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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96화 (15권) (91/1,794)

템빨 1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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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15권 - 1화

기분 좋은 미풍에 초원이 물결친다.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젊은 부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리드와 아이린이었다.

“낭.군.님. 헤헷.”

말끝마다 하트가 붙어 있는 것 같다.

그리드와 무려 반년 만에 재회한 아이린은 세상을 다 가진 사람마냥 행복해했다.

“낭군님과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꿈만 같아요. 영영 깨고 싶지 않은 꿈이요.”

아이린의 고운 얼굴에 번진 미소가 지워지질 않았다. 벌써 몇 달 째 앓고 있던 우울증을 어느새 극복한 기색이었다.

그녀가 기뻐하면 기뻐할수록 그리드는 가슴이 아팠다. 그간 그녀를 외롭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미안할 따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레이단으로 데려가고 싶다.’

처음부터 그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린은 윈스톤의 영주로서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사랑해요.”

“나도 그렇소.”

그리워해온 시간과 비례해서 사랑이 깊어졌다.

두 사람은 서로를 어루만지고 눈을 마주치는 일만으로도 지금의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소중하다 느꼈다.

“득템이도 기쁜가 봐요.”

득템이.

뱃속 아이를 말함이다.

그리드가 아이린의 부푼 배에 얼굴을 묻었다.

두근. 두근.

배에 귀를 붙이니 태아의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작지만 힘찬 소리였다.

그리드는 무한한 신비를 느꼈다.

‘나의 아이…’

아버지가 된다.

처음 경험하는 일인지라 두려움이 앞섰지만 그 이상으로 행복하다.

이 세상에 나의 자취를 각인시킨 느낌이랄까.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충만감이 엄습해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외톨이였던 내가 가장이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돈, 동료, 친구.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에 이어서 이제는 가정까지.

Satisfy에서 얻은 모든 것들이 그리드를 충족시켰다.

Satisfy는 단순한 게임이 아닌 현실만큼이나 소중한 세계임을 그리드는 새삼 다시 실감할 수 있었다.

꼬옥.

아이린의 작은 손이 그리드의 크고 거친 손을 거머쥐었다.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열망이 느껴졌다.

“우리 득템이도 낭군님처럼 멋진 손을 가진 사내 아이였으면 좋겠어요. 낭군님도 그렇죠?”

에트날 왕국은 남존여비 사상이 심하지 않다. 타국과 비교하면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매우 높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귀족들이 후계자를 남자로 지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아이린의 경우, 외동딸인 까닭에 스테임 후작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지만 그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스테임 후작 또한 사실은 아들을 원했었음을 말이다.

현실이 그렇다보니 아이린도 아들을 원했지만, 여자 된 입장에서는 역시 씁쓸한 감이 있었다.

높은 통찰력과 사랑의 힘으로 그녀의 마음을 읽은 그리드가 냉큼 답했다.

“나는 딸이 더 좋소.”

“딸아이는 후계자로 삼기에 여러모로 아쉽잖아요?”

“아니, 그런 건 상관없소. 나는 그저 당신을 닮아서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착한 딸을 갖고 싶을 뿐이오.”

연애 스킬이 쌓인 것은 아니다.

그리드는 단지 진심을 말할 뿐이었다.

그의 예상치 못한 답변이 아이린을 감격시켰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낭군님이 너무 좋아요.”

“…”

홍조 띈 뺨과 촉촉한 눈망울이 사랑스럽다.

묘한 자극을 받은 그리드가 마른 침을 삼켰다.

아이린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랑해줘요. 뱃속 아이 때문에 무리하기는 어렵지만요…”

“어… 으, 응?”

아이린은 여전히 소녀 같았다. 지극히 청순하여 남자의 ‘남’자도 모를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녀가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자 그리드는 당혹스러웠다.

“자, 가요.”

“자, 잠깐.”

“뜸들이지 말아요.”

어리바리하게 구는 그리드를 아이린이 침실로 이끌었다.

이후.

두 사람은 아이린의 임신 상황을 고려해서 색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나눴고 결과는 좋았다.

[뱃속 아이가 부부의 진실 된 사랑을 느낍니다.]

[뱃속 아이의 모든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1 상승합니다.]

***

라우엘로부터 귓속말이 왔다.

열흘 후에 은기사 길드와의 합병식을 거행하자는 내용이었다.

“슬슬 떠나야겠군.”

3일 동안 아이린과 행복한 시간을 보낸 그리드.

그의 심정 같아서야 아이린 곁에 계속 머물고 싶었지만 언제까지고 마냥 즐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템빨단의 마스터로서, 그리고 가장이 될 사람으로서 책임감이 뒷받침되어야함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내 나라를 갖게 된다면, 그때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대를 왕비로서 내 곁에 두겠소.’

왕이 되고자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다짐하고 떠나려하는 그리드에게 피닉스 단장이 찾아와 고개를 조아렸다.

“공작각하, 아이린 영주님을 모시고 가주실 순 없겠습니까?”

“레이단에 아이린을?”

“예, 각하. 스테임 후작님의 바람입니다.”

출산까지 4달여 남았다.

그동안 딸이 홀로 외로이 지내는 것을 스테임 후작은 원치 않았다.

그리드도 마찬가지였지만 아이린은 윈스톤의 영주가 아닌가?

“그녀가 자리를 비워도 되나?”

“스테임 후작께서 영주 대리를 파견해주신다 하였습니다.”

“나야 좋다.”

그리드의 얼굴에 미소가 만개했다.

기뻐하는 그를 보고 피닉스가 눈물지었다.

‘아가씨, 당신께서는 진정으로 사랑 받고 계시는 군요.’

“내 품에 안기시오.”

브라함의 부츠를 무장한 그리드가 아이린을 안고 날았다.

구름 사이를 노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낭만적인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너무 신비롭고 신나요. 마치 동화 속 세상에 들어온 것만 같아요.”

“나는 그대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동화 같소.”

“낭군님…”

[뱃속 아이가 부부의 진실 된 사랑을 느낍니다.]

[뱃속 아이의 모든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1 상승합니다.]

[자연의 신비를 목격한 뱃속 아이가 경탄합니다.]

[뱃속 아이가 탐구심을 갖습니다.]

[뱃속 아이의 지력이 영구적으로 2 상승합니다.]

“마나가 떨어졌군. 잠시 걸읍시다.”

“후훗, 낭군님과 숲속을 걸으니 우리가 서로를 알아봤던 그날이 떠오르네요.”

과거, 그리드는 말락서스에게 납치당한 아이린을 구출하여 숲을 헤쳐 나갔던 적이 있다.

당시를 회상함이라.

그리드가 아이린의 가녀린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대에게 위험이 찾아오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오. 내가 언제고 그대를 지킬 테니까.”

“낭군님…”

[뱃속 아이가 부부의 진실 된 사랑을 느낍니다.]

[뱃속 아이의 모든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1 상승합니다.]

레이단으로 향하는 여정 동안 부부의 호감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고 태교에도 좋은 영향을 줬다.

몬스터와 도적들이 수시로 출몰하여 부부를 위협했지만 그리드의 좋은 경험치가 될 뿐이었다.

[부친의 무용을 목격한 뱃속 아이가 감탄합니다.]

[뱃속 아이가 검술에 관심을 갖습니다.]

[뱃속 아이의 근력이 영구적으로 1 상승합니다.]

[부친의 무기 수리술을 목격한 뱃속 아이가 감탄합니다.]

[뱃속 아이가 대장장이 기술에 관심을 갖습니다.]

[뱃속 아이의 손재주가 영구적으로 1 상승합니다.]

가끔씩 떠오르는 알림창이 그리드를 들뜨게 만들었다.

‘녀석, 제법일 것 같은데.’

1레벨 유저의 스탯 총합은 22이다.

반면 득템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스탯 총합이 최소 50에 육박할 것 같았다.

‘뭐, 중요한 건 스탯의 최대치지만.’

그리드는 득템이의 능력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기대하지 않았다.

네임드 NPC가 아닌 이상 NPC들에게는 한계라는 것이 존재했던 까닭이다. 그는 그저 아이린을 닮아 예쁘고 착한 아이가 태어나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다.

그는 망각하고 있었다.

득템이는 전설 그리드와 에트날 최고의 명가인 스테임 후작가의 피를 이어받은 각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

길드 이름:템빨단

레벨:10(MAX)

마스터:그리드

인원:(28/250)

소속:에트날 왕국

동맹 관계:스테임 후작가문

적대 관계:명확한 적이라고 칭할 수 있는 세력은 아직 없지만 많은 세력들에게 경계 당하고 있습니다.

성향:스테임 후작가문과 절대적 호의 관계

영토:레이단

본래 길드 레벨을 올리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최상위권 길드들조차도 10레벨을 달성하는데 최소 1년 이상 걸렸으니 말 다했다.

그에 반해 템빨단은 특별한 케이스였다.

창설 직후 골렘 침공전의 보상을 받아 대량의 길드 경험치를 획득한 덕분에 단 7개월 만에 10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리드는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을 표출했다.

“무슨 길드원을 250명밖에 못 받아? 길드 시스템 이거 완전 허접하네.”

은기사 길드의 총원은 정확히 225명이었다.

합병의 조건에는 그들 전부를 거두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드로서는 난감했다.

라우엘이 설명해주었다.

“길드야 또 만들면 됩니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길드를 만들 수 있는 거였어?”

“아니죠. 템빨단원 중 누군가가 새로운 길드를 창설하고 그 길드를 템빨단 예하로 귀속시켜야죠. 쉽게 말해서 2군 길드를 만드는 겁니다.”

“아, 총원이 250명이 넘는 길드들은 다 그런 식으로 운영했던 거야?”

“네…”

라우엘의 눈매가 게슴츠레해졌다.

그리드가 이런 기본적인 시스템조차 모르는 모습을 볼 때면 너무하다 싶었다.

“그래 그럼. 새 길드는 네가 만들면 되겠네.”

“저는 아직 인망이 부족합니다.”

라우엘은 지슈카를 추천했다.

“지슈카님은 템빨단의 모태가 된 체다카 길드의 마스터 출신으로서 길드 내 인망이 두텁습니다. 그녀라면 2군을 잘 이끌어주실 수 있겠죠.”

“그래라 그래.”

그리드는 라우엘을 절대적으로 신임하고 있었다.

라우엘의 조언대로만 하면 만사형통이었으니까 신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작 지슈카 본인이 2군의 마스터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대장이랍시고 또 타지의 영주 책무를 맡아야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녀의 속내를 들은 라우엘이 안심시켰다.

“지난 반년 동안 템빨단원들은 영지의 관리법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지슈카님을 대신해서 타지의 영주직을 맡아주실 분들이 여럿 계시니 걱정 마세요.”

“그렇다면 좋아.”

템빨단원들 전원이 모인 가운데 지슈카가 새로운 길드를 창설했다.

“길드 이름은 뭐로 하지?”

길드 이름을 짓는 것은 마스터의 재량이었다.

지슈카와 템빨단원들의 시선이 모두 그리드에게 쏠렸다.

고민해본 그리드가 이름을 지었다.

“템빨단 2.”

“아, 진짜!”

라우엘이 버럭 성을 내는 반면 템빨단원들은 아무런 거부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그리드의 작명 센스에 적응하고 있었다.

같은 편이 없음에 절망한 라우엘이 침까지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다.

“2군, 3군 길드들은 역할군에 적합하게끔 이름을 짓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템빨단 2군의 경우 보조 직업군 길드원들을 가입시킬 예정이니까 그들의 특색에 맞는 이름을 지어주십쇼!”

“인력소?”

“에휴!”

결국 템빨단 2군의 이름은 템빨단 2로 결정됐다.

***

길드 합병식 당일.

극검을 포함한 225명의 은기사 길드원 전원 레이단에 무사히 도착했다.

통합 랭킹 15위 극검의 활약 덕분에 사막의 강력한 몬스터들조차도 그들의 발목을 붙잡을 수 없었다.

“대단하다.”

은기사 길드원들은 레이단의 장관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레이단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상태였다.

대도시답게 온갖 건축물들이 우뚝 솟아있었고 병사들의 무장 상태 또한 훌륭했다.

특히 연금술 시설과 논밭은 그 어느 도시와도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되어 있었다.

그리드가 투자한 2천만 골드의 힘이었다.

“레이단에 온 것을 환영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도열하고 있는 일천 병사들 사이로 흑발의 사내가 등장했다.

그리드였다.

그의 뒤를 따르는 30여 명의 템빨단원들은 하나 같이 명성 높은 랭커들로서 낯선 이가 하나도 없었다.

이제 곧 저들과 하나가 된다는 사실에 극검과 은기사 길드원들은 전율을 느꼈다.

“마스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극검은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사내이다.

현실에서는 자신이 그리드보다 연상일지언정 Satisfy에서만큼은 직급이 훨씬 아래임을 알고 깍듯이 대했다.

이러한 태도는 단번에 세를 늘린 템빨단의 규율을 확립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었다.

“나 또한 잘 부탁한다.”

동네 똥개들한테도 무시당하던 찌질이 사내가 거대 길드의 수장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만약 그리드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 한다면 대미를 장식하기에 손색없는 장면이었다.

이대로 그리드의 인생은 탄탄대로인가?

아니, 여전히 순탄치 않다.

지금 당장만 해도 광물탐지기 마이너가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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