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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39화 (134/1,794)

템빨 16권 - 17화

그리드에게 잇달아 공격을 허용한 끝에 치명상을 입은 피아로.

그가 통감했다.

‘나의 농기구술이 잘못 되었었구나!’

이미 검술에 통달했다. 그렇기에 농기구술의 기반을 검술에 뒀다.

만류귀종의 이치에 따랐던 것이다.

‘이는 만용이며 명백한 실수였다!’

농기구술과 검술은 엄연히 달라야만 한다.

검은 살생의 도구인 반면 농기는 생명을 틔우는 도구가 아닌가?

검 또한 활인의 도구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는 하나 근본적으로 달랐다.

아예 접근법을 달리함이 옳았다.

‘검술을 버린다!’

굳이 농기구로 검술을 구사할 이유가 없다.

애초부터 상극이니 도리어 독이고, 검술을 고수할 거라면 차라리 검을 쓰면 된다.

깨달은 피아로의 기도가 확 바뀌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여태까지는 손에 비록 농기를 쥐었을지언정 빈틈을 엿볼 수 없는 검호 그 자체였던 반면, 이제는 보다 여유가 있고 느긋한 자세였다. 마치 새참을 기다리는 농부와 같았다.

번쩍!

피아로의 몸이 섬광에 휩싸였다.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창이 그리드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주군으로서>

★히든 퀘스트★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피아로가 진정한 농부로 각성하였습니다.

검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린 것입니다.

이 순간 그는 당신에게 더욱 더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피아로와 대련하십시오!

피아로의 실력을 체험하고 그를 인정해주십시오!

결과에 따라서 피아로는 더욱 더 발전할 것입니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피아로와의 대련에서 패배, 혹은 승리.

피아로와의 대련에서 패배 시:피아로가 농부로서 커다란 자부심을 갖습니다. 피아로의 일부 능력치와 모든 스킬의 위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피아로와의 대련에서 승리 시:피아로가 회의감을 느끼고 다시금 검의 길을 걷습니다. 전설이 되면서 상승했던 피아로의 능력치들이 소멸합니다.

[히든 퀘스트 <주군으로서>가 진행됩니다.]

[지금부터 피아로와 대련 모드로 돌입합니다.]

[한쪽의 생명력이 최소치가 될 때까지 대련은 지속됩니다.]

[대련 모드에서는 사망하지 않습니다.]

주군으로서.

이는 일종의 보너스 퀘스트였다.

주군 그리드가 가신 피아로에게 패배해줌으로서 그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그를 성장시킬 수 있는 무조건적 수단이었다.

획득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이득이었고 피아로는 더욱 더 강하게 거듭날 수 있었다.

만약 그리드가 평범한 입장이었다면, 너무 기뻐서 천지신명께 감사하고 춤이라도 췄을 터였다.

하지만 그리드는 피아로가 검성이 되기를 바라는 입장이었다.

그리드가 주목하는 것은 패배 시 보상이 아닌 승리 시 결과였다.

‘다시 검의 길을 걷게 된다고?’

혼란스럽다.

피아로가 농부로서 확정적으로 강해지게끔 만드느냐, 아니면 다시금 검의 길을 걷게 만드느냐가 고민이다.

‘검의 길을 걸을 경우 검성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생긴다.’

물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아무리 대단한 피아로일지라도 결국 검성이 되지 못할 수도 있었으니까.

또한 당장의 능력치가 대폭 하락하여 약해진다는 점이 거슬렸다.

‘역시 져주는 게 맞는 건가.’

아니, 아니다.

꾸욱!

이야루그트를 쥔 그리드의 손에 강한 힘이 실렸다.

‘나는 전력을 다한다.’

일부러 져준다고?

그런 치졸한 방법, 피아로부터가 원하지 않을 것이고 내 마음 또한 찝찝할 거다.

‘농부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다면 나를 꺾어.’

꺾지 못하겠다면, 그때는 다시 검을 쥐어라.

당신의 길,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하라!

터엉-!

잡념을 털어낸 그리드가 도약했다.

아직 신속한 몸놀림의 지속 시간이 30초 남았다.

그리드는 그 안에 승부를 볼 요량이었다.

“대장장이의 분노!”

[공격력이 25퍼센트, 공격속도가 40퍼센트 상승합니다. 이 효과는 35초 동안 유지됩니다.]

그리드가 신속의 정점을 찍었다.

호쾌하게도 피아로에게 접근하여 빠르게 공격을 연계시켰다.

단지 빠를 뿐만이 아니다. 이야루그트가 알려주는 검로를 따른 공격이었으므로 궤도 또한 최선이었다.

한데 피아로가 쉬이 피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움직임이었다.

허리를 굽히더니 제자리에 쭈그려 앉는 것이 아닌가?

[저놈의 실력이 갑자기 저급해졌군!]

이야루그트가 실망했다.

이는 피아로의 행동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며, 어느덧 피아로의 경지가 이야루그트를 아득히 초월하였음을 증명하는 대목이었다.

푸욱!

쭈그려 앉은 피아로가 호미로 지면을 힘차게 찍었다.

수맥을 관통하는 일격으로서 순식간에 물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뭣…!”

폭포수처럼 뿜어지는 물줄기에 시야를 방해받은 것이 문제였다.

그리드가 찰나지간 당황하였고, 그 틈에 땅을 일군 피아로가 사방에 씨앗을 뿌렸다.

그와 동시에 믿기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일대가 순식간에 논밭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리드의 주위로 무수한 밀들이 자라나더니 금색으로 물들어 고개를 떨궜다.

‘말도 안 돼!’

추수 직전의 밀밭을 순식간에 만들어 내다니?

대마법사 브라함이 선보였던 마법들만큼이나 경이적이다. 아니, 어떤 의미로는 더욱 더 굉장하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그리드에게 피아로가 자기 PR을 시작했다.

“상상해 보십시오. 군대가 행군하는 도중, 불가피한 상황으로 식량난을 겪게 되었을 때 전설의 농부가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즉시 논을 개간하여 병사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 것입니다!”

“헉!”

듣고 보니 엄청나다.

피아로가 이끄는 군대에게 식량난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설득당하기 직전까지 간 그리드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수맥이 없는 곳에선?”

“인근 강에서 물을 퍼오거나 마법사가 마법으로 물을 소환해주면 됩니다.”

“강도, 마법사도 없으면?”

“…비가 오면 되겠지요.”

“비도 안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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