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40화 (135/1,794)

“무상농법 제5장, 추수!”

역시 문답무용은 진리다.

이 순간, 또 다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피아로가 낫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날카로운 강기가 쏘아져 일대의 밀들을 모조리 베어버렸다.

“으악!”

납작 엎드려서 강기를 회피했던 그리드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사방으로 수천, 수만 개의 밀알이 비산하고 있었다. 시야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쓸데없이 요란하기는!’

그리드가 눈앞에 나부끼는 밀알들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치는 그때였다.

퍼펑! 퍼퍼퍼퍼퍼퍼퍼펑!!

무수한 밀알들이 예고도 없이 폭발을 일으켰다.

“크아아아악!!”

논밭 전체를 뒤덮는 광범위한 폭발에 휩쓸린 그리드가 비명을 내질렀다.

즉각 날아온 갓 핸드들이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생명력이 최소치까지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피해를 입고 말았다.

“큭…! 크윽! 쿨럭!! 쿨럭!!!”

추수한 밀을 폭발시키다니?

“농사일에 이런 과정도 있었나!!”

그을린 밀가루로 뿌옇게 뒤덮인 그리드가 따지듯이 외쳤다.

피아로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도정입니다.”

“도정은 개뿔!”

도정은 곡물의 표면을 벗겨 희고 깨끗하게 만드는 과정을 뜻하지 아예 잿더미로 만드는 걸 뜻함이 아니다.

황당한 대답에 이를 갈던 그리드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침착함을 잃었다.’

논밭이 생성 된 시점부터 크게 동요한 까닭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리드가 집중했다.

다시 전세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세를 올려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그가 파그마의 검무, 초연(超聯)을 전개하였다.

쿠콰콰콰콰콰콰콰쾅!!

칠흑의 마기에 휩싸인 혈빛 검기 수십 가닥이 피아로를 덮쳤다.

과연 최강의 스킬답게 맹렬한 기세였다.

그리드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검기의 뒤를 쫓아 이동, 검기를 피하고 방어하느라 바쁜 피아로의 틈을 노려 이야루그트를 찔러 넣었다.

필시 절묘한 노림수였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어느새 자연경을 발동한 피아로가 그리드의 속도를 압도하고 있었다.

터터터터터터터텅!!

도리깨가 정신없이 날아왔다.

마치 새털로 만든 먼지떨이처럼 쉬지 않고 현란하게 흔들리며 그리드를 매타작했다. 그리드가 발산하고 있는 마기가 맞을 때마다 흩어지면서 뿌연 먼지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윽! 끅! 컥! 켁!!”

먼지 속. 아니, 마기 속 그리드가 계속해서 신음을 토했다. 생명력 게이지가 순식간에 떨어졌다.

이야루그트는 경악하고 있었다.

[도무지 궤적을 읽을 수가 없다!]

‘이런 쓸모없는 놈!’

사실 남 탓할 처지가 아니다.

항거할 수 없는 무력감은 이미 그리드 본인부터가 느끼고 있었다.

피아로는 정말로 강했다.

온갖 템빨과 스킬을 활용해봤자 승기를 잡았던 것은 찰나였고 도무지 실력 차이를 좁힐 수가 없었다.

그래, 마치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한 심정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승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회심의 한 수가 남아있었으니까!

“피아로…! 나는 아직 지지 않았다!”

그리드가 도리깨에 매타작을 당하는 동안 갓 핸드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왜 와서 주인을 지키지 않았을까?

자신만만한 그리드를 보고 의아함을 느끼던 피아로가 문득, 그리드의 뒤편에서 모루를 세워놓고 망치질 중인 4개의 황금 손을 발견했다.

‘저게 뭐하는 짓이지?’

피아로가 경계하였고,

[그리드의 대검과 실패작의 합체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리드는 미소 지었다.

신속히 날아온 갓 핸드가 그리드에게 대검을 날라다 주었다.

그리드의 대검과 실패작이 하나로 합쳐진 대검으로서 그 위력은 가히 초월적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리드가 합쳐진 대검의 검신 중앙에 파여 있는 홈에다가 <암흑의 룬>을 장착시켰다.

그러자 대검으로부터 폭발적인 마기가 발산되었고, 이는 흑화 그리드와 뛰어난 궁합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피아로에겐 상대가 안 됐다.

퍽!

“윽.”

아무리 최강의 아이템을 손에 넣었으면 뭐하는가?

휘둘러볼 틈조차 없는데!

신속한 몸놀림의 지속 시간이 끝난 그리드는 자연경 상태의 피아로가 발휘하는 속도를 이겨내지 못했다. 쉽게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고,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농…! 농! 크윽! 농부로서의 길을 인정하겠다!!”

그와 동시였다.

[생명력이 최소치가 되어 대전 모드가 종료됩니다!]

[히든 퀘스트 <주군으로서>를 완료하였습니다.]

[가신 피아로의 일부 능력치와 모든 스킬의 위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오늘 승부의 결과, 피아로는 진정한 전설로서 거듭날 수 있었다.

전대의 전설들과 비교하면 아직 레벨이 낮았지만, 그 외의 모든 면은 전대의 전설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반면 그리드는…

“염병! 나도 전설인데 왜 나는 아직도 이 모양이냐!!”

대악마들과 브라함, 그리고 마리로즈에 이어서 이제는 피아로까지.

넘어야할 산이 너무 많다.

그리드는 더욱 더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였다.

패배와 실패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이라 할지언정 두 번 다시 무력감은 느끼고 싶지 않았기에.

‘강해지기 위해서는.’

컨트롤 실력과 민첩성을 상승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두 가지를 동시에 성장시킬 수 있는 수단은 당연히 사냥이었다.

‘열렙한다!!’

하지만 그 전에 그리드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농기구 세트의 제작이었다.

따앙! 따앙!!

내 최고의 부하가 사용할 무기(?)이니만큼, 그리드는 몇날며칠 심혈을 기울여서 제작에 열중했다.

덕분에 피아로는 템빨까지 갖추게 됐다. 막말로 괴물 같은 사기캐릭이 탄생한 것이다.

“좋아.”

간신히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들어낸 그리드가 이어 향한 곳은 뱀파이어의 도시였다.

파브라늄 원정대에 합류한 그는 경험치, 아이템 획득률 상승 버프가 유지되는 동안 쉬지 않고 사냥에만 매진했다.

그가 305레벨을 달성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아이린의 출산일은 채 1달도 남지 않았다.

***

에필로그

“응?”

열심히 밭을 갈고 있던 크리스와 5대장들이 어리둥절했다.

피아로가 허리춤에 6개의 칼집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던 까닭이다. 평소에는 농기구를 매고 다니던 자리에 칼집이 달려있자 그들은 의문이었다.

‘아니, 농부가 웬 칼을?’

‘그것도 6개나…’

정신이 나갔나?

의아해하는 크리스와 5대장들을 확인한 피아로가 엣헴, 헛기침 했다. 그리고 당당히 허리를 펴고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더니 보란 듯이 칼집에서 칼… 아니, 농기구를 뽑았다.

그렇다.

피아로가 허리춤에 매고 있는 칼집들은 겉모습만 화려한 칼집일 뿐, 사실은 농기집이었던 것이다.

그리드가 피아로의 행색을 신경 써서 고안한 작품이었다.

“헐.”

크리스는 강렬한 소유욕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 또한 저 멋진 농기집들을 갖고 싶었다.

크리스는 통합랭킹 3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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