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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10화 (105/1,794)

템빨 15권 - 15화

이번 레이드의 성공 전제는 블러드 필드의 저지였다.

하지만 결국 막지 못했다.

진정한 힘을 개방한 엘핀스톤이 블러드 필드의 발동에 성공하고 말았다.

이로서 레이드 성공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하락하게 됐다.

앞으로 3분 내에 엘핀스톤을 쓰러뜨리지 못할 경우, 그리드 일행은 전멸을 피할 길이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나 또한 전력을 다한다.’

힘을 안배할 여유 따위 없다.

판단한 그리드가 인벤토리로부터 액세서리 2종을 꺼냈다.

<다크버스의 반지>

등급:유니크

내구력:15/15

야탄의 7번째 종, 다크버스가 애용하던 반지입니다.

착용자의 마나를 지속적으로 착취, 그를 기반으로 디스펠 기능을 발휘합니다.

*초당 50의 마나를 반지에게 빼앗깁니다. 빼앗긴 마나가 5,000에 도달하고 10분 내에 <스킬 삭제>를 2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빼앗긴 마나가 5,000 이상이 되고 10분 내에 <스킬 삭제>를 2회 사용하지 않을 경우, 반지가 과부하를 일으켜 폭발합니다. 이때 소유자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반지는 영구적으로 소멸합니다.

*반지 착용 후 3분 내에 5,000이상의 마나를 빼앗기지 않아도 반지는 소멸합니다.

*<스킬 삭제>는 반지를 착용한 손과 대상 스킬이 직접적인 충돌을 일으켜야지만 발동합니다.

*지속형 스킬에는 <스킬 삭제>의 효력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사용 조건:레벨 300 이상.

무게:0.1

검정색의 얇은 반지.

사용 조건이 까다롭고 제약이 심하다.

특히 그리드의 총 마나는 4천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다크버스의 반지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마나포션의 복용이 필수적이며 스킬 사용을 보다 계획적으로 해야만 했다.

여러모로 골치는 아프지만,

‘성능은 발군이지.’

까미앙을 때려잡는 과정에서 사용법을 숙달했다.

긴장하지 않고 반지를 착용한 그리드가 이어서 검정색의 작은 피어스를 꺼냈다.

<다크버스의 귀걸이>

등급:레전드리

내구력:55/55

야탄의 7번째 종, 다크버스가 아꼈던 귀걸이입니다.

대악마를 소환하는 매개체 중 하나로서 강력한 암흑 마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는 착용자의 몸과 마음을 지배할 정도의 마력입니다.

*12시간마다 <흑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흑화>의 최대 지속 시간은 5분입니다.

*<흑화>의 잦은 사용은 당신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각성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사용 조건:레벨 300 이상. 암흑 계열 마력 보유.

무게:0.1

반지와 비교하면 사용 조건이 간단하지만 위험성을 지녔다.

‘꺼려지기는 하다만.’

이럴 때가 아니면 또 언제 사용하겠는가?

아끼다가 똥 되는 수가 있다.

망설임을 버린 그리드가 귀걸이마저 착용했다.

그리고 300레벨을 달성하면서 새로이 획득한 고유 스킬의 시동어를 외쳤다.

“아이템! 합!! 체!!!”

그리드는 영화처럼 멋진 장면이 연출되리라고 상상했다.

빰빰빰~ 빠바밤~

웅장한 배경음악이 깔리면서 합체의 주체가 되는 아이템 2개가 날아오른 뒤 멋지게 합쳐지는 연출을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망치와 모루를 꺼냅니다.]

생뚱맞은 알림창이 떠오르더니 몸이 제멋대로 움직여 망치와 모루를 꺼냈다.

그리고…

[모루 위에 합체할 아이템 2개를 올려주십시오.]

“…?”

전혀 예상치 못한 강요를 받았다.

그리드는 심히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넋을 잃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서둘러 시스템이 지시한대로 행동했다.

리파엘의 창날과 실패작을 모루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리파엘의 창날>과 <실패작>의 합체를 시도합니다.]

따앙! 따앙!!

몸이 또 다시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리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망치질을 시작했다.

아이템 합체는 강제 모션이 적용되는 스킬이었던 것이다.

‘병신 같다.’

전투 중에 쪼그려 앉아 망치질이라니?

세상에 뭐 이딴 거지같은 스킬이 다 있단 말인가?

혀를 내두른 그리드가 속으로 욕설을 지껄이는 그때였다.

“저놈이 겁을 먹고 미쳤군.”

“…”

엘핀스톤이 미친놈 취급을 해왔다.

심지어 일행들조차도 게슴츠레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드는 창피하고 억울했다.

알림창이 연신 갱신되고 있었다.

[아이템 합체까지 예상 소요시간을 분석하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3.]

[2…]

[…1.]

띠링~

[분석에 성공하였습니다! <리파엘의 창날>과 <실패작>의 합체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43초입니다.]

[43초 동안 단조질을 계속합니다.]

‘이런 미친!’

그리드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전투 도중에 무려 43초 동안이나 망치질을 해야 한다고?

적한테 나 잡아먹어달라고 부탁하는 꼴이나 다름이 없잖은가?

게다가 상대는 최강의 보스다.

‘엿 됐다.’

안색이 창백해져있는 그리드에게 일행이 파티 말을 보내왔다.

{너 뭐하는 거야? 왜 생뚱맞게 망치질이야? 뭐 잘못 먹었어?}

{그리드, 아무리 상황이 절망적일지라도 진정하고 정신 차려라.}

완전히 미친놈 취급을 당하고 있다.

억울함에 치를 떤 그리드가 사정을 설명했다.

{이게 내가 새롭게 습득한 스킬의 발동 모션이다. 앞으로 40초 정도만 너희들끼리 시간을 벌어줘.}

{…}

일행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전투 도중에 행하는 스킬의 모션이 단조질. 그것도 무려 40초 동안의 단조질이라고?

아무래도 개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정황상 그리드가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깨달은 일행들이 엘핀스톤을 견제했다.

엘핀스톤은 그리드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수상쩍군.”

그리드가 망치질을 할 때마다 모루 위에 놓인 푸른 대검과 황금빛 창날이 강력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엘핀스톤이 경계했다.

“무슨 수작인지 모르겠으나 네 뜻대로는 안 될 것이다.”

쿠르르르릉!!

핏빛으로 물든 지면에 강력한 마력이 집약되기 시작했다.

블러드 필드와 연계할 수 있는 마법 중 하나인 <블러드 웨이브>의 전조였다.

“그리드님을 지켜야합니다!”

균열을 일으키는 지면 속 강력한 마력의 파장이 그리드를 노리고 있다.

그것을 감지한 제드노스가 다급히 외치자 일행 전원 그리드를 호위하고 섰다.

“네놈들 따위가 막을 수 있을까?”

엘핀스톤은 여유가 넘쳤다.

블러드 필드를 전개한 지금의 그는 스스로의 힘에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에 보답하는 위력의 마법이 펼쳐졌다.

쿠콰콰콰콰쾅!!

붉은 마력의 파도가 폭발하는 지면으로부터 솟아나 템빨단원들에게 쇄도했다.

질색한 반트너가 천겹의 방패를, 제드노스는 바람 장막을 전개하였다.

두 스킬 모두 뛰어난 마법 저항력을 자랑하는 것이었으나 블러드 웨이브의 위력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퍼펑!

쿠콰콰콰콰쾅!!

“으아악!”

“아이고! 나 죽는다!!”

천겹의 방패가 산산조각이 나고 바람 장막은 허상처럼 흩어졌다.

이어 직면해오는 블러드 웨이브에 직격당한 반트너와 제드노스가 넝마가 되어 쓰러졌다.

두 사람을 피투성이로 만든 블러드 웨이브의 기세는 여전히 매서웠다.

목표는 그리드였다.

극검이 나섰다.

“발검, 섬.”

서걱!!

극검이 칼을 뽑음과 동시에 빛이 번쩍이더니 블러드 웨이브를 양단 냈다.

반트너와 제드노스의 희생으로 위력이 그나마 약해진 블러드 웨이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좋아! 억?”

내가 갓리드를 지켰다!

환희하던 극검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어느새 발밑으로부터 솟아난 붉은 가시에 허벅지가 꿰뚫린 까닭이다.

“제길!!”

이동속도가 대폭 저하되고 낭패하는 극검.

그의 곁을 엘핀스톤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놈…!”

잠자코 보낼 수 없었던 극검이 다시금 칼집으로 손을 가져가는 그 순간이었다.

[9,98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크아아아악!!”

소름 돋는 알림창에 이어 강렬한 통증이 동반됐다.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이야루그트에 베인 것이다.

“내 앞에서 무릎 꿇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저앉는 극검을 확인하고 냉소한 엘핀스톤이 점차 그리드와 가까워졌다.

그를 확인한 그리드는 사색이 되었다.

[아이템 합체까지 27초 남았습니다.]

‘스킬 발동을 취소해야하나?’

아니, 이제 와서 그럴 수는 없다.

동료들을 믿고 조금 더 기다린다.

“보내지 않는다.”

그리드의 믿음에 화답하듯, 폰과 레가스 듀오가 엘핀스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퍼펑!

퍼퍼퍼퍼퍼퍽!!

회심의 창격과 예측 불가능한 궤도의 발차기가 엘핀스톤을 덮쳤다.

하지만 리파엘의 창날로부터 해방 된 엘핀스톤은 가뿐히 연기화함으로서 그들의 공격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슬슬 주제 파악을 해야지?”

스스스슥.

연기로 흩어졌던 엘핀스톤의 육신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 위치, 폰과 레가스의 등 뒤였다.

“귀신같은 놈!”

기겁한 폰과 레가스가 등 뒤로 창과 주먹을 찔렀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보다 이야루그트의 습격이 더 빨랐다.

서걱!

“커억!”

“끅…!”

호선을 그린 적색 검광이 폰과 레가스의 가슴을 일거에 베어버렸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두 사람이 생명력 회복 물약을 복용했다.

하지만 블러드 필드의 영향으로 인해 회복력이 20퍼센트밖에 적용되지 않았으니 낭패다.

파앗!

두 사람에게 마무리 일격을 가하려는 엘핀스톤의 후위로부터 페이커가 등장했다.

페이커의 기습을 매번 허용하던 엘핀스톤이었으나 지금은 달랐다.

모든 힘을 개방시킨 그를 상대로는 페이커의 은밀함과 신속함조차도 무용지물이었다.

“블러드 토네이도.”

쿠콰콰콰콰콰쾅!!

엘핀스톤의 몸을 중심으로 혈풍이 휘몰아쳤다.

그에 휩쓸린 페이커가 엘핀스톤을 공격해보지도 못하고 찢겨져 날아갔다.

“너무 강해.”

연신 화살을 쏘며 동료들을 엄호하던 지슈카가 입술을 깨물었다.

엘핀스톤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도무지 어떻게 상대해야할지 답이 없을 지경이었다.

“크하하하하!!”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던 엘핀스톤이 결국 대소를 터뜨렸다.

감히 나를 위협했던 인간 놈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림으로서 쾌락에 휩싸인 것이다.

“자! 이제 너희 둘만이 남았다!!”

여전히 망치질 중인 그리드와 그의 곁을 지키는 지슈카.

둘을 향해 엘핀스톤의 시선이 꽂혔다.

위풍당당하게도 서있는 그의 주위로는 템빨단원들이 꼼짝도 못한 채 쓰러져 있었다.

블러드 필드의 영향으로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착취당하고 있었으니 앞으로 그들은 1분 내에 사망에 이를 것이었다.

“마음껏 포식해주마!!”

터엉!

힘차게 도약한 엘핀스톤이 그리드, 지슈카와의 거리를 한달음에 좁혀왔다.

멀티 샷과 춤추는 화살을 연계, 엘핀스톤의 기세를 누그러뜨리고자 시도한 지슈카였지만 부질없었다.

서걱!

지슈카의 매끈한 어깨가 베이며 선혈이 솟구쳤고, 쓰러지는 그녀를 짓밟고 넘어선 엘핀스톤은 드디어 그리드에게까지 도달했다.

“이야루그트!!”

키잉-!!

엘핀스톤의 부름에 화답한 이야루그트의 적색 검신이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발산되는 검기는 그리드의 몸을 갑옷 째로 양단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예리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끝이다!”

따앙! 따앙!

여전히 망치질 중인 그리드.

그의 목덜미를 노리고 이야루그트가 꽂혀온다.

템빨단원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진짜로 끝이다.’

새롭게 습득한 스킬의 위력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까지 발동시간이 오래 걸려서야 효용성이 전혀 없다.

그냥 망했다.

템빨단원들이 절망하고 엘핀스톤은 환희하는 그때였다.

[아이템 합체에 성공하였습니다!!]

그토록 고대하던 알림창이 드디어 떠올랐다.

그리드의 입가로 짙은 미소가 번졌다.

“흑화.”

쿠와아아아앙!!

칠흑의 마기가 폭발한다.

‘이 기운은…!’

엘핀스톤의 자신만만하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고,

쩌어어어어어어엉!!

황금빛 그라데이션이 삽입 된 푸른 대검이 이야루그트와 충돌하며 지축이 뒤흔들렸다.

이어 비산하는 선혈은 엘핀스톤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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