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15권 - 6화
“마, 말락서스의 망토라니.”
이건 좀 과하다.
뱀파이어들은 피냄새에 민감하지 않은가?
말락서스의 망토를 착용했다가는 뱀파이어가 개떼처럼 몰려올 것이다.
몹몰이 하려다가 제 무덤 파는 셈이 된다.
‘이걸 꼭 입어야 되나?’
반트너는 망설였다.
반면 그리드를 비롯한 동료들은 결의에 찬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반트너, 몸 사릴 틈이 없다.”
“속도가 중요해. 사냥감들이 계속해서 몰려오게 만들어야 한다고.”
“우리가 잘 보좌해줄 테니까 걱정 말고 망토 입어.”
“…좋아, 알았다.”
템빨단원들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동료를 살리고자 저마다 죽음을 각오한 상태였다.
반트너라고 다를 리 없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그가 말락서스의 망토를 착용한 후 앞장섰다.
“가자.”
그리드 일행은 지체하지 않았다. 곧장 눈앞의 대형 건물로 입장하였다.
***
“무진장 넓네. 어째 밖에서 봤을 때보다 더 큰 것 같다.”
“낭패로군. 소수 대 다수로 싸워야하느니만큼 기왕이면 장소가 협소할수록 좋은데.”
“그러게. 이곳은 마땅한 엄폐물도 없고 완전히 개방되어 있네.”
일행들의 말소리가 구석구석으로 메아리친다.
건물 1층은 거대한 홀이었다. 최소 2천 명은 수용할 수 있을만한 크기였다.
천장은 7층 꼭대기까지 닿았고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2개 있었다.
“계단에서 진형을 짜는 편이 좋겠어. 상층의 적들에게 후위를 장악당할 우려가 있지만 사방팔방으로 포위당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지슈카의 의견이었다.
그녀에게 동의한 일행들이 신속하게 이동했다.
“음산하기도 하지.”
“파헤쳐진 공동묘지 같군.”
심연의 어둠이 내려앉은 홀 중심부에는 수백 개의 관이 불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보는 이들의 소름을 끼치게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광경이었다.
쿵! 쿵쿵!
그리드 일행이 막 계단까지 도달한 시점이었다.
기분 나쁜 정적이 맴돌던 건물 내부가 급속도로 소란스러워졌다.
수백 개의 관들이 일제히 들썩이기 시작한 까닭이다.
관 속에 잠들어 있던 뱀파이어들이 말락서스의 망토가 흘리는 피냄새에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온다!”
“준비해.”
계단에 진형을 짠 그리드 일행이 각자를 상징하는 무기를 뽑아 쥐었다.
포효하는 드래곤의 아가리를 닮은 흑적색의 대궁,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푸른 창, 적을 뭉개버리기에 용이할 것 같은 건틀릿, 번뜩이는 은빛의 단도 등.
모두 그리드의 작품들이었다.
템빨단원들에게 있어서 그리드의 존재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컸다.
쿵! 쿵!!
콰작!!
관짝을 요란하게도 깨부순 뱀파이어들이 몸을 일으켰다.
하나 같이 창백한 피부와 긴 송곳니, 붉은 눈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의 적색 안광이 그리드 일행. 정확히 말하면 반트너의 몸을 샅샅이 훑었다.
“기분 좋은 향기다.”
“눈 뜨자마자 인간의 피로 목을 축일 수 있다니, 횡재로군.”
뱀파이어들은 상위 포식자로서의 여유가 넘쳤다.
자신들의 영역을 기습적으로 침범한 침입자들을 상대로 조금도 긴장하지 않고 도리어 기쁘다는 듯 웃으며 덤벼왔다.
‘빠르다!’
지하도시에 서식하는 뱀파이어들은 대륙 각지에서 출몰하는 어중이떠중이 뱀파이어들과 격이 다르다.
레벨이 최소 280에서 최대 350답게 전투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났다.
“피를 내놔라! 마음껏 음미해 주마!”
“오호홋~ 목은 잘 닦고 다녔겠지?”
족히 200명은 될법한 뱀파이어들이 그리드 일행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실로 가공할만한 속도였다.
그들의 어그로를 독점한 반트너가 비명성을 토했다.
“오래 못 버틸 것 같으니까 제발 빠르게 처리해라! 강철의 수호! 수호자의 지혜! 거인의 가호!”
[3분 동안 물리 방어력이 30퍼센트, 찌르기와 베기에 대한 내성이 50퍼센트 증가합니다.]
[3분 동안 마법 저항력이 30퍼센트, 모든 속성 저항력이 50퍼센트 증가합니다.]
[20,000의 피해량을 흡수하는 보호막을 생성합니다.]
반트너는 200레벨쯤까지 스탯을 모조리 근력에 투자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탱커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이유는 수호 기사의 탁월한 방어 스킬들 덕분이었다.
“썬 가드!”
번쩍!
반트너의 대머리가 휘황찬란하게 빛났다. 그의 방패로부터 뿜어지는 빛이 반사된 영향이었다.
“크윽!”
갑작스러운 빛의 출현으로 인해 뱀파이어들의 기세가 확 줄어들었다.
그들 대부분이 잠시간 시야를 상실하고 제자리에 멈췄다.
하지만 후방에 위치해있던 50여 명의 뱀파이어들은 비교적 멀쩡했다.
그들이 먼저 반트너를 덮쳤다.
쩌정! 쩌저정!
쿠콰쾅!!
[5,6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5,98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7,11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으아악! 아파!! 아프다고!!”
뱀파이어들은 신체 능력과 마력, 그리고 지능까지 두루 뛰어난 존재였다.
마법을 발현함으로서 반트너에게 마법저항 스킬을 사용하게끔 유도한 뒤 물리공격을 연계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그 탓에 온전한 방어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 반트너는 금세 상처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볼 템빨단원들이 아니었다.
우선 제드노스가 나섰다.
계단 하층부의 반트너가 뱀파이어들의 어그로를 끄는 사이, 긴 주문을 완성시킨 그가 <영겁의 폭풍>을 소환했다.
콰앙!!
제드노스가 목표로 지정한 지점으로 빠르게 회전하는 폭풍의 구체가 생성됐다. 그 안에 갇힌 뱀파이어 50여 명은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다수의 적을 최소 30초에서 최대 5분까지 구속시킬 수 있는, 폭풍술사 제드노스의 궁극기였다.
외부로부터 공격을 가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지금과 같이 전략적으로 활용하기에 무척이나 용이한 마법이었다.
“잘 했다!!”
제드노스가 적들을 구속시켜준 덕분에 반트너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가 물약을 복용하는 동안 시야를 회복한 150여 명의 뱀파이어들이 성을 내며 달려왔다.
반트너의 고난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던 것이다.
“사, 살려줘! 으아악~!!”
파팟! 파파팟!!
뱀파이어들은 빼어난 공격력과 민첩성을 기반으로 강력한 체술, 혹은 검술을 구사했다.
쇄도하는 공격들을 방패로 막고 피하느라 애를 먹는 반트너에게 마법이 쏟아졌다.
“크리플!”
“다크 바인딩!”
“네더 그랩!”
각종 저주 마법이 반트너의 마법 저항력을 하락시키고 몸을 구속시켰다.
덥썩!
“이런!”
어둠속으로부터 피어올라온 손아귀들에 사지를 붙잡힌 반트너!
사색이 된 그의 급소를 노리고 뱀파이어들의 검과 수도가 꽂혔다.
식탐이 강한 놈은 심지어 송곳니를 찔러왔다.
푸욱!!
“크아아아악!!”
목덜미를 물리고 갑옷 곳곳이 꿰뚫린 반트너가 비명을 토했다.
반트너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힐러도 없는 마당에 생명력이 바닥까지 떨어지자 단발 무적 스킬 <수호자의 용력>을 사용하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수호자의 용력은 엘핀스톤이 재등장할 때 대비하기 위해서 아껴둬야만 했다.
“제길! 뭐라도 좀 해보라고!!”
끊임없이 몰려오는 뱀파이어들에게 전신 곳곳이 깨물린 반트너가 애원하듯 소리쳤다.
그에 동료들이 화답했다.
“잘 버텨줬다!”
“이제 곧 끝이다!”
폰, 레가스, 페이커, 극검.
모든 뱀파이어들의 신경이 반트너에게 집중 된 틈을 노리고 효율적인 동선을 파악하는데 성공한 그들 4인방이 활약하기 시작했다.
뱀파이어들의 사각을 점령하고 기습을 가함으로서 뱀파이어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크학!”
“감히! 인간 따위가!”
정신이 번쩍 드는 상처를 입은 뱀파이어들의 시선이 4인방에게로 분산 된 그때였다.
“주인공은 여기에 있다고. 아, 히로인이라고 해야 하나?”
지옥도가 펼쳐진 계단 하층부와 달리 평온한 계단 상층부.
육감적인 몸매를 당당하게 노출하고 선 지슈카가 활시위를 놓았다.
퍼퍼퍼퍼퍼퍼펑!!
홍염의 화살 수십 발이 마치 미사일처럼 맹렬하게 쏘아졌다.
부지불식간에 나타난 4인방의 맹공을 방어하기 급급하던 뱀파이어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또 한 번 완벽한 기습이었다.
“크아아악!”
불과 피의 홍수가 발생했다.
적막하고 어둡던 건물 내부가 순식간에 뜨겁게 달궈졌다.
불바다 속에서 몸부림치는 뱀파이어들의 남은 생명력은 이제 60퍼센트 선.
드디어 주인공이 나설 차례였다.
“주군! 지금입니다!”
[사기가 고무되었습니다.]
[공격력과 마력이 다음 공격에 한정해서 대폭 상승 적용됩니다.]
[다음 공격은 반드시 크리티컬이 발동합니다!]
후로이로부터 최강의 버프를 부여받은 그리드!
경험치를 독식하기 위해 파티에서 탈퇴한 그가 도살귀의 안대를 뒤집어쓰고 경험치 버프 물약을 복용했다.
그리고 <대장장이의 분노>를 발동, 춤사위를 펼쳤다.
“파그마의 검무.”
어두운 공간이 우리의 실력을 제한할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나는 오히려 반대다!’
쿠오오오오오오오!!
어둠 속에서야말로 진가를 발휘하는 실패작의 푸른 검신이 기성을 토해냈다. 강력한 기운이 일대의 기운을 무섭게 짓눌렀다.
최강 광역 스킬의 전조였다.
“초연(超聯)!!”
파스칼을 레이드하면서 레벨이 1단계 상승한 초연(超聯)의 위력은 종전과 비할 바 없이 강력했다.
타격 횟수와 피해량이 상승한 것은 물론이고 관통 효과가 생겼다.
콰쾅! 콰콰콰콰쾅!!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불꽃과 어둠을 모조리 집어삼키며 날아간 푸른 검기의 다발이 템빨단원들과 대치한 뱀파이어들. 그리고 종국에 이르러서는 막 영겁의 폭풍에서 빠져나온 뱀파이어들까지 꿰뚫고 지나갔다.
[크리티컬!!]
[성스러운 빛의 장갑의 옵션 효과로 인하여 <5연격>스킬이 발동합니다!!]
[대상에게 5,490,5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5,670,0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
..
[경이적인 기록입니다!]
[5초 내에 총합 1억 이상의 피해량을 달성하셨습니다!!]
[대륙 전역 명성이 5,000 상승합니다!!]
레전드리 아이템을 무려 10개 제작해야지 얻을 수 있는 명성을 획득했다!
‘뽑기권 다섯 개 복구!’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엄청난 수익에 이어,
“키야아아아악!!”
“끄어어어억!”
건물 가득 비명이 메아리쳤다.
200여 명 뱀파이어 대부분이 중상을 입고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공헌도를 높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막타인 법!
계단에서부터 뛰어내린 그리드가 뱀파이어들의 중심부로 난입, 파(派)를 발동시켰다.
쿠르르르르릉!!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검기의 파도가 뱀파이어들에게 큰 타격을 입히고 모든 속도를 저하시켰다.
“이놈이!!”
“네놈의 피를 빼앗아주마!”
격분한 뱀파이어들의 신경이 오로지 그리드에게만 집중됐다.
얼핏 위험해 보였다.
하지만 템빨단원들은 그리드를 도울 수가 없었다.
지금 나섰다가는 자신들이 막타를 치게 될 우려가 있었고, 그랬다가는 그리드가 획득하는 경험치의 양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공격이 빗나갑니다.]
“헐.”
그리드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뱀파이어들의 몸이 검정 연기로 변하는가 싶더니 모든 스킬과 평타 공격들이 빗나간 까닭이다.
뱀파이어들의 기세가 등등해졌다.
“크하하하하!! 인간 따위에게 당할 우리가 아니다!!”
“네놈의 공격은 더 이상 우리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다!”
스아아아아!
검정 연기로 변한 뱀파이어들이 그리드의 주변으로 모여들어 태풍처럼 휘몰아쳤다.
일단 그리드를 혼란스럽게 만든 후, 기회를 엿봐 실체화하여 수혈 스킬을 사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한 바퀴 돌고 와.”
그리드가 누군가에게 명령을 내렸다.
노에? 랜디?
아니다.
지금의 그리드는 그 아이들과 경험치를 분배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드가 명령을 내린 대상은 다름 아닌 리파엘의 창날이었다.
“허억!!”
암흑력을 지닌 모든 존재들에게 상극으로 작용하는 레베카교의 신기!
그 위력을 미약하게나마 복제한 황금빛 창날이 선회하자 뱀파이어들이 피를 토하며 실체화했다.
“이, 이럴 수가!”
뱀파이어들은 제대로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중상을 입은 상태로 강도 높은 신성력의 영향을 받은 탓이었다.
오만함을 벗어던지고 엉금엉금 바닥을 기어 도망치려하는 그들의 처참한 꼴을 목도한 그리드가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핫!! 이 사랑스러운 녀석들!!”
지금 당장 출현할 수도 있는 최강의 보스, 엘핀스톤!
대량의 경험치를 눈앞에 둔 그리드는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그의 존재조차도 까맣게 잊었다.
서걱!
푸욱!
푸른 검광이 수놓일 때마다 뱀파이어가 하나, 둘씩 죽어나갔다.
물론 뱀파이어들은 잠자코 당할 생각이 없었다. 꾸준히 반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지슈카와 제드노스가 연신 화살과 마법을 날려 방해하는 것이 문제였다.
폰, 레가스, 페이커, 극검이 퇴로를 차단하고 있으니 도망칠 수도 없었다.
현재의 그리드는 대기업 회장님들조차도 평생 탑승해볼 기회가 없는 희대의 버스. 아니, 비행기에 안락하게 탑승한 상태라고 볼 수 있었다.
목적지는 300레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