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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14화 (109/1,794)

템빨 15권 - 19화

“아그너스…!”

랭커 목록에서 유라가 사라지자 통합 랭킹 6위로 등극한 사내.

최초에는 에픽 전직자로 알려졌으나 머잖아 등급 성장형 히든 전직자임이 밝혀진 인물이다.

그는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하지만 극소수의 최상위 랭커들은 그의 강함을 잘 알고 있었다.

사냥터에서 종종 마주쳤던 까닭이다.

“어이, 템빨단 애송이들아.”

지슈카, 폰, 레가스, 페이커, 제드노스, 극검, 반트너.

일당백 여덟을 홀로 마주하고도 아그너스는 위축되지 않았다. 도리어 우습게 여기며 으름장을 놓았다.

“저 리치는 내가 11개월 동안 찾아다닌 놈이거든? 내 사냥감 함부로 건들지 말고 썩 꺼져. 죽여 버리기 전에.”

“이 새끼가!”

연신 함부로 지껄이는 아그너스에게 반트너가 성을 냈다.

“너야말로 뒤지기 싫으면 주둥이 함부로 놀리지 말고 꺼져라!!”

아그너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대머리 반트너. 소문대로 멍청한 놈이로군.”

반트너의 얼굴과 머리가 붉게 달아올랐다.

“난 멍청이도 아니고 대머리도 아니다! 이건 삭발한 거라고!! 애초에 네가 뭔데 우리한테 꺼지라 마라야!! 이곳을 먼저 찾아낸 건 우리라고!!”

“그래서, 뭐? 너희가 저 리치랑 싸우기라도 하겠다고?”

“못할 건 또 뭔데?”

“큭큭! 재미있는 새끼네? 보아하니 이 도시의 주인을 레이드한 모양인데, 그래서 기세가 올라 감을 잃었나? 무무드는 전설에 근접했던 마법사다. 죽음을 초월한 지금은 더욱 더 강해졌지. 너희들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뻑큐다, 새꺄! 네가 혼자서 레이드 하려는 놈을 우리라고 못 잡을까…! 웁! 우웁!!”

“진정해. 우리의 목적은 리치 레이드 따위가 아니니까.”

급기야 도끼를 거머쥐는 반트너의 주둥이를 지슈카가 가로막았다. 그리고 아그너스에게 제안했다.

“네게 저 리치를 넘기겠어. 레이드에 일절 관여하지 않을게. 대신 우리는 따로 해결해야할 일이 있거든? 그것까지 제지하지는 말아줄래?”

“지금 옷차림 그대로 무릎 꿇고 빌면 생각해보지.”

“좋게 대해줄 때 적당히 해, 아그너스.”

“큭큭, 그래, 그래. 알았다.”

지슈카가 정색하자 의외로 순순히 구는 아그너스였다.

덕분에 템빨단원들에게도 좋은 전개가 됐다.

리치는 아그너스에게 떠넘기고 자신들은 파브라늄의 확보에만 열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반트너가 분을 삭이지 못했다.

{저놈을 그냥 놔둘 셈이야? 우리를 애송이 취급하면서 개무시한 놈을?}

반트너는 일행 중에서 랭킹이 낮은 편이다.

하여 그는 아그너스와 조우해본 경험이 없다.

반면 다른 일행들은 달랐다. 그들은 아그너스와 최소 1번씩 사냥터가 겹치는 경우가 있었다.

{아그너스는 피하는 게 상책이야.}

천외천 크라우젤.

폰은 그를 지존이라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1대1의 경우다.

죽은 자들의 왕인 아그너스는 수백의 권속을 다스리는 바,

{절대로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사내다.}

반트너는 납득하지 못했다.

{너희들은 예전부터 저놈을 대단하다 말하는데, 나는 솔직히 모르겠다. 우리 여덟이 꼬리를 내리고 도망쳐야할 정도로 강하냐?}

{도망치는 게 아니지. 피하는 거라니까?}

{그 말이 그 말이잖아! 아오, 염병! 그리드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템빨단이 무시당하는 건 즉 그리드가 무시당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그러고 보니 그리드가 문제네. 두 사람이 만나면 반드시 싸우게 될 텐데.}

{성격이 비슷하지. 그리드랑 아그너스는 평생 마주치지 않는 게 좋아.}

{그리드가 도착하기 전에 어서 파브라늄을 확보하자.}

파팟!

결정한 템빨단원들이 동굴 곳곳으로 흩어졌다.

혼자 남아 아그너스를 노려보던 반트너도 결국 일행들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확인한 아그너스가 중얼거렸다.

“서두르지들 마라. 무무드를 확보하면 너희들을 상대로 성능을 테스트해봐야 하니까.”

음침하게 웃는 아그너스에게 브라함이 소리쳤다.

[정말이지 별 잡놈들이 계속해서 꼬이는군! 네놈은 또 뭐냐!!]

“나?”

아그너스의 시선이 브라함의 영혼에 꽂혔다.

“네 시체 찾아다니는 사람이다.”

콰직! 콰지직!!

흰 이를 드러낸 아그너스의 주변 지면이 갈라지더니 이내 수백 마리의 해골들이 솟구쳐 나왔다.

개중에는 데스나이트와 리치도 포함되어 있었다.

데스나이트야 3차 전직 네크로맨서들 또한 거느릴 수 있었으나 리치는 다르다. 3차 전직 네크로맨서의 스킬트리에 리치 소환은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리치란 일개 인간이 거느릴 수 없는 존재였던 까닭이다.

소생술에도 일가견이 있는 대마법사 브라함조차도 무무드의 리치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었다. 하여 뱀파이어 시절에 이용하던 관을 활용하고 있을 지경이다.

아그너스가 소환한 리치를 확인한 브라함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네놈…! 설마 바알의 계약자인가!!]

“좆 같은 이름은 꺼내지 말고.”

눈살을 찌푸린 아그너스가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데스나이트를 필두로 수백 마리의 해골들이 리치 무무드를 덮쳤다.

키야아아아!!

무무드가 마력을 쏘았다.

칠흑의 섬광이 일직선으로 관통하며 전방의 해골들을 가루로 만들었다. 마치 다크 드래곤의 브레스를 연상하게 만드는 위력이었다.

“호오.”

일거에 수십 해골 병사를 잃고도 아그너스는 동요하지 않았다. 도리어 즐거워했다.

“기대대로야.”

자, 어서 내 것이 되어라.

“크하하하하하!!”

아그너스가 광소를 터뜨렸다.

그에 호응하듯 데스나이트와 리치, 그리고 해골 병사들의 시커먼 눈구덩이가 적색으로 번뜩였다.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놈들을 확인한 브라함의 영혼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렸다.

[이런 개 같은…!]

무무드를 잃어서는 안 된다.

한 줌의 영혼밖에 남지 않은 지금의 내게 있어서 무무드는 거의 유일한 버팀목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바알의 계약자는 자비가 없었다.

초월적인 악마력으로 데스나이트와 리치, 그리고 해골 병사들을 강화시키더니 무무드를 점차 수세에 몰아넣었다.

[과연 바알에게 선택 받은 이유가 있었…!]

푸욱!

브라함의 영혼 조각에 데스나이트의 시커먼 검이 꽂혔다.

그와 동시에 브라함의 음성이 멈췄다.

리치 무무드는 분전 끝에 제압당하고 있었다.

“후아.”

아그너스가 지친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눈에 띄던 다크서클이 한층 더 짙어졌다.

한숨 쉰 그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리고 구속당한 리치 무무드에게 다가가더니 해골에 정체불명의 마법진을 새겨 넣었다.

총 3회밖에 사용할 수 없는 <절대 지배>의 발현이었다.

키야악!!

리치 무무드가 비명을 질렀다. 언데드는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존재이건만 기이한 일이다.

“큭큭.”

잠시 후.

리치 무무드가 아그너스의 곁에 섰다.

녀석의 해골을 귀엽다는 듯이 쓰다듬은 아그너스가 주변을 살폈다.

템빨단원들은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내가 너무 늦었나.”

뭐, 됐다.

이로서 염원에 한층 더 가까워졌다.

2마리 리치의 주인이 되었으니까.

“마지막 3마리째는 네놈이다, 브라함.”

보잘 것 없는 시신, 어느 곳에 매장해두었는지 기필코 찾아내주마.

“큭큭큭!!”

비릿한 미소를 남긴 아그너스가 동굴을 떠났다.

잠시 후.

텅텅 빈 동굴 구석에서부터 템빨단원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투명 망토를 뒤집어 쓴 채 아그너스를 엿본 그들은 죄다 커다란 충격을 받은 기색이었다.

식은땀을 훔친 반트너가 질문했다.

“아그너스는 네크로맨서 계열의 리치라고 했지? 데스나이트와 해골 병사들을 소환하는 거야 이해하겠는데, 어떻게 리치까지 부리는 거야? 심지어 브라함의 리치를 빼앗기까지 하고…”

리치 3마리와 데스나이트.

군단급 전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나라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을 수준이다.

폰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작년에 봤을 때와 비교하면 차원이 다를 정도로 성장했다. 이거 어째 영 불안하군.”

하필이면 미친놈에게 저만한 힘이 주어지다니, 예감이 좋지 않다.

***

“입구가 열려있네.”

13번 뱀파이어 도시 출입구.

개미지옥 같은 모습의 그곳은 활짝 개방되어 있었다.

도시의 주인 엘핀스톤을 레이드함으로서 결계가 훼손되고 외부와의 차단이 풀린 듯 보였다.

“어디쯤이려나.”

유라와 후로이를 대기시킨 그리드가 지슈카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우리 지금 막 도시 입구까지 도착했어. 너희들 어디야? 아직 파브라늄 못 찾았으면 우리도 들어갈까?

지슈카가 다급히 외쳤다.

-찾았어! 금방 나갈 테니까 먼저 14번 도시로 가있어!

-뭘 굳이 먼저 가있으래? 입구에서 기다릴게.

-아니, 그냥 먼저 가있어!

‘얘 왜 이래?’

어째 태도가 이상하다.

눈살을 찌푸린 그리드의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혹시 위험에 빠진 거 아닐까?

내가 휘말리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거고?

충분히 있을법한 일이다.

‘쓸데없는 짓을.’

더 이상 나는 지켜질 대상이 아니다. 도리어 그 반대지.

혀를 찬 그리드가 유라와 후로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싸울 준비들은 됐지?”

“물론입니다, 주군.”

“저야 항상 빈틈이 없죠.”

“좋아, 그럼 들어가자.”

그리드 일행이 개미지옥 입구로 신형을 날렸다.

그와 동시였다.

“응?”

아그너스가 개미지옥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자칫 그리드 일행과 조우할 수 있던 타이밍을 절묘하게 빗겨간 것이다.

“착각인가?”

출입구를 통해 워프하는 순간 인기척을 느낀 것 같은데 확실치가 않다.

어차피 이곳에서의 용건은 끝난 바, 대수롭지 않게 넘긴 아그너스가 일정을 살폈다.

“다음은 검의 무덤인가.”

전설의 대장장이, 파그마.

말년의 그는 수천 종의 검을 제작하고 또한 폐기하였다고 한다.

퀘스트를 통해 획득한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브라함이 그곳을 꽤나 자주 찾았다고 하던데…

아그너스가 자신의 충복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베라딘, 검의 무덤의 위치는?

-죄송합니다. 연합의 모든 것을 동원하였으나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진짜 더럽게 쓸모없네.

-송구스럽습니다.

-빨리 찾아내. 나는 차선지로 향할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쯧.”

혀를 찬 아그너스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했다.

끓어오르는 더위에도 그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

“응? 무사하네?”

13번 뱀파이어의 도시에 입장하고 약 10분 후.

그리드가 파브라늄 원정대와 재회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그리드에게 사색이 된 지슈카가 물었다.

“괜찮아? 다친데 없어? 어떤 미친개한테 안 물렸니?”

지슈카가 그리드에게 먼저 14번 도시로 향해있으라고 한 이유는 혹 그가 아그너스와 마주칠까 염려해서였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는 듯했다.

“사막에 개가 어딨냐?”

그리드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안도한 지슈카가 그에게 선물을 건넸다.

“자, 받아.”

엘핀스톤이 드롭한 아이템들과 각종 광물, 그리고 파브라늄이었다.

“고생 많았다.”

그리드가 지슈카와 동료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일행이 밝게 웃었다.

“가장 고생한 건 너잖아.”

엄밀히 따지면 그렇지 않다.

그리드는 단지 버스를 탔을 뿐이다. 애초에 동료들이 없었다면 300레벨을 달성하지도 못했을 거고 결국 도시 공략에 실패했을 것이다. 파브라늄의 확보? 꿈에도 못 꿨을 일이다.

그리드가 약속했다.

“이번 원정이 끝나면 너희들에게 최고의 아이템을 제작해서 선물해주겠다.”

“전부터 말한 그리드 세트를 말하는 건가?”

일행들이 들뜨는 그때였다.

“뭐야? 이 계집애가 여긴 왜 있어?”

뒤늦게 유라를 발견한 지슈카가 도끼눈을 떴다.

유라가 태연히 맞받아쳤다.

“저급하고 난폭한 말투는 여전하네요. 영우씨의 정서에 악영향을 끼칠까 염려돼요.”

“영우씨? 그리드 공작님이라고 불러야지. 너는 현실과 게임도 구분 못하니?”

“그를 뭐라고 부르든 내 마음이죠.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에요.”

파지직!

두 여인의 교차하는 시선 사이로 스파크가 튀었다.

‘저런 미인들이 뭐가 아쉬워서 그리드를 놓고 다투는 거지…’

‘그리드 저 녀석은 아이린도 있으면서…’

일행들이 그리드를 질투했다. 부러워 환장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리드는 그녀들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새롭게 얻은 아이템들을 확인하느라 바빴다.

[???의 조각을 3개 모았습니다.]

[???의 조각의 정보가 갱신 됩니다.]

‘이거…!’

그리드가 두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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