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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23화 (118/1,794)

템빨 16권 - 6화

매직 미사일의 성능을 테스트한 그리드가 이어서 칸의 대장간을 찾았다.

그리드 덕분에 고급 대장장이 7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던 칸.

그는 윈스톤에서 명성을 떨치던 시절보다 훨씬 더 유능한 대장장이가 되어 있었다.

80명의 젊은 대장장이들을 감독하고 가르치는 한편, 행정관 라빗과 군부가 요구하는 물품들을 부족함 없이 생산했다.

“어째 더 젊어지셨수?”

오래간만에 칸을 만난 그리드의 안색이 밝아졌다.

칸이 전보다 더 정정해 보여 기뻤던 까닭이다.

칸이 껄껄 웃었다.

“젊은이들과 부대껴 지내다보니 정신이 젊어지고 육체 또한 건강해지는 게 아니겠나? 이게 다 자네의 은덕일세. 내 인생 말년에 자네를 만나 이만한 축복을 누릴 수 있으니 참으로 행복해.”

“행복하시다니 저도 행복하군요.”

그리드가 볼품없던 시절부터 칸은 쭉 함께였다.

그리드의 칸에 대한 애정은 무한한 것이었고 그건 칸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 남은 생, 얼마 되지 않으나 자네를 위해서 늘 열심히 하겠네. 죽기 전까지 레이단의 대장장이들을 반드시 훌륭하게 길러 보이겠어.”

“아니 이 양반이, 기껏 젊고 건강해져서 좋다놓고 무슨 또 생이 얼마 남지 않았데? 장난이라도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마십쇼. 응?”

울컥해서는 성을 내던 그리드가 뒤늦게 주변을 살폈다.

긴장한 대장장이들이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공작각하께서 행차하시자 하던 일도 멈추고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었다.

“고생들이 많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들 계속 해.”

“예!”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한 대장장이들이 그제야 제자리로 돌아갔다.

칸과 나란히 서서 그들을 관찰하는 그리드의 눈에 이채가 실렸다.

“중급 대장장이의 반열에 오른 이가 벌써 둘이나 있군요.”

레이단에서 대장장이 육성을 시작한지가 이제 고작 반년도 지나지 않았다.

한데 벌써 중급 대장장이가 탄생하다니, 실로 믿기지 않는 성장 속도였다.

“환경이 좋은 덕일세. 전설의 대장장이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자주 견문할 수 있었으니 저들의 재능이 보다 빠르게 개화할 수 있었지.”

맞는 말이다.

제아무리 재능이 뛰어날지언정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레이단의 대장장이들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리드와 칸이 일하는 모습을 엿보고 또한 직접 가르침을 받은 덕분이었다.

“저들 전원 대장장이 장인이 되는 그날까지, 앞으로도 오래토록 힘써주십시오, 칸.”

칸은 그리드가 살면서 사귄 첫 번째 친구였으니 누구보다도 각별했다.

그의 장생을 간절히 바라는 그리드에게 칸이 다짐해보였다.

“알겠네. 내 지긋지긋할 정도로 끈질기게 살아남아 1만 대장장이 장인을 육성해보이겠네.”

실없는 농담이었지만 그리드는 그 말이 현실이 되기를 바랐다.

“기대하죠.”

“허, 참. 늙은이를 대체 얼마나 혹사시키려는 겐지 모르겠군.”

“애초에 늙지도 않았으면서. 일흔이면 아직 한창 때잖습니까.”

“그럼 이참에 새장가도 가볼까?”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인데요?”

왕국에 단 셋밖에 되지 않는 공작 그리드와 평민 칸.

둘의 신분 차이는 하늘과 땅보다 더 크다.

한데 저토록 거리낌 없이 지내다니…

‘과연 우리 대장님은 대단하시군!’

칸에 대한 존경심을 더욱 강하게 품게 된 젊은 대장장이들이 의욕을 불태웠다.

따앙! 따앙!

오늘도 레이단에는 망치질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

전도유망한 대장장이 인재들의 모습을 확인한 그리드!

기쁨에 가벼워진 걸음으로 영주 성에 도착한 그를 아이린이 반겼다.

“낭군니임-!”

활짝 미소지은 채 달려온 아이린이 그리드의 품에 안겨왔다.

늘 그랬듯, 그리드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표출하는 모습이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은 경험이 적은 그리드에게 있어서 아이린의 애정표현은 기쁘고 소중한 것이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아이린이 그리드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의 목화처럼 깨끗하고 보드라운 피부로부터 기분 좋은 향취가 났다.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나 또한 마찬가지로 그대가 보고 싶었소.”

그리드가 아이린의 오뚝한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무척이나 오글거리는 언행이었다.

평소의 그리드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과연…”

아이린과 함께 그리드를 마중 나왔던 라우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한 손으로 얼굴의 절반을 가린 그가 그리드에게 도발적인 눈빛을 쏘았다.

“뉴스를 보면서 설마 했지만, 이 순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뭘?”

두서없는 말에 의문을 느낀 그리드가 라우엘에게 시선을 돌렸다.

큭큭, 어깨를 들썩이며 웃은 라우엘이 헛소리를 지껄였다.

“당신은 전생에서 나의 유일한 친구이자 적수였던 타천사 실바너스임이 분명하다는 사실을요.”

“…”

백발 버전 그리드를 목격하고 자극 받은 라우엘의 중2병이 만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드를 동류로 인식한 그가 자신의 망상 속 세계관에 그리드를 포함시켰다.

‘저 병은 언제쯤 고쳐지려나…’

쯧, 혀를 찬 그리드가 라우엘을 무시하고 아이린의 만삭인 배를 어루만졌다.

“앞으로 두 달 후면 우리 득템이를 만날 수 있겠구려.”

“후훗, 맞아요. 어서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득템이?”

무시당하자 민망하여 이성을 되찾아가던 라우엘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그리드님, 당신 설마 아이의 이름을 득템이로 지을 생각입니까?”

아무리 네이밍 센스가 없어도 그렇지, 자식이름을 득템이라 지으려 하다니?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리드 2세가 비뚤어질 가능성이 너무 컸다.

“자기 이름이 득템이라는 사실에 충격 받고 삐딱선 타게 될 아이의 입장은 고려치 않으신 겁니까!”

열불을 토해내는 라우엘을 그리드가 노려보았다.

“뭐라는 거야? 내가 미친놈도 아니고, 설마 자식 이름을 득템이라고 짓겠냐? 득템이는 단지 태명에 불과하다.”

“그, 그렇습니까?”

천만다행이다.

그리드의 네이밍 센스가 음식물 쓰레기 수준까지는 아니었던가보다.

안도한 라우엘이 재차 질문했다.

“그러면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뭐라고 지을 예정이십니까?”

그리드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와 아이린의 이름을 따서 그리린이라고 지을 거다.”

“네?”

“그리린.”

“…?”

농담이겠지?

‘당연히 농담이겠지.’

라우엘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리드의 자부심 넘치는 표정과 아이린의 반응이 영 거슬렸다.

“어머, 낭군님. 그리린이라는 이름 너무 예뻐요. 여자 아이에게도, 남자 아이에게도 참 잘 어울릴 것 같은 듬직하고도 귀여운 이름이에요.”

‘도대체 어딜 봐서…’

콩깍지란 무섭다.

그리드의 뜻이라면 뭐든 좋은 아이린이였다.

이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이 손재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

그리드의 집무실.

호출 받고 달려온 피아로에게 그리드가 질문을 던졌다.

“사하란 제국의 3황자는 어떤 인물이지?”

“서거하신 황후 아리아떼의 셋째 아들이며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내향적인 성격의 인물입니다. 저도 몇 번 뵙지 못하여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한데 그분에 대해서는 갑자기 왜 여쭈시는 겁니까?”

“이거.”

그리드가 인벤토리로부터 자수정 방패를 꺼냈다.

그를 본 피아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물건을 어찌 주군께서…!”

“숲의 수호자라는 괴물이 갖고 있더라고. 원래는 경의 물건이었다며?”

“딱히 제 물건이라기보다는, 적기사단의 역대 단장들에게 대대로 물려지던 상징성 무구입니다.”

“이거에 뭐 특별한 기능은 없어?”

“예, 그저 겉모습만 화려할 뿐 평범한 방패입니다. 성능 자체도 썩 좋지 못합니다.”

“근데 3황자가 왜 이걸 찾고 있지?”

“3황자가요…?”

“이거 말고도 찾는 물건이 여러 개 있는가 보던데.”

“흠.”

골똘히 생각해 보던 피아로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3황자는 어떤 의식에 관심을 가졌던 시기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의식을 취미로 삼고 의식에 필요한 물품들을 모으고 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의식? 무슨 의식?”

“거기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자수정 방패가 의식의 도구로서 효용성이 있는지조차 의문이군요.”

“흠.”

의식이라 하면, 역시 흑마법 계열이 아닐까?

‘어째 찝찝하군.’

3황자가 찾고 있다는 물건들, 굳이 그에게 건네주지 않는 편이 좋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퀘스트와 관련 된 에피소드일 수도 있으니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고… 뭐, 상황 봐서 적절하게 행동하도록 하자.’

애초에 급할 거 없는 입장이다.

그리드가 우선 순위로 하는 일들은 따로 있었다.

여유 있게 생각하는 그리드에게 라우엘이 귓속말을 보내왔다.

-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레이단까지 찾아올 수 있는 손님이라면 일단 보통 수준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도 라우엘을 통해서 내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당한 거물이리라.

-누군데?

-크리스님이십니다.

-크리스? 통합랭킹 3위?

-네.

크리스는 7대 길드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자이언트 길드의 수장이다.

제1회 국가대항전과 라인하르트 골렘 침공전 당시에 큰 활약을 펼쳤던 그를 그리드라고 모를 리 만무했다.

‘하지만 크리스는 체다카 길드와 적대 관계였는데.’

그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곳까지 찾아와 나를 만나려하는 이유가 뭘까?

지대한 흥미를 느낀 그리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접실로 데려와.

***

골렘 침공전에서 영지를 잃은 자이언트 길드는 지금까지 반 년 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다.

특히 크리스는 국가대항전에서 레가스에게 패배한 탓도 있어 명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크리스와 자이언트 길드는 좌절하지 않았다.

시련은 극복하라고 있는 법!

와신상담하여 세력을 전보다 더 크게 키웠다.

특히 크리스는 아주 유용한 세컨드 클래스까지 획득했다. 이전과 비교하면 몇 배나 강해졌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만족할만한 무기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템 거래 사이트와 게임 내 경매장을 24시간 주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물품이 나타나질 않았다.

게임에서 템빨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그리드를 보고 깨달은 크리스였기에 점차 초조해졌다.

그리드를 찾게 된 경위다.

“내게 최강의 무기를 만들어주시오.”

그리드는 크리스와 처음으로 대면하는 것이었다.

무려 통합랭킹 3위씩이나 되는 인물이었으니 뉴스나 먼발치서 보는 게 고작이었다.

과거, 체다카 길드 시절에 자이언트 길드와 충돌하기는 했으나 그리드 개인은 크리스에게 원한이 없었다.

하지만 체다카 길드 출신의 다른 길드원들이 문제였다.

“지슈카들이 당신을 꽤나 싫어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당신에게 내가 아이템을 제작해줘서야 길드원들에게 내 입장이 뭐가 되겠어?”

선수를 치는 그리드였다.

지금 이 발언으로 인해서 그리드의 입장이 훨씬 더 고지에 올라서게 되었다.

물론 그리드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절묘하게 작용하는 수였다.

안 그래도 아쉬운 입장이었던 크리스는 그리드에게 더욱 더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크게 사례하겠소. 또한 내가 단언하건데, 전 체다카 길드원들은 내게 큰 원한이 없을 게요.”

“그러면 왜 적대했던 건데?”

“나의 일방적인 경쟁의식 때문이었고 체다카 길드는 내가 거는 싸움을 피하지 않았을 뿐이오.”

L.T.S라는 게임을 플레이하던 시절, 크리스와 자이언트 길드는 체다카 길드에게 늘 패배했었다.

그 원한이 뿌리깊이 남아 Satisfy에서까지 경쟁의식을 품고 있던 것이다.

반면 체다카 길드는 자이언트 길드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본래 과거란, 때린 놈보다 맞은 놈이 더 잘 기억하고 연연하는 법이었으니까.

“그거야 뭐 확인해보면 알게 될 일이고. 어쨌든 내가 당신의 아이템을 제작해주게 될 경우, 당신은 내게 얼마를 지불할 생각이지?”

“돈보다 더 귀한 걸 주겠소.”

크리스가 인벤토리로부터 어떤 물약을 꺼냈다.

그것의 상세 정보를 공유 받은 그리드의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엘릭서…!’

뱀파이어의 도시를 5개나 공략하고도 획득하지 못한, 정말로 얻기 힘든 진귀한 영약이다.

천문학적인 자산을 보유한 재벌들, 혹은 지존을 목표로 하는 랭커들이 줄을 서서 구하고 있으나 공급이 거의 없어 시세가 갈수록 폭등하는 물건이었다.

그리드에게도 엘릭서는 꼭 필요했다.

정확히 말하면 민첩의 엘릭서다.

검술을 보다 위력적으로 구사하기 위해서는 민첩 수치를 근력 수치와 동등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기에.

그리고 공교롭게도, 크리스가 제시한 엘릭서가 바로 민첩의 엘릭서였다.

그리드의 영민하지 못한 두뇌가 최선을 다해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수락해야하는 거래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크리스는 템빨단의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적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행위는 당연히 기피해야함이 옳았다.

‘그렇다고 거절하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아하.’

씨익.

엘릭서를 눈앞에 둔 채 심사숙고하던 그리드의 입가로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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