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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69화 (64/1,794)

템빨 13권 - 16화

‘저놈은 레베카년의 앞잡이임이 분명하다!’

야탄의 종을 2명이나 살해한 전력이 있는 놈이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 이유?

나를 죽이기 위함일 터다.

저놈은 레베카교의 비밀병기다.

오로지 본교의 과업을 훼방 놓기 위해서 존재하는 놈이다.

다크버스는 그렇게 오해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타당한 오해였다.

‘여기서 꼭 죽여야만 한다. 더 이상 저놈이 활개 치도록 방치해서는 본교의 입장이 난처해진다.’

다크버스는 병사들과의 전투에 집중하고 있는 그리드에게 계속 마법을 날렸다.

하지만 적중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드가 지형지물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빈틈을 찾기가 어려웠을 뿐더러 황금의 칼날들이 빠르게 반응해 자꾸만 마법을 차단시켰다.

‘제기랄… 니베리우스도 어쩌지 못한 놈이라더니 과연, 내 공격력으로는 어림도 없군.’

다크버스는 저주 마법에 특화된 반면 공격 마법이 취약했다.

계략을 부리고 무대를 뜻대로 연출하는 재주만큼은 최고였으나 전투력은 야탄의 종 중 최약체였다.

‘저주 마법만 통했어도…!’

근본적인 문제는 그리드가 저주를 완벽하게 저항한다는 점에 있었다.

그를 상대로 다크버스는 아무런 능력도 발휘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성이었다.

어찌해야 좋을지 고심하던 다크버스가 금세 묘안을 떠올렸다.

‘아스모펠!’

아스모펠은 피아로 다음가는 검사였다.

지난 수년 동안 폐인처럼 지내 과거의 실력을 상실하였다고는 하나 어지간한 적기사보다는 강하다.

‘피아로에게 당했던 상처도 최근에 회복하였고… 지난 몇 년 동안 야탄 신의 정수를 꾸준히 복용하였으니 암흑 마력과의 상성도 훌륭하다.’

그를 내 마력으로 강화시킨다면 최강의 괴물이 탄생할 터.

‘템빨러! 오늘 이곳이 네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다크버스가 소리쳤다.

“나와라! 아스모펠!”

그리드에게 퀘스트 목표물을 알아서 전달해주려 하는 다크버스의 행태는 친절한 택배기사 그 자체였다. 인기 많을 타입이었다.

***

화단을 뛰어넘은 두 명의 병사가 그리드에게 칼을 찔렀다.

공격을 회피함과 동시에 그들의 목을 날려 버린 그리드의 시야로 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악마력이 2 올랐습니다.]

악마력.

수치가 오르면 지옥으로의 출입이 가능해진다는 요상한 스탯.

유저나 NPC를 1명 살해할 때마다 1씩 상승하는 그 스탯이 그리드는 영 못마땅했다.

지옥이라는, 이름부터가 불길한 그곳에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으니까.

‘자꾸만 쓸데없는 스탯이 오르는 게 거슬리네.’

그리드가 전장을 살폈다.

남아있는 병사의 숫자는 61. 거기에 날벌레 같이 귀찮게 구는 흑마법사 한 마리도 추가다.

이들을 모조리 죽일 경우 악마력이 154까지 치솟게 된다.

‘그렇다고 살리자니 원군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고.’

펫의 손을 빌린다면 어떻게 될까?

펫으로 사람을 죽일 경우 내 악마력은 안 오르지 않을까?

화이트 울프 길드와 싸웠을 당시에 랜디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랜디는 보조 하는 역할이었고 그리드가 모조리 학살했다. 그렇기에 정확한 판단 근거가 되지 않는다.

새롭게 실험해볼 가치가 있다.

그리드가 펫 인벤토리로부터 노에를 소환했다. 실험에 굳이 랜디까지 소환할 필요는 없었다. 레벨 업을 코앞에 둔 현재 시점에서 경험치를 둘과 분배하기에는 아쉬운 감도 있었다.

“짠! 지옥 제일 마수의 등장이시다! 냥!”

멋지게 등장하고 싶었던 노에가 사지를 大자로 뻗으면서 나타났다.

하지만 팔다리가 워낙에 짧고 배가 볼록하여 멋지기보다는 오히려 우스웠다.

‘어째 갈수록 귀여워지냐.’

자신의 입으로 짠! 이라는 효과음을 연출하다니… 이 녀석이 어딜 봐서 지옥의 마수일까?

피식 웃은 그리드가 노에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노에

종족:멤피스

레벨:151

상태:흡족

(우오오옷! 화려한 등장에 성공한 것이다! 냥핫핫!)

-현재 습득하고 있는 스킬 목록-

[유체화][영혼 섭취][할퀴기][매혹]

노에는 150레벨을 달성하면서 새롭게 매혹이라는 스킬을 습득했다. 적의 전투의지를 상실 시키는 효과를 지닌, 유용한 스킬이었다.

제국의 병사들이 제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고는 하나 결코 노에의 상대가 될 수 없다.

노에가 스킬을 잘만 활용하면 자신보다 레벨이 곱절은 높은 몬스터도 사냥이 가능하다. 방심해서 꼬리에 공격을 허용하지 않는 이상, 이 녀석은 막말로 사기적인 존재다.

때마침 허접한 흑마법사가 날려 오는 마법을 파브라늄으로 방어한 그리드가 명령을 내렸다.

“날뛰어봐.”

“냥!”

작은 날개를 펄럭인 노에가 병사 한 명에게 날아들었다.

겉모습만 보고 노에를 만만하게 여긴 병사는 대충 팔을 휘둘러서 녀석을 떨쳐내려 했지만 노에는 무척이나 날렵하다. 병사의 팔짓을 유영하듯이 가볍게 회피한 후 짧은 앞발을 그대로 뻗었다.

폭신폭신한 핑크색 발바닥에 콧대를 얻어맞은 순간, 병사는 눈앞에 별이 핑핑 도는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아파?!’

경악하며 코피를 쏟는 병사의 면상에 노에가 덥석 안겨들었다. 녀석은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있었다.

“냐냐냐냐냐냐냥!”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앞발을 휘두르는 노에!

병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 미친 고양이가!”

병사가 노에를 떨쳐내기 위해서 안간힘 썼다. 손을 휘젓고 검을 찔렀다. 하지만 노에는 그 공격을 모조리 회피하면서 할퀴기를 멈추지 않았다.

집요하고 잔인하다. 이렇게 보니 과연 지옥의 마수다웠다.

“으윽.”

병사가 쓰러지자 그리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경험치 125,600을 획득하였습니다. 펫 ‘노에’에게 경험치 일부를 분배하였습니다.]

[악마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

‘제길.’

살인 행위를 펫에게 떠넘기더라도 악마력이 오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된 이상 그리드는 망설이지 않았다.

경험치를 독식하기 위해서 노에를 회수한 후 살육을 개시했다.

백색 후드짚업을 나부끼며 쉴 틈 없이 2자루 대검을 휘두르는 그리드의 주위로 단말마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병사들은 신속하게도 움직이는 황금 칼날의 장벽 탓에 그리드의 몸에 생채기 하나 입히기 어려웠다. 허무하게 죽어나갔다.

‘조금만 더.’

도플갱어의 대검으로 3명의 병사를 찌른 후 실패작으로 절단한 그리드의 시선은 저택의 입구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곳이다.

저 저택 안에 아슈모펠이 있다.

놈을 죽이면 이 긴 여정이 끝난다.

퀘스트 보상으로 피아로와의 호감도가 최대치가 된다면, 그때는…

‘피아로, 나의 검이 되어라.’

미래의 검성을 동료로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그리드의 의욕이 들끓었다.

퍼엉!

저택 입구를 홀로 지키고 있는 흑마법사가 또 마법을 날려 왔다.

그리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저게 자꾸 까부네.’

흑마법사는 무척이나 약했다.

사용하는 공격 마법들의 수준을 토대로 추측하면 레벨이 200 내외밖에 안 되는 듯하다.

한데 자꾸만 거슬리게 만들자 그리드는 슬슬 짜증을 느꼈다.

퇴격의 수법으로 남은 병사들을 차근차근 해치운 그가 저택으로 달려갔다.

그는 허접한 흑마법사를 빠르게 처치한 후 아스모펠과의 결전에 임할 각오였다.

‘이미 소란을 듣고 도망친 건 아니겠지?’

그리드가 걱정하는 그때였다.

“나와라! 아스모펠!”

허접한 흑마법사가 소리치자 저택 입구로 호리호리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의 머리 위로는 아스모펠이라는 이름이 명확하게 떠올라 있었다.

“…웬 떡.”

목표물이 제 발로 걸어 나오다니?

예상치 못한 전개에 황당해하는 그리드에게 흑마법사가 소리쳤다.

“멋대로 구는 것도 여기까지다! 네놈에게 신벌이 내릴…!”

친절한 택배기사 다크버스의 외침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도약한 그리드가 그의 목을 실패작으로 꿰뚫어버렸기 때문이다.

“……!”

바람 빠지는 소리와 비슷한 신음을 토하며 쓰러지는 다크버스.

그의 심장에 도플갱어의 대검이 깊숙이 박혔다.

“놈…!”

격분한 다크버스가 벌떡 일어섰다. 전투력이 약하다고는 하나 야탄의 종이다. 네임드 보스로 분류되는 그의 생명력은 백만 단위였다. 고작 평타 2방에 죽을 리 만무했다.

그리드는 의문이었다.

‘얘 왜 안 죽어?’

그리드는 다크버스의 정체를 몰랐다. 별 볼일 없는,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흑마법사로 인식하고 있었다.

평타 한두 방으로 해치울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의외로 튼튼하게 버티자 의문을 품은 그리드가 통찰력을 활용, 다크버스의 전투력을 확인했다.

‘2만?’

필드 보스 몬스터급의 전투력이다.

근데 왜 이렇게 약한 거지?

‘어쨌든 이번 퀘스트의 중간 보스인가본데.’

판단한 그리드가 실패작과 도플갱어의 대검을 승천시켰다.

아래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공격을 그대로 허용한 다크버스의 가슴에서 두 줄기 피가 솟구쳤다.

그의 머리 위까지 도달한 실패작과 도플갱어의 대검이 이번에는 아래로 벼락 같이 떨어졌다.

파그마의 검무, 극(極)이었다.

평타에 이어서 연계된 베기의 극의가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크아아아악!”

다크버스의 양쪽 어깨에 깊은 검흔이 아로새겨졌다.

그는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마나 실드가 무용지물이라니!’

직접 상대해보니 상상이상으로 강하다. 이대로는 죽는다. 앞에서 나대봤자 좋을 것 없다.

다크버스가 아스모펠의 등 뒤로 숨었다. 그리고 세뇌당한 채 인형처럼 서있는 아스모펠에게 그리드를 해치우라고 명령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말보다 그리드의 행동이 더 빨랐다.

“파(派).”

굽이굽이 물결치면서 날아간 검기가 다크버스의 주둥이에 작렬한다.

고통에 허우적거리는 그의 목덜미에 살(殺)이 꽂혔다.

푸욱!

[크리티컬!]

[실패작의 옵션 효과로 인하여 ‘절단’ 스킬이 발동합니다.]

[실패작의 옵션 효과로 인하여 ‘5연격’ 스킬이 발동합니다.]

털썩.

머리를 잃은 다크버스의 육체가 맥없이 고꾸라진다.

실로 허무한 최후였다.

“무슨 마법사가 이렇게 튼튼… 응?”

끈질긴 생명력에 혀를 차던 그리드가 당황했다. 그의 눈앞으로 대량의 알림창이 떠오르고 있었다.

[세상을 혼란으로 물들였던 야탄 신의 일곱 번째 종, 다크버스를 해치웠습니다!]

[야탄교의 음모를 저지하여 사하란 제국을 위기로부터 구원했습니다!]

[대륙 전역에 명성이 +3,000 상승합니다.]

[현재 당신의 대륙 전역 명성 수치는 28,110입니다. 명성 수치가 3만 이상일 때부터 명성 상점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칭호 ‘은밀한 영웅’을 획득하였습니다.]

[칭호 ‘야탄의 종 학살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축복받은 무기 강화석 3개를 획득하였습니다.]

[축복받은 방어구 강화석 7개를 획득하였습니다.]

[최상급 마석 3개를 획득하였습니다.]

[다크버스의 귀걸이를 획득하였습니다.]

[다크버스의 반지를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 88,052,440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그리드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야탄의 종이었다고?

이 허접한 놈이?

서서히 잿빛으로 산화해가는 다크버스의 시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그리드에게 세뇌로부터 해방 된 아스모펠이 다가왔다.

“간악한 야탄의 종에게 징벌을 내린 영웅이여. 나의 구원자여… 혹시 내 억울한 사연을 들어줄 수 있겠소?”

[<적기사단의 진정한 배신자 처단(SS)>퀘스트가 <숨겨진 이야기(히든)>퀘스트로 변경됩니다.]

이건 또 무슨 상황?

“???”

그리드의 머리 위로 의문부호가 떠나질 않았다.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아스모펠이 말해나갔다.

“어느 날 황비 마리가 나를 찾아왔소.”

길고 긴 이야기였다.

아스모펠은 자신에게 마리가 어떤 식으로 접근하였고, 또 어떤 식으로 피아로와 이간질시켰는지 상세히 설명했다.

야탄의 정수.

단 한 방울만으로도 인간의 정신력을 극도로 약화시키고 마나를 탁하게 만드는 그 혼돈의 물을 복용하게 된 경위 또한 소상히 밝혔다.

다크버스에게 세뇌 당하여 완전한 꼭두각시가 되었던 과정을 이야기할 때는 치를 떨었고, 좋을 대로 이용당하다가 종국에는 피아로와 동료들을 해치게 된 이야기를 할 때는 눈물지었다.

“언젠가… 언젠가 피아로라는 사내를 우연히라도 만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 부디 전해주시오. 미안하다고. 정녕 미안하다고.”

검을 뽑은 아스모펠이 스스로의 목을 겨누었다.

앙상하게 마른 손에 쥐어진 검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였다. 아스모펠의 목에 그대로 쑤셔졌다.

아스모펠은 죽음으로서 조금이나마 속죄할 심산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죽을 수 없었다.

검이 목에 깊숙이 박히기 전, 그리드가 그를 제지하였기에.

그리드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남에게 떠넘기지 말고 직접 사죄하도록.”

그리드가 처음으로 획득한 히든 퀘스트, <숨겨진 이야기>의 클리어 조건은 피아로와 아스모펠의 재회였다.

과거, 제국을 떠받칠 기둥이 되리라 칭송받았던 인재들이 레이단의 기둥으로 거듭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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