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84화 (79/1,794)

템빨 14권 - 10화

OGC방송국의 이국래 국장과 박종수PD였다.

현장 답사를 위해서 직접 Satisfy에 접속한 그들이 데미안을 주시하고 있었다.

“저자가 교황 후보입니까?”

“그래, 시청률 15퍼센트짜리다. 카메라 7대를 붙이도록 해.”

“저 이사벨이라는 아가씨가 레베카의 딸이죠? 소문보다 더 예쁜데요?”

“그렇군. 그녀에게도 카메라 2대를 붙여놓는 편이 좋겠어.”

미인은 남성 시청자들의 순간 시청률을 수직상승 시킨다. 방송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알겠습니다. 어? 저 사람은…?”

데미안과 이사벨을 체크하던 박PD가 동양인 유저를 알아보고는 흥분했다.

“후로이! 데미안 옆에 붙어 있는 저 사람, 후로이입니다!”

“후로이? 웅변가 랭킹 1위 후로이?”

“네! 템빨단의!”

“그리드의 최측근?”

“확실합니다!”

“호오라! 이것 봐라?”

교황 후보 곁에 그리드의 최측근이 붙어있다?

이국장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번 선거에 그리드가 관련되어 있는 건가?’

그리드.

유저 최초로 레전드리 클래스와 공작위를 획득한 대한민국의 자랑.

각종 이벤트와 사건에서 수많은 활약을 펼쳐온 그가 이제는 레베카 교단에까지 개입하는 것인가?

“이거 어쩌면… 계획에도 없던 특종을 잡을 수도 있겠는데?”

물론, 그리드와는 관계없이 후로이가 개인 활동을 하는 중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예의주시할 필요는 있지. 교황 후보 데미안과 그리드에게 어떠한 접점이 있는지, 그들의 행력을 조사해서 알아 봐야겠어. 일단 후로이에게도 카메라 2대 붙여.”

“네, 알겠습니다. 근데 저 남자는 어떻게 할까요?”

울고 있는 눈매와 웃고 있는 입매가 기묘한 대칭을 이루는 반쪽짜리 가면의 사내.

안대까지 쓰고 있는 그의 얼굴과 아이디는 식별이 불가능했다.

데미안 일행과 친해 보이는 그가 이국장과 박PD는 묘하게 신경 쓰였다.

“일단 카메라 한 대 붙여놓고 보자고.”

후로이까지 등장한 마당이다. 보다 철저하게 관찰하고 싶었던 이국장의 명령에 박PD가 수긍했다.

***

그리드의 현재 통찰력은 1,400을 초과한다. 50미터 거리 밖에서 일행을 엿보는 저레벨 유저 2명의 시선을 그는 진즉부터 느끼고 있었다.

‘방송국 관계자들이었나.’

그들이 로그아웃하자마자 촬영용 마법구가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들키지 않기 위함인지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리드는 정확히 포착할 수 있었다.

‘귀찮을까봐서 기껏 정체까지 감췄더니만.’

조소하는 그리드.

그는 촬영용 마법구들을 딱히 거슬려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따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데미안이 질문했다.

“리파엘의 창도 봉인하셨으니, 이제 레이단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데미안과 이사벨 모두 아쉬움이 묻어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아직 용건이 남았거든.”

파스칼이 드디어 나를 적으로 인식했다. 슬슬 행동에 나설 것이다.

놈이 나를 공격하는 순간,

‘렙업해야지.’

사악한 미소를 짓는 그리드에게 반색한 데미안이 말했다.

“그렇다면 저를 지켜봐주십시오. 저는 오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가 교황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모두가 납득할 수 있게끔 말해보이겠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무한한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고 믿으니까요.”

지난 시간 동안 후로이와 함께하면서 연설능력을 쌓은 데미안은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그의 당당한 눈빛을 확인한 그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믿고 응원하마.”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준비하러 가보겠습니다.”

“그리드, 떠나기 전에 꼭 내게 말해줘야만 해요. 말없이 떠나면 안 돼요. 알았죠?”

“오냐.”

그리드와 후로이를 남겨둔 데미안과 이사벨이 행사장으로 떠났다.

이사벨은 혹여나 그리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며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고, 데미안은 오로지 앞만 보며 재차 다짐하였다.

‘오늘 꼭 활약해서 교황이 될 기반을 다져야한다.’

그리드님은 이사벨 쨩을 살려주셨다. 또한 후로이님은 내가 교인들에게 신뢰 받을 수 있게끔 도와주셨다.

무려 2주 가까이 사냥 한 번 하지 못하고 이곳 교황청에 갇힌 채,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애써준 그들에게 데미안은 반드시 보답하고 싶었다.

‘보답할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고 이사벨 쨩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꼭 교황이 되어야만 해.’

데미안의 표정이 마치 전쟁터로 향하는 장수의 얼굴처럼 비장했다.

잠시 후.

그리드와 둘만 남게 된 후로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은 용건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사냥.”

“사냥… 말씀이십니까?”

“그래, 템빨단에서 루비와 섹시여고생을 제외하면 너와 나만 300레벨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잖아?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폭렙 좀 해야 하지 않겠어?”

교황청은 몬스터 불가침 지역이다. 사냥 대상이 없다는 뜻이다.

“도대체 뭘 잡아서 레벨을 올리시겠다는 말씀이신지… 계획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예상은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예상이 틀리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묻는다.

조바심을 보이는 후로이에게 그리드가 빙그레 웃어주었다.

“성직자.”

파스칼과 원로들.

약자를 멸시하는 그 쓰레기들은 데미안에게 커다란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데미안이 백날 연설을 잘해봤자 뭐하는가?

파스칼이 있는 이상 그는 결코 교황이 될 수 없다. 그리드는 반드시 파스칼을 배제해야만 했다.

“그리고.”

적광을 뿌리는 그리드의 왼쪽 눈이 후로이의 등 뒤로 꽂힌다.

“덤으로 기사 일곱.”

“……!”

뒤늦게 기척을 느낀 후로이가 황급히 뒤로 시선을 돌렸다.

적색 갑주를 무장한 기사 둘과 흑색 갑주를 무장한 기사 다섯이 보였다.

“그리드, 그간의 치욕을 갚아주마.”

이를 가는 까미앙을 그리드가 환영해주었다.

“어서 와.”

여유다.

직접 상대해본 경험에 따르면, 적기사와 흑기사들은 소문과 달리 약했다. 소문이 제대로 과장 된 케이스였다.

고작 2명의 적기사와 흑기사 따위,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다는 것이 그리드의 판단이었다.

그때였다.

[교황 후보 연설 행사가 곧 시작됩니다. 안전을 위해서 외부인의 무기 소지가 금지됩니다.]

[인벤토리에 있는 모든 무기가 사용 불가로 설정됩니다.]

“…엥?”

“헐.”

당황한 그리드와 후로이가 말문을 닫았다.

그를 보고 크게 웃은 까미앙이 보란 듯이 검을 뽑아 쥐었다.

파스칼로부터 작금의 상황을 미리 경고 받은 까미앙 일행은 사전에 레베카 소속 기사로 등록을 마쳐놓은 상태였다.

효과적인 임시방편이다. 그들은 그리드와 후로이와 달리 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곳이 너의 무덤이다.”

‘아, 진짜.’

오래간만에 똥 밟았다.

까미앙이 접근해오자 뒷걸음치던 그리드가 후로이의 옆구리를 찔렀다.

“우리 일단 튀자.”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반색한 후로이가 그 즉시 비룡을 소환했다.

“강림하라! 초원 위 하늘의 제왕이여!”

“…”

비룡의 포효가 들려오기는커녕 적막만이 찾아온다.

그리드의 얼굴이 굳었다.

“비룡 왜 안 오냐?”

“그, 그것이…”

후로이가 비지땀을 흘렸다.

“펫 소환이 작동하질 않습니다.”

“이 상황에서 그런 농담은 재미없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리드도 노에와 랜디를 소환해보았다.

[레베카 여신이 교황 후보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교황청 전체에 극도의 신성력이 집약되어 인간 외의 존재가 침범할 수 없습니다.]

[펫의 소환에 실패하였습니다.]

“가지가지 한다.”

투덜거리는 그리드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

“레베카교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점은 파벌이 여러 개로 나뉘어있다는 점입니다. 단합이 제대로 이뤄지질 않으니 야탄교가 멋대로 활개 칠 수 있는 것이며…”

교황 후보들의 연설은 죄다 틀에 박혀있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처럼 무료하기만 했다. 졸음을 유발할 정도였다.

OGC 방송국.

이국래 국장의 표정이 어둡다.

생중계 방송의 시청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황 후보 중에 유저가 있다는 정보를 유포했는데도 이 모양이란 말이지?”

“후보들의 연설 내용이 예상 이상으로 지루합니다. 유입되는 시청자들의 채널을 고정시킬 만한 흡입력이 없어요.”

“다른 교황 후보들의 연설 모습보다는 데미안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도록 해봐. 조사해놨던 프로필도 계속 띄워놓고.”

“알겠습니다.”

빼곡하게 들어찬 수십 개의 모니터 중에 주목할 수 있을법한 부분이라고는 이사벨의 아름다운 얼굴밖에 없다.

“저건?”

초조함에 손톱을 깨물고 있던 이국장의 두 눈이 부릅 뜨였다.

하단의 자그마한 모니터로부터 이변이 발생하고 있음을 포착한 것이다.

“19번! 19번 모니터를 띄워라!”

***

-겁나 지루하다.

-내가 이 방송을 왜 보고 있지?

-그와중에 이사벨 무지 예쁨.

교황 후보 중에 유저가 있다는 소문을 접하고 OGC 웹채널을 찾아온 네티즌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채팅창이 온통 욕설로 도배되고 있었다.

-노잼. 핵노잼.

-님들, 오늘 교황 결정되는 거임?

-아뇨. 교황 선출일은 한 달 후에요. 지금은 교황 후보들이 그냥 자기 PR하는 거고요.

-뭐야, 그럼 볼 필요도 없네.

-교황 후보 누군지 알았으니까 난 이만 감. ㅅㄱ

-지금 다른 채널에서 PvP대회 생중계 중입니다. 그거 보는 게 이득이에요.

-나도 그거 보러가야지. 이딴 방송은 돈 줘도 안 본다, 염병.

그렇게.

OGC 웹채널의 시청자수가 빠르게 줄어드는 그때였다.

교황 후보들과 이사벨의 얼굴만 비추던 지루한 방송 화면에 갑자기 적색 갑주와 흑색 갑주를 무장한 기사들이 떠올랐다.

-헐? 적기사?

-와! 적기사랑 흑기사 맞네!

-짝퉁 아님?

-ㄴㄴ 저 갑옷들이랑 문양 보면 진짜에요.

사하란 제국 최강의 기사들!

그들의 예고 없는 출현이 시청자들을 흥분시켰다.

-근데 교황청에 왜 적기사랑 흑기사들이 있지?

-누구랑 싸우는 거죠?

적기사와 흑기사들의 공격을 받는 인물들에게로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 둘은 놀랍게도 유저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면의 사내와 웅변가 랭킹 1위 후로이였다.

-적기사를 유저가 어떻게 감당해…

-후로이 죽겠네.

-템빨단이 아무리 세 봤자 아직 적기사단한테는 허접이지~ㅋㅋㅋ

-템빨단 최초로 패배를 겪는 날이 되겠구만.

-가면 쓴 놈은 누구야?

-누구긴 누구야, 허접이지.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까미앙이라는 이름의 적기사가 가면의 사내를 몰아붙였고, 5명의 흑기사는 후로이의 포위에 성공했다.

그들이 검을 매섭게 휘두르는 반면, 가면의 사내와 후로이는 무기도 없이 회피와 방어에만 급급했다.

저들은 왜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걸까?

시청자들의 의문이 고조되기 시작하였고, 자막으로는 현재 상황이 떠올랐다.

[레베카교 소속이 아닌 유저들은 무기의 사용을 금지당한 상태입니다.]

가면의 사내가 누군지. 그 사내와 후로이는 어째서 적기사와 흑기사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인지.

시청자들은 많은 것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 궁금증이 해소될 리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금세 깨닫게 되었다.

-끝났네.

-시시하다.

이 수수께끼의 영상은 이제 곧 끝날 것이다.

가면의 사내와 후로이는 기사들의 검에 찔려 잿빛으로 화할 것이며, 영상은 다시 교황 후보들의 지루한 연설 현장을 비추게 되리라.

시청자들은 확신했지만, 영상 속 가면의 사내는 뻔한 전개를 원하지 않았다.

“염병할 놈들이 정말로 치사하게 구네.”

가면의 사내가 욕설을 지껄인다.

한데 그 음성이 어째 익숙하다?

-어???

-그리드?

-갓리드다!

채팅갱신 속도와 시청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OGC방송국의 이국래 국장이 당황할 정도였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리파엘의 창날.”

그리드의 품에서부터 황금색 창날이 쏘아져 나갔다.

과거에는 7개의 칼날로 분리되어 보조 무기의 역할만했었던 파브라늄.

그것이 압도적인 공격력을 발휘하며 까미앙의 가슴에서 피가 솟구치게끔 만들었다.

앞서, 데미안을 ‘시청률 15퍼센트짜리’라고 평가했던 이국래 국장이 소리쳤다.

“시청률 측정 불가!!!”

광고비 올리라는 외침이 OGC방송국을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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