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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59화 (54/1,794)

템빨 13권 - 6화

템빨 단원들에게 누구를 가장 신뢰하느냐고 질문한다면, 그들은 일고의 고민도 없이 대답할 것이다.

페이커.

그림자 속 그의 시선은 동료들이 보지 못하는 곳을 살피며, 그의 칼끝은 동료들의 해악을 멸한다.

그가 과묵한 이유는 신중하기 위함이고, 그의 발언은 현실이 된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죽는다.”

전투 개시 후 5분.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페이커가 단언했다.

봉드레의 얼굴에 무시무시한 노기가 서렸다.

“페이커, 네 이놈!”

고작 5분이다.

화장실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오는 시간. 딱 그 정도다.

한데 그 짧은 시간 동안 11명의 동료가 사망하고 말았다.

디스펠 기능이 내장 된 단도의 폭우는 마법사들의 실드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우리가 이곳을 경유하리란 사실을 어떻게 예측하고 기습한 거지? 아니, 애초에! 우리가 레이단을 침공하려한다는 사실을 어찌 안 것이냐! 스파이라도 심어둔 거냐!”

스파이?

그런 것을 따로 둘 정도로 레이단의 인력은 풍부하지 않다.

단지 우연의 일치였다.

난민들을 이송하는 과정에서 제국의 시선을 피해야만 했던 페이커.

그는 부득이하게 이 협소한 가시덩굴 숲을 이동 경로로 선택했고, 아이스 플라워 길드와 마주쳤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모든 상황을 봉드레에게 설명해줄 필요는?

없다.

페이커가 묵묵부답하자 봉드레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빌어먹을 살인귀 새끼가!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거냐!”

콰차차차차착!!

여섯 개의 얼음 기둥이 지하에서부터 솟구쳐 올랐다.

조금 전, 숲을 완전히 초토화시킴으로서 페이커가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던 S급 마법.

그것과 동급의 마법이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피어오르는 냉기 속의 봉드레가 서늘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건 그리드를 죽이기 위해서 준비한 마법 중 하나다. 과연 네놈이 버틸 수 있을까?”

빙룡의 격노.

S급 대단위 마법이다.

용처럼 거대한 여섯 개의 얼음 기둥이 소용돌이치며 일대를 초토화시킨다.

“레이단을 짓밟기 전에 네놈부터 죽여주마!”

쿠콰콰콰콰콰쾅!

여섯 개의 얼음 기둥이 전방위에서부터 페이커를 습격했다.

위력, 속도, 범위.

어느 것 하나 부족한 점이 없다. 이 마법의 단점은 대량의 마나를 소모한다는 것이지만, 랭킹 1위 마법사의 마나를 고갈시킬 정도는 아니다.

‘엄폐물이 사라진 이상 네놈도 어쩔 수 없겠지! 이참에 렙따나 해라! 통합 랭킹 11위는 원래 내 자리였다고!’

봉드레는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대단위 마법이라면 어쌔신의 신속을 무력화시킬 수 있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예 피할 틈을 주지 않으면 된다.

단일 마법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공격력?

상관없다.

어쌔신 또한 마법사만큼이나 생명력이 낮으니까.

일단 마법을 한번만 적중시키면, 그 후에는 일사천리로…

“응?”

자신감을 표출하던 봉드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믿지 못했다.

좌로.

콰작!

우로.

콰자작!

다시 좌로.

콰쾅!

이번엔 위로.

마치 믹서기 속 톱날처럼 맹렬하게 회전하는 여섯 개의 얼음 기둥을, 페이커는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회피하고 있었다.

주변에 생성 된 냉기가 속도 저하를 유발하고 있을 텐데도 저 정도라니?

‘도대체 저놈의 민첩성은 얼마나 높은 거지?’

사실 민첩성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제아무리 민첩성이 높아서 빠를지언정 그것을 완벽히 제어하지 못한다면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니까.

하지만 페이커는 상식을 아득히 초월하는 속도를 완벽하게 제어하고 있었다. 아니, 저건 제어의 수준이 아니라 지배다.

‘신컨…!’

신의 컨트롤.

그 광오한 수식어는 오로지 크라우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봉드레가 경악하는 그때 페이커는 그리드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네가 제작한 아이템은 언제나 나를 감탄시킨다.’

풍신의 가죽갑옷.

페이커가 구해온 도안을 토대로 그리드가 제작한 갑옷이다.

본래 이 갑옷은 착용자의 민첩성을 6퍼센트, 모든 속도를 12퍼센트 상승시켜준다.

하지만 그리드가 제작하자 민첩성이 8퍼센트, 모든 속도가 15퍼센트까지 치솟았다.

스슥. 스스스슥.

잔상이 늘어간다.

3차 어쌔신 클래스 중 하나인 <신속의 주인>.

Satisfy에 존재하는 모든 클래스를 통틀어서 가장 높은 컨트롤 실력을 요구하는 그 고난이도 클래스가 지금, 페이커라는 실력자와 그리드의 아이템을 만나 200퍼센트 이상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여섯 개의 기둥은 차츰 기세를 잃어가는 반면 페이커의 속도는 도리어 더 빨라졌다.

보고 있노라면 시야가 어지러워 현기증이 발생할 지경이다.

페이커의 움직임을 제약하기 위해서 길드원들이 마법 캐스팅을 시도했으나.

푹!“제길!”

단도가 날아와 캐스팅을 끊어버린다.

일정한 패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그 일대를 완전히 장악해버리는 대단위 마법을 회피하면서 동시에 마법 캐스팅을 견제한다고?

‘사기잖아!’

이상하다. 실력이 소문 이상이다.

‘본래 소문은 과장되는 법인데, 저 자식은 왜 반대지?’

마침 빙룡의 격노의 지속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봉드레가 다급히 외쳤다.

“오브 마법을 사용해라!”

오브에 저장시켜놓은 마법은 캐스팅 없이 소환할 수 있다. 하지만 마법사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것을 꺼려했다. 최후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최후의 수단을 사용해야할 때였다.

퍼펑! 퍼퍼퍼펑!

콰직! 콰지지직!

온갖 속성의 마법들이 즉시 발동하며 페이커를 덮쳤다.

날 듯이 뛰어다니며 얼음 기둥을 피해 다니던 페이커의 몸 위로 마법이 작렬, 작렬, 또 작렬했다.

“됐다! 해치웠다!”

아니, 오해다.

그들의 마법이 적중시킨 대상은 페이커의 본체가 아닌 잔상이었다. 페이커의 상태는 비교적 멀쩡했다.

“이런 썩을!”

경미한 피해만을 입은 페이커를 보고 이를 간 봉드레.

그가 <더블 캐스팅>을 발동, 2개의 마법을 동시에 시전했다.

쿠웅!

페이커의 활동 반경을 얼음 장벽으로 최소화시킨 후,

쩌적! 쩌저저적!

얼음 거미줄을 펼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게끔 만든다.

그 틈에 다른 길드원들이 일제히 공격 마법을 캐스팅했다.

‘이러면 네놈이 어쩔 건데?’

<신속의 주인>에게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그림자의 주인>처럼 그림자를 통로로 이동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방어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다.

믿는 구석이라고는 오로지 속도뿐이니, 속도를 억제할 수만 있다면 무력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퍼엉!

페이커가 연막탄을 터뜨렸다.

자욱하게 깔리는 연막 탓에 봉드레와 마법사들은 페이커의 모습을 포착할 수 없게 됐다.

봉드레가 비웃었다.

“크하하하하! 녀석! 얼음 거미줄에 옥죄어져 어찌할 수가 없으니 발악하는구나!”

마법사들이 바람 속성의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돌풍이 휘몰아치면서 연막을 헤집어놓았고, 얼음 거미줄에 옥죄어진 페이커는 그 볼썽사나운 모습을 고스란히 노출…

“…시켜야하는데 어디로 갔냐?”

봉드레와 마법사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엄폐물이 없는 평지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추다니?

‘하이드!’

땅굴을 파서 숨은 것이 분명하다.

‘구차하게 굴기는!’

봉드레가 감지 마법을 사용했다.

“…어?”

봉드레의 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감지 마법이 페이커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는데, 그 위치라는 것이 내 등 뒤다.

스윽.

날카로운 단도가 석상처럼 굳어 서있는 봉드레의 목덜미에 드리웠다.

그와 동시에 백색의 후드짚업을 걸치고 있는 페이커의 모습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투명 망토…!”

이 순간.

아이스 플라워 길드원들은 상기할 수 있었다.

페이커는 템빨단 소속이다.

즉, 이 괴물은 템빨까지 갖추고 있다는 뜻이 된다.

“씨불.”

욕설을 지껄이는 봉드레의 목에 단도가 꽂혔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투명하게 반짝이고 있는 빙결의 거미줄 위로 붉은 꽃이 피었다.

***

버니버니.

그는 한때 세계 최고의 게임 BJ였다.

그의 방송을 실시간으로 시청하는 사람의 숫자가 평균 15만 명에 육박했었다.

하지만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현재 버니버니 방송의 평균 시청자수는 3만 명까지 떨어졌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최고 시청자수를 갱신하고, 그를 통해 홍보 효과를 누리는 수밖에 없을 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새로운 방송 소재가 필요했다. 보다 자극적인 소재가.

버니버니는 인맥과 자금을 총동원하여 소재를 찾아 나섰고, 그 결과 7대 길드가 연합하여 레이단을 침공하려한다는 최고급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좋아. 화질 좋고, 각도 좋고.”

요새도시 파트리안.

이제 이곳만 지나면 에트날 왕국 서부다.

동영상 녹화 기능을 활성화시키고 있는 버니버니의 시야에 야크 길드와 제라프 길드의 모습이 잡혔다.

7대 길드에 속하는 그 2개 길드의 총원은 약 200명.

주변에 혹시 사람이 없는지 살핀 버니버니가 속삭이듯 상황을 중계했다.

“여러분 보이십니까? 죄다 복면을 쓰고 있어서 아이디는 확인되지 않지만, 특징들을 고려해보면 저들은 야크 길드와 제라프 길드가 확실합니다. 제가 입수한 정보가 사실이었던 겁니다.”

버니버니는 조심스러웠다.

“오오, 두 길드가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혹시라도 들키지 않도록 멀리서 뒤따라가겠습니다.”

혹시라도 발각되었다가는 엿 된다.

7대 길드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연합하여 레이단을 침공하는 일이 세간에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을 테니까.

왜냐?

쪽팔리잖은가.

Satisfy를 대표하는 7개의 길드가 고작 1개의 도시를 침공하기 위해서 힘을 합쳤다는 사실이.

“야크 길드의 마스터 부바트는 얼굴을 가리고 있어도 누군지 딱 티가 나는군요. 워낙에 몸집이 황소처럼 크니까. 응? 저건 무슨 상황이죠?”

적정거리를 유지한 채 두 길드의 뒤를 따르던 버니버니가 멈춰 섰다.

수십 명의 기사들이 두 길드의 행군을 저지하고 있었다.

“와, 뭐지? 기사들이 야크 길드와 제라프 길드를 왜 멈춰 세운 걸까요? 열라 궁금한데? 그쵸? 이건 가까이 가서 찍어야할 각이죠? 좋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궁금증을 해소시켜드리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거리를 좁혀보겠습니다.”

버니버니는 209레벨의 어쌔신이다. 그가 은신하고 접근하여 엄폐물 뒤로 몸을 숨기자 두 길드의 길드원들은 그를 감지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들은 눈앞의 기사들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상태였다.

“당신들 뭐야? 왜 길을 막는 건데?”

“이게 무슨 횡포냐고! 앙?!”

길드원들이 기사들에게 따지고 들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그들은 성문을 철벽처럼 가로막고 선 채 길드원들을 정체시켰다.

결국 참지 못한 부바트가 직접 나섰다.

“우리가 성문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이유가 뭐냐? 합당한 이유를 대지 않는다면 무력으로라도 돌파하겠다.”

그때였다.

“그대에게는 질문할 권리가 없다.”

여심을 사로잡기에 손색이 없는 미형의 중년인이 백색 로브를 펄럭이며 등장했다.

그의 머리 위로 떠올라 있는 이름은 아슈르.

이 도시의 주인이다.

‘아슈르 백작…!’

아슈르 백작이라고 하면 대륙 전체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대마법사다.

그만한 거물이 어째서 우리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며 우리의 앞길을 가로 막는 것인가?

의문을 품고 경계하는 길드원들에게 아슈르 백작이 질문했다.

“그대들이 서부로 향하려는 이유가 뭔가?”

“질문에 답해야할 이유가 없을 듯한데.”

“이유?”

아슈르 백작이 콧방귀 뀌었다. 그리고 압도적인 마력을 전개하였다.

“억…!”

길드원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강인한 마력이 몸을 짓누르자 마치 철근을 등에 얹은 듯한 기분이다.

아슈르 백작의 금색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그대들이 내 질문에 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굳이 이유를 논할 필요가 없다. 알겠는가?”

“크윽…! 당신 도대체 뭐야!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건데!”

황당할 따름이다.

부바트는 현재 상황이 도무지 납득이 안 됐다.

언성을 높이는 그에게 아슈르 백작이 다시금 질문했다. 아니, 명령했다.

“서부로 향하는 이유가 뭔지 답하라.”

파트리안 전역에 설치되어 있는 마법구는 아슈르 백작의 눈과 귀였다.

그를 통해서 이들이 레이단을 침공하려한다는 사실을 아슈르 백작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직접 답을 들으려하는 이유는 일종의 유희였다.

부바트가 거짓을 고했다.

“우리는 단지 사냥을 위해서…!”

“사냥? 큭큭,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라니. 과거의 어떤 빌어먹을 자식이 떠오르는군.”

레이단에는 내 소중한 아들이 볼모로 잡혀있다. 아들에게 혹 해를 입힐지 모를 이 녀석들을 아슈르 백작은 순순히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선택권을 주마. 방향을 돌려서 물러나던지, 아니면 내 도시에서 뼈를 묻던지.”

채채채채채채챙!

수십 명의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쥐었고, 성벽 위의 병사들은 활시위를 당겼다.

그들을 등지고 선 아슈르 백작의 낯짝은 오만하기가 짝이 없었다.

숨은 채 상황을 녹화하고 있던 버니버니는 희열에 휩싸였다.

‘정황상 아슈르 백작은 그리드 공작의 측근 같은데?’

대륙 10대 마법사 중 하나가 유저에게 충성하다니!

이는 특종 중의 특종이었다.

지금 이 장면만 방송하더라도 많은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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