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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83화 (78/1,794)

템빨 14권 - 9화

‘재료가 없으면 구하면 되지.’

처참하게 해체되어 있는 리파엘의 창을 훑는 그리드의 눈빛에 탐욕이 충만하다.

‘수고비 정도는 챙겨야지 않겠어?’

그리드는 여신의 정수를 희생함으로서 이사벨을 살렸다.

그에 대한 보답을 조금쯤은 바라도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리파엘의 창을 녹인다면.’

아다만티움을 얻을 수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얻어야할지 모를 신의 광물을 공짜로 획득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인 것이다.

‘창대 부분을 조금만 떼어먹으면 될 것 같은데.’

<(신의 무기를 이해한)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Lv.6을 기반으로 <욕심에 먼 눈>Lv.마스터를 발휘하여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 리파엘의 창은 창대가 필요 이상으로 길고 두꺼웠다.

여성이 사용하기에는 다소 부적합한 수준이었다.

‘창대의 길이와 두께를 줄이면 이사벨에게도 결과적으로 좋게 작용할 거다.’

그렇게,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제멋대로 분석한 그리드가 창대를 용광로 속으로 집어 던졌다.

망설임 따위 없었다.

그리드의 본질은 탐욕이다.

‘더 높은 경지의 아이템을 어서 빨리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대장장이로서의 욕망이 그 본질과 맞물려 폭발하고 있었다.

지금의 그리드는 욕망의 화신이었다. 그 누구도 그를 제어할 수 없었다. 심지어 본인조차도 스스로를 억누르지 못했다. 마치 마약을 눈앞에 둔 마약 중독자 같은 행태였다.

따앙! 따앙!

그리드의 손놀림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빠르고 정교하다.

제작 관련 스킬들의 레벨이 상승한 덕분이었다.

그의 손끝에서부터 리파엘의 창이 보다 짧고 얇아져갔다.

“오오!”

주변에 모여서 구경하는 대장장이들은 할 말을 잃은 채 감탄사만 뱉었다.

신들린 듯한 그리드의 솜씨를 보고 있노라면, 이분이야말로 대장장이의 신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길 지경이었다.

“완성이다!”

약 3시간가량의 사투 끝에 리파엘의 창을 재구성한 그리드.

그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결과가 처참했다.

[불완전한 리파엘의 창을 제작하였습니다.]

<불완전한 리파엘의 창>

신이 설계한 조화가 깨졌습니다. 이것은 쓸모없는 막대기일 뿐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어디 한두 번 겪은 일인가?

철저하게 설계되어 있는 Satisfy가 설정에 어긋나는 이득을 안겨줄 리 만무하다.

“후우.”

따앙! 따앙!

실망한 그리드가 리파엘의 창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이사벨에게 창을 불완전한 상태로 돌려주었다가는 레베카로부터 어떤 신벌이 내릴지 몰랐기에.

띠링~!

다시 또 3시간가량의 시간을 투자하여 리파엘의 창을 복구시킨 그때였다.

경쾌한 효과음이 울리더니 믿을 수 없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결과는 처참했으나, 신의 무기를 재해석한 당신의 안목과 도전 정신은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합니다. 당신은 진정한 전설이 될 자격을 갖추어가고 있습니다.]

[<파그마의 후예>의 히든피스, <봉인된 능력> 중 하나를 획득합니다.]

[스킬 <전설적 대장장이의 개조>를 습득하였습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개조>Lv.1

이해도가 100퍼센트인 아이템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형태로 구성합니다.

개조 된 아이템의 성능은 당신의 해석과 기술, 의도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아이템 하나당 1회의 개조만 가능합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 때마다 개조 가능 횟수가 1씩 추가됩니다.

[히든피스, <봉인된 능력>을 개방하여 진정한 전설에 한 발 가까워집니다. 직업 고유 스킬들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10퍼센트씩 감소합니다.]

[대륙 전역 명성이 2,000 상승합니다.]

[현재 당신의 대륙 전역 명성 수치는 30,011입니다. 지금부터 명성 상점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더니.”

주먹을 불끈 말아 쥔 채 전율하던 그리드가 이내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착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복이 오는 법이라지! 크하하하하핫~!”

리파엘의 창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림과 동시에 커다란 혜택을 얻은 그리드는 본인을 선량하고 양심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다.

아다만티움을 슬쩍하려고 했던 본래의 악질적인 의도는 어느새 기억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뇌가 주인을 닮아서 이기적이었다.

***

OGC는 세계 최초의 게임 전문 방송국이다.

가상현실 게임이 등장하기 수십 년도 더 전부터 각종 게임 대회를 기획하고 개최하여 e스포츠 문화를 정립시켰다.

Satisfy가 게임 시장을 장악한 현재까지도 OGC는 세계 최고의 게임 방송국 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다.

“교황 후보 연설 행사를 생중계하도록 하자.”

OGC 편성국장 이국래.

PD출신으로 임원의 지위까지 오른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실적을 남겨왔다. 시청률 보장 수표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그의 결단은 편성기획팀원들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레베카교의 교황이 누가 되느냐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레베카교 소속 유저들 외에는 아무도 흥미 없을 것 같은데요.”

“연설 행사는 정적일 수밖에 없잖아요. 시청률이 바닥을 칠 테고 광고 따기도 어려울 겁니다.”

“차라리 동시간대에 지크 공국에서 개최되는 PvP대회를 방영하는 편이 훨씬 더 좋지 않을까요?”

“백번 양보해서 녹화중계라면 또 몰라도 하필이면 왜 생중계입니까? 황금시간댄데.”

“녹화중계도 아깝지. 그냥 간단하게 취재하고 뉴스에 짤막하게 편성하는 편이…”

반발하는 팀원들을 묵묵히 지켜보던 이국장이 손뼉을 쳤다. 그에 집중 되는 이목을 확인한 그가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교황 후보 중에 유저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거든.”

“헉?”

“그, 그게 사실입니까?”

작년, 레베카 교인의 숫자는 약 7천 1백만이었다.

하지만 올해 레베카 교인의 숫자는 무려 8천만을 넘어서고 있었다. 올해 안에 9천만을 찍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돌았다.

과연 Satisfy 제일종교답게 성장 속도가 타의 추정을 불허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커질지 가늠하기가 어려운 대단한 종교였다.

한데 그 종교의 주인 후보가 유저라고?

이는 보기 드문 특종이었다.

그리드가 관련 되었던 사건들과 비견될 정도의 특종!

기획팀원들의 의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생중계 좋네요! 당장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하도록 하죠!”

“스폰서를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광고 엄청 따겠군요!”

“워, 워.”

이국장이 흥분하는 팀원들을 진정시켰다.

“뭘 동네방네 소문내려고 해? 비싸게 구입한 정보를 다른 방송국들과 공유해서야 아깝지 않겠나. 우리의 목표는 독점 생중계다. 정보는 일단 중계를 시작한 이후에 공개하도록 한다.”

SNS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현재, 사람들의 정보 공유 속도는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

“이번 교황 후보 연설 행사. 스타트 시청률은 0.1퍼센트 미만일지 몰라도 최고시청률은 15퍼센트까지 찍을 수 있을 거야. 중간 삽입 광고의 가격도 새로운 기록을 갱신할 수 있을 테지. 자, 어서 준비들 하자고.”

“네!”

“크~ 바빠지겠구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국장과 팀원들은 몰랐다.

OGC가 설립 이래 최고의 시청률을 확보하게 되리란 사실을 말이다.

***

치리타 백작.

파스칼의 부친인 그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자작에 불과했다.

변방의 영주인 그를 제국 정계는 딱히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10년 전.

파스칼이 쥬다르교의 교주가 된 이후 그의 입지가 급변했다.

2천만 교인을 거느린 대종교 교주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그는 정계에서 주요하게 작용하는 패가 됐고, 백작의 작위를 얻었다.

그리고 현재.

“흡~! 교황청의 공기는 무척이나 맑구나!”

치리타 백작은 황제 쥬앙데르크에게 총애 받는 존재가 되었다. 제국 최고의 권력가 중 하나가 됐다는 뜻이다.

얼마 후면 교황의 아버지가 될 터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각종 사치품을 전신에 도배한 그는 무척이나 눈에 띄었다.

금일 개최될 교황 후보 연설 행사를 보기 위해 참석한 각국의 귀족들이 모두 그에게 달려와 굽실거렸다.

“치리타 각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제 한 달 후면 교황성하의 아버지가 되시겠군요.”

“황제폐하께서 각하께 공작의 작위를 수여하시지 않을까요?”

알랑방귀를 뀌는 타국 귀족들의 행태는 치리타 백작의 기분을 한껏 들뜨게 만들었다.

아들 하나 잘 둔 덕분에 인생이 이렇게까지 변할 줄이야.

기뻐하고 있는 그에게 파스칼이 다가왔다.

“오셨군요, 치리타 백작님.”

“오오, 파스칼 경. 오래간만에 뵙소이다.”

파스칼은 출가한 몸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부친을 타인처럼 대했다.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두 사람이 은밀한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황제폐하께 지원은 받으셨습니까?”

“음, 그래. 흑기사 다섯 명과 적기사 한 명을 파견해주셨다.”

파스칼의 얼굴이 구겨졌다.

‘적기사가 고작 한 명…’

적기사는 대륙 최강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얼마 전, 그리드는 까미앙을 일격에 쓰러뜨리지 않았던가?

고작 한 명의 적기사가 지원을 왔다고 해봤자 그다지 미덥지 않았다.

“몇 번째 기사입니까?”

“19번째 기사라고 하더군.”

“……!”

파스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 있던 실망감과 불안감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10번대 기사를 보내줄 줄이야!’

적기사에게 붙은 숫자는 강함의 척도다.

30번대 기사는 일당백, 20번대 기사는 일당천으로 불렸다.

10번대 기사? 20번대 기사 5명을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다.

19번째 기사라면 30번째 기사인 까미앙보다 족히 수십 배 더 강했다.

‘황제폐하께서 나를 진심으로 아끼시는구나!’

감격하여 몸을 떨고 있는 파스칼에게 치리타 백작이 질문을 던졌다.

“한데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지원을 요청한 게냐?”

“날벌레 한 마리가 자꾸만 귀찮게 굴어서 말입니다.”

파스칼은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리드를 재앙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19번째 기사가 온 이상 그리드는 날벌레 이하의 존재에 불과했다.

‘조만간 탈모가 사라지겠군.’

며칠 사이에 이마를 훤히 드러내게 된 파스칼의 얼굴에 미소가 만개했다.

***

“난리도 아니네.”

교황청이 완전히 북새통이 되었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인파를 보면서 혀를 내두르던 그리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OGC 방송국?’

교황청 곳곳에 방송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OGC 간판 아나운서인 최혜영이 분수대 앞에서 리허설 중이었다.

‘혹시라도 귀찮아 질수도 있겠는데.’

교황 선거에 대한 세간의 주목도가 예상보다 훨씬 더 높은 듯하다.

이때 내가 이곳에 있는 모습을 들킨다면 이유가 뭐냐며 인터뷰 요청이 쇄도할 터.

귀찮음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그리드는 도살자의 가면과 안대를 착용했다. 얼굴이 가려지면서 아이디가 비공개 처리됐다.

‘요즘엔 이게 차라리 편해.’

안심하고 있는 그리드에게 데미안과 후로이가 다가왔다. 이사벨도 함께였다.

그녀에게 그리드가 리파엘의 창을 건네주었다.

“백화를 봉인했다. 네 생명력을 멋대로 갉아먹는 일은 이제 없을 거야.”

“고마워요… 정말로 고마워요.”

감격한 이사벨이 눈물을 보였다. 그리드 덕분에 지옥 같은 삶에서 구원 받게 된 그녀는 전보다 더 그리드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레베카 여신 다음가는 빛이 바로 그리드와 데미안이었다.

한편 후로이는 안도의 숨을 뱉고 있었다.

‘주군께서 창의 재료를 떼어먹으려고 하시다가 신벌을 받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였었는데…’

다행히도 신의 무기를 넘볼 정도로 대책 없는 분은 아니었던 듯싶다.

‘저런 대단한 아이템을 보고도 욕심을 부리지 않으시다니… 주군은 한층 더 성장하셨군요. 정녕 훌륭하십니다.’

십년감수한 후로이가 그리드에게 엄지를 척하고 내밀었다.

‘쟤 왜 저래?’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그리드.

그를 주시하는 시선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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