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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16화 (111/1,794)

템빨 15권 - 21화

‘아니, 이런 염병?’

파그마의 후예는 모든 종류의 아이템을 조건 없이 착용할 수 있다.

이는 파그마의 후예가 발휘하는 파괴력의 근원이었고 가장 뛰어난 장점 중 하나였다.

한데 이야루그트는 착용이 불가능했다.

이야루그트가 그리드를 거부하는 까닭이었다.

-최하급 마족인가? 네놈으로부터 느껴지는 악마력이 저급하고도 미약하다. 네놈 따위에게는 감히 이 몸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어.

[이야루그트에게 거부당하였습니다.]

[이야루그트의 착용에 실패하였습니다.]

이야루그트가 차라리 저주를 내렸더라면 상태 이상 면역 패시브로 상쇄시켰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루그트는 그리드라는 존재 자체를 용납하지 않고 있었다.

상태 이상 면역으로 극복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드는 심히 당혹스러웠다.

설마 자신이 착용할 수 없는 아이템이 존재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해왔기 때문이다.

‘난감하게 됐네.’

성장형 아이템의 등급을 상승시키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많이 사용할 것.

하지만 아예 착용 자체를 할 수가 없으니 등급 상승이 성립되질 않는다.

레전드리 등급의 이야루그트를 한시라도 빨리 완성시켜 지존 무기의 주인이 되고 싶었던 그리드의 입장이 곤란해졌다.

‘악마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나?’

이야루그트가 그리드를 거부하는 이유는 악마력에 있었다. 악마력 수치가 올라간다면 이야루그트도 더 이상 그리드를 거부하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내키지 않았다.

‘악마력이 높아지면 지옥으로의 출입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악마력이 높아진다.

이는 곧 악마가 된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다.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그리드가 지옥에서 목도한 알림창 때문이었다.

[흑화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악마력이 봉인되어 종족이 인간으로 되돌아갑니다.]

[평범한 인간은 지옥으로의 출입이 불가능합니다. 지옥에서 추방당합니다.]

시스템은 명확하게 말했다.

인간은 지옥의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즉, 지옥의 출입이 가능해질 정도의 악마력이라면 이미 악마 그 자체가 된 상태라고 해석해도 무방했다.

‘악마가 되면…’

인간과 적대하는 종족이 될 경우 정상적인 게임 진행이 가능할까?

힘들 것이다.

레이단의 영주직을 유지할 수 없을 테고 이는 템빨단의 붕괴를 뜻한다. 최악의 경우 아이린과 칸 등이 내 곁을 떠날 수도 있었다.

그리드는 악마가 되는 일만큼은 결단코 피하고 싶었다.

‘당분간 이야루그트는 흑화를 발동할 때만 사용하는 방향으로 가자.’

그렇게 짤막하게 사용하면서라도 아이템 이해도를 높이고, 종국에 이르러서 이해도 100퍼센트를 달성하게 된다면…

‘그때는 전설적 대장장이의 개조를 사용한다.’

이야루그트의 영혼이 내게 복종할 수밖에 없는 형태로 개조함으로서 이야루그트의 완전한 주인이 되리라.

다짐하는 그리드의 얼굴은 누가 봐도 사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름도 야쿠르트로 바꿔버리겠어.’

개당 200원짜리 음료에 어릴 적부터 익숙해왔던 그리드로서는 <이야루그트>라는 이름이 발음하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이참에 부르기 편한 이름으로 바꾸는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큭큭큭…”

검술 실력만큼은 대악마들과 비견되었다는 검마 이야루그트.

그의 고귀한 자긍심이 무참히 짓밟히기까지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

14번 도시 공략부터 파티에 합류한 유라.

합류 당시 그녀의 레벨은 203에 불과했다.

제아무리 통합 랭킹 5위였던 인물이고, 또한 레전드리 클래스 전직자라고는 하나 레벨이 너무 낮은 거 아닌가?

일행은 유라의 합류가 심히 섣부르다고 판단했다. 그녀가 파티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도리어 짐만 되리라 여겼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은 빗나갔다.

이름부터가 마족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 같은 레전드리 클래스, 데빌 슬레이어.

뱀파이어들을 상대로 유라는 초월적인 전투력을 뽐냈다.

타앙! 탕탕!!

데빌 슬레이어의 주력 무기는 마법공학 총이다.

편의상 마법총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연금술 시설에서만 생산할 수 있는 무기로서 사용자의 컨트롤 실력에 따라서 위력이 차이난다.

얼마나 정순한 마력을 빠르게, 적정량 분배하여 탄환으로 배출하는가.

매 공격마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하는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그리드에게 마법총을 쥐어준다면 전투력이 100배 이상 하락할 것이 분명했다. 아마 총알 1발 쏘는데 3분 이상 걸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라는 달랐다.

그녀는 흑마법사 시절 통달한 마력 컨트롤 능력과 타고난 재능을 기반으로 어느새 마법총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마법총사들조차 그녀의 솜씨에는 경탄할 것이다.

“크악!”

“키야아!!”

유라의 새하얀 피부와 성스러운 조화를 이루는 순백의 권총.

녀석이 푸른 마력을 토해낼 때마다 하급 뱀파이어들이 피를 쏟았다.

“이게 대체 무슨…!”

뱀파이어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흑단 같은 머리칼을 뒤로 올려 묶은 인간 여자.

인간을 먹잇감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뱀파이어들을 매료시킬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가 쏘는 총에는 신성력이 조금도 깃들지 않았다.

한데 우리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육신을 검정 연기로 흩뜨려 피해 봐도 부질없었다. 연기화조차도 무력화시키는 공격이었다.

“네년…! 네년의 정체가 무엇이냐!!”

총알에 미간이 꿰뚫려 죽는 동료를 보고 경악한 뱀파이어가 발악적으로 외쳤다.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해온 존재가 인간 여성을 상대로 겁을 먹은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인 여성에게!

극검의 왜곡 된 애국심이 극한까지 치솟았다.

“두 유 노우 유라앗!!!!!”

“…저 인간, 아는 영어라고는 두 유 노우밖에 없는 게 분명해.”

“심지어 정확한 사용법도 모르는 것 같은데.”

변치 않는 극검의 성향에 일행들이 혀를 내둘렀다.

유라는 전투에 집중할 따름이었다.

모든 마족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패시브 스킬 <정화>가 깃든 마력을 정제, 총탄으로 삼아 <마족 멸시>를 쏘았다.

타앙! 탕탕!!

마법총의 가장 큰 장점은 총알의 속도에 있다.

화살과 달리 보고 대처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반면 단점은 느린 연사 속도였다.

현대 사회의 총과 달리 마법총은 무조건 마력 정제 과정을 거쳐야했기 때문에 활보다 쏘는 속도가 매우 느렸다. 이는 유라의 솜씨로도 극복할 수 없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였다.

찰칵!

뱀파이어들의 머리를 터뜨린 유라가 마력을 새로이 장전하는 사이,

“인간 따위가!”

생존한 뱀파이어들이 전력으로 달려와 유라에게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이런!”

파티의 유일한 탱커인 반트너는 제드노스를 보호하는 중이었다. 제드노스가 광역 마법을 사용하였다가 어그로를 독박 쓴 까닭이었다.

하여 그는 유라를 도울 수가 없었다.

난처한 표정을 짓는 그의 곁을 누군가가 달려 지나갔다.

“유라아!!”

절실히 유라의 이름을 외치며 그녀를 돕고자 나서는 사내.

그리드인가?

아니다.

그리드는 이야루그트를 상대로 연신 우라질 거리며 홀로 사냥에 열중하고 있었다. 애초에 유라에게 관심도 없었다.

지금 유라를 돕기 위해 몸을 날린 사내의 정체는 바로 극검이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딸, 유라가 다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내가 간다! 유라아!!”

절절하게도 외치는 극검이었다.

하지만 사실 유라에게는 그의 도움이 필요치 않았다.

레전드리 클래스.

심지어 전투 특화 레전드리 클래스가 자기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겠는가?

스팟-!

마법총을 버린 유라가 검을 뽑았다. 그리고 스킬 <광휘의 검>을 발동, 접근해온 뱀파이어들을 일거에 베어버렸다.

뱀파이어들은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맛봤다.

극검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검술까지 구사하다니…!”

그렇다.

데빌 슬레이어의 주력 무기는 마법 총 하나가 아니었던 것이다.

데빌 슬레이어는 <웨폰 마스터리> 스킬을 보유한 바, 기본적으로 모든 종류의 무기를 다룰 수 있었다.

다만 액티브 스킬이 총술과 한손 검술에만 특화되어 있어 다른 종류의 무기보다는 마법총과 한손 검만 애용하는 중이었다.

“잔챙이들을 상대로 잘도 날뛰는구나!”

하급 뱀파이어 몇이 연달아 유라에게 당하는 것을 목격한 중급 뱀파이어들이 직접 나섰다.

유라의 얼굴에 낭패가 실렸다.

하급 뱀파이어들의 레벨은 200 중반대인 반면 중급 뱀파이어들의 레벨은 최소 280이상이었던 까닭이다.

그들과는 레벨 차이가 너무 커서 유라의 공격이 아예 먹히질 않았다.

“어디에 한 눈을 파는 거야?”

뱀파이어들을 따돌리기 위해 주변 지형을 살피는 유라의 귓가로 지슈카의 음성이 들려왔다.

지슈카는 뱀파이어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너희들의 상대는 나잖아?”

퍼퍼펑!!

마치 드릴처럼 회전하는 화살들이 쏘아져 뱀파이어들의 심장을 시원하게 꿰뚫었다.

주춤거리는 녀석들에게 춤추는 화살을 연계한 뒤 폭발시킨 지슈카가 새침하게 말했다.

“딱히 널 도운 게 아니야. 내 경험치를 지킨 것뿐이라고.”

유라는 미소 지을 따름이었다.

‘즐거워.’

타고난 재능과 미모 탓에 유라는 늘 혼자였다.

원하지 않아도 이성들의 마음을 빼앗았고 동성들에게는 시기와 질투를 샀기에 마음을 터놓고 지낼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하지만 템빨단원들은 달랐다.

이들은 모두 유라와 동등한 재능을 가진 존재들.

유라를 특별취급하거나 견제하지 않았다.

유라는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편이 훨씬 더 즐겁고 든든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템빨단에 가입하기를 정말 잘했어.’

유라가 템빨단에 가입한 이유는 오로지 그리드 때문이었다.

그를 통해 템빨을 갖추고 보다 빨리 렙업하여 랭킹을 되찾고 싶었다.

또한 개인적인 호감도 있었다.

그리드는 일반적인 남성들과 다르다. 내게 이성적인 호감을 표하지 않았고 심지어 무관심했다. 가끔씩 귀찮다는 기색을 표출할 때도 있었다.

그런 모습이 유라에게는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마조히즘이라서?

아니다(아마도).

유라는 자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남성이 신선하고 편했다.

결정적으로, 국가대항전에서 그리드에게 큰 도움을 받아 매료 된 부분도 있었다.

이성에게 호감을 품은 경우는 처음인지라 유라는 보다 그리드 곁에 있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템빨단 자체가 좋아지고 있었다.

“거기까지다!!”

쩌엉-!

그리드 파티가 10번 도시의 뱀파이어들을 학살하기 시작하고 이틀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도심 중심부에 우뚝 솟아있던 건물 창문이 산산조각나면서 보스가 등장했다.

14, 15, 12, 11번 도시의 보스들과 마찬가지로 남작급 진혈족이었다.

“감히 내 도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다니! 용서치 않겠다!!”

쿠오오오오!!

피의 마력이 사방팔방으로 전개되었다.

순간 발생하는 힘의 파동이 어마어마했다. 동레벨 던전 보스들과는 비할 바 없이 강력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엘핀스톤에 비하면 허접나부랭이였다.

엘핀스톤을 레이드한 경험이 있는 그리드 파티에게 남작급 진혈족은 아무런 위협도 못되었다.

“흑화.”

그리드가 처음부터 전력을 드러냈다.

칠흑의 마기를 토해내며 적색의 장검을 무장하는 그의 모습은 사신 그 자체였다.

“커, 커억! 인간들이 어찌 이리 강할 수가…!”

10번 도시의 보스가 검정 연기로 흩어졌다.

다구리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놈이 드롭한 흡혈 반지는 템빨단원들이 알아서 잘 분배했다.

“좋아.”

이야루그트의 이해도가 어느덧 20퍼센트에 육박하고 있었다. 매우 느리기는 하지만 어쨌든 꾸역꾸역 오르고는 있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을 조만간 야쿠르트로 만들어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한 그리드가 파브라늄의 수색에 나섰다.

그리고 어렵사리 발견한 동굴 안에서 브라함의 영혼과 조우했다.

Satisfy 시간으로 약 1년 반 만의 재회였다.

[파그마의 후예여! 드디어 만나는구나!!]

‘어?’

그리드의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재회였다.

11~15번 도시에서는 브라함의 영혼이 나타나지 않았던 까닭이 컸다.

솔직히 말해서 그리드는 브라함이라는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다.

‘분명히 화내겠지?’

퀘스트를 수행하기는커녕 파브라늄을 연신 도둑질하고 있는 내게 브라함이 분노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확신한 그리드가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오, 오래간만이네.”

그에게 브라함이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제발 나를 도와다오!!]

화를 내기는커녕 애원하는 브라함이었다.

그리드가 알고 있는 그의 성격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태도였다.

해결 불가능하여 방치해뒀던 전직 퀘스트가 격변을 맞이하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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