 허무하게 잿빛으로 산화해버렸다.

“여전히 겁이 많구나.”

마기에 휩싸인 그리드가 한쪽에서 울고 있는 그리드.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모습을 복제하고 있는 랜디를 일으켜주었다.

귀여운 소녀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랜디가 울음을 꾹 참았다.

“다음에는 안 울거야!”

“기특한 녀석.”

“나도 칭찬해라! 냥!”

그리드가 노에, 랜디와 짤막하게 대화하는 사이에도 갓 핸드는 뱀파이어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갓 핸드>의 소드 마스터리 레벨이 초급 6으로 상승하였습니다.]

‘좋아.’

저절로 오르는 경험치와 함께 떠오르는 알림창을 확인한 그리드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갓 핸드는 사용 횟수와 비례해서 마스터리 레벨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최초에 피아로를 상대로 선보였을 때와 비교하면 꽤나 강력해졌다.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었다.

한편, 템빨단원들은 할 말을 잃고 있었다.

‘개사기다.’

‘어이가 없네.’

엘핀스톤 레이드 후 약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난 그리드.

그는 불과 며칠 전과는 비교가 안 되는 괴물이 되어있었다.

단순히 컨트롤 실력이 늘었다거나 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4개의 황금 손과 노에, 랜디.

녀석들이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니며 그리드를 보좌하였으니 그리드의 사냥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폰과 레가스가 각자 2~3마리의 뱀파이어를 사냥하는 동안 그리드는 최소 10마리의 뱀파이어를 사냥하는 수준이었다. 이는 평균 수치였고 한 번에 최대 100마리도 사냥 가능해 보였다.

막말로 미친 템빨과 미친 펫빨의 조합이라 할 수 있었다. 랭커급 테이밍 마스터나 네크로맨서보다 사냥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덕분에 42일 동안 그리드는 무려 4개의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단지 사냥 속도가 빨라서 가능한 일은 아니었고, 엘핀스톤을 레이드하고 획득한 경험치 상승 버프와 <명성 상점>을 통해서 획득한 경험치 상승 버프 물약의 힘이었다.

그렇다.

피아로에게 패배한 것을 계기로 열렙에의 열망에 휩싸인 그리드는 또 다시 뽑기라는 도박에 손을 댔던 것이다.

그 결과 그동안 모아온 명성 전부를 소진하게 되었지만 경험치 버프 물약을 총 3개나 얻을 수 있었고 이는 광렙의 비결이 되었다.

그리드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애초에, 가치가 높은 상품들은 계정마다 구매할 수 있는 횟수가 한정되어 있으니까.’

그것들은 언젠가 꼭 필요한 시점에만 구매해서 사용한다고 가정할 경우, 명성 포인트는 오로지 경험치 버프 물약을 얻는 용도로 투자함이 옳다는 판단이었고 이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뽑기의 특성상, 재수가 없으면 원하는 아이템을 1개도 획득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

305레벨을 달성하고 뱀파이어의 도시로부터 귀환한 그리드는 당분간 레이단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아이린의 출산일이 앞으로 채 한 달도 남지 않았으니 항시 그녀 곁에 머물기 위함이었다.

그동안 시간을 허투루 사용할리 만무했고, 영주이자 대장장이로서 책무를 다 할 계획이었다.

<광물 강화>

지정한 광물의 경도와 강도를 높이고 취성은 낮춥니다.

경도, 강도, 취성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경도는 재료 표면의 단단함, 강도는 재료가 힘에 견디는 정도, 취성은 깨지기 쉬운 성질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경도와 강도는 정비례하나 이때 취성도 함께 올라 충격에 약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리드가 3번째 전직 퀘스트를 완료하고 획득한 히드피스, <광물 강화> 스킬을 사용한다면 그야말로 이상적인 광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 됐다.

‘당장에는 유용해보이진 않다만.’

광물 강화는 즉발 스킬이 아니었다.

강화하고자하는 광물을 한 번에 최대 30그램 지정하여 <강화 틀>에 집어넣고 30일을 기다려야만 했다.

한손 검 하나 만드는데 필요한 광물이 평균 4킬로그램 내외라는 점을 고려해봤을 때 이는 썩 유용해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그리드는 처음에 실망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광물 강화는 광물 창조의 근간이 되는 능력이 아닐까 싶었다.

‘파그마가 파브라늄을 창조해냈듯이 언젠간 나도 나만의 광물을 창조할 수 있을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한 그리드가 강화 틀에 소량의 푸른 오리하르콘을 집어넣었다.

마음 같아서야 파브라늄을 강화하고 싶었으나, 그래서야 당장 갓 핸드 중 하나를 분해해야만 했다.

갓 핸드의 등급을 조금이라도 빨리 올리고 싶은 그리드의 입장에서는 지양해야할 일이었다.

[푸른 오리하르콘 30그램을 강화 틀에 넣었습니다. 강화 완료까지 30일 남았습니다.]

“기간을 단축하는 기능 같은 건 없나보군.”

그리드는 뱀파이어의 도시로 출정하기 전 앞서 강화 틀에 넣어놨던 <강화 된 푸른 오리하르콘> 30그램을 꺼내보았다. 기존의 푸른 오리하르콘과 비교해서 크게 뛰어나진 않았으나 확실히 좀 더 단단하기는 했다.

“음… 이 기능은 느긋하게 꾸준히 활용하도록 하자.”

대장간 구석에 앉아 요리조리 실험해보고 있는 그리드의 시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레이단의 연금술 시설 레벨이 중급 4로 올랐습니다!]

그와 동시에 행정관 라빗이 뛰어왔다.

“공작각하! 드디어 연금술 시설의 레벨이 중급 4로 올랐습니다! 이 발전 속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약 1년 1개월 후쯤에는 고급 시설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연금술 시설의 레벨이 고급으로 성장하게 될 경우 옐로우 미스릴을 완벽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그때부터 제작 아이템에 특수한 옵션을 랜덤으로 귀속시킬 수 있었고, 이때 대박이 터지면 아이템의 가치가 몇 배나 폭등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드의 표정은 영 탐탁치 못했다.

“1년 1개월? 여태껏 3천만 골드가량을 쏟아 부었는데도 아직 1년 1개월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고?”

“아시다시피 연금술은 모든 나라에서 등한시해온 학문입니다. 학문 자체가 체계적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분야의 전문가를 찾기 어려운 실정인지라 발전이 늦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각하께서 거금을 투자해주신 덕분에 예정보다 빠르게 일이 진행되고 있사오니, 썩 나쁘게 생각지 말고 기다려주시길 바라옵니다.”

행정관 라빗은 유능하다.

적자 상태의 유령도시였던 레이단을 흑자로 전환시킨 위대한 인물이었으니 그리드는 그를 절대적으로 신임하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그리드가 영지의 상태를 쭉 확인하더니 의문을 표했다.

“근데 말이야. 우리 영지에서 가장 큰 수익을 창출하는 분야가 농업이잖아? 투자대비 효율이 말도 안 되게 높은데, 이게 전부 피아로 한 명 덕분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피아로 경의 농부로서의 역량은 길이 역사에 남아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각하께서 그분의 농부로서의 길을 인정해주신 것은 실로 현명한 결단이었습니다.”

내내 그리드 곁에 있던 라우엘이 동조했다.

“저도 참 잘하셨다고 생각하던 차에요. 피아로님이 검성이 되기를 그토록 소망하던 분께서 설마 농부로서의 피아로님을 인정해줄 줄이야, 꿈에도 몰랐네요. 자애롭고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자애? 현명?

‘개뿔.’

그리드가 농부 피아로를 인정한 이유는 단지 싸워서 졌기 때문이지 딱히 깊은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차마 부하에게 얻어맞았다는 사실을 말하기엔 창피해서 입을 굳게 다물었다.

***

신영우 최우수 조합원님의 현재 총 계좌잔액은 5,013,009,281원입니다.

영우의 하루일과는 인터넷뱅킹에 접속하는 것부터 시작됐다.

50억하고도 1천 3백만 원!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 않는 계좌 잔액을 확인할 때마다 영우는 감격하였고 기뻐 눈물을 흘렸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빚쟁이였던 내가…! 크흑흑!!”

매일 아침 확인하는 일인데도 왜 꼭 눈물이 나는 걸까?

“크응!”

티슈를 뽑아 코를 크게 푼 영우는 오늘도 신께 기도를 올렸다.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제발 저를 훅 가지 않게끔 돌봐주소서…”

교회나 절에 나가 헌금 한 번 해보지 않았으면서 매번 부탁만 하는 영우였다.

주방으로 향한 그가 얼마 전 큰 맘 먹고 구입한 커피머신으로부터 에스프레소를 뽑았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신 뒤 마침 방에서 나온 동생 세희에게 그것을 건넸다.

“너 먹어. 이게 모닝커피라는 거다.”

“…써서 못 마시겠지?”

“아닌데? 처음부터 너 먹으라고 타놓은 건데?”

정색하며 믹스 커피를 타는 영우였다.

단맛에 심취한 채 TV 앞에 앉는 그에게 세희가 물었다.

“우리 학교 축제에 올 거야?”

3일 후, 숙녀여고에서 가을 축제가 개최된다.

워낙 명문고인데다 예쁜 여학생들이 많고 규모도 커서 사회적으로 유명한 축제였다. 일반인들의 방문도 많았다.

며칠 전 예림에게 받았던 문자를 떠올린 영우가 고개를 저었다.

“예림이가 초대하기는 했는데 안 가려고.”

브라함 탓에 백만 안티가 창궐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두려워서 인터넷에 내 이름조차 검색해보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밖을 쏘다닐 수는 없었다. 최근 아침 조깅을 나갈 때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실정이었으니 말 다했다.

‘어쩌면 내 재산을 노리고 누가 날 납치할 수도 있어.’

보통 사람들은 졸부가 되면 즐기기에 혈안이 되는 반면 영우는 달랐다. 도리어 몸을 더욱 사렸다.

세희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개하고 있었다.

“잘 생각했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욕실로 향하는 세희를 보고 영우가 한숨 쉬었다.

“이 오빠가 그리도 쪽팔리더냐…”

동생에게 미움 받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하나, 수십 년 동안 나는 워낙에 한심한 모습만 보이고 민폐만 끼쳤었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영우가 캡슐로 향했다.

사랑스러운 아이린과 애정을 나누고 일에 열중하면서 마음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한편, 아무도 없는 거실에 홀로 틀어진 TV에서는 숙녀고 축제 관련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번 숙녀여고의 가을 축제에 인기 배우 김두현씨가 참석하겠다고 밝혀 소녀 팬들의 가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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