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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56화 (51/1,794)

템빨 13권 - 3화

“나와라!”

허겁지겁 대전으로 달려온 지브라 백작이 소리쳤다. 그러자 9명의 어쌔신이 기척도 없이 나타났다.

지브라 백작이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검은 화살단이었다.

대대로 지브라 백작의 가문을 섬겨온 이들의 암살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목표물 암살에 실패한 역사가 없다.

지브라 백작이 명령했다.

“조금 전 그놈을 쫓아가 죽여라! 그리고 흑수정 귀걸이를 되찾아와!”

“예.”

어쌔신들이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바로 앞에서 그들을 마주하고 있던 지브라 백작조차도 그들이 언제 사라졌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 훌륭한 솜씨에 신뢰감을 느낀 지브라 백작은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제아무리 괴물처럼 강한 놈일지라도.’

쥐도 새도 모르게 기습을 감행하는 어쌔신들을 홀로 무슨 수로 감당하겠는가?

괘씸한 놈이 억울해하며 죽을 모습을 상상한 지브라 백작은 무척이나 흡족해졌다.

그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술잔을 기울이는 그때였다.

“냐옹.”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대전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왔다.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녀석은 윤기가 반들반들 흐르는 검정색 털을 가지고 있었다. 네발과 꼬리의 끝부분만 눈처럼 하얀 것이 도드라졌다.

‘귀, 귀엽다!’

고양이의 바둑알 같은 눈동자를 목도한 지브라 백작의 얼굴이 상기됐다.

같은 인간조차도 한낱 가축으로 여기는 미친놈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고양이의 매력은 절대적이었다.

현혹당한 지브라 백작은 순간 멍해졌다. 저 고양이를 일평생 곁에 두고 기르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간신히 정신을 바로잡은 지브라 백작이 버럭 성을 냈다.

“경비병들은 뭘 하고 있느냐! 도대체 얼마나 경비를 허술하게 섰으면 한낱 짐승의 출입을 허할 수 있는 거지? 다 죽고 싶냐!”

“죄, 죄송합니다!”

소란을 듣고 달려온 병사들은 귀신에 홀린 심정이었다.

우리들은 분명히 철통같은 경비를 서고 있었다. 개미 한 마리의 출입도 불가능하게끔 완벽한 경비였다. 한데 저 고양이는 어찌 대전 안으로 숨어들어올 수 있었단 말인가?

“거기 서지 못해!”

고양이를 내쫓기 위해서 병사들이 동분서주 애썼다.

하지만 고양이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주제에 무척이나 날렵했다. 대전을 제집 안방마냥 뛰어다니면서 병사들을 가뿐하게 따돌리더니 껑충 도약했다.

“헉?”

지브라 백작과 병사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양이의 등 뒤에 자그마한 날개가 파닥거리고 있음을 목격한 것이다. 가까이서 보니 이마에는 자그마한 뿔도 솟아있었다.

“모, 몬스터…!”

뒤늦게 고양이의 정체를 파악한 지브라 백작이 황망하게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그의 둔한 손놀림으로는 민첩한 고양이의 돌진을 저지할 수 없었다.

“키야아옹!”

파팟! 파파파파팟!

고양이의 짧은 앞발이 전광석화 같이 휘둘러졌다.

지브라 백작은 끔찍한 고통에 지배당했다. 얼굴이 날붙이에 베이고 불에 타들어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크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대전에 울려 퍼진다.

지브라 백작의 넙대대한 얼굴은 마치 난도질한 것처럼 피투성이였다.

“히, 히익.”

병사들이 겁에 질렸다.

몬스터의 출입을 막지 못한 우리들에게 백작의 분노가 돌아올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끔찍하게 고문당한 뒤 살해당할 거야!’

‘이, 이걸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눈빛으로 대화를 나눈 병사들이 창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 온갖 욕설을 지껄이며 고통에 떠는 지브라 백작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네, 네놈들 설마…!”

고귀한 혈통을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고통과는 먼 인생을 살아왔던 지브라 백작.

그는 생전 처음으로 큰 상처를 입게 된 이날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그것도 부하들의 손에 의해서.

“감히 주인을 해하려들다니! 하극상은 중죄 중의 중죄임을 모르느냐! 네놈들의 혈육 모두 사지가 절단되어 죽게 될 것이다!”

지브라 백작이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협박이 통하지 않았다. 병사들의 서슬이 퍼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지브라 백작은 급히 태도를 바꿨다.

“지금이라도 창을 거두면 내 너희들을 용서하고 막대한 보상을 내리마! 그러니 부디 진정하라!”

애써 회유해보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우리가 당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것 같아? 당신이 사람들을 고문할 때마다 그들에게 살려주겠다는 거짓말을 수십 번도 더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를 것 같냐고!”

“우리는 처음부터 네놈을 혐오했다! 인간 백정새끼! 너 같은 놈은 차라리 뒈지는 게 나아!”

“네가 누명을 씌우고 죽인 여자애 중에는 내 친척도 있었다! 그 아이는 아직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었다고! 이 개자식아!”

억압되어 있던 분노가 표출되고 있었다.

어차피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병사들에게 물러설 곳은 없었다. 이를 악 물고 지브라 백작에게 마구 창을 찔러 넣었다.

푹! 푹푹푹푹!

“네, 네깟 놈들이…! 네깟 놈들이이! 크허억!”

악마보다도 잔인하고 악독했던 살인귀의 최후는 처참하고 허무했다.

“냥.”

모든 사태의 원흉인 고양이는 유유히 대전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

“이걸 노린 거야?”

외성벽 위.

<매의 눈>스킬을 사용하여 성내의 상황을 생중계한 키키의 질문이었다.

베라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나는 단지 도살귀의 뼈를 얻고 싶었을 뿐이야.”

에트날 왕국의 공작인 그리드가 지브라 백작령까지 행차한 이유를 베라딘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대강이나마 추측할 수는 있었다.

수많은 랭커들이 이곳을 찾게 만들었던 보스 몬스터, 도살귀.

어쩌면 그리드는 녀석을 레이드하기 위해서 이곳을 찾아온 것이 아닐까? 그렇게 예측하고 그리드의 존재를 굳이 지브라 백작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리드는 도살귀를 레이드했다.

여기까지는 기대한 대로다.

하지만 설마 지브라 백작을 살해할 줄은 몰랐다.

실제로 지브라 백작을 살해한 것은 병사들이었지만, 작금의 사태를 유발한 저 검은 고양이는 명백히 그리드의 펫이었다.

“의외로군.”

그리드는 자신과 관계없는 타국의 백성들을 위해서까지 행동하는 인물이었단 말인가?

베라딘의 입가로 묘한 미소가 감돌았다.

키키는 근심하고 있었다.

“어쩌지? 아무래도 난리가 나겠는데.”

대귀족이 살해당했으니 제국이 잠자코 있을 리 없다. 대대적으로 조사단을 꾸릴 것이며 당분간 분위기가 살벌하리라.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브라 백작의 아들은 아직 어리다. 게다가 미친 아버지를 보고 자란 탓에 정서적으로 불안했다. 쉽게 말해서 장애가 있었다.

영지 내의 다른 귀족들이 과연 그 부족한 소년에게 순순히 영주 자리를 내어줄지 의문이다. 피바람이 휘몰아치는 파벌 다툼이 예상됐다.

“베라딘? 무슨 생각을 그리해? 당장 그리드에 대해서 상부에 보고하는 편이 좋지 않겠어?”

“기각.”

“뭐?”

키키는 베라딘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드는 원수다. 우리 길드에 커다란 타격을 입힌 것은 물론이고 우리 길드의 본거지인 지브라 백작령까지 혼란에 빠뜨렸다.

그가 더 이상 멋대로 활개 치도록 놔두는 것은 어불성설이건만, 베라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베라딘이 계획을 설명했다.

“우리는 지브라 백작을 살해한 병사들을 체포하는 공을 세운다. 그리고 영향력을 키워서 지브라 백작의 아들을 영주로 만든다.”

하찮은 은원에 얽매여서야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단숨에 도약할 수 있는 기회야.”

베라딘은 이번 일을 계기로 훗날 지브라 백작령을 통째로 집어삼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나의 주인 아그너스에게 이 영지를 바치리라.

***

지브라 백작성 외곽.

그리드는 노에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야 친히 죽여주고 싶었지만.’

지브라 백작은 살려둬서는 안 될 악인이다.

수많은 모험을 하면서 온갖 군상들을 만나왔던 그리드조차도 그처럼 잔악한 인물은 처음 보았다.

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죽이기에는 위험요소가 너무 컸다.

제국의 수배범이 되었다가는 아슈모펠에게 접근하기가 어려워질 것이고 에트날 왕국의 입장이 난처해질 터였으니.

베라딘 또한 제국의 귀족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리드는 화이트 울프 길드도 굳이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베라딘의 실체를 몰랐고, 결과적으로 베라딘은 그리드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그리드는 착한 사람이야? 그래서 나쁜 사람은 혼내주는 거야?”

선악의 구분을 시작한 랜디의 질문이었다.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친구가 흡족하여 피식 웃은 그리드가 대답했다.

“나는 착하지 않다.”

그렇다. 그리드는 선인이 아니다. 동료들을 위해서라면 또 모를까, 생판 남을 위해서는 희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의 도리는 갖췄다.

지브라 백작이라는 미친 살인마에게 언제 도륙 당할지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외면할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만약 힘이 부족했다면,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서 외면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호구가 아니니까.’

누군가를 오직 나만이 도울 수 있다면 도와줄 의향이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게 피해가 없다는 가정 하에서의 이야기다.

그것이 진화한 그리드의 사고관이었다.

딱히 정의롭지 않다. 하지만 비난받을만한 정도가 아니며 딱 적당했다.

“그보다.”

그리드는 기척을 숨긴 채 접근해오는 불청객들의 존재를 감지하고 있었다.

1,400을 상회하는 통찰력 덕분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작 저깟 놈들을 보내다니, 지브라 놈이 사람을 무시하는군.”

그리드가 어쌔신의 실력을 판별하는 기준은 페이커다.

페이커보다 못한 어쌔신들. 즉, 이 세상 대부분의 어쌔신들을 그는 피라미로 인식하고 있었다.

오만이 아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실제로 그랬다.

은밀함과 신속함을 무기로 삼는 어쌔신들의 특성상 높은 통찰력과 비상식적인 방어력을 갖추고 있는 그리드에게 위협을 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최소 페이커 정도는 되어야 간담이 서늘하게끔 만들 수 있다.

스슥.

어쌔신들은 목표물에게 자신들의 기척이 감지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눈치였다.

계속해서 은밀하게 거리를 좁혀오더니 기습이랍시고 그리드의 목덜미에 단도를 쑤셔 넣었다.

그 순간.

채앵!

황금의 칼날이 날아와 어쌔신의 단도를 차단했다.

“재롱 떠는 거냐?”

“……!”

어쌔신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엄청나게 놀라고 있었다.

‘내 기습을 눈치 채고 있었다고? 그럴 리 없다.’

재차 단도를 찔러보지만 부질없었다.

푸욱!

“크아아악!”

도대체 누가 집어 던지는 것인지 모를 황금의 칼날이 또 다시 날아와 어쌔신의 미간에 꽂혔다.

그리드의 시야에는 알림창이 떠오르고 있었다.

[크리티컬!]

[대상에게 1,59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급소를 가격해서 크리티컬이 터졌는데도 이 정도인가.’

파브라늄은 최강의 광물이다.

만약 파브라늄으로 무기를 제작한다면 그 공격력은 실패작을 초월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파브라늄으로 제작한 칼날들은 온전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워낙 소량의 파브라늄으로 모양새만 갖춰서 만든 것들이었으니 공격력이 보잘 것 없었다.

‘마이너가 서부의 미궁들을 빨리 찾아내야하는데.’

파브라늄의 확보는 나의 템빨을 한층 더 강화해줄 터.

마이너의 책임이 막중하다.

그리드가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어쌔신들은 사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이놈에게 동료가 있다!’

성에 찾아왔을 당시 그리드는 분명히 혼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웬 소녀를 거느리고 있을뿐더러 호위병까지 숨겨두고 있었다.

어딘가에 숨은 채 황금 칼날을 자꾸만 투척하는 그의 호위병을 찾아내야만 했다.

하지만 기척을 감지하지 못하겠으니 낭패다.

그들이 재미있어서 웃고 있던 그리드가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위다.”

“…?”

그것은 찰나였다.

어쌔신들은 하늘을 올려보았고, 저 홀로 부유하는 황금의 칼날들을 목격하였다.

‘아티팩트!’

경악한 어쌔신들이 다시금 시선을 내려 그리드를 돌아봤을 때.

“컥…”

“으윽.”

동료 세 명이 푸른 대검에 꼬챙이처럼 꿰여 죽어가고 있었다.

“이게 무슨!”

황당한 경우란 말인가!

“사냥감이 되어본 적 있어?”

과거의 그리드와 현재의 그리드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적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는 점이다.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순순히 죽어라.”

얼굴의 절반만을 가리고 있는 철가면.

최초에 보았을 때는 울고 있는 것인가 싶었으나 지금 보니 웃고 있다.

어쌔신들은 태어난 이래 가장 큰 공포를 맛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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