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좋아, 완벽해.”
아이템을 제작하기 위한 모든 준비 작업이 끝났다.
나는 금일 오전 이벨린으로부터 전달 받은 무기 제작법을 꺼내들었다.
<‘가시’의 제작법>
습득 조건:고급 대장장이 마스터리 5레벨 이상.
*가시:검신에 날카로운 소형 칼날들이 가시처럼 솟아있는 형상의 프람베르그입니다. 그 모습이 장미의 줄기를 연상하게 합니다.
대상은 이 무기에 스치기만 해도 고통스러운 상처를 입습니다.
사용 조건:레벨 210 이상.
사용 조건이 240레벨 이상이었던 질풍창의 경우, 제작법을 습득하기 위한 조건이 고급 대장장이 마스터리 4레벨 이상이었다.
한데 가시는 사용 조건이 질풍창보다 30이나 낮으면서 제작법을 습득하기 위한 조건은 오히려 더 높았다.
‘그만큼 이 무기의 제작 난이도가 높다는 뜻이겠지.’
본래 프람베르그는 타오르는 불길, 혹은 물결을 형상화한 무기다. 하지만 가시는 이름 그대로 가시를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프람베르그보다 제작 난이도가 높은 듯하다.
‘검신에 가시 같은 소형 칼날들이 솟아있게 만들어야 한다라… 그 소형 칼날들이 쉽게 부러지지 않도록 제작하는 게 관건일 텐데… 골치 아프군.’
나는 일단 제작법을 펼쳤다. 그러자 알림창과 함께 가시의 상세 정보가 시야에 떠올랐다.
[‘가시’의 제작법을 습득하였습니다.]
<가시>
등급:레어~레전드리
레어 등급 정보
내구력:135/135 공격력:190
방어구 관통력:+30%
*공격 성공시 무조건 출혈 유발.
*공격한 대상의 치유능력을 30퍼센트 감소.
에픽 등급 정보
내구력:160/160 공격력:230
방어구 관통력:+35%
*공격 성공시 무조건 출혈 유발.
*공격한 대상의 치유능력을 35퍼센트 감소.
유니크 등급 정보
내구력:191/191 공격력:280
방어구 관통력:+45%
*공격 성공시 무조건 출혈 유발.
*공격한 대상의 치유능력을 40퍼센트 감소.
레전드리 등급 정보
내구력:226/226 공격력:344
방어구 관통력:+60%
*공격 성공시 무조건 출혈 유발.
*공격한 대상의 치유능력을 50퍼센트 감소.
*스킬 ‘찢어발기기’ 생성.
검신에 날카로운 소형 칼날들이 가시처럼 솟아있는 형상의 프람베르그입니다. 그 모습이 장미의 줄기를 연상하게 합니다.
대상은 이 무기에 스치기만 해도 고통스러운 상처를 입습니다.
사용 조건:레벨 210 이상. 근력 700 이상. 민첩성 300 이상. 고급 소드 마스터리 2레벨.
무게:300
“찢어발기기? 스킬 이름 한 번 살벌하네. 스킬 찢어발기기의 정보.”
<찢어발기기>
대상의 몸을 가시로 무참히 찢어발깁니다. 대상은 현재 생명력의 60퍼센트에 해당하는 고정 피해를 입습니다.
스킬 마나 소모:500
스킬 사용 조건:대상을 구속한 상태여야만 함.
‘피해량이 현재 생명력의 60퍼센트? 대상이 개피일 경우에는 효과가 미비한 스킬이지만… 대상이 만피이고 특히 탱커일 경우에는 사기라고 말해도 좋을만한 효율을 가진 스킬이군.’
사용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워 보이긴 하지만 과연 레전드리 등급 무기에나 귀속될만한 최상급 스킬이다.
최근 컨디션도 좋은 바.
나는 이번에야말로 레전드리 아이템의 제작에 성공해보일 것이다.
‘시작해보자.’
이벨린이 공수해온 가시의 제작 재료들을 펼쳐놓은 나는 손에 망치를 쥐었다. 그리고 제작에 착수하려는데…
“$)@*U$!!”
“…!!”
채앵! 챙챙!
“왜 이렇게 시끄러워?”
대장간 밖에서부터 사람들의 고함소리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벽 너머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인지라 소란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게 아쉽다.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는 법인데 말이지…”
대낮부터 술 처먹고 부모도 못 알아보게 된 사람끼리 시비가 붙어서 싸우는 걸까?
남의 마누라 잘못 건드렸다가 칼부림 일어난 걸 수도…
마음 같아서는 창가에서라도 싸움을 구경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유희를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내게는 없다.
“남 일에 신경 쓸 시간에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자.”
폰이 3일 내로 질풍창의 대금을 입금해주기로 약속했다. 내 목표는 그때까지 이벨린의 무기도 완성시켜서 한 번에 많은 대금을 챙기는 것이다.
그리고 집의 빚을 깔끔하게 갚고 남은 돈으로 외제차를 한 대 구입할 계획이다.
‘내 나이도 나이니만큼 어차피 차는 필요한 거고… 기왕이면 좋은 차를 사서 동창회에 끌고 가고 싶다. 그리고 나를 농락한 아영이가 조금이라도 후회하게끔 만들어주고 싶어.’
따앙! 따앙!
담금질하는 손에 나의 절실한 마음이 깃들기 바란다.
***
콰콰쾅!
쩌정! 쩌엉!
땅이 무너지고 나무가 쓰러진다.
불과 물이 허공에 난무하고 검과 주먹이 교차했다.
단순한 소모전으로는 쉽사리 승부가 나질 않았다.
레가스의 집요한 정권 찌르기와 발차기로부터 벗어나 거리를 벌리는데 성공한 미하라가 한 번에 큰 마나를 소모했다.
화르륵!!
거대한 화염이 일직선으로 뿜어져 레가스의 안면을 덮쳤다. 맹렬한 기세가 화염방사기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레가스는 허리를 가뿐하게 뒤로 젖혀서 쉽게 회피했다.
마법이 빗나갔음에도 미하라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하길 기다렸다는 듯이 물 흐르듯이 공격을 연계했다. 무방비로 드러나 있는 레가스의 복부에 검을 일직선으로 꽂아 넣는다. 그건 누가 봐도 피하기 어려운 공격이었다.
하지만 레가스는 표범처럼 유연하고 잽쌌다. 몸을 굴려서 검을 피하더니 또 곧바로 일어나 발을 위로 올려 찼다.
쩌엉!
미하라 또한 검술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금세 균형을 바로잡고 날아온 발차기를 검으로 막아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커다란 화염을 소환, 레가스를 공격했다.
펑펑!!
레가스가 이번에는 화염을 피하지 않았다. 강기 실은 주먹을 휘둘러서 화염을 아예 날려버렸다.
비산하는 화염의 잔재 너머로부터 미하라의 검이 날아들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검을 피한 레가스가 실망한 기색을 금치 못했다.
“연속으로 같은 패턴의 공격입니까? 생각보다 단순하시군요. 이래서야 수련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럴 리가 있겠냐? 약간의 변형을 가했다! 그리고 애초에 이건 수련 따위가 아니야!”
파치칙!
“……!”
레가스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미하라의 검에 전격이 깃들어 있음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퍼어어어어엉!!
연달아 발생한 불꽃 탓에 건조해져 있던 공기가 전격의 영향을 받아 폭발을 일으켰다.
그것도 레가스의 얼굴 바로 옆에서!
“크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는 레가스의 눈앞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왼쪽 눈의 시력을 상실하였습니다.]
[상처가 회복될 때까지 모든 스탯이 30퍼센트 하락합니다.]
[머리가 핑핑 돕니다.]
스탯 저하에 이어 상태 이상 혼란까지 동반됐다.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리는 스턴보다야 백번 낫지만, 혼란 역시 최악의 상태이상 중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레가스는 스스로 몸을 제어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이런 기본적인 속성 연계에 당하다니… 내 수련이 아직 많이 부족하구나.’
레가스가 한탄하였고, 미하라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한 방에 끝내주마!’
최강의 마법을 사용하겠다고 결심한 미하라가 마법의 캐스팅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마석과 보석들을 꺼내들었다.
“사파이어의 투명함은 얼음이 되어 냉혹함의 상징이 되고 루비의 강렬함은 불꽃이 되어 분노의 상징이 된다. 오망성 왼쪽에 작은 에메랄드. 육망성 왼쪽에 큰 에메랄드. 자비로운 바람에 격노가 깃들어 폭풍이 된다.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기운이 폭풍에 실려 하나가 되니 그 힘은 인지를 초월할지다!”
미하라가 휘청거렸다. 한 번에 모든 마나를 사용하여 정신력이 극한까지 소모된 탓이다.
그리고 집 한 채쯤은 가뿐히 삼켜 버릴만한 크기의 폭풍이 현현하였다.
자신의 마법에 매료된 미하라가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핫! 어떠냐!! 야탄의 신도 180명을 일거에 몰살시켰던 내 최강의 기술이다! 그 이름하야 미하라 특제 아이스 파이어 울트라 스톰이다!!”
과연, 맹렬하게 휘몰아치는 폭풍에는 얼음과 불의 기운이 공존하고 있었다.
수천 개의 날카로운 얼음 파편이 폭풍 주변을 회전하며 칼날의 역할을 수행하였고, 폭풍 속에는 응축 된 불의 기운이 고요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이 폭풍은 레가스를 집어 삼키고 난도질한 뒤 폭발하여 레가스를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한줌 재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2초 전이었다면 말이다.
“위력은 상상이 가지만, 주문이 너무 길지 않았습니까?”
피투성이 레가스가 어느새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발차기 자세를 취하였는데, 그의 양발에는 마치 뇌신의 기운을 연상하게 만드는 짙은 노란색 강기가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미하라는 아차 싶었다.
“혼란에서 벌써 회복되었다고?”
상태이상 혼란의 평균 지속 시간은 5초다. 그리고 마석과 보석의 힘을 빌린 미하라가 궁극기를 캐스팅하는데 소요하는 시간은 평균 3초다.
미하라의 계산대로라면 레가스가 혼란에서 회복되기 전에 폭풍이 레가스를 이미 덮쳤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의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되려 혼란스러워하는 미하라에게 레가스가 설명해주었다.
“무도란 육체의 단련뿐이 아니라 정신의 단련 또한 중요시합니다. 무도가의 정신력이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정해야하는 게 인지상정인 것이죠!”
무도가는 타 클래스보다 상태이상에서 벗어나는 속도가 빠르다. 그 점을 설명해주려고 몇 마디 하는 사이 폭풍이 레가스를 덮쳤다.
레가스는 이미 한쪽 눈을 잃고 있는 바. 그로 인한 충격으로 온전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터!
이내 폭풍에 완전히 잡아먹히는 레가스를 확인한 미하라가 웃음을 되찾았다.
“크하하핫! 그러면 그렇지! 멍청한 놈! 네놈의 죽음은 예정 된 수순이었다!”
랭커에게 죽음은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경험치 손실은 즉 시간과 직결되기 때문에 후발 주자들에게 자리를 위협받을 수 있다.
미하라는 경험치를 잃고 원통해하는 레가스의 몰골을 보고 싶었다.
츠카카카카칵!!
얼음의 파편들이 무엇인가와 충돌하여 소름 돋는 기성을 흘렸다. 미하라는 레가스의 살과 뼈가 찢겨나가는 소리인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이어서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폭음이 발생했다.
퍼어어어엉!!
폭풍 속 불의 핵이 폭발한 것이리라!
일대가 쑥대밭이 되었다.
미하라는 그때 발생한 후폭풍에 의해 멀찌감치 날아가 뒹굴었다. 하지만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잿더미가 되었을 레가스의 모습을 기대하며 환호할 뿐이다.
한데 자욱한 먼지와 안개가 걷히고 모습을 드러낸 레가스는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온 몸이 넝마가 되어 반송장이라고 표현할 수는 있었으나, 미하라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였다.
미하라는 여전히 레가스의 발끝에 머물러 있는 노란색 강기에 주목했다.
“설마 네놈… 내 필살기를 발차기 따위로 소멸시킨 것이냐!”
파앗!
레가스는 너무 큰 상처를 입은 탓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도약했다. 그리고 미하라를 공격범위에 넣음과 동시에 회전하며 발을 뻗었다.
그것은 태권도의 뒤돌려 차기와 흡사했다.
말락서스 레이드 성공으로 레벨을 올리고, 그때 습득한 새로운 기술 ‘황룡각’을 태권도에 접목시킨 레가스의 고유 합성 스킬이었다.
뻐어어엉!!
승리를 확신하여 최강의 마법을 사용한 게 실수다. 한 번에 모든 마나를 손실하고 정신적인 한계를 맞이했던 미하라는 레가스의 발차기에 저항하지 못하고 가슴을 걷어차였다.
“크어억!!”
체인메일과 살이 꿰뚫리고 뼈가 으스러진다.
[회심의 일격을 당했습니다!]
[사망하였습니다.]
‘이런 젠장!’
억울해서 이를 가는 미하라의 시야가 잿빛으로 물들었다.
그가 빛으로 화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레가스가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힘들다.”
당장 그리드에게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생명력과 스테미너가 바닥나서 움직일 수 없었다. 물약을 복용하고 치유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
모래를 들끓게 만들었던 태양이 자취를 감추고 하얀 달이 떠올랐다.
차갑게 식은 사막의 밤.
전장을 살피는 아셀라스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평소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의 이런 모습은 희귀한 것이다.
“보면 볼수록 상식을 초월하는 화력이다.”
단 10명.
단 10명의 적에게 200명의 길드원이 도륙당하고 있는 중이다.
아셀라스의 시선은 지슈카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그녀가 활시위를 한 번 당길 때마다 자이언트 길드원 최소 3명이 중상을 입고 전투에서 이탈했다.
신궁이라는 거창한 칭호로 불리기에 가소롭다 무시하였건만, 이제 보니 신궁이라는 칭호는 절대로 과한 게 아니었다.
‘안 그래도 궁수의 공격력은 최강인데 지슈카의 속사는 매번 급소에 백발백중이다. 저래서야 무조건 치명타가 터지는 셈이니 일반 길드원 중에 저 일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이언트 길드원들의 평균 레벨은 130에 육박했다. Satisfy 전체 유저의 평균 레벨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었으나 체다카 길드원들 앞에서는 피라미들일 뿐이다.
기본 능력치의 차이가 워낙 큰 탓에 물량으로 밀어붙여봤자 승산이 없었다.
‘지슈카만 제압하면 어찌 될 듯하나…’
아셀라스의 명령을 받든 길드원들은 오로지 지슈카만을 집요하게 노리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팔라딘 랭킹 1위 토반을 필두로 한 체다카 길드의 방위선은 단단하여 돌파하기엔 불가능해 보였다.
벌써 2시간 이상 전투가 지속되면서 적들이 지치기는커녕 아군의 숫자만 줄어드는 실정이니, 아셀라스는 헛웃음만 나왔다.
‘우리보다 족히 3달 늦게 Satisfy를 시작한 주제에…’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체다카 길드가 L. T. S시절과 비교하면 많이 약해보였다. 솔직히 무시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그들은 여전히 강했다.
‘본래라면 저들을 완벽하게 제압할 계획이었지만… 이래서야 안 되겠군. 이름 모를 장인을 데리러간 별동대가 좋은 소식을 전해올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에 중점을 둬야겠다.’
사실 아셀라스가 직접 나서서 마법으로 길드원들을 원호해준다면 승산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셀라스는 신중했다. 마법을 사용하면서 위치를 노출시켰다가는 지슈카의 저격에 사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 최대한 몸을 숨겼다.
그리고 그의 그 신중함 때문에 지슈카를 비롯한 체다카 길드의 주전력은 사막에 계속 발이 묶여있을 수밖에 없었다.
***
“헉헉…”
칸의 대장간 앞.
이벨린은 그리드를 만나겠다며 막무가내로 찾아온 자이언트 길드원들을 단신으로 막아서고 있었다.
하지만 적의 숫자는 최초에 16명이나 됐었다. 그리고 추측하기로 전원 150레벨 이상의 정예였다.
이벨린이 212레벨로서 상위 랭커라고는 하나 단신으로 그들을 전부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특히 이벨린이 애용하는 무기, 프람베르그는 중갑옷을 무장하고 있는 상대에겐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내구력이 워낙 약한 탓에 탄탄한 갑옷을 벴다간 오히려 검이 먼저 부러졌다.
한데 하필이면 적 중 절반 이상이 중무장한 기사 클래스였다.
퍼억!
“크악!”
3시간가량의 사투.
4명의 적을 해치우긴 했지만 아직 12명이나 남아있다.
스테미너에 한계가 온 탓에 움직임이 느려졌다. 해머에 공격을 허용하고 어깨가 부셔져버렸다.
쓰러져 신음하는 이벨린의 예쁘장한 얼굴을 자이언트 길드원이 발로 짓밟았다.
“체다카 길드도 별거 아니구만? 소수정예는 개뿔. 이딴 쓸모없는 꼬맹이가 포함 된 길드의 수준 따위 더 안 봐도 뻔하지. 안 그래?”
“맞아! L. T. S에선 어땠을지 몰라도 Satisfy에서는 우리 자이언트 길드가 최강이다! 체다카 길드 따위 명함도 못 내밀지!”
자이언트 길드원들은 이벨린을 정말로 간신히 제압한 주제에 함부로 지껄였다. 과정이 어렵기는 했으나 결국 승리하였으니 기가 산 것이다.
이벨린은 자신과 체다카 길드를 싸잡아 무시하는 자이언트 길드원들의 태도에 분해서 눈물까지 글썽였다.
‘이깟 놈들한테 형과 누나들이 비웃음 당하게 만들다니… 내가 약한 탓이야.’
소년의 나약한 모습에 동정심을 품게 될 법도 하건만, 자이언트 길드원들은 오히려 즐거워했다.
“얼씨구? 울어? 그러고 보니까 네놈 사내냐, 계집이냐? 얼굴은 예쁘장하고 체구는 아담한 것이 계집 같은데 가슴을 보면 너무 절벽이라…”
자이언트 길드원이 검으로 이벨린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그에 수치심을 느낀 이벨린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반격하려했으나 여러 명의 적들에게 이미 전신을 제압당한 상태라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무력하게 당하는 그를 보면서 거리의 구경꾼들이 수군거렸다.
“랭커도 별거 아니네…”
“그러게 말이야. 아무리 일대 다수라고 해도 랭커면 얼추 비슷하게 싸워야하는 거 아니야? 근데 몇 명 해치우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잖아? 너무 기대 이한데?”
“랭커가 약한 게 아니라 자이언트 길드가 강한 거겠지. 괜히 최강의 길드 중 하나로 꼽히겠어? 그건 그렇고 체다카 길드는 뭐하냐? 동료가 대로변에서 당하고 있는데 아무도 도와주러 안 오네.”
“쫄아서 도망갔겠지. 소수정예니 뭐니 센 척은 다 하고 다니더니만 실상은 한심하네.”
최강의 체다카 길드가 끊임없이 욕보이고 있다.
이벨린은 이 모든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것 같아서 길드원들에게 너무 죄스러웠다. 그리고 무력한 스스로를 원망했다.
“낄낄… 자, 그럼 이제 진짜 일을 시작해 볼까나.”
이벨린을 실컷 농락하고 만족감을 느낀 자이언트 길드원들이 드디어 칸의 대장간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이곳에 찾아온 목적. 이름 모를 장인을 만나기 위해서 발을 들였다.
한데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이벨린이 또 다시 그들의 앞길을 가로 막았다.
“절대로 그 분을 만나게 할 순 없다…”
자이언트 길드원들이 콧방귀 뀌었다.
“아~ 거참. 좆도 아닌 놈이 끝까지 까부네. 야, 그리고 애초에 이름 모를 장인한테도 선택권을 줘야 되는 거 아니냐? 너희 같은 허접한 길드보다 우리 길드에 가입하는 게 그 사람한테도 좋을 거라니까? 에라~ 얼른 뒤지고 로그아웃이나 해라!!”
퍽!
자이언트 길드원이 이벨린을 세게 때렸다. 그러자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던 이벨린의 갑옷 일부가 부셔지면서 한쪽으로 날아갔다.
한데 하필이면 날아간 방향이…
휘리릭~
까앙!
“…….”
용광로 앞.
바로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동조차 인식 못한 채 집중해서 망치질하고 있던 그리드!
그가 갑자기 행동을 멈췄다.
강철을 모루 위에 올려놓고 단련하고 있는데, 웬 피투성이 철 덩어리 하나가 하필 딱 그 위로 떨어지는 게 아닌가?
몇 시간 동안 정성을 다 하여 제련하고 단련한 강철에 이물질이 섞이고 말았다.
“…….”
부들부들.
커다란 충격을 받은 그리드가 말없이 경기를 일으켰다.
자이언트 길드원들은 눈치도 없이 그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당신이 이름 모를 장인이시지요?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자이언트 길드의 마스터이자 통합랭킹 3위이신 크리스 님의 명령을 받들어 당신을 초빙하기 위해 온…”
“씨발.”
“…?”
자이언트 길드원들이 말을 멈췄다. 기껏 예의를 갖춰서 인사하고 있는데 벌떡 일어난 그리드가 다짜고짜 욕을 지껄였기 때문이다.
당황하는 그들을 그리드가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너희가 지금 뭔 짓을 했는지 알고 있냐?”
아이템을 제작하고 있는 도중에 방해받은 것은 처음이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아주 어쩌면 레전드리 등급으로 완성되었을지도 모를 프람베르그를 눈앞의 놈들이 망쳐버렸다는 생각에 그리드는 이성을 잃고 있었다.
“죽인다.”
외뿔의 기괴한 뼈 투구를 뒤집어쓰면서 칠흑의 대검을 한 손에 거머쥐는 그리드의 안광이 미친 사람의 것처럼 번들거렸다.
“님…?”
그리드가 다짜고짜 칼을 뽑아드는 통에 자이언트 길드원들은 당황했다.
그리고 채팅창으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저 인간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거야? 우리가 뭐 잘못했어?>
<그러게 진짜 왜 저러지? 아! 혹시 우리가 이벨린을 저 꼴로 만들어놔서 열 받은 건가? ㅡㅡ;>
<뭐?ㅋㅋ 동료가 당해서 분노했다고? ㅋㅋㅋ그게 말이 돼? 저 인간은 체다카 길드에 가입한지 며칠 안 된 신입으로 파악된다며? 그 며칠 만에 길드원에게 동료애를 느낄 정도로 정이 들었다고? 보통 사람은 안 그러잖아?>
<태생적으로 정이 많은 타입인가보지. 아니면 체다카 길드에 가입하기 전부터 이벨린이랑 친분이 있었던가. >
<헐… 이런 썩을 ㅡㅡ 그러면 골치 아프게 되는데…>
자이언트 길드원들이 그리드를 정감 넘치는 인물로 오해하고 있는 가운데 눈치 빠른 길드원 하나가 새로운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그레이베어라는 아이디의 사내였다.
<어쩌면 이벨린이 당한 것으로 분노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봐. 저 사람은 이벨린은 거들떠도 안 보고 있잖아?>
길드원들이 그레이베어의 채팅에 주목했다.
<이벨린 때문이 아니면 왜 저러는 건데?>
<용광로 앞의 모루와 제작 관련 아이템들 안 보이냐? 아무래도 그는 아이템 제작 중이었던 것 같다. >
<오호라~! 그랬구만! 그는 우리 때문에 작업을 망친거군! 그래서 화가 났던 거야!>
그레이베어 덕분에 의문을 해소한 자이언트 길드원들이 그리드에게 사과했다.
“저희가 당신의 작업을 방해했나보군요? 이것 참 죄송합니다. 충분히 보상할 테니 우선 진정하시고 무기를 거둬주시죠. 그리고 대화를 합시다. 우린 무려 크리스 님의 명령을 받고 당신을 자이언트 길드로 초빙하기 위해서 왔다니까요? 어떻습니까? 영광이죠? 기쁘죠? 슬슬 기분이 풀리죠?”
자이언트 길드에 소속 된 대장장이 유저의 숫자는 10명이 훌쩍 넘는다.
하여 자이언트 길드원들은 대장장이가 아이템을 제작하는 과정을 수차례 견학한바 있다.
평균 2~3시간. 길면 3~4시간 동안 불 앞에 앉아 망치질 하다보면 아이템 하나 만드는 거 뚝딱 아니던가?
그러다가 한 달에 한두 번쯤 운 좋게 에픽템을 제작하고 그 외에는 매번 쓰레기만 배출한다.
이름 모를 장인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까?
그 또한 일반 대장장이들과 똑같이 일하면서 에픽템 만들 확률이 조금 더 높은 것일 뿐이리라.
간부가 되지 못한 평범한 길드원들의 짧은 생각은 거기까지밖에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리드의 작업을 하찮게 치부했다.
“자, 어서 검을 거둬주세요. 고작 아이템 제작 방해받은 거로 그렇게까지 정색하시면 저희가 민망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고작?”
당장 검을 휘두를 기세였던 그리드가 멈칫했다. 그리고 꽈드득! 소리가 장내에 울릴 정도로 세게 이를 갈았다.
“고작 아이템 제작이라고? 너희가 아이템 제작을 한 번이라도 해보고 하는 말이냐? 너희가 뭔데 내 일을 우습게 여기는 거야? 너희가 뭘 안다고 내 노력과 인내를 하찮게 여기는건데? 엉? 잘나가는 길드의 길드원이면 사람 막 무시해도 되냐?”
꾸욱!
다인슬레프를 쥐고 있는 그리드의 손에 강한 힘이 실렸다.
그로부터 느껴지는 전투의지는 어떻게 봐도 진심이었다.
‘투사의 끈기’ 패시브 스킬 덕분에 목숨을 간신히 부지하고 있던 이벨린이 그리드에게 귓속말했다.
-그리드 님, 우선 참으십쇼. 저들의 숫자는 무려 12명이나 됩니다! 그리드 님 혼자서 싸웠다가는 봉변을 당하고 말거에요! 제가 회복할 때까지 대화하면서 시간만 끌어주십쇼!
이벨린 또한 말락서스 레이드에 참가했었다. 그래서 그리드가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리드가 활약할 수 있게끔 무대가 마련됐었던 반면 지금은 아니다.
적은 무려 12명이며 건재하다. 적들의 레벨은 최소 150이상으로 추정되지만 그리드의 레벨은 97에 불과했다.
이 12대 1의 싸움은 어떻게 봐도 승산이 없었다.
이벨린은 부디 그리드가 진정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부질없는 바람이었다.
“좆같은 놈들… 사과하는 태도며 말투며 죄다 마음에 안 들어. 기필코 죽인다.”
그레이베어가 혀를 찼다.
‘진짜로 덤빌 기세군. 멍청이들의 신중하지 못한 말투가 장인을 자극하고 말았어.’
5대장들이 체다카 길드의 주력을 묶어두는 동안 그리드를 회유, 혹은 납치할 것.
그게 바로 이 별동대에게 하달 된 명령이다. 하지만 문제가 뭐냐면 별동대의 대장이 이벨린에게 2번이나 죽어서 로그아웃 된 상태라는 것이다.
‘통솔자가 없으니 제멋대로 지껄이고 결국 사태를 이 지경으로… 하지만 뭐 상관없지.’
상대는 대장장이다. 기괴한 모양의 외뿔 투구와 커다란 대검을 무장한 것이, 얼핏 보면 위협적인 외관이지만 겉모습 따위야 아무 의미 없다
‘대장장이가 대검을 휘두를 수 있을 리도 만무하고… 설사 휘둘러봤자 전혀 위협도 안 된다. 그가 화를 내봤자 뭘 할 수 있겠어? 정 대화가 안 되면 무력을 써서 납치해가면 된다.’
그레이베어와 자이언트 길드원들은 그리드를 언제라도 가볍게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리드가 한 발 앞으로 내딛었다.
콰자작!!
“어?”
자이언트 길드원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벼락처럼 내리 꽂힌 칠흑의 대검이 동료 한 명을 순식간에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크아악!!”
단 일격이다. 특별한 공격 스킬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단지 검을 휘둘렀을 뿐이다.
한데 동료의 생명력이 한 방에 절반 이하로 떨어져버렸다.
“말도 안 돼!”
지금 공격당한 인물의 클래스는 어쌔신이다. 기본적으로 방어력이 취약하고 생명력이 낮다.
동레벨의 딜러에게 공격을 허용할 경우, 단 일격에 피가 절반 이상 다는 경우가 간혹 발생하기는 했다.
하지만 상대는 대장장이지 않은가?
대장장이는 딜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제작계열 직업이다. 그 공격력은 미약해야 정상이다.
한데 그리드의 공격력은 비정상적으로 강했다.
‘대장장이 주제에 뭐가 저렇게 세?’
‘그리고 어쌔신은 빠르다. 그런데 그가 피할 새도 없이 공격을 적중시켜? 대장장이가?’
‘애초에 어째서 대장장이가 대검을 다룰 수 있는 건데?’
대검은 전사 계열 직업군 중에서도 근력이 높은 클래스만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대형무기이다.
특히 저 칠흑의 대검은 보통 대검보다도 더 크고 무거워 보였다. 하지만 그리드는 그 대검을 완벽하게 제어하며 민첩하게 휘두르고 있었으니 어찌 대장장이라 할 수 있겠는가?
‘염병! 저놈 대체 뭔데?!’
자이언트 길드원들의 혼란이 가증되고 있는 그때, 큰 피해를 입은 채 스턴 상태에 빠져있는 어쌔신의 목을 그리드가 베어버렸다.
[파티원 ‘키도’가 사망하였습니다.]
“…….”
단 두 번 공격으로 동료가 사망해버렸다.
경악한 자이언트 길드원들이 입만 뻥긋거렸다.
놀란건 이벨린 또한 마찬가지였다.
‘강하다!’
말락서스 레이드 당시, 그리드는 중간중간 검무를 펼치거나 큰 상처를 입고 다 죽어가는 말락서스에게 마무리 일격을 가했을 뿐 특별한 전투 기술을 선보이지는 않았었다.
평시에는 대장장이로 활동하는 그리드였기에, 이벨린은 그리드가 히든 직업 전직자로서 높은 스탯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지 검술 등의 전투 기술 자체에는 무지하리라 여겼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커다란 오산이었다. 그리드가 검을 휘두르는 폼은 분명히 수많은 전투를 경험한, 숙달 된 검사의 자세였다.
그리고 이벨린의 안목은 정확했다.
전사 시절 그리드는 무려 1년 가까이 오로지 대검만으로 사냥하며 게임을 플레이했었다.
매일 똑같은 사냥터에서 저렙 몬스터들만 사냥하는 통에 레벨업은 느렸지만, 셀 수 없이 많은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탄탄한 기본기가 몸에 배였다.
그리고 그 기본기가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한 후 개화된 높은 스탯과 맞물려 그리드에게 막강한 힘을 선사해주었다.
거기에 다인슬레프가 날개의 역할을 수행해주어서 그리드를 비상하게 만들었다.
‘다인슬레프… 엄청나다!’
그리드는 다인슬레프의 위력에 감탄했다.
<다인슬레프(모작)>
등급:유니크
내구력:500/500 공격력:451~635(+165)
공격 속도:-8%
*대상의 현재 방어력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수치만큼 추가 피해.
*적의 숫자가 많을수록 공격력 증가.
*스킬 ‘금빛 섬광’ 생성.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데 특화 된 무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의 위력일 줄은…’
키도를 죽인 현재 시점에서 그리드가 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자이언트 길드원의 숫자는 11명이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다인슬레프의 추가 공격력 수치는 +165다.
적 한 명당 추가되는 공격력 수치가 +15인 셈이니, 만약 100명의 적이라도 마주하게 된다면 무려 +1,500의 공격력을 추가로 얻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현존하는 최강의 무기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다인슬레프의 기본 공격력이 최대 635인 점을 감안했을 때 추가 공격력 수치는 밸런스를 파괴하는 게 아닌가싶을 정도로 높았다.
‘밸런스를 고려한다면… 추가 공격력에 상한선이 있겠지? 어쨌든 자존심이 상하는 건 사실이군.’
그리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제작한 유니크템들과 비교해서 다인슬레프의 성능이 월등히 뛰어나다. 내 실력은 아직 알바티노에게조차 미치지 못하고 있는 거야.’
다인슬레프의 제작자이며 인류 최초의 대장장이 장인이라고 전해지는 알바티노!
분명히 그는 위대하다. 하지만 파그마의 업적에는 미치지 못해서 ‘전설’의 칭호를 획득하지 못했다.
반면 파그마의 후예인 그리드는 이미 전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바티노보다 실력이 낮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파그마의 후예임을 자처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따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노력해주마. 그리고 우선은 알바티노를 넘어서고 그 다음은 파그마를 뛰어 넘겠다. 하지만 그 전에.’
눈앞의 개자식들을 처치하는 게 우선이다.
“내 아이템의 원수를 갚아주마! 대장장이의 분노!”
[대장장이의 분노 효과가 발동합니다. 20초 동안 공격력과 공격 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우오오오오!!”
능력을 강화시킨 그리드가 다인슬레프를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나란히 서있던 자이언트 길드원 2명이 한꺼번에 공격당했다.
꽈앙!
“큭?!”
“무슨!”
각자 무기와 방패를 세워 공격을 방어한 자이언트 길드원들이 대검에 실린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뒤로 몇 걸음이나 밀려났다.
그 무지막지한 공격력을 재차 체감한 순간, 자이언트 길드원들은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아니, 저놈은 대장장이가 아니다!”
그레이베어가 치를 떨었다.
“속았다! 저놈은 이름 모를 장인이 아니었어! 비열한 체다카 놈들이 우리를 함정에 빠뜨린 거다!”
“어서 이곳을 피하자!”
함정이라고 판단한 이상 오래 머물 수 없는 법!
최악의 사태를 염려한 자이언트 길드원들이 황급히 퇴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리드는 그들을 순순히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도망을 가겠다고?”
그리드가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이상적인 단검을 꺼내서 이상적인 단검의 고유 스킬인 신속한 몸놀림을 사용했다.
[신속한 몸놀림 효과가 발동합니다. 1분 동안 민첩성과 회피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좋아.”
몸이 한결 가벼워졌음을 확인한 그리드가 대장간 바깥까지 도망친 자이언트 길드원들을 뒤쫓았다. 그리고 웅성거리며 모여있는 구경꾼들의 어깨를 밟고 도약하여 순식간에 거리를 좁힘과 동시에 다인슬레프를 내리 꽂았다.
콰자작!!
“끄아아아악!!”
등을 보이고 도망치던 체다카 길드원 중 하나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면서 주저앉았다.
다인슬레프에 제대로 등짝을 베이고 만 것이다.
그의 두 눈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연속해서 떠오르는 알림창 때문이었다.
[회심의 일격을 당했습니다!]
[5,9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아돌표 풀 플레이트 아머의 내구력이 80 하락하였습니다.]
[부셔진 갑옷의 파편이 몸속 깊숙이 침투하였습니다. 제거하기까지 지속적인 출혈 피해를 입습니다.]
“쿨럭!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각혈하며 소리치는 사내의 이름은 맥세븐이다.
그는 모든 스탯과 스킬을 체력과 방어력에 관련하여 투자한, 정말로 보기 드문 순수 탱커인지라 자이언트 길드에서 기대주로 손꼽힐 정도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파그마의 검무의 패시브 효과를 받아 물리 공격력이 20퍼센트, 치명타 확률이 10퍼센트 상승한 상태에서 대장장이의 분노를 사용하고
‘대상의 현재 방어력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수치만큼 추가 피해’
를 입힌다는 다인슬레프의 옵션 효과까지 받고 있는 그리드의 공격력 앞에서는 그의 방어력조차 무용지물이었다.
‘오우거의 일격조차 견뎌내는 내게 이런 피해를 입히다니!’
일견하기에도 어마무시하게 생긴 대검을 사용할 때부터 알아봤어야한다.
끈적거리는 숨을 토해내고 있는 이 남자, 10인의 루키 중 하나인 이벨린보다 훨씬 더 강하다. 체다카 길드가 숨겨뒀던 비밀병기가 분명했다.
‘잘못 걸렸다.’
‘도망쳐야 돼!’
자이언트 길드원들은 구경꾼들의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동료를 버렸다. 부상당한 맥세븐을 버려두고 계속 도망쳤다.
그러자 다시 한 번 이상적인 단검을 뽑아 쥔 그리드가 칼바람을 사용, 그들의 퇴로를 일시적으로 차단했다. 그리고 곧장 뒤쫓아서 파그마의 검무, 파(波)를 발동시켰다.
채채채채채챙!!
계속되는 교전을 통해 질풍창의 빠르기가 극대화되었다.
이제 폰의 공격속도는 인간의 눈으로 쫓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치 열댓 개의 창을 동시에 마구 찔러대는 느낌이다.
여태까지 잘 버티고 있던 지르칸이 결국 한계에 직면했다.
그가 찰나의 틈을 보인 순간, 폰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중에 몸을 날렸다.
“환영난참!”
퍼퍼퍼퍼퍼퍼퍼펑!!
음속의 창이 소나기처럼 퍼붓는다.
황금 갑옷을 무장한 지르칸의 장대한 육체가 순식간에 걸레짝이 되었다.
“끄…윽!”
털썩!
그것은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검사 랭킹 부동의 1위이며 자이언트 길드의 5대장을 통솔하는 최강의 전사가 무릎 꿇고 주저앉은 것이다.
폰이 그의 심장에 창을 겨누고 말했다.
“헉헉… 당신은 여전히 강하군요. 원래라면 제가 졌을 겁니다.”
폰 역시 지르칸 못지않은 중상을 입고 있었다. 전투 초반에 완전히 압도당한 탓이다. 하지만 전투가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질풍창의 옵션 효과 덕분에 강해져서 승기를 잡고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었다.
“그 창…”
청색과 은색이 기품 있는 조화를 이루고 있는 질풍창의 멋들어진 모습을 찬찬이 살핀 지르칸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놀라운 창이군. 혹시 이름 모를 장인이 제작한 아이템인 것인가?”
내가 패배한 것은 그 창 때문이다. 라고,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칸에게 폰이 멋쩍게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가 제작해준 이 창덕분에 진정한 템빨이 무엇인지 체감하고 있는 중이죠.”
“허참…”
시원하게도 인정하는 폰의 태도를 보니 더 이상 비꼴 기분도 들지 않는다.
눈감은 지르칸이 순순히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만 끝내게.”
“고생하셨습니다.”
푸욱!
질풍창이 지르칸의 심장을 꿰뚫었다.
이내 서서히 빛으로 화해가는 지르칸에게 폰이 경고했다.
“다음에 또 우리 길드를 위협할 생각이라면, 그때는 더 큰 각오를 해야만 할 거라고 크리스에게 전해주시길.”
그 후, 폰은 곧장 칸의 대장간으로 달려갔다.
***
스킬빨! 스탯빨! 그리고 템빨!!
완벽한 삼위일체를 이룬 그리드의 현재 공격력은 최상급 랭커들과 비등, 혹은 그 이상이었다.
탱커로서의 능력만큼은 5대장에게도 인정받는 맥세븐조차도 그리드 앞에서는 흐물흐물 무너지는 순두부에 불과할 지경이었으니… 그처럼 강력한 그리드가 현재 공격력의 1. 5배 이상에 해당하는 광역 스킬을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파그마의 검무.’
재앙이다.
“파(波).”
<파(波)>
높고 세찬 파도처럼 격렬한 검무를 춥니다.
당신의 반경 1미터 이내에 존재하는 모든 적들에게 물리 공격력 155퍼센트의 피해를 입히고 모든 속도 감소 상태로 만듭니다.
그리드가 검무의 마지막 동작을 취하는 순간!
검무를 펼치는 그리드의 주변으로 집약되었던 푸른색 검기들이 어지럽게 요동치더니 급기야 사방으로 뻗어져나갔다.
슈슉! 슈슈슈슈슉!!
소름 돋을 정도로 날카로운 파공성이 수십 차례 발생한다.
본능적인 위험을 감지한 자이언트 길드원들이 서둘러 피했다.
“산개해라!”
파파팟!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자이언트 길드원들!
그들은 맹렬한 기세로 쫓아오는 검기의 파도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리드가 발사한 검기들은 하나하나가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들을 집요하게 뒤쫓았다. 명색이 공격스킬이니만큼 속도 또한 빨라서 회피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뭐야! 이거 무슨 유도탄이냐?! 썩을, 뭐 이딴 스킬이 다 있어!!”
결국 자이언트 길드원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들은 검기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어태세를 취하거나 무기를 뽑아서 맞섰다.
그리고 결과는…
쿠콰콰콰콰콰쾅!!!
“크아아아악!!”
“히익!”
10명의 자이언트 길드원 전원이 망신창이가 되어 곳곳에 널브러졌다.
방어를 했던, 맞서 싸웠던, 부질없는 짓이었고 결과는 똑같이 처참했다.
“저럴 수가…”
그리드의 공격력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멀찍이 방치된 채 동료들이 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맥세븐은 겁에 질려 몸을 떨었다.
‘광역 스킬이 저렇게 강력할 수 있다니…’
광역 스킬은 여러 명의 적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대신 공격력이 약하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1차 전직 직업군의 광역 스킬들은 현재 공격력, 혹은 마법력의 50~70퍼센트의 위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2차 전직 직업군. 즉, 200레벨 이상의 최상위급 랭커들의 광역 스킬들은 현재 공격력, 혹은 마법력의 70~90퍼센트의 위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그리드의 광역 스킬은 100퍼센트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맥세븐이 불현 듯 떠올렸다.
‘어쩌면 저것이 말로만 듣던 레어 스킬인가?’
레어 스킬!
그것은 특별한 퀘스트나 업적을 달성하고 획득한 지위, 칭호 등에 따라서 습득할 수 있는, 이름 그대로 희귀한 스킬이다.
예를 들면 유라가 지위 ‘여덟 번째 종’을 획득한 후 습득한 스킬 ‘신벌’이 여기에 속한다.
<신벌>
데미지 15,000~23,000의 피해를 입히는 칠흑의 벼락을 10미터 이내에 소환합니다.
피해 범위:대상의 반경 3미터.
*이 스킬로 적을 해치울 경우, 해치운 적의 숫자 하나당 신앙심이 50씩 상승합니다.
마나 소모:4,000
재사용 대기 시간:1,200초
이처럼, 레어 스킬의 피해량은 시전자의 공격력 수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 데미지라는 특징을 가졌다. 그리고 그 위력과 기능은 현존 최강이다.
하지만 고정 데미지 스킬에는 한계가 따르는 법이다.
훗날 유저들의 레벨과 아이템이 더욱 강화되고 생명력 수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고정 데미지 스킬의 위력은 반감될 것이다.
하지만 파그마의 검무는 경우가 달랐다.
파그마의 검무가 레어 스킬인가? 아니다. 독보적인 레전드리 스킬이다.
그리드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파그마의 검무 역시 강해질 것이고 훗날엔 최강의 스킬로서 눈부신 진화를 맞이할 것이다.
지금 맥세븐을 비롯한 거리의 구경꾼들은 Satisfy 최고의 스킬을 목도한 영광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개중에는 이벨린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체 그리드 님의 클래스는 뭐지?’
체다카 길드원들은 그리드를 최상급 히든 직업 전직자. 즉, 현재 3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에픽 직업 전직자 중 하나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3명의 에픽 직업 전직자 중 정체가 밝혀진 건 아그너스와 카츠뿐이고 최초의 에픽 직업 전직자는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추론은 적합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벨린은 생각을 바꿨다.
“그리드 님… 설마 당신은 유니크 등급의 히든 직업 전직자신 겁니까?”
전율한 이벨린이 중얼거리고 있는 그때, 광역스킬 단 한 방으로 넝마가 된 자이언트 길드원들은 그리드로부터 끔찍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이자는 5대장님들과 동급…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다. 체다카 놈들은 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을 찾아와 영입한 거지?’
외뿔이 서있는 기괴한 뼈 투구를 뒤집어쓰고 있는 눈앞의 사내, 훗날 자이언트 길드에게 커다란 위험으로 작용할 게 분명했다.
그때 조금이라도 길드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저 사내의 능력들을 하나라도 더 파악하는 게 좋다.
판단한 그레이베어가 파티 채팅을 입력했다.
<다들 알고 있지? 우리는 여기서 무조건 죽는다. 어차피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저자와 조금이라도 제대로 싸워보자. 그리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서 상부에 보고하는 거야. 어때?>
<좋아… 이대로 임무 실패해서 돌아가 봤자 욕만 먹을 테니, 뭐라도 해야지. >
<ㅅㅂ 아무리 그래도 순순히 죽어주기엔 너무 억울하다. 내가 숨겨놨던 필살기들을 모조리 꺼내서 상대해주겠어. >
<ㅋㅋㅋ필살기는 개뿔! 그딴 게 있었으면 진작 쓸 것이지 ㅋㅋㅋ 에라! 가자! 어차피 경험치 잃기밖에 더 하겠어?>
<운 나쁜 그레이베어는 아이템도 떨구겠지~>
<재수 없는 소리 지껄이지 마라. >
대로 곳곳에 널브러져 있던 자이언트 길드원들이 하나둘씩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투태세를 취했다.
거리의 구경꾼들만 신났다.
“오오! 드디어 자이언트 길드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려나보군!”
“가라! 이벨린을 해치운 너희들의 실력을 보여 봐!”
Satisfy에는 영상 녹화 기능이 있다.
자이언트 길드 VS 체다카 길드!
거리의 구경꾼들은 흔히 천상계라고 표현하는 최강 길드들의 전쟁을 실시간으로 녹화해서 인터넷에 중계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각종 방송국들이 출동한지도 오래다.
지금, 전 세계 수 억 명의 사람들이 인터넷과 TV를 통해서 그리드와 자이언트 길드의 일전을 시청하는 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생전 처음으로 방송에 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더라면…
멋진 대사와 포즈들로 스스로를 포장하며 영화 속 멋진 주인공이 되기를 꿈꿨을 그리드지만!
“이런 씨부럴 놈들… 니네들 갑자기 왜 쪼개냐? 내가 우스워? 아, 거참.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안 드는 새끼들이네. 단순히 죽이는 걸로는 화가 안 풀리겠어… 음, 큭큭! 좋아! 사지를 차례대로 절단해서 최대한 잔인하게 죽여주마!!”
“분노의 돌진!!”
“정신장악!”
“사슬 묶기!”
자이언트 길드원들은 단순한 힘 싸움으로 그리드를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상태이상을 유발하는 스킬들을 중점적으로 사용했다.
그들의 전투계획은 그리드가 상태이상에 걸릴 때마다 집중 공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쟤 뭐야? 왜 상태이상에 안 걸리냐?>
<레벨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소용이 없는 것 같다. 거기에 온갖 속성의 면역력도 충분히 보유한 듯하고. >
<뭐? 이런 썩을!>
콰작! 푸착! 퍽!
그야말로 일방적인 살육전이었다.
칠흑의 대검이 붉게 물들어간다.
지난 수 년.
약자였던 그리드는 자신을 무시하고 농락하기를 즐기는 강자들을 수도 없이 만나왔다. 그리고 지금 눈앞의 자이언트 길드원들은 그 강자들과 닮아있었다.
그들을 짓밟는 감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쾌감을 유발했다.
“크하하하하하!!”
신나서 광소를 터뜨리며 자이언트 길드원들을 잔인하게 도륙해나가는 기괴한 뼈 투구의 사내는 공포 영화에서나 등장할법한 괴물 같았다.
화면 가득 피가 난무하고, 겁에 질린 자이언트 길드원들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끔찍하게도 울려 퍼졌으니 결국 공중파 방송국들은 현장 중계를 중지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덕분에 케이블 방송국들의 시청률만 비약적으로 상승해서 축제 분위기였다.
그날.
전 세계 각종 언론에 ‘인간 백정 출현!’이라는 헤드라인이 걸렸다.
그리고 얼마 전, 케산 협곡에서 그리드에게 끔찍한 괴롭힘을 당했던 그리드의 동창생들은 TV 앞에서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저 새끼 저거… 역시나 사이코패스였어…”
“와, 진짜 미쳐도 단단히 미쳤네. 이젠 마을 한복판에서도 저 지랄을 하고 다니냐… 무서운 놈…”
그리고 그 후 며칠 동안 언론매체들은 ‘Satisfy의 사이코패스들, 이대로 방치해도 좋은가?’를 주제로 심도 깊은 토론을 나눴다.
또한 이번 사건으로 체다카 길드의 입지가 더욱 더 상승했다.
채 2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최강 자이언트 길드의 300대군을 막아낸 일화는 길이길이 회자될 것이었다.
“크아아아아!!”
크리스는 모든 분노를 사냥에다가 풀었다. 그가 강림한 사냥터에는 몬스터가 남아나질 않았다.
“제길! 제길! 제기라아아알!!”
이름 모를 장인을 체다카 길드에게 빼앗긴 것도 모자라 공식적으로 개망신을 당하였으니 크리스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보복에 나서고 싶었다.
하지만 체다카 길드에서 영입했다는 수수께끼의 인물…
그 외뿔 뼈 투구의 사내가 자꾸 마음에 걸려서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방송에서 보여줬던 그의 광역 스킬은 그가 에픽 이상의 히든 직업 전직자임을 알려주고 있다. 대체 누구지? 설마… 아그너스?’
2번째 에픽 직업 전직자이자 통합랭킹 7위인 아그너스!
모든 것이 베일에 휩싸인 그는 대륙 곳곳에서 온갖 모습으로 변장하고 다니며 해괴한 사건들을 일으키길 즐긴다.
이번 일에 그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지슈카가 은근히 발이 넓은 년이라 골치 아프다.’
크리스는 며칠간의 고민 끝에 길드 공지를 내렸다.
“모든 대외활동을 금지한다! 그리고 오로지 렙업에 열중해라! 가슴 속 분노를 사냥으로 분출해라! 그리고 강해져라! 강해지고 또 강해져서 언젠가 이 치욕을 갚아줄 것이다!”
자이언트 길드가 와신상담하기로 결정하는 그때 체다카 길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체다카 길드의 진정한 강함을 엿본 최상위 랭커들이 끊임없이 체다카 길드를 방문했다.
Satisfy는 L. T. S와 다르다. 고작 18명의 인원으로는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
하여, 마침 세력의 확장을 염두에 두고 있던 체다카 길드는 새로운 길드원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여러 가지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어찌된 것이 테스트를 통과한 인원 대부분의 성격이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음… 아무래도 미친놈은 미친놈을 끌어들이나보다.”
반트너의 의견이었다.
방송 속 그리드의 모습에서 광기를 엿보고 매료된 자들이 찾아온 것이리라.
체다카 길드는 강력한 새 동료를 7명이나 얻었지만 든든하다기보다 불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리드는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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