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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03화 (98/1,794)

템빨 15권 - 8화

[회심의 일격을 당했습니다!]

[68,3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설이 된 자는 쉽게 죽지 않습니다. 생명력이 최소치가 되어 5초 동안 모든 공격에 저항합니다.]

200레벨대에서 근력 스탯은 1당 생명력을 5, 체력 스탯은 1당 생명력을 20 올려준다.

<성스러운 빛의 무구 세트>로 추가 되는 6천의 생명력과 <지옥과 연이 닿은 자>칭호 효과로 추가되는 3천의 생명력을 합산할 경우 그리드의 총 생명력은 55,000에 육박했다.

이는 직업 특성상 생명력이 높은 반트너보다 무려 6천이나 높은 수치로서, 그리드는 20억 유저를 통틀어도 최상위권 생명력 보유자라고 할 수 있었다.

한데 엘핀스톤의 스킬 공격은 그리드의 막대한 생명력을 일격에 소진시키는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성스러운 빛의 갑옷이 마법으로 받는 피해를 50퍼센트 경감시켜주는데도 이 정도 위력이라면 가히 일격 필살의 스킬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크아아악!! 저 개자식이 미쳤나!!”

불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오자마자 또 한 번 죽음을 겪게 된 그리드가 악을 썼다. 어찌나 약이 올랐는지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발을 굴렸다.

반면 템빨단원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있었다.

여러 가지 긍정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었던 덕분이다.

“엘핀스톤의 재출현 주기는 정확히 24시간이군.”

“엘핀스톤의 공격 대상은 능력치 총합이 가장 높은 인물이야.”

“엘핀스톤은 돌대가리다. 그리드가 살아있는 것에 아무런 의문도 표하지 않았어.”

결론인 즉,

“놈이 나타날 때마다 그리드가 계속 얻어맞고 불사로 버티면 되겠네.”

“이상적이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그리드가 300레벨을 달성할 때까지 우리 전원 살 수 있을 거야.”

“만전의 태세로 엘핀스톤과의 일전을 준비할 수 있겠군.”

“…”

가상현실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오감을 구현해놨다는 것에 있다.

하지만 이는 전투에서 크나큰 단점으로 작용했다.

적에게 맞으면 아프다. 단지 기분 탓이 아니라 진짜로 아프다.

대량의 피해를 한 번에 입으면 사람에게 주먹으로 얻어맞는 수준의 통증을 느꼈다.

앞으로 300레벨을 찍기까지 5일 동안 매일 이 끔찍한 통증에 시달려야만 한다고?

그리드는 슬펐다.

기쁘답시고 하하 호호 웃는 동료들이 얄밉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어쨌든 일이 좋게 흘러가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마음을 진정시킨 그리드가 일행을 재촉했다.

“어서 다음 건물로 이동하자.”

한 대라도 덜 맞으려면 하루라도 더 빨리 300레벨을 찍어야 한다.

똥줄 탄 그리드가 서둘러 앞장섰다.

일행은 그를 따라 3번째 건물로 진입했다.

벌써 2개의 건물을 초토화시킨 그리드 일행의 협동플레이는 한층 더 성숙해져 있었다. 뱀파이어들을 보다 수월하게 썰어나갔다.

그리드의 경험치 게이지가 차오르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뜻이다.

***

“오늘도 푹 잘 수 있겠군.”

감히 내 도시를 침범한 인간 놈들에게 지독한 공포심을 안겨주고 돌아오는 길.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파자마로 갈아입고 수면용 안대와 모자를 착용한 엘핀스톤이 백색 관 속에 반듯이 누웠다.

그는 지금쯤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을 인간들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크크큭, 차라리 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너희들을 한 번에 죽일 생각이 없다. 천천히 한 놈씩… 하으음.”

졸리다.

뱀파이어는 강력한 힘을 타고난 반동으로 <나태의 저주>에 걸린 존재들이었다.

뱀파이어들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20시간이었고, 강한 뱀파이어일수록 더 많이 잤다.

백작급 진혈족인 엘핀스톤은 하루 최소 23시간을 자야했으며 내리 1년을 잘 수도 있었다.

“흠냐.”

엘핀스톤이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

Satisfy 개발 8팀 팀장 애슐리 토슨.

그는 임철호와 함께 가상현실 시스템을 구축한 33인의 과학자 중 한 사람이다.

사내에서 그는 뱀파이어들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바로 그가 Satisfy에 뱀파이어 세계관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엘핀스톤 백작 또한 물론 그가 설계했다.

도시를 위협할 규모의 적들이 침략해올 경우, 엘핀스톤은 24시간마다 출몰하여 적들 중 ‘가장 강한 존재’를 살해하는 행위를 7회 반복한다.

총 7명의 강자를 순차적으로 잃게 되는 침략자 파티는 공포에 떨다가 결국 힘을 잃어 전멸할 수밖에 없다는 설정이었다.

한데…

“황당하군.”

13번째 도시는 15개 뱀파이어의 도시 중에서도 난이도가 최상급에 속했다.

그리드 파티가 그곳에 입장하는 것을 모니터링한 애슐리 팀장은 그들의 도시 원정이 실패하리라 단언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의심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리드의 불사 패시브가 엘핀스톤의 특성을 무력화 시키고 있었던 까닭이다.

엘핀스톤은 벌써 2회째 출몰해놓고도 그리드 파티의 전력을 훼손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거 참…”

애초에 그리드의 공격력, 방어력, 마력 총합이 파티원 중 가장 높다는 것이 문제였다.

본래 <파그마의 후예>란 저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는 클래스가 아니다.

5개의 전설급 아이템을 제작하는 순간, 능력치 성장률이 기하급수적으로 하락하고 전투력이 서서히 약해짐으로서 보다 생산직종에 적합한 존재로 거듭나게끔 설계되었으니까.

한데 그리드는 재수가 더럽게 없는 탓에 전설급 아이템 5개를 제작하는데 엄청난 기간을 소요했다.

이는 상정하지 못한 범위였고, 결과적으로 그리드의 능력치를 비정상적으로 상승시켜버렸다.

덕분에 그리드는 각종 레이드를 성공시키고 계속해서 강해졌다.

과정은 험난했을지라도, 결과를 놓고 따져보면 그리드는 재수가 왕창 좋은 인물이었던 셈이다.

“이거 어쩌면… 그 조각을 다 모을 수도 있겠는데?”

애슐리 팀장의 표정이 흥미로 물들었다.

임철호 회장, 윤상민 이사에 이어서 S.A그룹에 그리드 팬이 하나 더 생길 판국이었다.

***

“좋았어!”

그리드 일행의 3번째 건물 공략이 끝났다.

이번 건물에서 올린 수익은 굉장히 컸다.

비록 엘릭서와 마법서 등은 얻지 못했으나 흡혈 반지를 1개 습득한 것이다.

최하급이라는 점이 다소 아쉬웠지만 없는 것보단 천만 배 나았다.

논의 끝에 일행은 극검을 반지의 소유권자로 선택했다.

평타마저 발검술로 넣는 그의 공격력이 일행 중 가장 뛰어났으니만큼 반지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내게 흡혈 악세를 쓰는 날이 올 줄이야…”

강자들과 파티를 맺고 고난이도 사냥터에 도전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템빨단과 합병하기를 정말 잘했다.

감동을 금치 못하는 극검의 전투지속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감춰진 검>

일반 공격, 스킬 공격 시 모두 발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닌 클래스로서 공격 대기 시간이 너무 길다.

하지만 그 대신 공격력과 공격 속도는 최상위권에 속했다.

칼집에 감춰져있던 검날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대상은 이미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지금 뱀파이어들이 그랬다.

“크악!”

“이, 인간 따위가…!”

성당을 연상하게 만드는 구조의 4번째 건물.

늘어져 있는 관들 사이로 긴 의자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뱀파이어들의 집회 장소인 듯했다.

타앗!

의자를 뛰어 넘은 극검이 칼집에서 검을 뽑는 순간,

서걱!

검광이 번쩍이면서 뱀파이어들의 가슴으로부터 선혈이 솟구쳤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빠르기의 검격에 대항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쩌정! 쩡!

극검은 반격을 잘 허용하지도 않았다.

칼집을 항상 손에 들고 있는 터라 그것을 보호구로 써먹었다.

뱀파이어들의 공격을 칼집으로 막거나 흘리다가 다시 검을 뽑아서 반격하는 그의 생명력 게이지는 흡혈 반지 덕분에 항상 적정선을 유지하게 됐다.

극검의 활약으로 4번째 건물은 3번째 건물보다 더 빠르게 공략할 수 있었다.

그리드의 레벨은 이제 299 직전이었다.

다음 건물에서 299레벨을 달성하고 경험치 게이지를 20퍼센트까지 채울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좋아, 머지않았다.’

스탯이 3차 각성을 맞이하게 된다면, 나를 벌써 2번이나 때리고 튄 엘핀스톤 놈을 도리어 때려잡을 수도 있다.

그 순간을 상상하며 환희에 찬 그리드의 시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칭호 스킬 <전설이 된 자>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본래는 기뻐해야할 소식이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우라질.”

울상을 지은 그리드가 닥쳐올 통증에 대비하고자 이를 질끈 물었다. 그의 머리 위로는 어느새 금발의 미남자가 등장해 있었다.

엘핀스톤 백작이었다.

“다시 찾아오겠다 말했었지?”

푸화하하하학!!

선홍빛 피의 장막이 그리드를 집어삼켰다.

그리드가 죽었다고 확신한 엘핀스톤이 소리쳤다.

“잠시 후에 다시 찾아오마. 그때 또 한 놈을 죽이고, 그 다음번에도 또 한 놈을 죽이고! 몇 번이고 반복하며 네놈들에게 극한의 공포를 맛보여… 응?”

신나게 떠들던 엘핀스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들의 숫자가 이상했다.

‘어제랑 숫자가 같은 것 같은데?’

어제 9명이었을 때 내가 1명을 죽였으니, 오늘은 8명이 남아있어야지만 정상이 아닌가?

돌이켜 보니 첫날에도 인간들의 숫자는 9명이었던 것 같은 기분이…

‘훗, 착각이겠지.’

엘핀스톤이 실소를 흘렸다.

<극한의 수혈>을 맞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할 리 없다.

애초에 인간은 11명이었으리라.

엘핀스톤은 자신의 기억력보다는 실력을 믿는 것이었다.

“뭐, 그럼. 잠시 후에 또 보자.”

“…”

잠시 후를 내일로 정정해주고 싶다.

그리드 일행은 홀연히 사라지는 엘핀스톤을 보면서 심히 모자란 놈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사실 엘핀스톤의 지능은 낮은 편이 아니었다.

하루 평균 23시간의 수면을 취하는 엘핀스톤의 입장에서 24시간 후란 잠시 후가 맞았다.

또한 그가 그리드 일행의 숫자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도 합리적이었다.

하등한 사냥감의 숫자를 일일이 세고 기억할 필요가 있는가?

그리드 일행의 숫자 따위가 몇이든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고 눈여겨보지 않았다.

“빌어먹을 새끼…”

장막이 걷히고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그리드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의 방어구들은 이미 내구력이 한계까지 떨어져 있었다. 수리가 필요할 정도였다.

따앙! 따앙!

전설적 대장장이의 망치를 꺼내 장비를 손보는 그리드!

일행들이 그를 부러워했다.

일반 유저들은 사냥 도중에 장비가 망가지면 고가의 <수리도구 세트>를 이용해서 장비를 수리해야만 하는 반면 그리드는 도리어 스킬 숙련도를 쌓으며 공짜로 수리가 가능했던 까닭이다.

그리드는 재차 다짐하고 있었다.

‘엘핀스톤…! 지금의 치욕과 고통은 반드시 배로 갚아주마!!’

***

[경험치 획득량 상승 물약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아, 놔.”

7번째 건물의 공략을 끝낸 시점이었다.

아직 경험치 게이지가 채 50퍼센트도 차오르지 않았건만 최악의 소식이 들려왔다.

‘이러면 건물 3개를 더 공략해야지 레벨 업이 가능할 것 같은데.’

299레벨부터는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 요구량이 무려 4배나 늘었다.

뱀파이어들을 쉬지 않고 학살해도 도통 차오를 생각을 안 했다.

그리드가 초조해하고 있는 그때 엘핀스톤이 또 다시 나타났다.

이로서 4번째 등장이었다.

한데 이번에 그는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그리드를 곧바로 공격하지 않고 유심히 살피는 것이 아닌가?

‘왜 저러지?’

긴장하는 그리드에게 엘핀스톤이 질문을 던졌다.

“네놈, 어떻게 살아있는 것이냐?”

“……!”

여태까지 없던 반응에 그리드 일행이 기겁했다.

이제 어쩌면 엘핀스톤이 행동 패턴을 바꿔 우리를 몰살 시킬 수도 있었다.

한 마디로 최악의 상황이다.

‘아직 300렙이 안 됐는데…!’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싸우는 수밖에!

그리드가 노에와 랜디를 소환하려는 그때였다.

“너희 부모님은 너 같은 놈을 낳고도 안녕하시더냐!!”

“뭐, 뭣이…!”

후로이가 자신의 인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에 큰 충격을 받은 엘핀스톤의 잘생긴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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