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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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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이다! 대박이야!”
라인하르트 전쟁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 중인 각국의 방송국 국장과 PD들은 잔뜩 들떠 있었다.
그리드 일행이 골렘들을 해치우며 활약하면 활약할수록 시청률이 고공행진 하였으니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드는 명실상부한 스타다!’
랭킹 3위 크리스가 직접 이끈 7백 자이언트 길드를 무참히 박살냈던 골렘 군단을 고작 여섯 명이서 전멸 직전까지 몰아붙이다니, Satisfy 최강의 무력집단이라고 평가 받아온 체다카 길드를 상회하는 전투력이 아닐까 싶다.
과연 그리드는 전설다웠다.
대중 앞에 등장할 때마다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시청자들을 철저하게 대리만족 시켜주었으니, 그가 출연하는 방송마다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건 당연지사였다. 갓리드 찬양해라는 유행어를 창조할 만했다.
“이 상태로 노에까지 소환해준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방송국 PD들은 그리드 못지않게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노에가 슬슬 등장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귀여운 노에가 등장한다면 어린이와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공략해서 시청률이 더욱 더 상승할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한편 중계진은 입이 마르고 닳도록 그리드 일행을 극찬하고 있었다.
『웅변가의 버프와 디버프는 지속성이 아닌 단발성이라는 단점을 지닌 대신 효과가 극단적으로 뛰어나군요. 지금처럼 잘만 활용할 수 있다면 기존의 버퍼 클래스들보다 훨씬 더 활약할 수 있을 듯합니다. 재조명 받아 마땅한 클래스인 것 같군요.』
『재조명이요? 앵커께서는 웅변가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군요? 웅변가는 이미 진즉부터 상위 랭커들에게 귀족 대접을 받아온 클래스입니다. 다만 레벨 업이 워낙 힘든 클래스이기 때문에 찾아보기 어려웠을 뿐이죠.』
『그리고 웅변가의 장점은 버프와 디버프에만 있는 게 아니죠. 웅변가는 근본적으로 흡입력 있는 언변을 구사하는 클래스입니다. 정치적으로 쓸모가 많아요. 웅변가 랭킹 1위를 수하로 거느리고 있는 그리드를 보면서 질투하고 있을 상위 랭커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상상될 지경입니다.』
『라우엘은 과연 명불허전이군요. 기공사라는 클래스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요. 공격성을 고수하기보다는 서포터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그리드가 활약할 구도를 만들어주는군요.』
『사실 기공사는 서포터보다 후방 딜러에 적합한 클래스죠. 하지만 파티에 그리드가 있기 때문에 공격력은 이미 충분하니 역할군을 센스 있게 바꿔서 수행하고 있네요. 라우엘의 유연한 사고방식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압권은 유페미나라는 인물입니다. 모든 속성의 마법을 캐스팅도 없이 구사하다니? 히든 클래스임은 분명하고, 어쩌면 그리드 이상의 실력자가 아닐까 의심이 들 지경입니다. 혹시 레전드리 등급의 마법사가 아닐까요?』
『S급 마법을 거의 선보이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면 레전드리 등급의 마법사라고 추측하기에는 무리가 있죠. 유니크 등급의 마법사로 보는 게 더 타당합니다. 어쨌든 유라나 봉드레 이상의 실력자임은 확실하군요.』
『저는 루비라는 소녀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행색만 보면 완전히 초보자인데 어마어마한 힐량으로 동료들을 지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가끔씩 취향 독특한 사람들이 있죠. 사실은 엄청난 고렙이면서 일부러 초보자 행색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
『최근 레어 클래스 중에 스킨 제작자가 등장하지 않았습니까? 스킨 제작자는 아이템의 겉모습을 자유자재로 변경시킬 수 있다고 하던데요? 어쩌면 그녀가 지금 걸치고 있는 저 천 옷이 사실은 휘황찬란한 사제복일 수도 있습니다.』
『허접한 나무 지팡이가 사실은 유니크 등급의 무기라던가? 하하하, 어찌됐든 그리드는 알면 알수록 대단한 인물입니다. 쥬드라는 네임드 NPC에 이어서 웅변가 랭킹 1위와 기공사 랭킹 1위, 그리고 최강의 마법사와 사제를 동료로 두다니… 필시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임이 분명합니다.』
『백번 동감합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으니 저토록 뛰어난 인물들을 거느릴 수 있는 거겠죠. 평소에 그리드는 관대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며 지혜롭고 훌륭한 마성의 남자일 겁니다.』
그리드에 대한 세상의 오해가 깊어지는 가운데 그리드 일행은 여섯 번째 고대의 병기를 해치우고 있었다.
남아있는 고대의 병기 여섯 기는 박살난 고대의 병기들이 수집한 정보를 대가로 실시간 업그레이드 됐다.
[독설에 대한 내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합니다.]
[언어 이해력 기능을 삭제합니다.]
“꽤 힘드네, 이거.”
그리드의 표정에서 여유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고대의 병기 한 기를 해치울 때마다 남아있는 고대의 병기들은 눈에 띄게 강해지고 있었다.
그 탓에 최초에는 26,000대였던 녀석들의 전투력이 어느덧 32,000대까지 치솟아 올라있는 상태다. 각성한 숲의 수호자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여섯 번째 고대의 병기와 전투를 개시한 순간 그리드 일행은 좌절감과 직면했다.
“독설이 안 통하는군요.”
“기에 대한 내성도 올라서 제 스킬 효과가 제대로 적용되질 않습니다.”
“안티 매직 실드의 내구력도 상승했네요.”
“킁.”
그리드가 느끼기에 고대의 병기는 물리 방어력조차 상승한 상태였다.
그가 치를 떨었다.
“싸우면 싸울수록 성장하는 골렘이라니,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이런 괴물을 만든 거야?”
당장 몇 놈은 더 해치울 수 있을지 몰라도 최후에 남게 될 고대의 병기는 도대체 얼마나 강해질지 가늠조차하기 어려웠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어요. 퇴각하죠. 우리는 충분히 할 만큼 했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퇴각하면 결국 왕성은 붕괴될 겁니다. 기껏 획득한 왕국 공헌도가 무용지물이 될 공산이 커요.”
회의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드로서는 라우엘에게 의지하는 방법뿐이었다.
“해법은?”
“해법이야 간단하죠. 남아있는 여섯 기의 고대의 병기를 동시다발적으로 파괴하면 됩니다.”
“…”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드 혼자서 한 기의 고대의 병기를 해치울 수 있다고 가정해도, 나머지 일행들만의 힘으로는 한 기의 고대의 병기조차 감당하지 못했다.
불구경하듯이 전투를 감상하고 있는 저 10만 유저들이 모조리 힘을 합쳐준다면 또 모를까, 여섯 기의 고대의 병기를 동시에 처치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데 그때 눈치 빠른 스테임 백작이 직접 군대를 통솔하기 시작했다.
“저 대형 골렘들을 동시에 파괴하는 것만이 해답이다. 윈스톤 왕국군이여! 모두 힘을 합쳐서 내 사위를 도와 폐하와 왕성을 수호하는 거다!”
“우오오!”
전설급 용사가 사위인 점을 앞세워 스스로를 어필함과 동시에 군대의 사기를 상승시키는 스테임 백작!
노련한 그가 각 지역 최강의 기사들을 선두에 세워 군대를 재편성, 여섯 기의 고대의 병기를 향해서 일제히 군대를 진격시키려했다.
그리고 그의 투지가 고대의 병기들의 어그로를 끌고 말았다.
쩌어억!
일제히 아가리를 벌린 고대의 병기들이 마력 에너지를 발사, 스테임 백작을 집중 공격했다.
“장인어른!”
그리드는 <스테임 백작 구원>이라는 퀘스트를 수행 중이었다.
퀘스트 실패 시 발생하는 손해도 문제였지만 그는 아이린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빌어먹을 자식들이!”
스테임 백작을 보호하고자 전속력으로 비행해보지만 부질없었다.
마력 에너지의 발사속도가 그리드의 이동속도를 월등히 상회하고 있었던 탓이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스테임 백작에게 직격한 여섯 줄기의 마력 에너지가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에 휩쓸린 병사들이 사방으로 날아 떨어져 넝마가 되었다.
폭발의 중심에 있는 스테임 백작은 필시 잿더미가 되었을 것이다.
“장인어른…!”
그리드가 동요했다.
웃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나의 아이린이 한동안 눈물 짓게 되리라 생각하자 그는 가슴이 아팠다.
그의 귓가로 익숙한 여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늦어서 미안해.”
“…?”
스테임 백작의 최후를 확인하기가 두려워 애써 두 눈을 감고 있던 그리드. 그가 서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보았다.
“우리 없이 싸우느라 고생했어.”
체다카 길드였다.
G의 이니셜이 음각되어 있는 에픽, 유니크, 레전드리 아이템으로 전신을 도배한 반트너와 토반을 필두로 지슈카와 모두가 스테임 백작을 보호하며 등장한 것이다.
“너희들…!”
감격하는 그리드에게 지슈카가 말했다.
“명령을 내려줘, 대장.”
체다카 길드가 그리드의 수하로 들어오겠다는 의사를 피력하는 순간이었다.
격양 된 라우엘이 소리쳤다.
“우선 길드부터 설립하십시오!”
최소 인원 15명부터 길드를 설립할 수 있다.
이번 골렘 침공 에피소드에는 길드 전용 퀘스트가 또 따로 존재하는 바, 길드 경험치를 올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라우엘의 의도를 파악한 그리드가 빠르게 행동했다.
“길드 설립.”
[길드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협회에서 승인을 받아야만 합니다.]
[당신은 귀족으로서 신용도가 높기 때문에 승인절차 없이 길드를 설립할 수 있습니다.]
[길드의 이름을 결정해주십시오.]
“길드 이름은…”
중얼거리는 그리드에게 라우엘이 종용했다.
“길드 이름은 길드의 상징으로서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입니다. 반드시 뜻 깊고 멋진 이름으로 지어주십시오. 개인적으로는 다크 플레임 마스터즈, 블러드 아이스 매이커즈, 블레스 오브 갓, 실버 드래곤즈 등을 추천합니다.”
“…”
그리드는 니베리우스 레이드 당시 스스로를 템빨러라고 지칭한 적이 있다.
템플 기사단원임을 뜻하는 템플러를 언어유희를 통해서 스스로에게 적합하게끔 변형시킨 단어였다.
그리드는 그 단어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입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었다.
하여 길드 이름은…
“템빨 기사단은 필요 이상으로 거창하고… 심플하게 템빨단으로 하자.”
“뭐, 뭐라고요?”
라우엘이 경악했다. 그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려있었고 푸른색 눈동자에는 분노가 실렸다.
“템빨단이라니, 재정신이십니까? 완전히 유치하지 않습니까! 초등학생들도 비웃을 이름입니다! 제발 농담이라고 해주세요!”
“블러드 아이스 매이커? 뭐 그딴 것보단 훨씬 낫다고 보는데.”
“블러드 아이스 매이커즈가 왜요! 멋있잖아요! 그에 반해서 템빨단은 도대체 뭡니까? 앞으로 평생을 등지고 가야할 길드 이름치고 너무 말장난 같고 구리잖습니까!”
라우엘은 극구 반대하고 나섰지만 체다카 길드원들의 반응은 의외로 긍정적이었다.
“템빨단이라… 길드의 특징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군.”
“겉멋만 잔뜩 든 길드 이름은 도리어 너무 평범하고 유치한 면이 있지. 간단명료하게 가자.”
“템빨단 소속 템빨러! 큭큭, 단순하고 유쾌해서 좋구만!”
“이, 이런 미친 인간들이…!”
라우엘은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그가 후로이와 유페미나에게 구원의 시선을 보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후로이는 오로지 그리드의 뜻에 따를 뿐이었고, 유페미나는 길드 이름이야 어찌됐든 관심이 없었다.
결국.
[‘그리드’가 27명의 동료와 함께 ‘템빨단’ 길드를 설립하였습니다.]
길드 이름:템빨단
레벨:1(0/100,000)
명성:0
마스터:그리드
인원:28/30
소속:에트날 왕국
동맹 관계:[에트날 왕국 북부]
적대 관계:없음
성향:윈스톤과 절대적 호의 관계
영토:없음
“마, 말도 안 돼… 내 길드 이름이 템빨단이라니…? 내가 템빨단이라니!”
라우엘은 정말로 충격이 큰 것 같았다.
사실 템빨단이라는 길드 이름은 일반인이 듣기에도 단순한 감이 컸으니 중2병인 라우엘이 보기엔 혐오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리드의 눈앞에는 새로운 퀘스트 창이 갱신되고 있었다.
<수호 전쟁Ⅱ>
난이도:SS
골렘 대군은 모두의 예상보다도 훨씬 더 강력했습니다.
왕국 최강의 길드와 군대들로서도 골렘들의 진격을 막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왕성까지 침공한 골렘 중 가장 강력한 고대의 병기들이 생존하였으니 에트날 왕국은 풍전등화의 위기입니다.
놈들을 격퇴하여 왕성을 수호하십시오.
오로지 당신들만이 에트날 왕국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비스바덴 국왕은 애타는 마음으로 당신들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고대의 병기를 격파(0/6)
퀘스트 클리어 보상:1개 대도시 획득. 왕국 공헌도 50,000 상승. 길드 레벨 2상승. 500만 골드 획득.
퀘스트 실패 시:에트날 왕국이 붕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단숨에 도약할 수 있는 기회다.
좌절하고 있는 라우엘을 포함한 모두에게 그리드가 명령했다.
“고대의 병기 여섯 기, 동시에 격파한다. 후로이! 토반! 버프를!”
훗날 전설이 될 템빨단이 역사에 최초로 발자취를 남기게 되는 순간이었다.
“템빨러들이여! 템빨단의 등장을 세상에 알리고 주군의 위광을 드높이자!”
[사기가 고무되었습니다.]
[공격력과 마력이 다음 공격에 한정하여 대폭 상승 적용됩니다.]
[다음 공격은 반드시 크리티컬이 발동합니다!]
웅변가 랭킹 1위의 최강 버프 스킬 <사기 진작>이 길드원 전원에게 적용됐다.
그 압도적인 효과에 전 체다카 길드원들이 혀를 내둘렀다.
“오글거리는 멘트야 어찌됐든 효과는 대단하군.”
“일격필살을 가능하게끔 만드는 버프인가…”
웅성거리는 길드원들 틈에서 지슈카가 토반을 부채질했다.
“성기사 랭킹 1위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야겠는데?”
다른 길드원들에 비하면 레벨이 비교적 낮은 편에 속하기는 했지만 토반도 이제 280레벨을 달성하고 있었다. 그리드보다 무려 10레벨이나 높은 것이다.
그가 2차 전직 성기사의 궁극기라고도 할 수 있는 버프 스킬을 전개했다.
“쥬다르 신의 축복!”
[5분 동안 모든 스탯이 20퍼센트 상승합니다.]
[10분 동안 생명력과 방어력이 30퍼센트 상승합니다.]
“……!”
길드명이 템빨단으로 정해지자 넋 놓고 있던 라우엘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이게 말로만 듣던 쥬다르 교의 제일성기사, 토반의 실력인가!’
후로이의 버프와는 전혀 다른 특성의 훌륭한 버프다.
체다카 길드원 중에 괴물 아닌 자가 없다더니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라우엘이 감탄하고 있는 그때, 적색의 대궁을 무장한 지슈카는 초특급 야파 화살을 장전하고 있었다.
“그럼, 힘차게 시작해볼까?”
그리드가 제작해준 유니크 등급의 대궁 <샐러맨더의 뿔>은 현존 최강의 활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연사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을 지녔지만 공격력이 무자비하게 높았다. 또한 화염 속성 공격력을 상승시켜줬기 때문에 지슈카와의 궁합이 무척이나 잘 맞았다.
“폭죽놀이.”
활솜씨가 신의 영역에 이르렀다하여 신궁이라 불리는 여인.
궁사 랭킹 1위인 지슈카가 새로운 전투의 막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슈슉! 슈슈슈슈슉!
<샐러맨더의 뿔>의 유일한 단점, 느린 연사 속도를 속사 스킬로 극복해낸 그녀가 7발의 화살을 시간차 없이 쏘았다.
그 화살들은 2,300미터 전방의 고대의 병기를 표적으로 삼고 있었다.
퍼퍼퍼퍼퍼퍼펑!
현란했다.
화살들이 날아가는 도중 혼자서 폭발했다. 그리고 폭죽마냥 꼬리 부분에 불을 달고 회전하며 가속도를 더했다.
쿠오오!
고대의 병기는 위험을 직감했다. 화살에 대항하기 위해서 주둥이를 벌리더니 마력 에너지를 발사하려고 했다. 강렬한 백색의 마력이 놈의 주둥이 부근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슈카의 화살은 놈이 마력을 충전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찰나지간에 녀석에게 꽂힌 후 또 한 번 폭발을 일으켰다.
부르르르르.
고대의 병기의 육중한 몸이 기이한 경기를 일으켰다.
지슈카의 시야에는 알림창이 떠오르고 있었다.
[대상의 마나 핵에 충격을 가했습니다.]
[대상의 마력 흐름을 차단합니다.]
[대상은 3초 동안 마법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폭죽놀이의 효과가 제대로 발생했다.
고대의 병기가 전개하고 있던 안티 매직 실드가 일시적으로 해제됐다.
화염술사 랭킹 1위 라엘라와 복합술사 랭킹 2위 제드노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섰다.
“마왕의 꼬리 불!”
“폭군의 망치!”
지슈카는 최강의 스킬을 전개하고 있었다.
“피닉스 에로우!”
쿠콰콰콰콰콰콰쾅!
직선상의 모든 것이 화마에 집어삼켜졌다.
지슈카 조의 표적이 된 고대의 병기는 허공에서 떨어진 망치에 얻어맞아 비틀거리던 도중 칠흑의 불길과 거대한 피닉스를 직격당해 괴로워했다.
놈이 붉은 안광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놈을 도울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다른 다섯 기의 고대의 병기들도 놈과 사정이 같았기 때문이다. 모든 고대의 병기들이 여러 개의 조로 나뉜 템빨러들에게 얻어터지느라 바빴다.
특히 레가스 조에게 공략당하고 있는 고대의 병기가 가장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퍼펑!
[5회 콤보 달성!]
[<뇌공작(雷公爵) 너클>의 옵션 효과가 발동하여 대상에게 추가 물리 피해를 입힙니다.]
퍼퍼펑!
[6회 콤보 달성!]
[<뇌공작(雷公爵) 너클>의 옵션 효과가 발동하여 대상에게 추가 전격 피해를 입힙니다.]
쾅쾅쾅!
[8회 콤보 달성!]
[<뇌공작(雷公爵) 너클>의 옵션 효과가 발동하여 대상에게 추가 물리 피해와 추가 전격 피해를 입힙니다.]
쩌저정! 꽈앙!
[10회 콤보 달성!]
[<뇌공작(雷公爵) 너클>의 옵션 효과가 발동하여 <천둥 마차>를 시전합니다.]
쿠르르르르릉!
신들의 세계에서 강림한 것일까?
번쩍거리며 하늘에서부터 나타난 천둥 마차가 고대의 병기를 무릎 꿇린다.
놈의 대가리 위로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인간으로 변신했다.
맹수인간 툰이었다.
그리드의 이니셜, G가 음각되어 있는 은색 크로우를 양팔에 무장한 그가 사자후를 내질렀다.
[주위의 모든 적을 약화시킵니다.]
“크큭! 크하핫! 자근자근 썰어주마!”
늑대인간으로 변신, 공격력을 대폭 증강시킨 툰의 크로우가 여섯 줄기 검광을 번쩍였다.
전신이 감전되어 있던 고대의 병기는 그에 대처하지 못하고 큰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한편, 남쪽 성벽 앞의 고대의 병기는 폰과 반트너 콤비에게 연신 찔리고 베이며 뒷걸음치고 있었다.
“하아압!”
쩌정! 쩌저저저정!
“우랴! 우랴! 우리앗~!”
콰쾅! 콰콰콰콰쾅!
쿠오오오오!
정신없이 얻어터지며 물러서던 고대의 병기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팔을 휘둘렀다.
민첩한 창술사 폰은 그를 사뿐히 회피했고, 수호기사 반트너는 방패를 들어 방어했다.
“으.”
무지막지한 공격력이었다. 피해량을 완전히 흡수하는 것에 실패한 반트너가 충격의 여파로 경직되고 말았다.
그를 향해서 고대의 병기가 마력 에너지를 발사하려고 했다.
사색이 된 반트너가 허둥지둥 소리쳤다.
“야! 도와줘, 폰!”
“이제 너 꽤나 단단하잖냐? 그냥 맞고 버텨.”
폰은 반트너를 도와주기는커녕 도리어 반트너의 어깨를 지르밟더니 도약했다. 그리고 고대의 병기가 반트너에게 마력 에너지를 발사하는 틈에 스킬을 전개했다.
“마하 스피어!”
쩌어어어어엉!
일격필살의 공격다웠다.
음속의 창이 고대의 병기의 두꺼운 대가리를 그대로 관통해버렸다.
“좋아!”
대가리의 절반이 깨져 휘청거리는 고대의 병기를 확인하고 착지한 폰이 환호했다.
반트너가 그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이 쓰레기 새끼…! 동료를 희생양 삼아서 성과를 거둔 주제에 좋냐? 엉? 좋냐고!”
마력 에너지에 직격당한 반트너는 숯 검둥이가 되어있었다.
진정으로 분노하고 있는 그에게 폰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건 팀워크라는 거다.”
“씨벌! 팀워크 좋아하네!”
반트너의 얼굴과 머리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 꼴이 꼭 삶은 문어 같았던지라 폰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한 반트너가 그에게 도끼를 휘둘러댔다.
“오늘이야말로 기필코 네놈을 죽여주마!”
“할 수 있으면 해보던가, 이 대머리자식아.”
“…”
고대의 병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을 앞에 두고 저들끼리 싸우다니? 황당했지만 기회다 싶었다.
슬그머니 태세를 정비한 녀석이 다투고 있는 폰과 반트너를 향해서 양팔을 휘둘렀다.
하지만 또 한 번 폰은 쉽게 그 공격을 회피했고, 반트너는 방패로 공격을 방어했다.
또 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고대의 병기에게는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었다.
잽싼 폰은 무시하고 경직 된 반트너를 향해서 마력 에너지를 발사하려고 했다.
그를 본 반트너가 또 한 번 사색이 되었다.
“야, 폰! 이번엔 진짜로 도와줘! 나 이번엔 죽는다! 응?”
“무적 스킬 쓰던가~”
반트너는 말락서스 레이드 이후 쭉 체력에 스탯을 투자해왔다. 이제 수호기사의 면모를 제대로 갖춘 그의 생존력은 바퀴벌레급으로 뛰어났다.
폰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또 한 번 반트너를 탱커 삼아 일방적인 팀워크를 전개했다.
“환영난참!”
쿠워어어어어!
고대의 병기가 반트너에게 마력 에너지를 발사함과 동시에 수십 번의 찌르기를 얻어맞고 주저앉았다.
그를 보고 만족한 폰이 기고만장해서는 콧대를 세웠다.
“내 실력은 과연 완벽하군.”
그에게 도끼가 날아왔다.
“저 둘은 여전하네.”
시가지.
멀찍이서 소란을 피우는 폰과 반트너를 보면서 페이커 조가 낄낄거렸다.
그들에게 페이커가 주의를 주었다.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해. 방심은 금물이다.”
어쌔신 랭킹 1위 페이커는 국가대항전에 참가하지 않았었다. 상위 랭커들이 국가대항전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그는 오로지 레벨 업에 집중했고, 그 결과 현재 293레벨이었다. 통합 랭킹은 17위였다.
그가 수련의 성과를 여과 없이 뽐냈다.
파팟! 파파파파파팟!
20개의 분신을 생성, 동료들과 함께 사방에서부터 고대의 병기를 덮쳤다.
시가지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해치워 온 몸을 피로 물들이고 있던 고대의 병기는 그들이 가소로웠다.
자신이 겪기로 인간이란 무척이나 나약한 존재인데, 이 인간 놈들이 주제파악 못하고 또 덤비다니 웃길 따름이었다.
한데.
“……!”
고대의 병기가 경악했다.
강기에 휩싸인 20자루 단검이 전신을 찔러오자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온갖 금속으로 구성된 단단한 육신에 구멍이 뚫렸으니 경각심이 들었다.
쿠워어어어!
여태까지 상대했던 인간들과 달리 강력한 이놈들을 어떻게든 떨쳐내고자 고대의 병기가 양팔을 풍차처럼 회전시켰다. 그에 페이커 조는 방어하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페이커는 오로지 전진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민첩하게 움직여서 고대의 병기의 공격을 연달아 피하더니 어느덧 놈의 목 아래까지 쇄도하고 있었다.
키약!
당황한 고대의 병기가 마력 에너지를 발사하기 위해서 주둥이를 벌렸다.
“고맙다.”
인사한 페이커가 고대의 병기의 벌어진 주둥이 속으로 5자루 단검을 투척했다.
폭발하는 단검이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또 한 기의 고대의 병기가 주저앉았다.
하지만 놈의 집념은 대단했다. 쓰러지는 와중에도 팔을 휘둘러서 페이커를 공격했다.
하강하는 도중이라 몸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했던 페이커는 그 공격에 직격당할 위기에 놓였다.
어쌔신은 생명력과 방어력이 극도로 취약했기 때문에 어쩌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낭패로군.’
페이커가 미간을 좁히는 그 순간 하늘에서부터 한 줄기 벼락이 떨어졌다.
그 벼락은 페이커를 향해서 휘둘러졌던 거대한 팔의 궤도를 완벽하게 비틀어놓기에 충분한 위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덕분에 목숨을 건진 페이커가 하늘 위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아름다운 금발의 소녀를 확인했다.
페이커 조가 소란을 피웠다.
“저 계집은…!”
“유페미나…!”
유페미나는 과거 페이커 조를 완벽히 박살낸 전력이 있다. 그 탓에 체다카 길드의 살생부에 오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그리고 체다카 길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동료였다.
과거의 원한 따위 금세 털어낸 페이커가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목숨을 빚졌다.”
유페미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듯, 길드원 모두가 활약하고 있는 가운데 군계일학은 이벨린이었다.
“라우엘, 풍룡의 날갯짓으로 고대의 병기를 구속할 수 있겠어?”
“아무리 나라도 1초 정도밖에 구속하지 못한다.”
“그 정도면 충분해.”
10인의 루키 중 최강이라고 평가받는 라우엘과 만년 2인자인 이벨린.
그들이 힘을 합치자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풍룡의 날갯짓!”
[대상의 움직임을 구속합니다.]
“찢어발기기!”
<찢어발기기>
대상의 몸을 통한의 가시로 무참히 찢어발깁니다. 대상은 현재 생명력의 60퍼센트에 해당하는 고정 피해를 입습니다.
스킬 마나 소모:500
스킬 사용 조건:대상을 구속한 상태여야만 함.
콰차차차차착!
통한의 가시가 자비 없는 궤도를 그리며 고대의 병기를 찢어발겼다.
그러자 고대의 병기는 단 일격에 큰 피해를 입고 스턴 상태에 빠졌다.
“…”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저 강력한 고대의 병기가 단 한 방 얻어맞은 것으로 생명력의 60퍼센트를 손실하다니?
지금 이 순간 이벨린이 발휘한 공격력은 가히 그리드 급이라고 봐도 무방하였으니 라우엘은 엄청나게 당황했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녀석이 생각보다 훌륭한 실력을 보이자 동요를 금치 못했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척 말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딱 너를 두고 하는 말이었군.”
이벨린이 버럭 성을 냈다.
“누구한테 굼벵이라는 거냐! 빌어먹을! 나는 조만간 너를 뛰어넘을 몸이시다!”
라우엘이 콧방귀 뀌었다.
“템빨 주제에.”
그렇게 말하는 라우엘도 템빨러였다.
한편, 내성벽 앞에 선 그리드는 고대의 병기 한 기와 혼자서 대치하고 있었다.
“힘내시오!”
내성벽 위의 국왕 비스바덴이 애타는 심정으로 그리드를 격려했다.
잠시 후면 저자로부터 논공행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자 들뜬 그리드가 회심의 미소를 그렸다.
“초연(超聯). 살연(殺聯).”
간절한 시선을 보내오는 국왕 비스바덴과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귀족들. 그리고 라인하르트에 모여 있는 10만 유저와 수억 명의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현존 최강의 스킬 2개가 연속으로 전개됐다.
번쩍!
어둠을 종식시키는 백광이 휘몰아친다.
인위적으로 형성되는 백야를 보며 흥분한 스테임 백작이 소리쳤다.
“내 사위는 전설이다!”
쿠콰콰콰콰콰콰쾅!
청백색의 검기 20줄기가 고대의 병기에게 쇄도했다.
『나왔습니다! 최강의 스킬!』
중계진이 목청껏 소리쳤다.
시청자들은 손에 땀을 쥐었다.
라인하르트의 10만 유저가 열광했다.
그리드는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융합 스킬 초연(超聯)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초연(超聯)>Lv.2
일시적으로 초(超) 상태가 되어 연(聯)을 사용합니다.
물리공격력의 180퍼센트 피해를 입히는 검기를 총 20회, 시간차 없이 발사합니다.
대상은 타격을 입을 때마다 0.1초씩 경직에 걸립니다.
*이 스킬은 초(超), 연(聯)과 재사용 대기 시간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스킬 마나 소모:1,600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15분
스킬의 레벨이 오르는 순간은 언제 맞이해도 짜릿한 맛이 있었다. 한층 더 강해졌음을 곧바로 체감할 수 있었으니 고무되었다.
격양 된 그리드가 검기 폭풍을 얻어맞고 경직되어 있는 고대의 병기를 향해서 도약했다.
그리고 한 바퀴 회전하면서 원심력 실은 살(殺)을 1회.
쩌어엉-!
[크리티컬!]
[실패작의 옵션 효과로 인하여 ‘5연격’ 스킬이 발동합니다.]
[성스러운 빛의 장갑의 옵션 효과로 인하여 ‘5연격 스킬이 발동합니다.]
[대상에게 12,140,7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반발력을 이용, 또 다시 회전하면서 2회.
쩌정!
[성스러운 빛의 장갑의 옵션 효과로 인하여 ‘5연격’ 스킬이 발동합니다.]
[대상에게 2,612,0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3회.
쩌저정!
[크리티컬!]
[대상에게 1,205,8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4회.
쩌저저정!
[대상에게 500,3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5회 가격했다.
쩌저저저정!!
[실패작의 옵션 효과로 인하여 ‘5연격’ 스킬이 발동합니다.]
[성스러운 빛의 장갑의 옵션 효과로 인하여 ‘5연격’ 스킬이 발동합니다.]
[대상에게 5,579,0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기본 스탯이 기형적으로 높은 그리드에게 토반의 스탯 상승 버프는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비약적으로 상승한 스탯과 최강의 스킬, 그리고 절대지존 무기 실패작의 위력으로 삼위일체를 이루어 이래 없이 강력한 공격력을 발휘했다. 최초로 1천만 이상의 데미지를 뽑아낸 그리드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탓.
연살(聯殺)의 춤사위를 끝낸 그리드가 사뿐히 지상으로 착지한 순간.
쿠구구구구구구구…
넝마가 된 고대의 병기는 맥없이 고꾸라지고 있었다.
라인하르트 전역에 함성이 메아리쳤다.
“우와아아아아아!”
“그리드! 그리드! 그리드!”
수십만 NPC들이 그리드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리드가 아니었으면 왕성과 왕실이 붕괴되고 어쩌면 조국을 잃게 되었을 그들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리드는 구국의 영웅이었다.
국왕 비스바덴은 감격하여 눈물까지 흘렸다.
“위대한 영웅 덕분에 왕국의 4백 년 역사가 지켜졌노라…!”
소리치는 그를 보며 귀족들은 확신했다.
‘스테임 백작은 필시 공작의 작위를 얻게 되겠군.’
‘그의 사위 또한 최소 백작이 되겠지…’
이제 왕국의 일인자는 명실상부 스테임 백작이 될 운명이었다. 정치적으로 복잡해진 귀족들은 그리드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한편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갓리드! 차원이 다릅니다!』
중계진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오늘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똑똑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드는 최강입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국가대항전에서 보여줬던 그의 실력은 전혀 거품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주목해야할 부분은 그리드 개인의 능력만이 아니죠. 그리드는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체다카 길드의 세력을 그대로 흡수해버렸습니다. 금일을 기점으로 Satisfy의 세력 판도가 급격하게 변화할 터이니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날이 될 겁니다.』
『바이란 전투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리드는 정말로 전설이 되어가고 있군요.』
『그는 이번 공적으로 인하여 유저 최초의 백작이 될 것입니다. 백작으로서 얼마나 대단한 권력을 구사할 수 있을까요? 벌써부터 궁금하고 기대가 되는군요.』
『과연, 고작 백작의 작위를 얻는 것으로 그칠까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만…』
여섯 기의 고대의 병기 모두 망신창이였다.
이제 곧 골렘 침공 에피소드는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다.
다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라우엘이 말했다.
“그리드 님, 우리가 고대의 병기들을 동시에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신호를 주시죠.”
고대의 병기는 꼭 동시다발적으로 처치해야만 했다. 만약 시간차를 두고 해치웠다가는 생존한 녀석들이 실시간으로 진화해서 골치 아파졌다.
고개를 끄덕인 그리드가 소리쳤다.
“셋을 세겠다. 하나! 둘!”
“…”
길드원 전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드가 세 번째 숫자를 세는 순간 동시에 고대의 병기의 숨통을 끊어놓고자 날을 세우고 있었다.
“셋!”
드디어 그리드가 셋을 센 순간!
길드원들이 각자 조를 짜서 전투불능으로 만들어놓았던 고대의 병기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한데 폰과 반트너 조가 문제였다.
“내가 마무리 짓는다!”
“아니, 나다!”
언제 어느 때고 툭하면 다투던 두 사람이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막타를 누가 치는가를 놓고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을 벌이던 두 사람은 결국 고대의 병기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
[높은 화염 내성과 전격 내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합니다.]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 중 전도율이 높은 광물들을 배제합니다.]
[대량의 광물을 버림으로서 신체가 작아집니다. 잃고 있던 민첩성을 되찾았습니다.]
[마력 에너지의 발사 속도를 높여야한다고 판단합니다.]
[마력 에너지의 위력을 낮추는 대신 연사할 수 있도록 마법진을 재구축합니다.]
[날붙이에 대한 내성을 높여야한다고 판단합니다.]
[폭발에 대한 내성을 높여야한다고 판단합니다.]
[비행 능력을 갖춰야한다고 판단합니다.]
철컥! 철컥철컥!
마하 스피어를 정통으로 얻어맞고 대가리가 반파되어 있었던 고대의 병기.
놈이 다른 다섯 기의 고대의 병기가 사망하며 남긴 정보를 토대로 신체를 재구축하기 시작했다.
마치 큐브를 보는 듯하다.
키가 8미터를 넘는 육중한 몸이 접혔다가 펴졌다가를 반복하는가 싶더니 금세 작아졌다. 그리고 빛이 번쩍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갖췄다.
크르르.
변형된 고대의 병기는 영혼 인형과 꼭 닮은 모습이었다.
키는 2미터 이하.
날렵해 보이는 육체가 인간의 것과 꼭 닮아있었다.
얼핏 더 약해진 듯 보였으나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다. 느껴지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너네 미쳤냐?”
“아니,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뭐 하는 짓이야?”
길드원들이 폰과 반트너에게 면박을 주었다. 그들의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 때문에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으니 분위기가 사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폰과 반트너는 자신들의 실수를 만회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처리하마.”
“내 똥은 내가 치운다!”
두 사람이 오래간만에 협력했다. 진화한 고대의 병기에게 돌진, 진지한 태도로 협공을 가했다.
하지만 부질없었다.
“어라?”
“몸은 작아진 주제에 방어력은 왜 이렇게 높아진 거야?”
폰과 반트너의 창과 도끼는 진화한 고대의 병기에게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당황하는 두 사람에게 씨익 웃어준 고대의 병기가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
무슨 의미인가?
갑자기 삿대질하는 고대의 병기를 보고 어안이 벙벙해지는 두 사람.
그들의 심장을 정확히 노리고 두 줄기의 마력 에너지가 발사됐다.
[18,01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치유 효과가 감소합니다.]
“쿨럭!”
레전드리 갑옷을 무장하고 있는 수호기사 반트너조차도 일격에 30퍼센트의 생명력을 잃었다. 딜러인 폰이야 오죽하겠는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치유 효과가 감소합니다.]
한번에 60퍼센트 이상의 생명력을 손실한 폰이 스턴에 빠졌다.
진화한 고대의 병기는 어느덧 그의 코앞에 접근해 있었다.
“뭣…!”
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의 안면을 노리고 고대 병기의 박치기가 꽂혔다.
“소망!”
세희가 다급히 힐을 사용해줬지만 치유 효과 감소 디버프 탓에 폰의 생명력은 별로 회복되지 않았다. 죽기 일보직전이었다.
길드원들이 그를 구원하고자 나섰다.
토반이 방어 스킬을 사용하며 전면에 나섰고, 지슈카와 라엘라, 제드노스는 후방에서부터 맹공을 퍼부었다. 레가스와 페이커를 필두로 한 근접 딜러들은 곧바로 궁극기를 시전했다.
하지만.
쩌어어어어어엉!
진화한 고대의 병기는 가히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안티 매직 실드를 전개, 모든 마법을 무효화시킴과 동시에 지슈카의 화살을 회피했다. 그리고 레가스와 페이커에게 반격을 가해서 큰 피해를 입혔다. 마지막으로 사방에 마력 에너지를 발사하니 사상자가 속출했다.
“…엿 됐다.”
반트너가 울상을 지었다. 자신 때문에 봉변을 당하는 동료들을 보며 죄의식을 느꼈다.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그의 어깨 위로 누군가가 손을 얹어주었다.
커다랗고 힘이 실려 믿음직한 손이었다.
굳은 살 가득한 전사의 손, 혹은 대장장이의 손이기도 하다.
그리드의 손이었다.
“미안하다…!”
반트너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질끈 눈을 감고 사죄하는 그를 그리드는 원망하지 않았다. 도리어 미소를 지어주었다.
“내가 말했었지? 너희들의 힘이 되어주겠다고.”
체다카 길드에게 자신의 밑으로 들어와 달라고 부탁했던 날.
그리드는 그들에게 나의 힘이 되어 달라고 청했었다. 나 또한 너희들의 힘이 되어 주리라 다짐했었다.
그 진실 된 약속을 그리드는 지금 이 순간 지켜낼 각오였다.
‘또 변했다.’
반트너와 길드원들은 무척이나 당황하고 있었다.
자신이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지랄 맞은 그리드가 한층 더 성숙해졌으니 놀라울 지경이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리드가 최강최악의 펫을 소환했다.
“냐옹!”
지옥제일 마수 노에였다.
두 손을 번쩍 들며 등장한 녀석이 동그란 눈을 반짝였다.
“오늘도 맛있는 거 먹여줄 거냐? 냥!”
“아마도. 여태까지 네가 먹었던 놈들 중에 가장 맛있을 거다.”
전투 내내 그리드가 노에를 소환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지 질투심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자신보다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노에가 또 대중 앞에서 활약했다가는 인기에서 완전히 밀리게 될 것이라는 경각심이 들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자신만의 힘으로 이번 전투를 끝장 낼 각오였다.
하지만 진화한 고대의 병기는 전투력이 측정 불가였다. 그리드가 예측하기로 2번 약화된 대악마 헬가오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연살(聯殺)과 초연(超聯)을 사용한 직후인지라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인 그리드가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여 그는 어쩔 수 없이 노에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팬 카페 회원 수가 완전히 벌어지게 생겼군…”
아쉬움을 삼킨 그리드가 명령했다.
“집어삼켜라.”
“냐앙!”
노에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그리고 아가리를 쩍하고 벌리더니 진화한 고대의 병기를 한입에 삼켜버렸다.
[멤피스가 대상의 영혼 일부를 빼앗았습니다.]
[대상은 3초 동안 주 능력치가 50퍼센트 하락합니다.]
[대상으로부터 빼앗은 능력치가 주인에게 전이됩니다.]
[체력이 2,133 상승하였습니다.]
“파그마의 검무! 살(殺)!”
운이 좋았다.
실패작과 성스러운 빛의 장갑의 옵션 효과가 발동하는 동시에 크리티컬까지 적용됐다.
생명력과 방어력이 극도로 낮아진 고대의 병기는 커다란 피해를 입고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녀석을 노리고 길드원들이 총공세를 펼쳤다.
특히 유페미나는 아껴뒀던 S급 마법을 전개하고 있었다.
쿠워어어어어어!
고대의 병기는 최선을 다해서 저항했다. 하지만 템빨단 소속 템빨러들은 최소 레벨이 270이었다. 레벨이 가장 낮은 사람이 다름 아닌 그리드였던 것이다. 제아무리 진화한 고대의 병기라고해도 노에에게 계속 집어삼켜져서야 언제까지고 그들의 맹공을 견뎌내지 못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광역 힐을 사용해주면서 세희의 레벨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었다. 그리드로서는 뿌듯한 일이었다.
그리고 고대의 병기는 결국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놈은 사망하면서 <브라함의 메시지>라는 아이템을 드롭했다.
‘브라함…! 그가 이번 사건의 배후였나?’
그리드는 당장에 메시지를 읽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잠시 미뤄둬야만 했다. 비스바덴 국왕이 친히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맙소! 고마워!”
그리드의 두 손을 붙잡은 국왕이 연신 감사함을 외치며 고개를 조아렸다.
태어나서부터 절대자로서 군림해왔던 그가 타인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무척이나 생경하고 놀라운 것이었다.
이제 논공행상만이 남았다.
그리드가 템빨단 소속 템빨러들과 함께 입궁했다.
각국의 뉴스 채널 기자들이 상황을 중계하기 위해서 그 뒤를 따르려고 했지만 병사들에게 제지당했다.
그를 본 라우엘이 조언했다.
“그리드 님, 국왕에게 부탁하여 저들의 출입을 허하시죠. 당신과 템빨단이 오늘의 공적으로 얼마만큼 성장하게 될지 전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모두가 우리를 우러러보게끔 만들 기회입니다.”
라우엘은 그리드의 지낭이었다. 그의 말을 들어서 손해를 입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결국 그리드는 라우엘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이후.
비스바덴 국왕이 그리드 일행에게 공적을 치하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그리드의 명성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언제나 그를 무시해왔던 S.A그룹의 윤상민 이사가 처음으로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 그래야 레전드리 클래스 전직자답지.”
독보적인 존재의 활약은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앞으로 수많은 유저들이 그리드를 워너비로 삼고 더욱 더 열심히 Satisfy를 플레이할 것이었으니 그는 기뻤다.
이번에 발생한 ‘골렘 군단의 대공습’ 에피소드에서 에트날 왕국군은 무력한 모습만 보였다.
고작 1천의 골렘이 왕성까지 진격하는 것을 저지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수십만 군세를 집결시키고도 퇴치하지 못하였으니 에트날 왕국을 무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인터넷 상에서 네티즌들은 에트날 왕국군이 개만도 못하다며 비웃었다. 비스바덴 국왕과 귀족들은 병사를 모집하기보다는 개를 여러 마리 키우는 편이 오히려 집 지키기에 용이할 거라며 조롱했다.
‘모르고 하는 소리지.’
에트날 왕국군은 결코 약하지 않다. 그들은 오히려 강했다. 에트날 왕국이 오랜 세월 중립국의 위치를 고수해오고 있음이 그 증거다.
‘다만 이번에는 상대가 너무 안 좋았을 뿐이야.’
골렘 군단이 비상식적으로 강했다.
실제로 자이언트 길드와 10만 유저들조차도 골렘들에게 상대가 안 되지 않았던가?
‘심지어 나조차도 영혼 인형 한 기를 간신히 해치웠을 정도인데, 그런 무지막지한 놈들을 소수 인원만으로 몰살시킨 그리드 일당은 도대체 얼마나 괴물인건지…’
후로이, 라우엘, 유페미나, 쥬드.
이미 출중한 실력자들을 수하로 거느리고 있었던 그리드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체다카 길드를 흡수해버렸다.
앞으로 그리드의 세력은 자이언트 길드나 스네이크 길드 이상으로 막강해질 것이 자명했다.
‘템빨단이라… 나도 가입 신청 넣어볼까? 가입할 수만 있다면 인생 펼 것 같은데.’
복구 작업으로 분주한 라인하르트.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겠어요?”
“일손이 필요합니다.”
마주치는 병사들과 주민들 죄다 복구 작업에 동참해달라며 퀘스트를 안겨줬다. 하지만 통합랭킹 304위 해피는 무시로 일관한 채 왕궁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더 많군.’
거대한 연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유저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이번 <골렘 퇴치>퀘스트에서 공적을 세운 인물들이다. 라인하르트에 모인 10만 유저 중 소수인원만큼은 나름 활약했다는 뜻이다.
행정관들이 그들에게 차례대로 정산해주고 있었다.
“당신들은 16명이 조를 이루어 구시대의 골렘 한 기를 해치웠구려? 고생하였소. 왕국을 대표하여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오. 전원에게 300골드와 100의 공헌도를 보상으로 드리리라.”
300골드는 현금으로 36만원의 가치였으니 적잖은 액수였다. 유저들은 꽤나 만족해했다. 간혹 구시대의 골렘 두 기 이상을 해치운 파티가 등장할 경우 남들에게 부러움의 시선을 받을 정도였다.
“오오! 해피 경!”
해피의 차례가 오자 그를 알아본 행정관이 무척이나 반겨주었다.
“전장에서 당신이 활약하였음을 실로 수많은 병사들과 백성들이 목격하였소. 구시대의 골렘 세 기와 영혼 인형 한 기를 홀로 해치웠다지? 보상으로 1,900골드와 800의 공헌도를 드리겠소. 왕국 수호에 힘써주어 감사할 따름이오.”
유저들이 소란을 피웠다.
“와, 대박. 혼자서 구시대의 골렘 세 기랑 영혼 인형을 해치웠다고?”
“1,900골드… 부럽다…”
“근데 해피면 랭커 아닌가?”
“맞아. 300위대인가 400위대인가 그럴걸?”
“캬~ 과연 랭커는 밥값 하는구만.”
유저들이 선망의 시선을 보내오자 해피는 콧방귀 뀌고 말았다.
‘고작 나를 보고도 부러워하는 건가.’
해피의 시선은 저 멀리 보이는 황금빛 대전으로 향해있었다.
현재 저 안에서는 국왕이 직접 그리드 일행을 치하하고 있었다.
과연 그리드 일행은 얼마나 대단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인가?
해피는 괜히 자신이 설렜다. 어서 로그아웃한 후 TV를 통해서 논공행상을 시청하고 싶었다.
***
‘전설의 대마법사라…’
그리드는 브라함이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미 수백 년 전에 사망한 인물이 골렘들을 움직여서 일국을 위기에 빠뜨리다니, 상상을 불허하는 능력자였다.
한데 그가 굳이 에트날 왕국을 침공한 이유는 도대체 뭘까?
‘사정이야 어찌됐든 마음에 안 들어.’
그 빌어먹을 미친 마법사 때문에 세희와 장인어른이 봉변을 당할 뻔했으니 썩 불쾌했다.
그리드는 <브라함의 메시지>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어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전에 받을 건 받고.’
찬란한 황금빛 대전.
“그리드 자작님께 영광을!”
척!
그리드 일행이 입장하자 병사들이 일제히 경례했다.
갑작스러운 적의 침공을 겪고 가족과 동료를 잃은 자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끔 질서정연했다. 얼마나 강인한 정신력을 보유했는지 엿볼 수 있었으니 감탄만 나왔다.
‘군바리 시절이 생각나는군.’
군복무 당시 그리드는 고문관에 가까운 인물이었지만 스스로에 대한 기억은 미화되는 법이다.
그리드는 군기 잡힌 병사들을 현역병 시절의 자신과 동화시키며 뿌듯해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국방을 위해 고생하고 있을 대한민국 군 장병들에게 측은지심을 느꼈다. 세상이 어느 땐데 아직도 통일이 되지 않고 있으니 안타까워할 따름이었다.
‘북한 여자들이 그렇게 예쁘다는데, 글래머도 많을라나? 어서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
뚜벅뚜벅.
그리드는 잡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똑바로 걷고 있었다. 높은 스탯을 보유한 그는 훌륭한 육체능력과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덕분에 걸음걸이에서부터 고수의 풍모를 발산했다.
왕좌에 앉은 국왕 아래 도열하고 선 귀족들이 마른 침 삼켰다.
‘과연 전설급 용사의 풍모다. 빈틈이 없어.’
‘깊디깊은 눈이로군. 눈동자에 바다가 담겨있는 것만 같다.’
‘꼿꼿이 선 허리와 넓은 어깨가 같은 사내로서 부럽구만… 젊은 시절에 나도 저만한 몸매를 가질 수 있었다면 더 많은 여인들과 사랑을 나눌 수 있었을 터인데…’
성스러운 빛의 왕관을 무장한 그리드의 위엄 스탯은 850을 초과하고 있었다.
이는 일국의 대귀족이 보유한 위엄 스탯을 상회하는 수치였었으니 엄청난 효력을 발휘했다. 귀족들은 그리드가 평민 출신이라는 사실을 잊고 도리어 선망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고맙소.”
왕좌 위의 비스바덴이 재차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이번 사건의 원흉이 그리드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으니 그리드를 오로지 은인이로만 여겼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리드 또한 본인이 이번 사건의 원흉이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드가 기고만장한 태도를 보였다.
“제가 아니었으면 왕국이 역사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었겠죠.”
현재 그리드는 갑의 입장이었다. 굳이 겸손함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전하께서 제게 얼마만큼의 성의를 보여주실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국의 왕을 상대로 거침없는 언사였다. 만약 그리드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국왕은 심히 불쾌해했을 것이며 귀족들이 분개했을 터다.
하지만 그리드는 높은 위엄을 쌓고 있는 구국의 영웅이었다. 아무도 그리드의 언사를 문제 삼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리드가 오로지 매력적인 인물로만 보였다. 만약 그리드가 바지에 똥을 싸는 한이 있더라도 사내답고 호쾌하다며 박수를 쳐줄 것이다.
“아덴 백작.”
국왕이 자신의 최측근이자 재무를 담당하고 있는 인물을 호명했다. 그러자 노년의 귀족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우선, 뒤늦게 전장에 합류했던 지슈카 남작 외 21명의 공적부터 치하하겠습니다.”
호명 받은 전 체다카 길드원들이 앞으로 나섰다.
아덴 백작이 비스바덴 국왕의 뜻을 전달했다.
“지슈카 남작 외 21명은 본국의 귀인인 스테임 백작을 구원하였으며 그리드 자작을 도와 고대의 병기 여섯 기를 격파하였으니 공적을 높이 사 20,000골드와 10,000의 공헌도를 하사한다. 또한 전원에게 자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