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14권 - 15화
[사하란 제국의 깃발 아래 소수민족들을 학살해온 19번 적기사, 플뤼톤을 해치웠습니다.]
[이 소식이 제국에 전파 될 경우, 제국에 당신의 척살령이 떨어집니다.]
[경험치 43,908,500을 획득하였습니다.]
[81 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드 아머>를 획득하였습니다.]
[<스킬북:오러 페스티벌>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드 아머>
등급 : 유니크
……
……
사용 조건 : 레벨 300 이상. 고급 헤비 아머 마스터리 5레벨 이상.
<스킬북 : 오러 페스티벌>
등급 : 유니크
오러를 발사하여 광범위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범위와 위력이 상승합니다.
습득 조건 :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직업군.
레드 아머는 높은 내구력과 방어력을 자랑하는 대신 너무 무겁고 옵션이 어중간했다. 템빨단원들이 사용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꽤 비싼 값에 팔릴 거야.’
템빨단원들이야 그리드가 직접아이템을 제작해주기 때문에 레드아머를 부족하다 느끼겠지만, 일반 유저들은 경우가 달랐다.
일반 유저들에게 레드 아머는 S급 아이템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만한 갑옷도 없어서 못 쓰는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팔기보다는 개조를 한 후에 파는 편이 더 좋겠지.’
개조가 잘만 성공한다면, 아이템의 가치가 폭등할 수도 있다. 어쩌면 템빨단원들이 사용해도 부족함 없을 정도로.
‘스킬북은…’
그냥 대박이다.
오러 페스티벌.
위협적인 이유가 있었다.
‘유니크 스킬이라니.’
스킬은 한 번만 익히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유니크 스킬북의 가치는 레전드리 아이템의 가치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이건 폰이나 이벨린에게 팔면 되겠군.’
정말로 오래간만에 큰돈을 벌게 생겼다.
빌딩 건설에 전 재산을 쏟아 부은 이후 한동안 거지로 살아왔건만, 이제 다시금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됐다.
‘기념으로 피자를 시켜 먹어야겠어.’
무려 3천원을 더 추가해야하는 치즈크러스트 피자로 먹을 계획이다. 개당 7백원을 호가하는 파마산 치즈가루와 핫소스도 추가할 것이다.
“크크큭.”
기쁨에 전율하는 그리드.
기괴한 가면을 뒤집어쓰고 피칠갑 한 채 웃는 그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소름을 유발시켰다.
‘가만.’
웃음을 그친 그리드가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마도 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겠지?’
OGC는 최초의 게임 전문 방송국으로서 나름 인지도가 있는 편이었다.
현재 방송을 시청하는 인원이 최소 10만 명은 되리라고 그리드는 추측했다.
‘예기치 않게 출현하게 된 방송.’
기왕 이렇게 된 이상 철저하게 이용해주마.
재차 다짐한 그리드가 길드 홍보를 시작했다.
“템빨단에서 청소부, 요리사, 재단사, 세공사, 연금술사, 대장장이 등의 보조직업군 길드원을 모집 중입니다. 자세한 상담은 라우엘과 하시면 됩니다.”
그리드와 유페미나를 제외한 템빨단원들은 죄다 전투에만 특화되어 있었다. 곧 합병시킬 은기사길드 역시 전투직업군의 비율이 훨씬 더 높다고 했다.
영지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보조직업군을 대거 고용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한 100명 정도는 문의를 해올 수도 있어. 그중에 쓸 만한 인재가 한둘은 있겠지.’
그리드는 꿈에도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현재 OGC 채널의 시청률은 55퍼센트를 초과하고 있었다. 순간 최고 시청률은 63퍼센트에 육박했다.
반세기만의 대기록이었다.
2011년도부터 종편 채널들이 난립한 이후, 대한민국에서 하나의 채널이 이만큼의 시청률을 독점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단 15초짜리 중간 광고가 30억에 팔려나갈 정도였다.
방송이 절정에 이른 지금. 그리드는 수십억짜리 홍보를 공짜로 하고 있다는 뜻이 되었다.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지금 당장 수만 명의 유저들이 라우엘에게 길드 가입 상담 문의 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영주 대리로서 바른 나날을 보내고 있던 라우엘은 이제 잠 잘 시간마저도 부족해지고 말았다.
본의 아니게 라우엘에게 과중한 업무를 맡기게 된 그리드.
그는 새로운 알림창과 마주하고 있었다.
[타임 어택 퀘스트 <증거인멸>이 생성되었습니다.]
<증거인멸>
난이도 : AAA
당신이 흑기사와 적기사들을 해치웠다는 사실이 사하란 제국에 전해져서는 피할 수 없는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남아있는 적의 잔당들을 해치우고 이번 사건의 주동자들까지 멸살, 혹은 회유하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 생존한 흑기사들을 퇴치(0/4). 이번 사건의 주동자인 파스칼 부자와 원로들을 회유, 혹은 퇴치.
퀘스트 클리어 보상: 사하란 제국에 당신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것을 억제합니다.
퀘스트 실패 시: 사하란 제국에 당신의 척살령이 떨어집니다.
제한 시간:2시간.
“후로이.”
“예.”
후로이는 그리드가 플뤼톤을 상대하는 동안 리파엘의 창날의 보호를 받으며 생명력을 회복해놓았다.
그에게 그리드가 명령했다.
“남아있는 흑기사들을 처치해라.”
당한 수모를 되갚아줌과 동시에 경험치를 획득할 기회를 베푸는 것이다.
뜻을 읽은 후로이가 감격하며 대답했다.
“맡겨주십시오.”
"좋아.”
그리드가 곧장 자리를 떠났다. 목적지는 원로회실이었다.
혼자 남게 된 후로이를 흑기사들이 곧바로 포위했다.
그들은 회심의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드 저 녀석도 멍청하군. 너를 혼자 남겨두고 떠나다니.”
“네놈을 죽이고 제국으로 돌아가 그리드를 고발하겠다!”
“주군의 존함을 그 더러운 입에 함부로 담지 마라.”
“곧 죽을 놈이 폼 잡기는!”
흑기사들은 후로이를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앞서 싸웠을 때 후로이의 실력이 형편없음을 보았던 까닭이다.
실제로 그리드도 말하지 않았던가? 후로이는 약하다고.
반면 흑기사들은 대륙 제2기사단에 소속된 실력자들이었다.
4대 1의 싸움. 누가 봐도 흑기사들에게 유리했다.
“죽어라!”
흑기사들이 일제히 공격을 날렸다.
기세가 매서웠다. 하지만 후로이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다인슬레프를 소형화시킨 한손검을 꺼내 쥔 후로이가 흑기사들의 공격을 방어했다.
“제법이다만…!”
“우리들의 상대는 아니다!”
기세를 더욱 더 끌어올린 흑기사들이 재차 공격에 나서려다가 멈칫했다.
머리 위로부터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기에.
쿠오오오오오!!
적색의 비룡이 포효한다.
20억 유저 중 단 100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룡의 주인.
그것이 바로 후로이의 진정한 정체였다.
“내가 약한 건 사실이나 그것은 주군과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지.”
“이, 이런…!”
쿠워어어어어어!!
화염이 쏟아졌다.
고통스러워하는 흑기사들을 후로이가 하나씩 베어 넘겼다. 정의의 사도의 파트너가 미쳐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_헐…
웅변가가 흑기사들을 도륙하다니?
후로이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충격을 선사했다.
***
교황 후보 연설 행사가 시작되기 1시간 전.
한 달 이상 연락두절이었던 폰과 레가스가 드디어 레이단에 귀환했다.
그들은 던전 공략에 성공했는가?
아니다. 실패였다.
템빨단 최강의 듀오가 보스에게 도달하지도 못하고 죽었다.
뱀파이어의 도시에는 강력한 뱀파이어가 셀 수 없이 많이 서식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애초에 두 명이서 공략하라고 만들어 놓은 던전이 아니야. 3차 전직한 유저가 최소 10명 이상파티를 짜야 돼. 나흘 이내에 공략하려면 20명 이상 필요하려나?”
“뱀파이어들의 회피 스킬은 신성속성 외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기능이 있더군요. 놈들을 보다 수월하게 사냥하려면 신성속성 스킬이나 무기를 꼭 준비해야 돼요.”
“죽기 전에 어떻게든 보스에게 도달해서 보스 정보까지 파악해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준비가 너무 미흡했어요. 포션과 식량. 그리고 무기 내구도가 떨어져서 더 이상의 진행은 불가항력이었죠.”
등등.
폰과 레가스는 뱀파이어의 도시에 대한 정보를 길드원들에게 빠짐없이 공유했다.
라우엘이 종합해보았다.
‘에트날 왕국 서부에 존재하는 뱀파이어의 도시는 최소 13개.’
도시는 던전으로 분류되며, 최초 입장자가 입구를 이용하고부터 10초 후에 입구가 봉쇄된다.
출구는 뱀파이어 보스를 쓰러뜨리기 전까지 생성되지 않는다.
탈출 방법은 보스를 사냥하거나 혹은 죽는 것뿐.
‘13번째 도시 기준으로 뱀파이어들의 레벨은 최소 280부터 최대350. 피 냄새와 빛에 민감하여 기척을 읽는 능력이 뛰어나다. 주력스킬은 암흑 속성 마법과 흡혈, 회피. 개체에 따라서 체술이나 검술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녀석도 있다. 드롭하는 아이템은 각종 보석과 천으로 만든 방어구.’
준보스급 몬스터로 분류되는 <진 혈족 뱀파이어>들의 경우, 극악의 확률로 마법서와 엘릭서도 드롭한다.
‘엘릭서라… 엄청나군.’
엘릭서는 스탯을 영구적으로 상승시켜주는 마법의 영약이다. 가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천문학적.
뱀파이어의 도시를 길드 전용 던전으로 운영한다면 커다란 성장발판이 될 것이다.
‘보스 몬스터의 정보는 아직 불명.’
슥슥.
그리드에게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는 라우엘의 손이 빠르다.
집중하고 있던 그가 노크 소리를 듣고 말했다.
“들어오세요.”
“오래간만입니다?”
라우엘은 에트날 왕국의 백작이며 레이단의 영주대행이다.
고귀한 그의 집무실에 들어오면서 고개 한 번 까딱이지 않는 사람은 템빨단원들 외에 단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싸가지 없기로 유명한 마이너였다.
약 3개월 전.
그리드에게 명령받고 파브라늄의 수색에 나섰던 그 광석 탐지기 소년이 무사히 생환한 것이다.
“어휴. 정말. 힘들어 뒤지는 줄 알았네.”
허락도 없이 소파에 주저앉는 소년의 예의 없는 행동을 라우엘은 딱히 거슬려하지 않았다.
라우엘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성격보다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리드를 따르리라 결심할 수 있었던 거고.
“무사히 돌아와서 기쁘구나.”
웃으며 반겨주는 라우엘에게 마이너가 어깨를 으쓱였다.
“전 하나도 안 기쁘군요.”
“하하하! 너는 여전하구나. 그래, 골렘의 미궁은 찾았고?”
“아니요. 이곳 서부에는 골렘의 미궁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더군요.”
라우엘의 얼굴이 굳었다.
“파브라늄이 없다고…? 이거야 원, 그리드 공작각하께서 많이 실망하시겠는걸.”
“누가 파브라늄이 없다고 했습니까? 골렘의 미궁이 없다고 했지.”
“무슨 말이지?”
의아해하는 라우엘에게 마이너가 지도를 건넸다.
“그곳에 표시해둔 던전들로부터 파브라늄의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서부의 지도였다.
총 15군데에 X자 표시가 되어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중 하나가 뱀파이어의 도시와 장소가 겹쳤다.
‘이거, 설마?’
흥분한 라우엘이 질문했다.
“혹시. 던전 입구가 개미지옥의 형태를 하고 있더냐?”
“엥? 어떻게 알았죠?”
역시나다.
마이너가 지도에 표시해놓은 장소들은 다름 아닌 뱀파이어의 도시들이었다.
“크크큭…”
한 손으로 자그마한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린 라우엘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흰 이를 드러낸 그가 중얼거렸다.
“이런, 이런. 뱀파이어의 도시와 파브라늄이 봉인된 장소를 동시에 알게 되다니… 내가 전생에 사랑을 나눴던 행운의 여신이 끝내 나를 잊지 못하여 내게 큰 도움을 주는구나. 그녀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봉인시킨 전생의 기억을 조만간 되찾아 그녀를 찾아가야겠다. 수줍어하는 그녀의 빵에 키스를 해주어야겠어.”
‘미친놈.’
아직 어린 소년에 불과한 마이너가 봤을 때도 그리드 주변에 정상인은 드물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리드부터가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나 같은 천재는 제국 황제의 오른팔쯤 되어야지.’
만인지상의 자리를 꿈꿔본다.
“후후훗…”
“크크큭…!"
각자 다른 생각에 도취되어 있는 라우엘과 마이너의 웃음소리가 방안 가득 울려 퍼졌다.
“음.”
라우엘에게 보고할 사항이 있어서 집무실을 찾아온 쥬드가 그들로부터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