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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34화 (129/1,794)

템빨 16권 - 14화

혹시라도 사람을 마주쳤다간 얻어맞는 게 아닐까?

노심초사한 영우는 쓰레기봉투를 내놓는 3분 동안 영화 한 편을 찍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사위를 살폈고, 때때로 낮은 포복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자동차 라이트가 다가올 때면 전봇대 뒤로 숨었다.

대한민국 육군 병장 출신이자 4년차 예비역답게 은밀함이 제법 뛰어났다.

덕분에 무사히 쓰레기를 버리고 집까지 돌아올 수 있었던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역시 군대는 다녀오고 볼 일이군.”

현역 시절 내내 개고생을 했다고는 하나 군대에서 배운 것들은 여러모로 가치가 있었다. 애초에 병역이란 성스러운 의무이기도 했다.

영우는 군대에서 보냈던 시간을 아깝다 여기지 않고 도리어 자부심을 가졌다.

거실에 앉아 마늘을 까고 계시던 어머니가 그런 영우를 보고 황당해하셨다.

“야밤에 마스크며 선글라스는 왜 끼고 다니는 거니?”

“어떤 정신 나간 할배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써서요. 저는 당분간 몸을 사려야하니까 쓰레기 내놓는 일은 세희에게 시켜주세요.”

“정신 나간 할배? 억울한 누명? 몸을 사려야 해?”

어머니께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를 염려시켜선 안 된다고 생각한 영우가 화제를 돌렸다.

“장난이에요, 장난. 마늘 까는 거 도와드릴게요.”

팟! 파파파팟!!

영우가 마늘을 까는 속도가 일취월장했다. 30년 동안 매일 같이 마늘을 까온 어머니의 솜씨를 어느새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길게 뻗은 손가락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뽀얀 속살을 드러내는 마늘들을 보면서 어머니는 경악을 금치 못하셨다.

‘내 아들에게도 재능이 있었어!’

어릴 때부터 영우는 잘 하는 일이 없었다. 어떤 방면에서도 재능을 드러내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게 늘 마음에 걸렸다. 내가 아들에게 물려준 재능이 없어 미안했고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 보니 마늘 까는 재능을 물려준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재능을 뒤늦게라도 발견하였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눈물을 글썽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딱히 기쁘진 않았다.

***

저녁식사 후 Satisfy에 재접속한 그리드.

그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아이린부터 찾아갔다.

출산일이 50일 앞으로 다가온 그녀에게 안정을 주기 위함이었고, 그리드 본인 또한 그녀와 사랑을 속삭임으로서 의욕을 다지고 보다 충실한 마음가짐을 갖기 위함이었다.

“낭군님,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쪽.

뺨에 닿는 아이린의 입술 감촉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부드럽고 짜릿했다.

좋아가지고 헤헤 웃는 그리드의 시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부부의 진실 된 사랑을 느낀 뱃속 아이의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실로 오래간만에 발생한 일이었다. 무려 열흘 만이었다. 뱃속 아이의 능력치 상승은 일정 주기를 두고 꾸준히 반복되는 중이었다.

‘시작이 좋군!’

길조임이 분명하다.

확신한 그리드가 대장간으로 달려갔다.

“위대하신 레이단의 태양, 그리드 공작각하를 뵙습니다!”

젊은 대장장이들이 일제히 인사했다. 칸도 웃으며 반겨주었다.

그들에게 화답한 그리드가 눈을 감았다.

‘집중한다.’

그리드는 지체하지 않았다. 기껏 외워온 손의 구조를 잊을 새라 곧바로 창조 스킬을 발동했다.

“아이템 창조.”

[어떤 아이템을 창조하시겠습니까?]

‘과연 될까?’

아이템 창조라고 만능은 아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세공사가 아닌 그리드로서는 장신구를 창조할 수 없었다.

그리드가 창조할 수 있는 아이템은 대장장이가 제작하기에 적합한 형태의 아이템뿐이었다.

꿀꺽.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킨 그리드가 대답했다.

“손. 나는 손을 창조하겠다.”

[…]

잠시 고요가 찾아왔다.

시스템이 어떠한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설마 불가능한 건가?’

최악의 경우다.

실망한 그리드의 눈살이 찌푸려지는 그때였다.

[건틀릿이 아닌, 손이 맞습니까?]

알림창의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 보다 유기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뭔가 온다!’

특별한 이벤트의 전조임을 직감한 그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나는 손을 창조할 거다! 내 손과 꼭 닮은 손을!”

[파브라늄을 재질로 설정할 경우 가능합니다.]

“……!”

아귀가 맞아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드의 얼굴이 환희에 찼다.

흥분한 그가 소리쳤다.

“파브라늄을 재질로 설정하겠다!”

그 순간이었다.

띠링~

경쾌한 알림음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전혀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당신은 전설의 대장장이 파그마와 동일한 발상을 하였습니다.]

[세 번째 전직 퀘스트, <파그마가 이루지 못했던 일>이 생성됩니다.]

<파그마가 이루지 못했던 일>

난이도:전직 퀘스트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 전설의 대장장이 파그마는 파브라늄이라는 최강의 광물을 창조해냈습니다.

파브라늄은 신의 광물 아다만티움마저도 초월한 성능을 지닌 광물로서 대마법사 브라함의 지식적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완성할 수 없었을 광물입니다.

파그마는 열망에 휩싸였습니다.

파브라늄을 활용함으로서 신들의 무구마저도 초월하는 무구를 제작하고 싶다는 열망이었습니다.

하지만 파브라늄의 물량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는 바, 파그마는 파브라늄의 활용법을 달리 생각해보아야만 했습니다.

이때 떠올린 것이 <갓 핸드>입니다.

전설적 대장장이와 동등한 손재주를 발휘하는 여러 개의 황금 손!

갓 핸드와 함께라면, 파그마는 일평생 도달하지 못했던 영역의 아이템들을 제작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파그마는 갓 핸드를 제작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수명은 유한했고, 파그마는 이미 늙었던 까닭입니다.

파그마의 후예여, 파그마와 같은 발상에 도달한 지금의 당신이라면 갓 핸드를 창조하고 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그마가 이루지 못했던 목표를 달성함으로서 파그마를 초월할 초석을 다지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파브라늄으로 자신의 손을 완벽 재현.

퀘스트 클리어 보상:파그마의 후예의 히든 피스, <봉인 된 능력>중 하나가 개방.

‘브라함의 말이 사실이었어!’

파그마는 300년 전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또한 그 시점에 이미 죽어가는 몸이었다.

한데 어떻게 역사 속에서는 100년 전까지도 활동했던 걸까?

그리드는 파그마의 존재가 점차 괴이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설마 귀신… 아니, 지금으로서는 생각해봤자 부질없다.’

전직 퀘스트 스토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연히 알게 될 일이다.

고개를 털어 의문을 잠재운 그리드가 당면한 과제에 집중했다.

‘기필코 해낸다!’

그리드는 의욕에 불타올랐다.

장장 3시간 동안 손의 형태와 구조에 대해서 달달 외우고 온 그였기에 자신감도 충만했다.

[<갓 핸드>를 설계해 주십시오.]

눈앞에 공백의 설계도가 떠올랐다.

그리드는 그곳에 자신과 꼭 닮은 손의 형태와 지식으로 습득한 구조를 그려나갔다. 그 결과, 아이템 창조 스킬의 보정 효과까지 받아 지식수준을 초월하는 퀄리티의 손을 설계해낼 수 있었다.

[<도안:갓 핸드>를 획득하였습니다!]

갓 핸드.

이름부터가 무척 거창하다. 신을 논할 정도라니, 성능 또한 이름에 걸맞을 것이 분명했다.

희열에 찬 그리드가 파브라늄을 제련했다. 이어 전설적 대장장이의 망치를 착용, 단조질에 임했다.

따앙! 따앙!!

그리드는 묵묵히 집중했다. 일말의 사념조차도 그를 감히 훼방 놓지 못했다.

“…”

고요하다.

현재 그리드의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불이요, 파브라늄이고, 또한 모루와 망치였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따아앙- 따아앙-!

망치와 그리드는 더 이상 별개의 존재가 아니었다. 둘은 완벽하게 융화되었다. 망치가 곧 그리드였고 그리드가 곧 망치였다.

망치와의 물아일체를 이루는 것이었다.

따아아앙!!

갓 핸드의 관절 부위를 형성해줄 파브라늄들이 차츰 모양새를 갖춰나갔다. 복잡하면서도 섬세한 구조가 재현됐다. 청명한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완성되어가는 황금 손을 지켜보는 칸과 젊은 대장장이들은 감탄을 넘어서 감동하였다.

[극도의 집중력이 전설적 대장장이의 숨결을 발동시킵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숨결이 제작 아이템의 효과를 증폭시킵니다.]

“……!”

긴 작업 끝에 드디어 현실로 돌아온 그리드. 결과물을 확인한 그의 두 눈이 부릅 뜨였다.

***

‘오늘 내가 패배할 가능성은 없다.’

피아로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드의 경지가 예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고는 하지만 아직 자신과 비견 될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군께는 죄송한 말씀이나.’

그리드의 성장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딱 그뿐이다. 아직 그리드는 전설이라는 칭호에 적합한 실력자가 못되었다.

‘당신과 저 사이에는 여전히 하늘 하나가 있나이다.’

천지가 개벽할지라도 사람의 실력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리 만무했다.

전날, 그리드의 비장의 수단까지 목도한 피아로였기에 금일은 그리드로부터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폭! 폭폭폭폭!!

파파파파팟!!

생각하는 와중에도 피아로의 손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궁극에 이른 호미질로 채소를 순식간에 뿌리 채 파냈다.

그의 곁에 쭈그려 앉아 밭일 중이던 크리스와 5대장들이 감탄을 연발했다.

‘우리 영지의 농부로 영입하고 싶다!’

크리스의 진실 되고도 간절한 바람이었다.

페드로.

자이언트 길드가 다스리는 그 영지는 과거와 달리 볼품없었다.

정체불명의 골렘 대군에게 짓밟힌 탓에 모든 게 쑥대밭이 됐었고 현재는 재건하는 과정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논밭 또한 엉망인지라 자체적으로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는 일이 불가능했다.

이때 만약 피아로를 영입할 수만 있다면?

페드로는 매 분기마다 풍작을 맞이할 것이고 자이언트 길드의 재정에는 여유가 생길 터였다. 백성들은 배불리 먹고 의욕이 생길 것이며 영지의 재건 속도가 몇 배나 상승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후…”

크리스는 한숨만 나왔다.

피아로처럼 대단한 네임드 NPC를 수하로 둔 그리드가 부럽고 또 부럽고 너무너무 부러워 환장할 노릇이었다.

“음, 오늘은 이만 해야겠군.”

피아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보다 3시간이나 일찍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었다.

“벌써 가시려고요? 대련은 어쩌시고요?”

어느새 피아로에게 극존칭을 사용하는 크리스였다. 존경심이 엿보였다.

“오늘 내게 중요한 일이 있다네. 밭일 후 대련은 밤으로 미루도록 함세. 이따 숙소에서 보세나.”

흙 묻은 농구들을 주섬주섬 챙긴 피아로가 논밭을 떠났다.

“밭일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양반이 저러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중한 일인가보군요.”

“어쩌면 템빨단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 아닐까요?”

5대장들의 추측이 제법 그럴 듯하다고 느껴졌다. 그만큼 평소의 피아로는 밭일을 소중히 했다. 그가 밭일까지 뿌리치고 봐야할 일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

“따라붙자.”

지대한 호기심을 느낀 크리스가 피아로의 미행에 나섰다.

피아로의 통찰력이 매우 높았으므로 상당한 거리를 벌려야만 했고, 그 탓에 난항을 겪었으나 어찌 운 좋게 놓치지 않고 따라붙을 수 있었다.

레이단의 인구가 적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허?”

“그리드?”

피아로를 따라 초대형 대장간 앞까지 도달한 크리스와 5대장들.

그들이 피아로와 마주보고 선 그리드를 확인하더니 당황했다.

양손에 2자루 대검을 무장한 그리드가 피아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제법 흉흉한 것이, 마치 피아로와 싸우기라도 할 기세였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불화가 있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내게도 피아로를 영입할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크리스가 내심 쾌재를 부르는 그때였다.

“저 멍청이가 주제파악을 못 하네.”

언제나 과묵한 지르칸을 제외한 다른 대장들이 조소를 흘렸다.

우리조차도 어쩌지 못한 피아로를 상대로 그리드가 덤벼들었던 까닭이다.

5대장들은 그리드가 10초 내로 호미에 이마를 찍히고 쓰러지리라 예측했다. 그것이 당연한 결과라고 믿었다.

‘왜냐면 우리도 그렇게 당했으니까!’

3차 전직하고 과거와 비할 바 없이 강해진 5대장들.

이들은 현재 본인들의 실력을 그리드와 비등한 수준이라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헉.”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목도한 5대장들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크리스 또한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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