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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63화 (58/1,794)

템빨 13권 - 10화

수에론이 흠칫 놀랐다.

유일하게 잠자코 있기에 만만히 보았던 농부가 겁먹기는커녕…

‘웃어?’

저 여유는 뭐지?

‘설마!’

역시 저놈마저도 네임드 NPC인가!

“멈춰라!”

불길함을 감지한 수에론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선봉 3명이 웃고 있는 농부에게 근접하여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까가가강!

전장이 채 40센티미터가 안 되는 작은 낫.

농부는 벼 베기에나 용이해 보이는 그 낫을 단 1회 휘두름으로서 3방향에서 날아온 공격을 모조리 차단했다.

상대가 어떤 곳을 노리고 공격해올지 미리 예측하고, 쉽게 대응할 방법을 찰나지간에 강구하여 대응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골든 길드원들은 당혹스러웠다. 머릿속을 빤히 읽힌 기분이었다.

쩌엉!

농부가 낫과 맞물려 있는 세 자루 검을 밀쳐냈다. 그러자 검의 주인들은 두 팔을 허공으로 띄우며 고스란히 허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3명의 힘을 압도하는가?

아니, 그 정도는 아니다.

이건 단지 요령이었다. 적이 본래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끔 억제시키면서 자신의 힘은 극대화시키는.

‘이게 말이 돼?’

골든 길드원들은 혼란스러웠다.

마치 농부님 손바닥… 아니,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심정이었다.

농부가 그들을 공격했다.

푹!

“크아아악!”

갑옷의 틈새를 정확히 비집고 들어온 낫이 골든 길드원들의 속살을 헤집어 놓았다. 하지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호미로 일격, 이격에 적들을 격살하는 피아로와 비교하면 조족지혈의 공격력이다.

“내 실력으로는 안 되네.”

고소를 머금은 농부 크라우젤이 낫을 버렸다. 그리고 은빛으로 번뜩이는 곡도를 뽑아 쥐더니 골든 길드원들의 목을 썰었다.

적에게는 일말의 자비조차 없는 크라우젤의 단호한 성향이 여실하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죽어가는 골든 길드원들이 수에론을 원망하였다.

‘구멍이라며…’

‘마스터 니 눈엔 저게 구멍이냐… 염병…’

“미친!”

부하 3명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자 격분한 수에론이 욕설을 뱉었다.

그는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 동네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무슨 농부 따위가 죄다 저렇게 강한 거지?

답답해서 환장하겠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다.

이성 상실 직전의 그가 연신 욕설을 지껄이며 소리쳤다.

“썩을! 농부가 이 정도면 뭐! 병사들은 죄다 드래곤 슬레이어라도 되냐! 이런 염병! 이게 말이 되냐고!”

그리드 그 빌어먹을 새끼는 당최 어떤 요술을 부렸기에 저런 인재들을 끌어 모을 수 있었는가! 그리고 왜 농부로 활용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이해할 수 없으니 돌아버리겠다. 속 터져서 돌아가시겠다.

붉게 충혈 된 눈으로 몸서리치는 그에게 농부가 제안했다.

“부하들을 내보내봤자 피해만 늘어날 텐데. 대장이 직접 나서는 편이 좋지 않겠어?”

맞는 말이다. 조금 전 선봉 3명의 레벨은 230대였다. 길드 평균 레벨보다 높았다. 그들을 일거에 해치운 놈을 상대로 부하들을 투입했다가는 막대한 손실이 생겼다.

그렇다고 후퇴한다?

안 될 소리다. 부하들의 원수를 눈앞에 두고 마스터가 등을 보였다가는 위엄과 충심을 잃는다.

내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나라면 저 농부를 쓰러뜨릴 자신이 있다.

피아로라는 괴물보다는 저 농부가 확실히 약했으니까.

수에론이 제안에 응했다.

“오냐, 내 친히 네놈을 죽여주마.”

우선 그 밀짚모자부터 벗겨주겠다. 그리고 네놈의 죽어가는 낯짝을 감상해주마!

결심한 수에론이 사망한 길드원들의 영혼을 <영혼 착취>로 채취, 그를 매개로 <영혼 화살>을 소환하였다.

퍼퍼펑!

3개의 영혼 화살이 녹색 빛을 수놓으며 쏘아졌다. 가공할 속도였다.

하지만 신궁 지슈카의 속사에는 미치지 못했다. 크라우젤을 위협할 수준은 못 된다는 뜻이다.

크라우젤이 고개만 슬쩍 움직여 화살을 회피했다.

수에론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영혼 폭발!”

콰콰콰콰콰콰쾅!

크라우젤을 허망하게 지나치는가 싶던 3개의 영혼 화살이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시전자의 공격력과 마력 수치에 비례하여 피해를 입히는 유니크 스킬이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수에론은 농부가 넝마가 되었으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폭발의 여파로 발생한 연기를 해치고 등장한 농부는 경미한 피해만을 입고 있었을 뿐이다.

눈을 부릅뜨는 수에론에게 농부가 조언했다.

“스킬 연계가 늦다. 그래서야 반응하기 쉽지. 보다 빠르게 연계할 수 있도록 연습하면 좋겠는데?”

“헛소리!”

딜레이 있는 스킬들의 연계를 이 이상 빠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도 충분히 빠르다. 그리고 타이밍도 완벽했다. 다른 놈 같았으면 방금 이 콤보에 죽었다.

‘멀쩡한 네가 이상한 거다!’

그 말을 간신히 삼킨 수에론이 소리쳤다.

“네가 뭔데 나를 가르치려 드는 거냐!”

수에론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가 인벤토리로부터 무기를 소환했다.

<흉악한 총명검>

길드원들과 함께 바스코의 미궁을 최초로 클리어하고 획득한 무기.

착용자의 근력과 지력을 동시에 올려주는 레전드리 한손 검이다.

모든 스킬이 공격력과 마력의 영향을 받는 영혼 약탈자와 궁합이 무척이나 훌륭하다.

수에론이 그 검을 힘껏 휘둘렀다. 크라우젤이 백아도로 방어했다.

까앙!

두 사람의 무기가 맞부딪치며 불똥이 튀어 올랐다.

채챙! 채채채채챙!

두 사람은 지상과 허공을 오가며 13합을 쉬지 않고 겨루었다. 수에론의 망토와 크라우젤의 밀짚모자가 몇 회나 교차하며 현란한 전투가 연출됐다.

크라우젤의 눈에 이채가 깃들어 있었다.

‘검술에 소양이 있고 소드 마스터리 레벨도 높군.’

영혼 약탈자.

스킬 트리를 보고 마법사 계열에 가깝다고 판단했는데, 도리어 검사 계열에 더 가깝다.

수에론은 자신의 애병을 <영혼 전이>로 강화키고 있었다.

쩌엉!

강화 된 공격력이 수에론의 기세를 상승시켰다. 검격이 이전과 비할 바 없이 무거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라우젤을 압도하지는 못했다.

크라우젤은 유능제강의 이치를 깨우치고 있었다. 물처럼 움직여 강격을 흘리고 역으로 제압했다.

“이익!”

싸움이 뜻대로 전개되지를 않자 수에론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전투 중에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최대한 냉정하고자 노력했다.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의 갈등.

찰나의 시간 속에 간신히 이성이 승리한다.

뒤틀리던 수에론의 검로가 평온을 되찾았다.

“내가 이긴다! 영혼 약탈!”

<영혼 약탈>

살아있는 대상의 영혼 일부를 빼앗는다. 영혼을 빼앗긴 상대는 일정 시간 동안 신체를 제어하기 어려워지며 지속적인 피해를 입는다.

‘좋은 스킬이다.’

감탄하고 있는 크라우젤의 어깨에 흉악의 총명검이 깊숙이 꽂혔다. 본래는 심장을 노렸던 일격이나 크라우젤이 피해를 최소화한 것이다.

‘영혼을 빼앗기고도 이 정도 움직임이라니!’

상대할수록 더 강하게 느껴지는 농부다.

수에론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나야말로 지존이라고 믿었는데…!’

영혼 약탈자는 유용한 전투 스킬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는 전투 특화 클래스다.

천외천 크라우젤과 또라이 아그너스는 워낙에 대외활동을 안 하니 논외로 치고, 현재 대세인 템빨단과 그리드를 비교 대상으로 둘 경우 수에론은 자신이 최강이라 확신했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까 아직 멀었다. 고작 NPC들에게 발목을 붙잡히다니 한심하다.

어쩌면 나는 내 생각보다 약한 게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한동안 레벨 업에만 집중해야겠어.’

수에론이 결심하는 그때,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고 있던 크라우젤은 점차 희열에 휩싸이고 있었다.

‘소문 이상.’

크라우젤은 영혼 약탈자라는 클래스와 수에론의 검술 실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가 실제로 만났던 유저 중 수에론이 가장 강하다고 단언할 정도였다.

‘즐겁다.’

본래 크라우젤은 PvP에 별 흥미가 없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모험, 사냥, 레이드였다.

하지만 피아로와 함께 생활하면서 성향이 조금씩 변했다.

강자와의 전투가 재밌어졌다. PvP에는 레이드와는 색다른 묘미가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검성의 경지와 가까이 연결되어 있다.

내년 국가대항전에는 참가하는 것이 좋을 지도.

“큭큭큭.”

‘저게 돌았나?’

수에론은 피를 철철 흘리는 주제에 웃기 시작하는 농부가 미친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크라우젤이 저벅저벅 다가갔다.

천외천.

하늘 밖의 하늘.

무한의 경지를 뜻하는 그 광오한 칭호의 주인이 흥에 겨워 진정한 실력을 뽐낸다.

“월하 검.”

“……!”

이 순간.

수에론은 깨달았다.

눈앞의 농부 놈, 여태까지 스킬을 아예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스슥. 스스스슥.

검게 물든 밤하늘에는 2개의 달이 떠올라 있었다.

점차 가속화되는 크라우젤의 신형이 달빛 아래 설 때마다 은신 기능을 부여받았다.

수에론은 중간중간 사라지는 크라우젤의 기척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집중해야만 했다.

하지만 검호 피아로조차도 감지하지 못했던 기척을 그가 무슨 수로 감지하겠는가?

크라우젤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기겁한 수에론이 앞서 회수해놓았던 스네이크 길드원들의 영혼 중 5개를 소모, <영혼 갑옷>을 전개했다.

파앗!

녹색의 투명한 갑옷이 만들어지더니 수에론의 갑옷 위로 덧씌워졌다. 이를 악 문 수에론이 닥쳐올 공격에 대비했다.

쩌저저저저정!

“크…학!”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쇄도해온 검격이 수에론을 강하게 압박했다. 영혼 갑옷이 아니었으면 치명상을 입었을 터.

간신히 공세를 버틴 수에론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영혼 갑옷이 소멸하다니!’

영혼 갑옷Lv.2가 흡수하는 피해량은 무려 17,300이다.

그걸 스킬 한 방으로 파괴한 것으로 모자라 내게 상처를 입혔다.

‘괴물 새끼!’

동요하며 휘청거리는 수에론의 시야에 불쑥 밀짚모자가 나타났다.

모자 아래 번뜩이는 흑안은 수에론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두더지 승천.”

파앗!

하단에서부터 백광도가 솟구쳐 올랐다. 반응하지 못하고 크게 베인 수에론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영혼 약탈자로 전직한 이래 무력감을 느껴본 적이 있던가?

단연코 없다. 지금이 처음이다.

“제…길! 네놈은! 네놈은 도대체 뭐냐!”

피를 토하며 질문하는 수에론에게 크라우젤은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문득, 피아로의 자기소개를 떠올리더니 참고해서 대답했다.

“레이단의 기간제 농부다.”

“기간제…!”

하도 당당하게 말해서 검제, 도제, 마제와 같은 개념의 칭호인 줄 알았다.

“그냥 농부잖아!”

버럭 따지고 드는 수에론에게 크라우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어쨌든 농부다.”

사실이다. 앞으로 2주 동안 크라우젤은 일개 농부에 불과했다.

실제로 다른 농부들과 마찬가지로 삼시세끼와 새참을 제공 받았다. 단기 계약이라서 그런지 숙박도 제공 된다. 다만 녹봉이 없을 뿐이다.

“빌어먹을!”

농담 따먹기에 싫증을 느낀 수에론이 영혼 11개를 매개로 <영혼 감옥>을 생성, 크라우젤을 구속시켰다.

280레벨의 보스 몬스터조차 5초 이상 가둬두었던 최강의 속박 스킬이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맛봐라.”

수에론이 모든 마나와 영혼을 쥐어짜 영혼 창 39개를 생성시켰다. 그리고 감옥에 갇혀 있는 농부를 향해 그것을 발사했다. 이제 영혼 폭발이 연계되면서 농부는 고깃조각으로 흩어질 운명이었다.

한데 그때.

“백광 검.”

크라우젤의 백아도가 강렬한 빛을 발산했다. 일대의 어둠을 순식간에 잠식시킬 정도로 휘황찬란한 빛이었다.

“큭!”

마치 섬광탄이라도 맞은 듯하다. 수에론은 도무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명이 뇌리를 흔들어 영혼 창을 제어하기도 어려웠다.

은밀하게 움직여 수에론을 도우려 했던 골든 길드원 200여 명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제자리에 멈춰서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한발 물러난 채 전투를 지켜보던 하오와 하데스 길드원들 또한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백광이 사그라지고 모두가 눈을 떴을 때 수에론은 죽어가고 있었다.

농부의 곡도에 심장이 꿰뚫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잿빛으로 산화했다.

“도망쳐.”

하오의 판단은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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