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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21화 (116/1,794)

템빨 16권 - 4화

브라함의 영혼이 혼의 그릇에 담기는 순간,

번쩍!

어두운 공동을 일순 환히 밝히는 푸른빛이 발생하였다.

그리드의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내 손으로 전설의 대마법사를 부활시키는 건가…!’

브라함 에슈발트.

현재의 마법 체계를 확립시킨 장본인으로서 마법학의 아버지로 추앙 받는 인물이다.

그가 남긴 일화와 업적들은 실로 위대했고 그렇기에 전설이 될 수 있었다.

그만한 인물을 내 손으로 부활시키다니!

묘한 자부심에 휩싸여 격양 된 그리드가 주먹을 말아 쥐는 그때였다.

[대륙 각지에 흩어져 있던 브라함의 영혼 조각들이 혼의 그릇으로 집결 합니다.]

알림창이 떠오름과 동시에,

슈웅! 슈슈슝!

공동 어귀로부터 푸른 영혼 수십 개가 차례대로 쇄도해왔다.

실로 장관이다.

어둠을 밝히며 날아온 영혼들의 모습은 마치 지상세계에 펼쳐진 은하수 같았다.

단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그릇을 좀 더 예쁘게 만들 걸.’

그리드가 제작한 혼의 그릇은 모양이 너무 평범하고 익숙했다.

색상만 휘황찬란한 금빛일 뿐 모양새는 밥그릇 그 자체였던 것이다.

밥그릇에 담긴 브라함의 영혼 조각들이 쌀밥. 정확히 표현하면 파랑색 이온음료로 지은 쌀밥처럼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순리였다.

‘크흠… 미안하다, 브라함.’

진실 된 감정이었다.

그리드는 브라함의 영혼을 받아들임으로서 감정과 생각 일부를 공유하고 교감하는 과정을 거쳤다.

하여 브라함에 대한 경계심이 옅어졌고 심지어 친밀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완전한 방심.

이는 브라함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혼의 그릇 속에서 하나로 뭉치기 시작한 브라함의 영혼이 그리드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내가 네게 했던 말들을 너는 기억하느냐?]

“얼추.”

[역사는 파그마가 100여 년 전에 사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네게 파그마가 300년 전에 죽었다고 말했다. 어째서 시간이 어긋나있는지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느냐?]

“당신이나 역사, 둘 중 하나가 거짓을 말하는 거겠지.”

물론 브라함이 거짓을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도플갱어 랜디를 레이드하고 획득했던 웬디의 일기장.

그 속에서 파그마가 등장했던 시기만 봐도 140년 전이었다.

즉, 파그마가 300년 전에 사망했다고 말한 브라함은 거짓말쟁이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아니, 거짓은 없고 둘 모두 진실이다. 파그마는 300년 전에 죽었으나 100년 전까지 존재하였으니까.]

‘뭔 소리야?’

그리드의 이해력은 뛰어난 편이 아니다. 그는 브라함의 뜬구름 잡는 말을 섣불리 알아들을 수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파그마와 처음 만난 나는 감탄을 넘어서 경악했다.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초월한 그의 대장장이 기술은 내 견식을 높였고 내게 심지어 경외심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이후 친구가 됐다.

일족은 물론이고 신조차도 업신여기던 브라함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존중하고 사귄 존재가 다름 아닌 인간이었던 것이다.

[파그마는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나는 그 덕에 한층 더 진화할 수 있었다.]

무려 10년을 함께했다.

브라함의 방대한 지식이 파그마의 기술을 통해서 발현되었고 이는 두 사람 모두의 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다.

[파그마 덕분에 영생의 마법을 보다 심도 깊이 연구할 수 있게 된 나는 혼의 그릇을 설계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혼의 그릇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신의 광물 아다만티움을 초월하는 보다 특별한 광물이 요구됐고, 그만한 광물을 창조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파그마가 유일했다.]

이후 의기투합한 두 사람이 만들어낸 광물이 바로 파브라늄이다.

“하지만 파브라늄을 만든 직후 파그마는 늙어 죽었다고 했지?”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 줄 알았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리드가 의아해하는 사이, 혼의 그릇 속 브라함의 영혼 조각들은 완전한 하나가 되었다.

맑은 바다처럼 푸르고 아름답던 영혼이 불길한 붉은 색으로 변모하였다.

[파그마의 후예여, 이로서 내 영혼은 완전해졌다. 모두 네 덕분이다.]

“인사치레는 관두고 파그마의 이야기나 마저 해줘. 약속했던 보상도 어서 주고.”

[한데 이상하지 않느냐?]

“뭐가?”

기껏 사람의 궁금증을 증폭시켜놓고 딴 소리만 지껄이는 브라함이었다.

그에 짜증을 느낀 그리드가 눈살을 찌푸렸고, 브라함은 소름 돋는 말을 뱉었다.

[영혼의 완전함만으로 부활이 가능할까? 육신이 없는데.]

“……!”

그리드의 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눈치 챈 것이다. 인벤토리로부터 황급히 실패작을 소환하는 그에게 브라함의 영혼이 날아들었다.

[네놈의 미천한 육신을 내게 바치는 것을 영광으로 알라!]

‘지랄!’

그냥 지랄도 아니고 개지랄이다.

세상에 뭐 이딴 거지같은 퀘스트가 있단 말인가?

그리드는 작금의 상황을 조금도 납득할 수 없었다.

‘이번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은 혼의 그릇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드는 이미 혼의 그릇을 제작했다.

<대마법사의 부활> 퀘스트는 진즉 완료되어야 정상이었다.

한데 퀘스트가 클리어 되기는커녕 도리어 브라함이 덤벼들고 있다.

이는 시스템에 반하는 일이었다.

‘설마 버그? 버그 없는 게임이라며! 이런 씨부럴!’

Satisfy에서 최초로 버그를 체험하는 유저가 되는 것인가!

‘왜 맨날 나만 이딴 꼴을…!’

신을 원망하며 이를 질끈 문 그리드가 브라함의 영혼에 대항, 실패작을 휘둘렀다.

한 바퀴 선회하여 그를 회피한 브라함의 영혼이 그리드의 육신에 깃드는 순간이었다.

[대마법사 브라함이 당신의 육신을 빼앗고자 시도합니다.]

[플레이어의 육신은 안전하게 보호 받습니다. 브라함의 시도를 무력화시킵니다.]

‘그럼 그렇지…! Satisfy에 버그가 있을 리 없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던 그리드가 떠오르는 알림창을 확인하고 환희했다.

육신을 지켜내고 안도하는 그에게 브라함의 영혼이 말했다.

[적해에서 말했었지? 너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는 경계하라고.]

“사람 뒤통수 후려치려 한 주제에 뭘 또 이제 와서 설교야! 염치없는 놈! 마법을 가르쳐주기는커녕 파브라늄도 안 주고 튈 생각이지?”

[그건 오해다. 너도 알다시피 파브라늄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파그마와 너뿐이다. 내게 혼의 그릇을 제외한 파브라늄은 단순한 돌멩이에 불과해. 또한 마법을 가르쳐주는 일 따위 내게 매우 쉬운 일이다. 약속은 이행하도록 하지.]

“…?”

조금 전에는 죽이려 들었던 놈이 이번엔 또 왜 이리 순순하단 말인가?

‘인격 장앤가?’

예를 들면 다중인격이라거나.

진지하게 의심하는 그리드의 시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대마법사의 부활>을 클리어하였습니다.]

[<파브라늄> 17개를 획득하였습니다.]

[마법 <매직 미사일(강화)>를 습득하였습니다.]

“뭐…!”

퀘스트를 무사히 클리어한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다.

대량의 파브라늄을 획득하였으니 날아갈 듯이 기뻤다.

하지만 하필이면 습득한 마법이 매직 미사일이라니?

기쁨과 분노가 비례한다.

“너…! 너!!”

전설의 대마법사라는 놈이 고작 이딴 기초 마법을 가르쳐줘?

얼굴을 시뻘겋게 붉힌 채 발을 구르는 그리드를 확인한 브라함의 영혼이 가소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주제를 알고 감지덕지해라. 내 의뢰를 1년 반 이상이나 방치한 채 파브라늄을 야금야금 도둑질해갔던 네놈의 죄, 사형으로 다스려야함이 마땅하나 지금은 내 기분이 무척 좋으니 용서해주마.]

끝까지 재수 없게 지껄이고 사라지는 브라함의 영혼이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홀로 남게 된 그리드가 고함을 내지르며 분개했다.

제단 위 아모락트의 영혼은 그리드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야탄의 종 학살자. 브라함에게 총애 받고 있었는가.’

스르륵-

곱씹은 아모락트의 영혼이 재단에서 사라졌다.

유라를 악마로 만드는 것에 실패했으나 마리로즈를 견제할 패를 마련하는 것은 성공하였으니, 인간계에서 그의 역할은 일단락 된 것이었다.

***

“결국 예정대로 되는군.”

S.A그룹 본사 회장실.

루드하탄의 동굴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임철호 회장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브라함.

그는 종잡을 수 없는 존재다.

지식의 탐구라는,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본능에 사로잡혀 일족들을 실험의 도구로 삼은 잔혹성을 지님과 동시에 어머니를 위하여 눈물을 흘릴 줄도 알았다.

제자 무무드를 시기하였으나 끝내 해치지지는 않았고, 그러면서도 또 공적은 가로챘다.

또한 자신을 배신한 친구를 증오하면서도 그리워하는 중이다.

급기야는,

‘자신의 부탁을 우습게 여긴 그리드에게 살의를 품었다가도 금세 또 호의를 베풀었다.’

그리드가 영혼 빙의를 통해서 브라함에게 친밀감을 느꼈듯이, 브라함 역시 그리드에게 친밀감을 느낀 것일 테다.

‘아니라면 단지, 파그마의 기술을 계승한 그리드를 이용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판단한 걸 수도 있고.’

브라함을 판단하는 일은 어렵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포악한 본능과 후천적으로 습득한 인간미 사이에서 갈등하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생을 상실하고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성격이 크게 변화한 브라함이 임철호 회장은 늘 흥미로웠다.

“변화하는 자신을 애써 외면하며 스스로와 타인에게 거짓을 일삼는 삶… 고독할 터인데.”

안타까운 사정이야 어찌됐든 Satisfy의 스토리는 예정 된 수순을 밟고 있다.

유저들이 게임을 플레이함에 있어서 변화하는 것은 크게 없을 테지만, 관찰자의 입장에서 스토리의 진행은 즐겁다.

***

“하아…”

공동에 홀로 남은 그리드는 연신 한숨만 쉬었다.

“매직 미사일… 내가 매직 미사일 마법사라니…”

매직 미사일은 마법사로 갓 전직한 10레벨 유저들이 습득하는 기초 마법 중 하나다.

기초 마법이니만큼 마력 계수가 형편없다. 일정 수준의 마법 저항력을 갖춘 상대에게는 생채기조차 입히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나마 장점이라면 캐스팅이 빠르다는 점이랄까.

‘적절하게 사용할 수만 있다면 적의 시선을 분산시키거나 행동을 제약하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던데.’

물론, 적의 마법 저항력이 높으면 아예 데미지를 입힐 수 없으니 무용지물이지만.

‘슬라임 잡을 때나 써먹어야지…’

어느덧 301레벨이 된 내가 슬라임을 사냥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하, 진짜.”

투덜거리던 그리드가 예의상 매직 미사일의 정보를 확인했다.

<매직 미사일(강화)>Lv.1

전설의 대마법사가 발동 공식을 완전히 뒤엎어버린 매직 미사일입니다.

매우 뛰어난 위력을 자랑하나 그만큼 많은 자원을 소모합니다.

대상에게 현재 마력의 2배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힙니다. 또한 적의 마법 저항력을 무시합니다.

자원 소모:마나 400.

캐스팅 대기 시간:1초

재사용 대기 시간:5초

“무슨 매직 미사일 따위가 마나를 400이나 처먹어?”

파그마의 검무, 연(聯)보다 마나를 조금 더 소모한다.

초급 마법 따위가 레전드리급 스킬과 비등한 마나를 소모하다니?

“뭐 이딴… 헉?”

마법 설명을 대충 훑어나가던 그리드가 뒤늦게 경악했다.

‘마력의 2배에 해당하는 피해? 마법 저항력 무시?’

반면 일반 매직 미사일은?

{매직 미사일 상세 정보 아는 사람?}

길드 채팅창에 그리드가 질문하자 길드의 마법사들 몇 명이 스킬 정보를 공유해줬다.

<매직 미사일>Lv.10(마스터)

가장 기초적인 마법 중 하나입니다.

대상에게 고정 된 데미지+현재 마력의 5퍼센트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힙니다.

자원 소모:마나 20

캐스팅 대기 시간:1초

재사용 대기 시간:2초

“헐.”

이제 보니 평범한 매직 미사일이 아니었다.

브라함이 전수해준 매직 미사일은 가히 레전드리급 마법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드의 마력 수치가 마법사들과는 비할 바 없이 낮을지언정 비장의 한 수로 사용하기에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미워할 수가 없다.”

브라함이 점점 더 좋아지는 그리드였다.

그와의 인연, 이로서 끝일 수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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