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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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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너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냐? 나는 교황 드레비고다! 7천만 교인의 어버이이며, 여신의 대행자로서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존재란 말이다! 한데 감히 내게 칼을 겨누다니? 이교도 놈, 신벌이 두렵지 않은 것이냐!”
“흠.”
웬일로 잠자코 경청하는가 싶던 그리드가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침 튀어.”
“뭐, 뭣이? 무엄한 놈!!”
가면 쓴 놈은 등장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괘씸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다짜고짜 난입하여 성기사들을 쓰러뜨리는가 하면, 배반자들을 도와주더니 지금 저 말버릇은 또 뭐란 말인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교황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내 친히 네게 신벌을 내려주겠다! 살아 돌아갈 생각일랑 꿈에도 마라!”
그리드가 그를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자꾸 신벌 타령인데 말이야… 교황 양반, 아직까지도 사태 파악이 안 돼? 나야말로 당신에게 신벌을 내려주러 온 존재야. 신벌을 받게 되는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라고.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지 그랬어? 쯧.”
작금의 상황이 달갑지 못한 건 교황뿐만이 아니었다. 그리드 또한 기분이 썩 좋지만은 못했다.
교황이 정상적인 인물이었다면, 파브라늄에 여신의 축복을 받아오라는 이번 퀘스트 따위 손쉽게 클리어 가능했을 터이니 말이다.
한데 교황이 타락한 인물인지라 레베카교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었고, 그 탓에 퀘스트가 변경되어 쓸데없이 고생하게 됐다.
“기껏 장인어른에게 소개서까지 받아왔더니만 무용지물… 당신, 짜증난다고.”
퍼엉!
그리드가 다인슬레프를 신경질적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강맹한 검기가 교황을 노리고 날아갔
다.
하지만 잠자코 당해줄 교황이 아니었다. 그가 빛의 마력을 발사하여 응수했다.
콰쾅!
묵색 검기와 백색 섬광이 충돌하며 강력한 폭발이 발생했다. 그 여파로 인하여, 족히 10미터 길이의 거대 양탄자가 불에 지져지는 뱀처럼 날뛰더니 갈기갈기 찢겨졌다.
붉은 눈처럼 내리는 양탄자의 잔재 속에서 그리드가 난색을 표하고 있었다.
‘검기가 상쇄됐다고?’
그리드의 검기에는 붉은 벼락의 기운과 데미안의 버프 스킬까지 깃들어 있었다.
한데 교황의 마력을 이기지 못하고 비겼다는 건 기본적으로 그리드의 검기보다 교황의 마력이 더 강하다는 증거였다.
‘지금의 내 공격력은 말락서스의 마력보다 높다. 말락서스가 실드를 3겹으로 전개해도 내 검기를 막아내지 못할 텐데?’
그리드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야 그럴 것이, 그의 통찰력이 간파하여 수치화시키고 있는 교황의 전투력은 24,000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227레벨 랭커인 데미안의 전투력이 12,500인점을 감안했을 때 24,000의 전투력은 썩 높아보이지가 않았다.
수치만으로 보면, 데미안급 랭커 2명만 있으면 교황 이상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데미안을 기준으로 삼아서… 말락서스 레이드 당시 체다카 길드원들의 평균 전투력이 1만 2천 가량이었다고 가정한다면…’
말락서스 레이드에 참여했던 체다카 길드원은 17명이었다. 개인당 전투력을 1만 2천으로 계산하여 합산할 경우 총 전투력 수치가 20만을 초과했다.
하지만 그 20만 이상의 전투력으로도 말락서스의 강함 앞에 압도당하지 않았던가?
말인 즉, 당시 말락서스의 전투력은 최소 20만 이상이었을 것이며 눈앞의 교황은 전투력이 2만 4천밖에 되지 못하니 말락서스보다 10배가량 약해야 정상이라는 뜻이다.
한데 정작 일격을 교환해보니 말락서스보다 교황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의아할 따름이다.
‘아무래도…’
그리드의 높은 통찰력이 전투력의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전투력이라는 것은 작은 차이만으로도 큰 격차를 보이는 건가 보군.’
정확했다. 레베카의 딸들과 교황, 그리고 데미안의 전투력이 만 단위인지라 그리드는 10단위, 100단위 전투력을 사사로이 치부하고 있었지만, 사실 전투력은 한자리수 차이까지 체감될 정도로 섬세하게 작용하는 수치였다.
그리고 전투력이란 1+1=2의 개념이 아니다.
1의 전투력을 개미라고 가정할 경우, 2의 전투력은 사마귀다. 그리고 개미 2마리가 모여 봤자 사마귀 1마리를 이겨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고로 전투력은 1+1 < 2의 개념이다.
말락서스 레이드 당시 17명의 체다카 길드원들이 말락서스 1인에게 압도당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던 것이다.
“전투력의 총합은 의미가 없는 거였어. 고양이 17마리가 모여 봤자 코끼리 1마리를 당해낼 순 없는 법이니까. 그리고 교황, 당신은 코끼리마저 집어삼킬 정도의 상위 포식자로군. 정말로 엄청나게 강한거구나?”
“고양이? 코끼리? 무슨 말이냐?”
그리드의 영문 모를 혼잣말을 교황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리둥절해하는 그에게 그리드가 피식 웃어주었다.
“내가 고양이인지, 코끼리인지. 그것도 아니면 똥개 새끼인지 이참에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네.”
“당최 뭐라 지껄이는 건지 모르겠구나. 이교도여, 너는 미친놈인 게냐?”
“너무 막말 하지마.”
그리드는 교황이 말락서스보다 훨씬 더 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낙담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가 끓어오름을 느꼈다.
‘내 힘이 어디까지 통용되는지 궁금하다!’
그리드는 미궁의 수호자 레이드를 통해서 검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방법을 습득한 바 있다. 부족한 파괴력은 컨트롤로 충당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퍼펑! 퍼퍼펑!
그리드의 손아귀에서 다인슬레프가 매번 다른 각도로 휘둘러졌다. 그러자 수십 줄기의 검기가 각기 다른 궤도로 날아갔다.
어떤 것은 당당하게도 정면으로, 어떤 것은 측면으로, 어떤 것은 아예 시야의 사각으로 날아가 후방에서부터 교황을 덮쳤다.
사방에 눈이 달리지 않은 이상 이 검기들을 일일이 마력으로 요격하기란 불가능할 터!
그리드가 회심의 미소를 그렸다.
하지만 교황은 그리드의 예상보다 더 녹록치 않은 존재였다.
최초에는 빛의 마력을 계속해서 전개, 그리드의 검기를 일일이 요격하던 교황이 이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극단적인 대응책을 선보였다.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
소리치는 교황을 중심으로 빛의 마력이 광범위하게 방출됐다.
쿠콰콰콰쾅!!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태양빛처럼 뻗어지는 백색 마력에 의해 묵색의 검기들이 속수무책으로 파쇄되어가는 게 아닌가?
“헐.”
광휘 속에 사그라지는 묵색 잔흔들을 목도한 그리드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진짜 세구만.”
이번에야말로 낙담했냐고?
아니, 그렇지 않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초장부터 전력을 다해주마!”
파그마의 후예에게는 고유 버프 스킬이 존재한다. 자기 자신에게밖에 사용하지 못하나 그 효력만큼은 각별하다.
“대장장이의 분노!”
[대장장이의 분노 효과가 발동합니다. 20초 동안 공격력과 공격 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우오오오옷!!”
퍼퍼펑! 퍼퍼퍼퍼펑!!
그리드가 다인슬레프를 휘두르는 속도가 2배가량 빨라졌다. 검기가 생성되는 속도가 2배 빨라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콰콰콰콰쾅!!
쉴 틈 없이 검을 휘두르는 그리드 탓에 폭우처럼 쏟아지는 검기의 향연!
“허…!”
교황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가 검기에 대항하기 위해서 연속적으로 빛의 마력을 발사했지만 빛의 마력이 생성되는 속도가 검기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급기야, 교황이 다시 한 번 더 자신을 중심으로 빛의 마력을 방출시켰다.
그는 이번에도 그리드의 검기를 일거에 소탕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결과가 발생했다.
쿠콰콰콰콰쾅!!
대장장이의 분노 효과까지 적용되어 더욱 강력해진 묵색 검기들이 교황이 방출한 빛의 마력에 소멸되기는커녕 오히려 빛의 마력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교황의 몸을 덮쳤다.
“더 강해졌다고? 크아아아악!!”
빛의 마력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해진 검기가 교황의 몸에 적중, 적중, 또 다시 적중했다.
그러자 뒤흔들리는 장내에 교황의 끔찍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리드의 시야에는 연신 시스템창이 갱신되고 있었다.
[13,3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13,91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14,08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상적인 건틀릿의 효과가 발동하였습니다. 대상을 두 번 공격합니다.]
[28,3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크리티컬!]
[31,05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검기의 폭격을 허용한 교황의 생명력 게이지가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드는 자신이 입힌 피해량과 교황의 생명력 게이지를 대조하여 교황의 총 생명력이 얼마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30만 정도인가?’
미궁의 수호자는 총 생명력이 120만을 초과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인간이 아닌 골렘이었다. 반면 교황은 인간이다. 타고난 생명력이 몬스터에 비해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점이 그리드의 자신감을 북돋아주었다.
‘지금 상태로 20대 정도만 때리면 잡을 수 있는 거네?’
굳이 이사벨의 도움 없이도, 혼자만의 힘으로 교황을 해치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하하하하핫! 교황은 죽어서 어떤 아이템을 드롭할지 기대되는군!!”
승리를 장담한 그리드가 광소를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쉴 틈 없이 검기를 날렸고, 교황은 무차별하게 검기에 얻어맞은 끝에 생명력이 4분의 1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때마침 초(超)와 대장장이의 분노 지속시간이 끝났다.
“여기서 쐐기를 박아주마!”
교황이 빈사 상태가 되어 휘청거리고 있다. 금실이 수놓아진 순백색 의복은 걸레짝이 된지 오래다.
그를 향해서 그리드가 힘껏 내달렸다. 그리고 10미터 간격을 순식간에 좁히더니 분노와 살의가 집약된 최강의 스킬을 사용했다.
“파그마의 검무, 살(殺)!!”
쿠오오오오!
압도적인 살기가 대기를 뜨겁게 달굴 지경이다.
다인슬레프의 묵색 검신 주변으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인슬레프가 교황의 심장에 꽂히려하는 순간이었다.
“여신의 숨결…!”
교황이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교황의 생명력 게이지가 즉각 완전하게 충전되는 게 아닌가?
‘힐량이 수십만이라고?’
교황의 마법 효과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연녹색 반투명한 실드가 전개되면서 살(殺)을 완벽하게 무력화시키기까지 했다.
그리드가 기겁했다.
“무적 스킬? 젠장, 당신이 수호기사야?”
오로지 수호기사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고 알려진 무적 스킬을 설마 교황이 사용할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리드가 황망해하며 물러섰다.
그에게 교황이 조소했다.
“여신의 성스러운 축복은 내 육신과 영혼을 완벽하게 보호해준다. 네놈이 아무리 날고 뛰어봤자 나를 해할 수 없는 법이다!”
교황은 근본적으로 사제다. 레베카의 딸들이 성기사의 정점인 존재라면, 교황은 사제의 정점에 오른 존재였다.
검기에 낭자당하여 피투성이가 됐던 육신을 멀쩡하게 재생시킨 그가, 중상을 입은 채 전투에서 물러나 있던 성기사들을 향해서 광역 힐을 사용했다. 그리고 강요했다.
“뭣들 하느냐! 당장 저 이교도를 처단하라!”
“…….”
성기사들은 현 교황이 저주스러웠다.
본교를 병들게 만드는 저 악독한 존재를 따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타락한 인물일지언정 교황으로 등극한 이상 여신의 대행자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깊은 신앙심을 보유한 고위 성기사들이, 끝내 교황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무기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일제히 그리드에게 덤벼들었다.
“아니, 데미안 님. 님은 뭐해요? 언제까지 구경만 할 겁니까?”
교황을 눈앞에 두고 피라미들을 상대하게 생긴 그리드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러자 넋 놓은 채 그리드의 전투를 구경하던 데미안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실례했습니다!”
고작 150레벨에 불과하면서 저 압도적인 교황과 동수를 이루다니!
도대체 그리드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수상할 지경이다.
깊은 의문과 혼란을 느끼면서도, 데미안은 린을 지키기 위한 일념으로 그리드에게 힘을 보탰다.
채챙! 챙챙!
성기사들의 검격을 일거에 방패로 막아낸 데미안이 반격을 가했다. 그의 검로는 예리해서 성기사들이 쉽사리 방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급기야 피를 쏟는 성기사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번 퀘스트로 능력이 각성되고 최강의 버프 스킬을 손에 넣은 데미안은 교단의 고위 성기사들을 압도할 정도로 강해졌던 것이다.
데미안 본인과 그리드 둘 모두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현재 데미안은 성기사 랭킹 1위인 토반보다 더 강할 정도였다. 그 혼자의 힘으로 23명 성기사들을 해치우진 못할지언정 잠시나마 발을 묶어놓는 건 가능했다.
“좋아! 여기는 맡기겠습니다!”
데미안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판단한 그리드가 다시금 교황을 표적으로 삼아 돌진했다.
그러나 이제 교황은 그의 접근을 허용할 생각이 없었다.
함부로 다가오지 말라는 듯, 교황이 연신 빛의 마력을 발사하여 그를 저지시켰다.
퍼펑! 콰콰콰쾅!
마력의 폭격이 그리드 1인에게 집중되었다.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는가 싶던 그리드였으나, 교황이 그리드의 이동 패턴과 반응 속도를 파악하고 빛의 마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자 이제는 힘들어졌다.
“으악~!”
퍼펑!
기겁하며 거북목 하는 그리드의 머리카락 위로 백색 섬광이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간다. 이어서, 숨 돌릴 틈도 없이 안면으로 또 다른 섬광이 꽂혀왔다.
쩌어엉!!
황급히 신성의 방패를 꺼내든 그리드가 방어했다.
그리고 알림창이 떠올랐다.
[신성의 방패의 내구력이 78 하락하였습니다.]
‘미친!’
신성의 방패가 유명한 이유는 암흑 마력에 강점을 보인다는 특징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특징을 배제하고 보더라도, 신성의 방패는 근본적으로 높은 방어력을 보유하고 있는 최상급 방패였다.
한데 그만한 방패조차도 교황이 발사한 마력 일격에 내구력이 8분의 1이나 감소해버렸다.
그리드가 한탄했다.
‘내 손에 있는 신성의 방패가 레전드리 등급이었다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텐데…!’
한시라도 빨리 교황을 처치하고 레전드리급 신성의 방패를 되찾고 싶다.
방패를 전면에 내세운 그리드가 앞으로 계속 전진했다.
“이교도 따위가 본교의 무구를 다루다니! 괘씸하다!”
콰앙! 콰앙! 콰앙!!
그리드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빛의 마력이 날아와 신성의 방패를 찌부러뜨렸다. 신성의 방패는 급속도로 처참하게 일그러졌고 급기야 균열까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리드가 일곱 번째 걸음을 내딛은 시점이었다.
교황은 이번 일격에 의해서 그리드의 방패가 완벽하게 산산조각 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드는 자신의 아이템이 파괴되는 꼴을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퍼엉!
육박해오는 백색의 섬광을 확인한 그리드가 신성의 방패를 회수했다. 그리고 이상적인 단검을 무장하더니 칼바람을 전개했다.
휘몰아치는 바람이 백색 섬광의 궤도를 살짝 비틀었다. 그러자 섬광이 아슬아슬하게 그리드의 뺨을 스쳐지나갔다.
쩌적! 서릿빛 오크 족장의 투구가 일부 부셔지며 그리드의 얼굴이 조금 드러났다.
그리드가 십년감수했다.
“이 방법이 통할 줄이야.”
교황이 이를 갈았다.
“잔재주가 많은 놈이로군!”
투구 쓴 놈의 대가리를 날려 버렸어야할 섬광이 애꿎은 곳으로 날아가 폭발하자 짜증을 느낀 교황이 재차 마력을 전개하려는 순간이었다.
어디서부터 날아온 것인지 모를 2개의 황금 원반이 그의 등에 꽂혔다.
“큭?”
교황이 당황하는 순간이었다.
신속한 몸놀림을 전개한 그리드가 교황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파그마의 검무, 연(聯)을 발동시켰다.
피핏! 피피피피피피핏!!
단검의 공격 속도는 대검과 비할 바 없이 빠르다. 그리고 신속한 몸놀림이 민첩성을 극대화시켜준 상태다.
이상적인 단검을 무장한 그리드가 펼치는 연(聯)은 무려 22연격이었다. 일격, 일격의 공격력이 다인슬레프를 무장했을 때보다야 훨씬 더 약했으나, 단검은 섬세한 컨트롤이 가능했기 때문에 교황의 급소가 집요하게 노려졌다.
"크아아악! 이놈!"
교황이 비명을 지르면서도 반격, 그리드의 심장을 정확하게 노리고 마력을 발사했다.
퍼엉!
"안 돼!!"
파티창에서 확인되는 그리드의 생명력이 단 일격에 절반 이하로 떨어졌음을 확인한 데미안이 절규했다.
생명력을 일격에 40퍼센트 이상 잃게 될 경우 스턴 상태에 빠지고 위험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법! 이대로는 그리드가 위험했다.
데미안은 당장 그리드에게 달려가서 힐을 해주고 보호해주고 싶었으나 성기사들이 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움직일 수 없었으니 절망할 따름이었다.
‘끝이다! 퀘스트는 실패야! 린 짱을 구하지 못하게 됐다!’
한데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주시하고 있노라니, 그리드는 물약을 복용한 것도 아닌데 잃은 생명력의 절반을 즉각 회복하였으며 스턴 상태에 빠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되레 교황의 심장을 향해서 단검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크윽!”
빛의 마력에 심장을 관통당한 순간, 아찔한 통증을 느낀 그리드가 휘청거렸다.
[14,56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52퍼센트의 생명력을 일격에 잃었습니다.]
붉게 물든 시야가 어질어질 회전한다.
보통 사람 같으면 스턴 상태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을 테지만 그리드는 멀쩡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파란색 반지로부터 녹색의 빛 무리가 발생했다.
[도란의 반지의 효과가 발동하였습니다.]
[7,280의 생명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잃은 생명력의 절반을 즉시 회복시켜주는 도란의 반지!
그 효과 덕분에 심장 부위에 뻥 뚫렸던 상처가 빠르게 재생되어갔다. 그리고 쓰러질 듯, 위태롭게 보이던 그리드가 이내 똑바로 섰다.
“뭣…?!”
방심하고 있던 교황의 심장에 +8이상적인 단검이 깊숙이 꽂혔다.
“쿨럭!”
검은 피를 토해내는 교황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가면 쓴 놈의 심장을 꿰뚫는 순간 해치웠다고 생각했건만, 놈이 죽기는커녕 도리어 반격을 가해오다니?
“이 괴물 같은 놈…! 여신의 숨결!!”
뿌예지는 시야 속에, 간신히 정신을 바로잡은 교황이 힐을 사용했다. 그리고 생명력을 완전히 회복하더니 그리드를 발로 힘껏 때렸다.
마법으로 대항하기 위해 거리를 벌리려는 의도였으나, 근본이 사제인지라 육체능력이 약한 교황의 발차기를 허용할 그리드가 아니었다.
덥썩!
교황의 발차기를 회피한 후 그대로 발목을 잡아챈 그리드가 음침하게 웃었다.
“당신, 엿 됐네?”
발목 잡힌 교황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헉…! 이것 놔라!”
“놓겠냐!!”
빠각!
그리드가 발버둥치는 교황의 안면을 이마로 가격했다. 그리고 코피를 쏟아내는 교황의 가슴을 어깨로 세게 밀쳤다. 그러자 교황이 바닥에 벌러덩 자빠져버렸다.
냉큼 그 위로 올라탄 그리드의 투구 속 눈동자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언제까지 힐로 버틸 수 있을지 실험해보자!!”
“이 노오오오옴!!”
푹! 푹푹! 푹푹푹!!
[크리티컬!]
[7,5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크리티컬!]
[6,98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크리티컬!]
[7,33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정확히 심장에 단검을 꽂아 넣자 무조건 크리티컬이 발동하고 있다.
그에 신난 그리드가 광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핫! 죽어라! 죽어!!”
“크아아아아아아악!”
푹푹푹!!
붉은 선혈이 낭자한다.
그것은 매우 끔찍한 광경이었다.
교황의 몸 위에 올라탄 기괴한 뼈 투구의 사내가 교황을 단검으로 찌르고, 찌르고, 또 찔러댔으니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튀었다.
장내를 가득 매우는 교황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투구 사내의 웃음소리가 한데 뒤섞여 소름을 유발시켰다.
“으, 으아아…”
사태를 목격하고 있는 사제와 성기사들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지금 그들의 눈에 비치는 뼈 투구 사내는 도살자이며 교황은 짐승이었다.
짐승이 도살자에게 도축당하고 있다.
불과 몇 십 분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 중 하나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곳 교황청이 도살장으로 전락한 순간이다.
“우웨엑!”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교황을 보면서, 급기야 일부 여사제들이 구역질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들의 눈에는 뼈 투구 사내가 악마처럼만 보였다.
저 악독한 교황을 처단하기 위해, 더 큰 악이 강림한 것이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데미안은 드디어 투구 쓴 사내가 누구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저자…!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얼마 전 TV에서 떠들썩하게 다뤘던 대로의 도살자잖아?’
윈스톤의 대로에서 자이언트 길드를 박살냈던, 기괴한 뼈 투구의 도살자!
소문에 의하면 사이코패스라더니, 실제로 보니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이코패스다.
‘굳이 저런 끔찍한 방식으로 싸워야하는 건가…!’
교황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몸을 제압한 후, 단검으로 심장을 계속 쑤셔대는 투구 사내의 모습은 썩 유쾌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투구 사내는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광소까지 터뜨리고 있었으니 오싹했다.
한편 교황은 작금의 사태를 믿을 수 없었다.
7천만 교인 위에 군림하며 각국의 왕들조차 고개를 조아리게 만들었던 내가! 여신의 대행자로서, 세상 그 누구보다도 신성한 존재인 내가!
차디찬 땅바닥에 쓰러진 채, 정체조차 알 수 없는 하찮은 놈에게 이딴 수모를 겪고 있다니!
“크아악!!”
격노한 교황이 자신의 몸을 중심으로 빛의 마력을 방출시켰다.
그 힘에 휩쓸렸다가는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판단한 그리드가 황급히 교황으로부터 떨어져나갔다.
콰콰쾅!!
[12,6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45퍼센트의 생명력을 일격에 잃었습니다.]
광범위하게 쏟아지는 빛의 마력을 완벽히 피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쩌적! 쩌적!
교황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던 서릿빛 오크 족장 투구가 내구력이 거의 다하여 균열을 일으킨다. 그 사이로 그리드의 얼굴이 거의 다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새로운 마법 주문을 다 외운 교황이 소리쳤다.
“여신의 격노!!”
파팟! 파파팟!
교황의 등 뒤로 지름 3미터 가량의 커다란 황금색 마법진 2개가 빠르게 생성됐다.
막대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리드가 경계하는 순간, 마법진들이 번쩍하더니 빛의 마력을 내뿜었다.
쿠와아아아앙!!
마치 대전차포를 보는 듯하다.
마법진들로부터 발사 된 빛의 마력은 교황이 직접 사용하던 빛의 마력보다 지름이 10배 이상 컸고 위력 역시 10배 이상 강력해 보였다.
어떤 것이라도 파괴할 수 있을 듯한 기세다.
“최강의 신성 마법이에요! 맞상대하지 말고 피해요!!”
여신의 격노를 방어할 수단은 이브리엘의 방패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린이 다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그리드는 물러서지 않았다.
템빨의 극치를 보여주리라!
그가 신들의 광물마저 초월한 최강의 광물, 파브라늄을 전면으로 전개했다.
쩌어어어어엉!!
2개의 자그마한 황금 원반이 떠오르더니 거대한 백색 섬광들에 정면으로 맞섰다.
쿠콰콰콰콰콰쾅!!
대지가 격동한다.
5백 년 동안 굳건했던 교황청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쓰러지는 기둥들이 사제와 성기사들의 몸 위로 떨어졌고, 곳곳에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린 짱!”
혼란 속에 다급히 달려온 데미안이 린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돌무더기들로부터 린을 보호해주었다.
“괘, 괜찮아? 린 짱?”
“데미안 님…”
피투성이가 된 데미안을 보며 린은 생소한 감정을 느꼈다.
자신은 이 따스함을, 왠지 오랫동안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저도…”
오로지 교황과 교단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존재해왔지, 누군가에게 지켜진 경험은 처음인 린이 드디어 이카엘의 검을 소환했다.
“저도…! 싸우겠어요!!”
교단에 버림받은 후 어찌할 바 모른 채 무기력하게만 있던 그녀가 의지를 표명한다.
“이 모든 게 여신님의 뜻이라면 저도 따를 거예요! 타락한 교황에게 신벌을 내린 후 무너진 교황청을 재건하겠어요! 그리고 데미안 님, 당신과 함께 레베카교를 다시금 올바른 길로 인도할 거예요!”
“린 짱…!”
플래그가 꽂혔다!
얼굴에 홍조를 띄운 데미안이 감격하는 그때 마침 이사벨이 등장했다.
“린! 무사한 거야?!”
루나를 막 제압한 순간.
이사벨은 교황청이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하며 린의 안위를 걱정했었다.
혹 진작 교황에게 목숨을 잃은 건 아닐까?
최악의 가정까지 하였었으나, 달려와 보니 다행히도 린은 무사했다.
안도되어 눈물이 흐를 지경이다.
훌쩍이는 그녀에게 린이 단호하게 소리쳤다.
“이사벨! 나는 교황 성하를 쓰러뜨릴 거야! 이건 죄악이 아니야! 여신님께서 바라시는 일이야!”
이사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힘을 합치자!”
교황을 지켜야할 최강의 성기사들이 되레 교황을 처단하고자 결심하는 그때였다.
무너진 교황청의 잔재가 산처럼 쌓여있는 중심부!
자욱히 발생하고 있는 연기 속에서부터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먹잇감… 뺏어가지 마라.”
그리드였다.
충격파로 인해 완파된 투구와 갑옷을 벗어던지며 나타난 그가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새끼…! 내 아이템 값 물어내라!”
반대편에서, 경악에 찬 교황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신의 격노를 막아내는 힘이라니…? 네놈의 그 황금 원반은 대체 무엇이냐…!”
교황만이 앉을 수 있는 황좌 앞.
반쯤 주저앉아 있는 교황은 누가 봐도 지쳐있었다. 평소의 위엄은 온데간데없었고, 머리는 산발이었다.
그리드가 다인슬레프를 거머쥐었다.
다시금 싸우려하는 그에게 데미안이 황급히 빛의 가호를 발동, 힘을 실어주었다.
사아아아아!!
다인슬레프의 묵색 검신이 황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다인슬레프에 귀속되어 있는 스킬, ‘금빛 섬광’의 전조였다.
“우오오오오!!”
쿠와아아아앙!!
온 힘을 쥐어짜듯 기합을 내지른 그리드가 다인슬레프를 크게 휘두르자, 일직선으로 쏘아진 금빛의 섬광이 비산해있는 교황청의 잔재들을 소멸시키며 날아가 교황에게 적중했다.
이때까지 그리드의 공격은 모두 물리력이었기에, 물리력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에 적합한 종류의 실드를 전개했던 교황이 경악했다.
“마력…?!”
그랬다. 금빛 섬광은 일직선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에게 마력에 비례한 피해를 입히는 스킬이었다.
지능 수치보다 근력 수치가 훨씬 높은 그리드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었던 스킬이, 지금 이 순간 절묘하게 작용하여 교황의 허를 찔렀다.
“크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는 교황!
그에게 근접한 그리드가 파그마의 검무, 연(聯)을 발동시켰다.
[연(聯)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피해량이 상승합니다. 대상을 가격하는 횟수가 5회 추가됩니다.]
파그마의 검무를 습득한 후 지금까지!
수백 번도 더 사용했던 연(聯)의 레벨이 드디어 2로 등극하였고, 묵색 검광이 17회 그려지며 교황의 전신을 베어나갔다.
“여신의 보호!!”
정신없이 검격에 얻어맞던 교황이 간신히 스킬을 사용한다.
연녹색 반투명한 실드가 전개되며 그의 몸을 완벽하게 보호했다.
“죽어라!!”
회심의 미소를 그린 교황이 빛의 마력을 전개, 반격했다.
“큭!”
광범위하게 전개되는 빛의 마력을 2개의 파브라늄만으로 방어하기란 불가능했다. 파브라늄은 그리드의 급소밖에 보호해주지 못했고, 그리드는 큰 피해를 입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는다.
[13,0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9,5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설이 된 자는 쉽게 쓰러지지 않습니다. 생명력이 최소치가 되어 5초 동안 모든 공격에 저항합니다.]
“뭣…! 네놈은 대체 뭐냐! 왜 쓰러지지 않는 것이냐!!”
기겁한 교황이 힐을 사용하고자 황망히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잔뜩 지친 상태에서 여신의 격노까지 사용한 그의 마력은 크게 손실되어 있었다. 마법을 원활하게 사용하는 게 불가능했다.
결국 그는 두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새로운 검무를 펼치며, 그리드가 소리쳤다.
“전설이다!! 파그마의 검무, 살(殺)!!”
[살(殺)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피해량이 대폭 상승합니다.]
쩌어어어어엉!!
교황이 마지막 마력을 쥐어짜 간신히 전개한 실드가 무참하게 깨어진다. 그리고 교황의 가슴을 거대한 대검이 꿰뚫었다.
“쿨…럭! 네놈…!”
붉게 충혈 된 눈으로 그리드를 노려본 교황이 검은 피를 토했다. 그리고 서서히 잿빛으로 화해갔다.
그리드의 시야에 수많은 알림창이 떠올랐다.
[레베카교를 타락시켰던 제13대 교황 드레비고를 해치웠습니다!]
[500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파티장 그리드가 ‘여신의 정수’를 획득하였습니다.]
[파티장 그리드가 ‘성스러운 빛의 갑옷’을 획득하였습니다.]
[파티장 그리드가 ‘성스러운 빛의 장갑’을 획득하였습니다.]
[파티장 그리드가 ‘성스러운 빛의 왕관’을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 145,350,000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크아아아아악!!”
누구보다도 치졸하며 악독하였으나, 누구보다도 고귀하며 신성하다 자청하였고, 또한 그렇게 대우 받았던 교황 드레비고가 긴 사투 끝에 최후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가 빛으로 화한 순간.
그리드의 몸 주위로 레벨 업을 상징하는 빛줄기가 무려 수십 차례 번쩍였다.
“헉…”
파티창을 확인한 데미안이 놀라 숨을 들이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150에 불과했던 그리드의 레벨이 단숨에 170으로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한 번에 20렙이나 오르다니…!’
그랬다. 7천만 교인 위에 군림했던 교황을 해치운 그리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한 경험치를 획득했다.
반면 데미안은 그리드와 파티를 맺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험치 획득량이 미비했다. 교황과의 전투에 거의 공헌하지 못했다고 시스템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파티를 맺을 당시, 모든 드롭 아이템은 그리드가 독식하기로 약조―일방적으로― 했던 바!
교황을 해치웠음에도 불구하고 데미안은 경험치와 아이템 면에서 정녕 아무런 이득을 취하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데미안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저자에게 버프 스킬을 걸어주고 성기사들의 발을 잠시 묶어놓은 것밖에 없다. 저자 혼자서 교황을 해치운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저자는 응당 취해야할 권리를 취한 것이고, 나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으니 부러워할 입장조차 못된다.’
교황에 의해 기괴한 뼈 투구가 박살난 이후.
아이디와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그리드를 바라보는 데미안의 눈빛에는 호감만이 가득했다.
‘저자 덕분에 히든 직업 전직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저 기쁘고 감사할 따름…’
알림창들이 갱신되고 있었다.
[<신의 철퇴> 퀘스트를 성공하였습니다.]
[유니크 클래스 <여신의 대행자>로 전직하였습니다.]
[교황이 될 자격을 얻었습니다.]
[교황 후보로 선출 될 가능성이 생깁니다.]
[교황으로 등극할 경우 레베카 교단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수천만 교인을 거느리게 되는 그날까지 건투하시기 바랍니다.]
[여신의 숨결 스킬이 생성됩니다.]
[여신의 숨결 스킬을 마스터하였습니다.]
[여신의 보호 스킬이 생성됩니다.]
[여신의 보호 스킬을 마스터하였습니다.]
[신탁 스킬이 생성됩니다.]
[위엄 능력치가 개방됩니다.]
[신성력 능력치의 성장 속도가 3배 상승합니다.]
<여신의 숨결>
자신의 생명력을 100퍼센트, 파티원의 생명력을 70퍼센트 회복합니다.
스킬 마나 소모:최대 마나의 30퍼센트.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10분.
<여신의 보호>
적의 공격을 1회 무효화시키는 절대 방어의 보호막을 전개합니다.
스킬 마나 소모:2,000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1시간.
<신탁>
레베카 여신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여신은 당신에게 많은 조언을 해줄 것입니다. 그 조언에 따라 행동할 경우 큰 이익을 취할 수 있습니다.
스킬 발동 조건:무작위
‘여신의 숨결과 보호… 교황 드레비고는 몇 분 간격으로 사용하던데, 그건 NPC 보정 효과였고 사실은 쿨타임이 엄청 긴 마법들이었구나.’
실망했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데미안은 전율하고 있었다.
‘도통 실감이 안 난다. 내가 유니크 직업으로 전직하다니…’
히든 클래스에도 등급이 있다.
레어, 에픽, 유니크, 레전드리!
그리고 현존하는 히든 클래스 대부분은 레어 등급이었다.
에픽 등급 히든 클래스 전직자는 단 3명에 불과했고, 유니크 이상 등급의 히든 클래스 전직자는 밝혀진 바 없다.
대부분의 유저들과 전문가들은 유니크 이상 등급의 히든 클래스 전직자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으리라 추측하고 있었다.
한데 지금 이 순간!
오로지 그리드 덕분에 전직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었던 데미안이 무려 유니크 클래스로 전직하고 말았다.
공짜로 전직한 마당이니 레어 클래스도 감지덕지할 판국에 유니크 클래스라니!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한 데미안이 그리드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나이 서른둘 먹도록 특별한 성취감 한 번 느껴보지 못하고 평범하게만 살아왔던 내게 이만한 행운을 안겨주다니…! 그리드, 당신은 내 평생의 은인이다! 당신이 사이코패스라도 상관없어, 내게 있어서만큼은 당신이 천사야! 언젠가… 언젠가 기필코 보은하겠다!!’
그리드는 모르는 일이다.
그가 교황을 해치운 이유는 오로지 스스로의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함이었지,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데미안의 퀘스트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는 지금 이 순간 데미안이 히든 클래스로 전직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리드가 데미안의 은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훗날 데미안은 그리드에게 반드시 은혜를 갚게 될 터이니, 그리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든든한 조력자를 얻게 된 셈이었다.
“힘들다.”
교황을 쓰러뜨린 후.
스테미너가 고갈되어 바닥에 주저앉았던 그리드가 이내 大자로 누워버렸다.
“손가락 하나 못 움직이겠네.”
교황과의 전투 여파로 인하여 교황청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몇 개의 기둥만 간신히 버티고 서있었고, 외벽과 천장은 완전히 무너져서 더 이상 건물이라고 표현할 수도 없었다.
무너진 천장을 통해서 푸른 하늘을 올려보고 있는 그리드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득템이다.’
<성스러운 빛의 갑옷>
등급:레전드리(세트)
내구력:924/924 방어력:872
*높은 확률로 암흑 계열 마법에 완전 저항.
*회복 계열 마법의 효력 300퍼센트 상승.
*물리 공격으로 받는 피해 40퍼센트 경감.
*마법 공격으로 받는 피해 50퍼센트 경감.
-세트 아이템 3개 장착 시:방어력+500 생명력+6,000
전설의 대장장이 파그마가 제5대 교황 프렌스를 위해서 제작한 갑옷입니다.
신의 광물 아다만티움으로 제작한 이 갑옷 덕분에 프렌스는 야탄교와의 전쟁에서 몇 번이고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오로지 프렌스만을 위한 맞춤 갑옷이기 때문에 프렌스 이후의 교황들은 이 갑옷을 무장하지 못하고 보관만 해왔습니다.
사용 조건:프렌스.
무게:1,517
<성스러운 빛의 장갑>
등급:레전드리(세트)
내구력:300/300 방어력:130 공격속도:+20% 명중률:+40%
*보통 확률로 ‘5연타’ 발동.
*높은 확률로 ‘반격’ 발동.
-세트 아이템 3개 장착 시:방어력+500 생명력+6,000
전설의 대장장이 파그마가 제5대 교황 프렌스를 위해서 제작한 장갑입니다.
검술 솜씨가 미약했던 프렌스가 이 장갑만 착용하면 검술의 달인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오로지 프렌스만을 위한 맞춤 장갑이기 때문에 프렌스 이후의 교황들은 이 장갑을 착용하지 못하고 보관만 해왔습니다.
사용 조건:프렌스
무게:10
<성스러운 빛의 왕관>
등급:레전드리(세트)
내구력:180/180 방어력:20
*지능+300
*위엄+200
-세트 아이템 3개 장착 시:방어력+500 생명력+6,000
전설의 대장장이 파그마가 제5대 교황 프렌스를 위해서 제작한 왕관입니다.
이 왕관을 쓴 후부터 프렌스는 더욱 더 총명하고 위엄 넘치는 교황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오로지 프렌스만을 위한 맞춤 왕관이기 때문에 프렌스 이후의 교황들은 이 왕관을 착용하지 못하고 보관만 해왔습니다.
사용 조건:프렌스
무게:25
왕관의 경우, 투구와 달리 방어력이 형편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세트 아이템 효과 때문에 부족한 방어력을 충당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갑옷과 장갑의 성능은 두 말 할 나위 없이 최고고.’
그리드가 획득한 아이템들을 장착해보았다.
[아이템 사용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여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성스러운 빛의 갑옷>의 방어력이 55퍼센트 하락합니다.]
[<성스러운 빛의 갑옷>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페널티가 줄어듭니다.]
[<성스러운 빛의 장갑>의 방어력이 55퍼센트 하락합니다.]
[<성스러운 빛의 장갑>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페널티가 줄어듭니다.]
[<성스러운 빛의 왕관>의 방어력이 55퍼센트 하락합니다.]
[<성스러운 빛의 왕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페널티가 줄어듭니다.]
“킁.”
레전드리 아이템의 경우 사용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페널티가 무려 55퍼센트나 됐다.
그로 인해서 그리드가 성스러운 빛의 갑옷을 장착할 경우 적용되는 방어력은 불과 393, 성스러운 빛의 장갑을 장착할 경우 적용되는 방어력은 59, 성스러운 빛의 왕관을 장착할 경우 적용되는 방어력은 9에 불과했다.
하지만 3개의 아이템을 장착하면서 발생하는 세트 아이템 효과를 감안해보면 결코 낮은 방어력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옵션 효과는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그리드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성능이야 뭐… 아이템 이해도를 높이다 보면 자연히 상승하게 될 테니 너무 아쉬워할 필요 없어.’
실제로 다인슬레프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이해도가 높아져서 지금은 페널티를 20퍼센트 정도밖에 얻지 않고 있었다.
‘아쉬워할 부분은 성능이 아니라 이게 전용템이라는 사실이다. 경매장에 올려 봤자 아무도 안 사겠지… 썩을.’
생전 처음으로 레전드리 드롭템을 획득했건만, 왜 하필 전용템이란 말인가!
치를 떨고 있는 그리드의 눈앞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레베카교를 구하라!> 퀘스트를 성공하였습니다.]
[레베카 교단과의 호감도가 최대치가 되었습니다. 레베카 교인들이 당신에게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보냅니다.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레베카의 딸 이사벨과 대화하십시오. 그녀가 파브라늄에 여신의 축복을 내려줄 것입니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 덕분에 슬슬 팔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획득한 아이템들을 다시 해제하고 끙끙, 앓는 소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리드가 주변을 살폈다.
이사벨과 린, 그리고 데미안을 비롯한 수십 레베카 교인들이 모두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드…”
이사벨이 그리드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감정이 복받쳐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고마워. 당신 덕분에 여신님의 명예를… 린과 모두를 지킬 수 있었어.”
꾸벅.
이사벨이 깊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그녀의 뒤편에 도열해있던 다른 성기사와 사제들도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
엄숙한 분위기다.
지난 2년여 동안, 교단을 타락시키며 자신들에게 고통과 상처를 안겨주었던 교황을 해치워준 그리드를 그들은 진정 구원자라 여기고 있었다.
‘멋지다!’
완전히 만화 속 한 장면이 아닌가?
데미안이 그리드에게 선망의 시선을 보냈다.
그가 보기에 그리드는 만화에나 등장할 법한 영웅 같았다.
모두를 지켜주기 위해서 악과 맞서 싸우고, 급기야 악을 물리친 뒤 모두에게 존경 받게 되는 위대한 존재 같아 보였다.
데미안이 꿈꿔 왔던, 전형적인 주인공의 모습이다. 데미안은 그리드를 진심으로 동경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맨입으로? 정말로 고맙다면 성의를 보여야 예의 아니냐? 레베카교 부자라며?”
손가락으로 동전 모양을 만든 그리드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요구했다.
“수고비 내놔. 보다시피 교황과 싸우다가 투구와 갑옷이 파손 되서 물질적인 피해를 너무 많이 입었어. 그리고 이사벨 네가 신성의 방패를 돌려주지 않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었던지라 그에 대한 보상도 청구해야겠고.”
“…….”
그리드는 탐욕이라는 뜻의 영어다.
모두 다 할 말을 잃고 있는 와중에, 실망한 데미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닉값 하네…”
이후.
그리드는 이사벨과 린을 따라서 이동했다. 그리고 무너진 교황청의 중심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교황청이 파괴된 여파에 휩쓸려 놓고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아 더욱 신비롭게 보이는 레베카 여신상이 서있었다.
그리드가 이사벨에게 2개의 황금 원반을 건네주었다.
“이 녀석들에게 여신의 축복을 내려줘.”
이사벨이 황금 원반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슴에 끌어안은 채 무릎 꿇고 앉아 여신께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잠시 후, 하늘에서부터 하염없이 따스한 빛이 내려와 황금의 원반들을 감싸주었다.
띠링~
[파브라늄에 레베카 여신의 축복이 깃들었습니다.]
[파브라늄이 회복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회복 능력?”
깜짝 놀란 그리드가 황금 원반들을 감정했다.
<파브라늄으로 제작한 황금 원반>
내구력:무한
전설의 대장장이 파그마와 전설의 대마법사 브라함이 합작하여 탄생시킨 최강의 광물, 파브라늄으로 제작한 황금 원반입니다.
기본적으로 주인을 중심으로 자전하며 주인을 보호하지만, 주인이 내리는 명령을 받들어 다른 행동을 취하기도 합니다.
*레베카 여신의 축복을 받아 힐링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주인의 생명력 회복 속도를 300퍼센트 상승시켜줍니다.
무게:5
“헐.”
의지를 갖은 것만으로 모자라 스킬까지 습득하는 광물이었다니? 상상조차 못했다.
미래가 밝다.
앞으로 도미니언 신과 쥬다르 신, 그리고 야탄 신의 축복까지 받아야하는데, 그때마다 파브라늄은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게 될 터이니 그리드로서는 엄청 크게 기대가 됐다.
하지만 역시나 야탄 신이 문제였다.
야탄교는 나를 철전지 원수로 여기고 있는 바!
과연 그들이 야탄 신의 축복을 내려줄까?
한숨 쉬고 있는 그리드에게,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데미안이 다가왔다.
“그리드 님!!”
“뭡니까?”
갑자기 소리치는 데미안 탓에 깜짝 놀란 그리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에게 데미안이 절실하게 부탁했다.
“그 황금 원반에 뺨을 비빌 수 있게 해주십쇼. 제 평생의 소원입니다.”
그리드가 어리둥절해했다.
“왜?”
데미안이 발정난 황소처럼 콧김을 내뿜으며 설명했다.
“방금 거기에 이사벨 쨩의 가슴이 닿았지 않습니까? 저는 이사벨 쨩의 가슴 온기를 느끼고 싶은 겁니다!”
“…?”
멀쩡하게 생긴 녀석이 헛소리를 지껄이자 그리드가 귀를 의심하는 순간이었다.
이사벨이 데미안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세게 때렸다.
“커… 커억…! 이사벨 쨩의 팔꿈치… 하악…”
게거품을 물고 쓰러진 데미안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행복한 표정을 지은 채 꿈틀거렸다.
그에 소름 돋을 정도로 불쾌해진 이사벨이 그를 발로 뻥 차서 멀찍이 날려버렸다. 그리고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그리드에게 신성의 방패를 건네주었다.
“교황청을 재건하려면 많은 자금이 필요해. 공교롭게도 수고비를 지불할 수는 없지만… 약속대로 이건 돌려줄게.”
수개월 전, 야탄의 신도에게 두 눈 뜨고 강도당했던 레전드리급 신성의 방패를 되돌려 받는 순간이었다.
<완전한 신성의 방패>
등급:레전드리
내구력:680/680 방어력:370 마법 저항력:280
*높은 확률로 암흑 계열 마법에 완전 저항.
*스킬 ‘신성한 빛’ 생성.
*스킬 ‘신의 가호’ 생성.
대단한 실력과 잠재력을 지녔지만, 경험과 명성은 비교적 부족한 이름 모를 장인이 제작한 명품 방패입니다.
레베카교의 사제, 카서스의 신성력을 통해서 빛의 여신 레베카의 가호가 깃들었습니다. 암흑 계열 마법에 강력한 면모를 보이며, 마족과 야탄의 신도들은 이 방패와 마주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합니다.
사용 조건:레벨 190 이상. 근력 500 이상. 신성력 1,000 이상. 레베카교의 성직자.
무게:800
“…뭐, 이거면 됐다.”
그리드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신성한 빛의 갑옷에 이 방패까지 있으면 야탄의 종들과도 싸워 이길 자신감이 샘솟았기 때문이다.
‘그래, 야탄 신의 축복을 내려주지 않겠다고 하면 힘으로라도 축복을 내리게끔 해주마.’
다짐하는 그에게 이사벨이 조심스레 물었다.
“바로 떠날 거야?”
아쉬워하는 눈치다.
하지만 그리드는 바쁜 사람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윈스톤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야 장가를 가서 아리따운 신부와 뜨거운 첫날밤을 보내지 않겠는가!
“떠나야지. 아, 혹시 도미니언교와 쥬다르교에 입김 좀 넣어줄 수 있겠어? 도미니언 신과 쥬다르 신에게도 축복을 받아야만 하는데.”
이사벨이 활짝 웃었다.
“도미니언교와 쥬다르교는 본교와 형제나 다름이 없어. 도미니언교와 쥬다르교의 교주들은 본교의 교황께 충성을 서약하기도 하고… 내가 네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네.”
그리드에게 커다란 도움을 받아놓고도 특별히 보답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아쉬웠던 차다. 그녀는 그리드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 매우 기뻐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내가 소개서를 작성해줄게. 소개서를 보면 교주들께서 기꺼이 신의 축복을 내려주실 거야. 마음 같아서는 함께 동행 하고 싶지만… 미안.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고 교황청을 재건하기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아.”
“…….”
그리드는 이사벨에게 발로 걷어차이고 저 멀찍이 날아간 후, 아직까지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발작을 일으키고 있는 데미안을 확인했다. 그리고 절레절레 고개 저으며 답했다.
“미안해할 필요 없어. 너처럼 괴팍한 여자애랑 동행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소개서면 충분하다.”
“뭐, 뭐라고?”
마침 호감을 느끼고 있던 상대에게 심한 소리를 듣게 된 이사벨이 울상 지었다. 린이 책망하는 시선을 보냈지만, 여심을 모르는 그리드는 의아해할 뿐이었다.
소개서를 받은 후.
그리드는 이곳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도미니언교를 향해서 떠났다.
쥬다르교와 도미니언교는 레베카교의 종파다.
하지만 세 종교는 대립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이가 매우 좋았다. 쥬다르교와 도미니언교가 레베카교를 어버이처럼 섬기는 형태였다.
건강과 지혜의 신 쥬다르와 전쟁의 신 도미니언이 빛의 여신 레베카의 자식들이었기 때문이다.
세 종교 모두 최고신은 레베카 여신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다만, 도미니언교의 교인들은 강력한 무력을, 쥬다르교의 교인들은 건강과 지혜를 숭상하였고 레베카교의 교인들은 오로지 정의를 추구할 뿐이라는 것이 차이점일 뿐이다.
한데 당대 쥬다르교의 교주는 야망이 큰 인물이었다.
“제5대 교황 프렌스 님께서는 본디 본교의 교주셨다. 하지만 당시 레베카교에는 교황으로 추대할만한 인물이 없었던 탓에 본교로부터 프렌스 님을 모셔가 교황의 자리에 앉혔던 게다.”
진실이다.
제5대 교황 프렌스는 사실 쥬다르교의 교주였다. 하지만 인재가 부족했던 레베카교가 그를 초빙, 교황으로 추대했었다.
“그리고 현 교황 드레비고를 보라. 그자는 성스러운 교황의 지위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다. 다들 쉬쉬하고 있으나, 레베카교는 드레비고로 인해 타락해가고 있다. 그는 응당 사퇴해야 마땅하며, 새로운 인물이 교황이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새로운 인물이라 함은 당연 나다.”
쥬다르교의 제11대 교주, 파스칼!
그는 명문가 출신으로 제5대 교황 프렌즈의 후손임을 자칭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